가정의 미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독신으로 산다는 건 왠지 모르게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나름대로 삶의 뚜렷한 형식에 속하게 됐다. 선진 외국에서야 진작 부터 독신자 클럽이 성행했지만 우리나라도 그런 모임들이 여기 저기 생겨나는 걸 보면서 이제야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독신자 클럽은 자의에 의해, 혹은 어쩔 수 없이 독신으로 사는 이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친선을 도모하고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보면 독신자 클럽 회원들이 그런 단체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모순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결혼이라는 사회 통념을 깨고 사는 이들의 의지를 무조건 백안시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독신자라고 해서 모두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많은 경우에 학문이나 예술, 혹은 사업에 모든 삶을 진력하다 보니 어쩌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이 매우 많다. 또는 이 사람, 저 사람 고르다가 차일피일 시기를 놓치고만 이들도 제법 많은 것 같다. 어쨌거나 자의든, 타의에 의해 독신자가 됐건 이들은 한결같이 수천 년 동안 인류 역사에 거의 절대적 제도로 자리 잡은 결혼, 그리고 가정이라는 제도와 틀을 깬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정이 가져다주는 따뜻함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독신자가 갖는 아주 독특한 자유와 풍요를 소유함으로써 별로 불만 없이 살아가고 있다. 다만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받는 불이익만이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녀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우리나라에 독신자들이, 특히 독신녀들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졌다는 걸 가리킨다. 지금 보다 훨씬 높아지고, 따라서 여자들도 남자들 못지않은 경제능력을 갖게 된다면, 특히 전문분야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결혼률이 떨어질 것은 물론이고 이혼율이 증가하리란 건 불문가지다. 지난날 한국여자들이 결혼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한 불행한 결혼이라도 그 제도에서 벗어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건 경제의 종속변수 때문이었다. 경제적 독립이 독신주의를 가능케 한다고 볼 수 있다.
독신으로 사는 건 많은 이득이 있다. 일단 자유로움이다. 독신자는 자신의 시간을 자신 스스로 관리할 수 있지만 가정에 속한 자는 그렇지 못하다. 서로의 배우자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독신자들에게는 시간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역시 자유의 폭이 늘어난다고 하겠다. 자신의 수입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풍요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것 말고도 사상이나 취미생활, 그리고 종교문제에서도 역시 혼자 살게 되면 자유로울 수 있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 같이 지낸다는 건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혼과 가정의 미래는 부정적인 걸까? 현재와 같은 독신자 증가 추세라면 언젠가 먼 훗날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가정을 꾸린 사람들 보다 숫자적으로 훨씬 앞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특히 개성을 중시하고 개인의 가치와 자유를 중시하는 요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환경을 보면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언젠가 결혼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게 될 그 날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스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반반이다. 앞서 말한 대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가정파괴>는 가능하며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약간 다른 차원이지만, 종교적 이유로 독신으로 사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가정이 주는 평안함 보다는 종교를 통해 얻게 되는 기쁨이 훨씬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일부일처제로서의 현재 가정형태에 동의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한 사람에게 충실하기 보다는 독신으로 살면서 자유롭게 대상을 선택하려고 들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일부다처제가 당연시 되는 걸 보면 역시 결혼과 가정 제도라는 건 인류의 문화라는 면에서 끊임없이 도전과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결혼과 가정이란 건 인류가 역사를 통해 만들어낸 제도일 뿐이지 그 어떤 절대적 사실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로서의 가정이 파괴되는 미래가 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것이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하든, 아니면 보다 세련된 삶의 양식으로서 인류의 미래를 희망차게 만들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국 인간이 결혼과 가정을 포기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리 결혼으로 인한 불편함과 자기희생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독신생활을 통해 많은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가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깨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두 가지만 짚어보기로 하자. 첫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인간이 외롭다는 점이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혼자 감당해야할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한다. 외롭지만 자유하게 살기 보다는 어느 정도 구속되더라도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자녀들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느끼게 되는 기쁨은 그 어느 것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자녀를 포기하지는 결코 않을 것이다.
성서말씀에 의하면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의 은총임이 분명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화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9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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