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한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손에는 신문을!" 칼 바르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 대단한 말도 아닌데 거장이 내뱉었다고 해서 툭 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되는 현상이 약간 재미있기도 합니다. 어쨌든지 신학자와 설교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지평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텍스트에만 치중하다가는 삶의 구체성을 놓치게 되고, 컨텍스트에만 치중하다가는 삶의 본질을 상실하게 될테니까 말입니다. 저도 옛날에는 중앙지와 지방지 섞어서 매일 3가지 정도의 신문을 읽었습니다.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문 읽기가 그쳤습니다. TV는 말할 것도 없구요. 완전히 손을 끊었다는 말은 아니지요. 옛날에는 꼼꼼히 들여다보았지만 지금은 그저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티브이 9시 뉴스도 거의 안 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명백합니다. 읽으나 안 읽으나, 보나 안 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흡사 시시한 시트콤처럼 약간씩 주제만 바뀌지 근본적인 것은 늘 제자리 걸음이더군요. 이미 2백년 전에 소로우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신문이 재미 있으려면 그 안에 역사적 진보(변화)가 부각되어야 하는데, 그게 없습니다. 당장 오늘 신문을 펼쳐 보십시오. 1년 전, 5년 전, 10년 전과 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배역만 바뀔 뿐,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진보가 눈에 뜨이지 않으니까 지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욕망을 더욱 부추기는 이 시대정신에 의해서 이 역사를 퇴보시키는지도 모르죠. 퇴보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도 고착화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고착화는 곧 퇴보나 똑같지요.

교회만이 이 시대를 향해서 그런 역사의 진보를 증언할 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역사의 진보가 도달해야할 마지막 종착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활에서 선취된 종말이 단지 교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교회가 꾸준히 노력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200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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