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4:1-8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7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8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시편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노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이외의 구약성서도 그런 언급이 나옵니다. 자연은 오늘처럼 과학이 크게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눈에도 신비롭습니다. 그 크기, 그 비밀, 그 조화는 말로 묘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아무리 자연이 위대해도 자연 자체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자연도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고대의 근동과 다른 문명은 자연 숭배에 깊이 빠졌지만 구약성경의 민족인 이스라엘은 자연마저 상대화했습니다. 주술적인 자연숭배를 거부한 겁니다. 위 구절에서 그런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산들은 숫양처럼 뛰논다고 했습니다. 귀엽게 본 겁니다. 땅을 향해서 하나님 앞에서 떨라고 명령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이런 탈주술적 자연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주가 아무리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숫양이나 어린 양에 불과합니다. 오늘 자연과학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연 숭배자들입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연의 많은 원리들을 그들은 분석하고 찾아냅니다. 그런 학자들에 의해서 자연의 깊이가 드러납니다. 간혹 그런 자연과학자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부정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발견한 자연의 원리가 오묘하면 오묘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드러날 뿐입니다.
주님, 하나님만이 온 우주의 참된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