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장기수 김선명 씨

작년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대구 NCC 인권위원회의 <목요기도회>에 사상범으로 수십여 년 동안 복역하다가 출소한 어떤 분이 참석하셨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그 분은 사상범이 겪어야 할 그런 일반적인 길을 거쳐 육십이 넘은 나이에 아무 의지할 곳 없는 신세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이런 사람들은 남북분단의 상황 속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연민마저 얻지 못한 채 전향서를 쓰느냐 마느냐 따위의 문제로 괴로움을 겪다가, 이십여 년 만에 출옥해 봤자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사회안전법 등에 의한 끊임없는 감시와 이런 저런 제약 때문에 전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 그분은 서울에서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간다고 하는데 그런 일마저도 공안당국의 압력으로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형편인 것 같았다.
사상적인 이유로 영오의 몸이 된 사람들을 우리는 사상범, 확신범, 혹은 정치범이라고 부른다. 개중에는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신념을 확장시키려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비폭력적인 방법, 예컨대 말이나 글로써 그 사회 체제에 반하는 사상을 전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이들이 일본이나 독일의 적군파이고, 후자에는 우리나라의 전민연에서 활동하는 일부 사람들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간첩 혐의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이들도 역시 이런 기준으로 구별될 수 있다. 6,70년대에는 남한의 사회혼란을 목적으로 남파된 무장간첩 사건이 여러 번 있었으며, 재일교포로 위장하여 비폭력적으로 고정간첩활동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에는 사실상 간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도 없지 않았다. 이 모든 불행이 분단체제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통일의 염원을 하루 속히 현실로 이루어야 하겠다.
어찌 됐건 오늘 세계에서 최장기수로 복역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김선명 씨(68세)는 서울 출신으로 51년 전쟁 중 간첩혐의로 체포돼 사상전향을 거부하고 자그마치 44년 째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라고 한다. 그는 오랜 독방 수형생활로 인한 위장병, 고혈압, 백내장 등으로 시력을 잃어 더는 감옥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태인데, 현재 유엔 인권위원회에 간첩혐의에 대한 무죄를 탄원하고,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복역생활 44년은 세계최고이기 때문에 기네스북에 올라 있으며,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하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최고 기록 보유자도 역시 우리 남한의 대전교도소에 있는 안학섭 씨(64세)로서 그는 현재 42년 째 복역하고 있다고 한다.(이상 ‘시사저널’ 254호 45쪽 참조)
김선명 씨가 어떤 잔인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했기에 거의 반세기 동안 영오의 몸이 되어야 했는지 그 거간의 사정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지난번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했던 엠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평생을 철창 안에서 살아야 할 그런 사람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한 인간의 인생은 이 우주에서 유일한 것인데 그를 그렇게 강제적으로 얽어매도 좋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판단보다는 선입관이나 감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처럼 분단질서 속에 살아가는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 “빨갱이는 모두 죽여 버려야 해!” 이런 말을 우리는 많이 들어왔고 지금도 그런 사회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마저도 그런 말에 박수를 치는 그런 우리의 현실이다. 과연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확실한 건지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만약 예수님이라면 우리와 똑같이 말씀하셨을까?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지도 않고 집단적으로 그를 매도하곤 한다. 그런 현상을 매카시즘이라고 부르기고 하고 종교재판, 마녀사냥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보안법에 의하면 이적행위는 모두 범법행위에 속한다. 그런데 이적행위라는 것이 너무도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법을 다루는 사람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위험의 소지가 너무 많다. 예컨대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노동자가 몇 시간 일을 했던지 주인은 한 데나리온 씩 공평하게 일당을 지불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본문을 통해서 목사가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적 경제질서를 옹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설교도 역시 이적행위에 해당될지 모른다는 말이다.
다른 말은 다 접어두고 엠네스티가 양심수라고 선정한 김선명 씨를 44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시키고 있는 우리는 결코 문화적 인간도 아니며, 우리의 사회는 열려진 사회도 아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온 천하를 얻는다 하여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으며, 백 마리의 양 중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내버려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나서는 그런 목자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자기의 생명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남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가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고 다만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후일에 증명된다면 그의 삶을 누가 보상하고 책임을 지겠는가? 이십대 초반에 옥에 들어가 지금 칠순 가까운 나이에 이르기 까지 독방에 갇혀 있는 김선명 씨는 삼천리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 허리병을 앓고 있듯이 우리의 아픔이며, 일종의 디스크다. 간혹 인간의 삶이 코미디같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9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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