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실명제 실시에 부쳐

재작년 여름 전격적으로 실시됐던 금융실명제에 이어 금년 7월1일 부터 부동산실명제가 실시된다고 발표됐다. 앞으로 토지(부동산)실명제의 운용 상태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금융실명제가 비교적 무리 없이 정착된 걸로 미루어 보아 이것도 성공적으로 정착될 것으로 생각된다.
대개의 국민들이 이런 개혁적 입법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불만스런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금융실명제 때만 해도 실제로 가명금융자산을 상당히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경제전문가들 역시 그것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우리나라 경제적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시기상조라는 논조를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과연 시기가 너무 빨랐는가? 아니다. 금융자산이 부동산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그들의 염려는 정말 노파심에 불과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 탈 없이 모든 국민들이 자기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토지실명제 실시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말들이 들려온다. 너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거나, 위법성이 제기될 거라느니, 기업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등의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개혁 정책이 나올 때 마다 경제활동과 기업발전 문제로 제동을 걸어왔던 많은 기득권자들의 논리는 항상 이렇다. 예컨대 어떤 기업체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하여 공장 부지를 매입할 때 많은 경우에 회사 임원 명의로 하게 된다. 그래야만 사업을 추진하기 전 까지 비밀이 보장될 수도 있고, 지주들로 부터 적정가격으로 땅을 매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기간 공장건설을 미루더라도 비업무용 토지로 평가받지 않을 수 있으며, 또한 세금의 혜택도 적지 않다는 게 사실이다.
그 외에서도 어쩔 수 없이 명의신탁의 방법으로 등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는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대로 종중의 땅이라든지 미성년자의 땅 등은 실제 소유주와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 사이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알 수 없는 여러 관행과 경제 원리적 상황 때문에 부동산실명제로 인한 부작용이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져다줄 사회개혁의 물줄기가 너무도 분명하고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감수하고라도 더 확고한 사회정의와 도덕적 기준을 세워나가는 일에 사회 윤리의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동산실명제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사실에 집중된다. <토지를 어느 정도나 이재의 수단으로 인정할 것인가?>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특징은 부의 사유화와 자유경쟁에 놓여 있다. 자기 재주껏 돈을 벌어서 자기 능력껏 부를 축적함으로써 자본의 힘을 최고로 높이려는 경제제도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자유주의가 사회주의 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간의 삶을 높힐 수 있다는 사실이 현대 세계사에서 증명되었다. 요즘 정부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소위 <세계화>도 역시 이런 자유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배양하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정의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서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약 취급을 우리가 범죄행위로 처벌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게 아니라 그 마약이 인간과 그 공동체를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무얼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약이라도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라고 항변한다면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부동산 투기도 사실은 이런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부동산 투기로 인해 집값, 땅값이 뛰고, 따라서 전세 값도 천정부지로 뛰었으며, 몇 년 전에는 전세 값을 준비할 수 없어서 자살한 사람까지 생긴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는 바는 토지를 매입하는 것 자체가 불의하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은행원이나 공무원이 은퇴한 후에 사용키 위해 변두리 땅을 구입해 두었는데, 그것이 개발지역으로 편입되면서 갑자기 큰 재산이 되었다면 그게 어디 문제가 되겠는가? 사람이란 노후를 위해 준비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문제를 삼는 것은 전문적인 투기꾼에 의해 저질러지는 불로소득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개발지역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여 노른자위 땅을 모두 사 들인 후에 몇 년, 혹은 몇 달 후에 수십 배의 값을 받고 양도하는 일들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실명제는 토지 공개념의 구체적인 실천이라 생각된다. 가능한 토지는 실수요자들에게, 즉 주거나 생산을 준비하려는 이들에게 정상적으로 팔려야 하겠지만,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는 토지가 어느 정도 부 축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공개념에 비추어 불법적인 행위만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토지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확대 재생산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어떤 개인에게 완전히 사유화된다는 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월급의 차이는 우리가 검소하게 생활을 하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토지를 통해 얻어지는 차이는 대물림되기 때문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토지에 투자하여 정당한 이윤을 챙길 수 있다면 그것은 땅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지만, 토지를 탈법적인 방법으로 이재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이건 분명히 범죄라 아닐 할 수 없다.
성서는 이 땅, 이 지구가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다시 땅으로 돌아갈 뿐이다. 너무 지나치지 않게 돈을 벌자. <9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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