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 10월6일/목

조회 수 1325 추천 수 0 2011.10.05 22:59:04

 

사도행전 21:1-17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바울이 가이사랴를 거쳐 드디어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형제들이 바울 일행을 반갑게 영접했다고 합니다.(17절) 예루살렘의 누구를 가리켜 형제들이라고 일컬은 것일까요? 바울에게 호감을 보이던 사람들이었는지, 아니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일단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칭 사도였습니다. 그게 양쪽 모두 불편했을 겁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앞에서도 몇 번 짚은 말이지만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의 신학적인 입장이 크게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토라와 할례를 여전히 신앙의 중요한 표지로 삼았지만 바울은 그것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당시의 교권은 예루살렘 교회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수세적인 입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전개할 뿐입니다. 가능하면 예루살렘 교회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자기의 신학적인 소신을 양보하면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쨌든지 바울은 예루살렘 공동체에 몇 번 들린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편지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편지에 따르면 그것에서 크게 환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몇몇 사람만 겨우 만났을 뿐입니다. 제 기억이 옳다면 그중의 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동생이 야고보입니다. 그는 유대 그리스도교와 이방 그리스도교 사이를 중재하려고 노력했을지 모릅니다. 역사는 짓궂습니다. 야고보의 노력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교회는 두 쪽이 났습니다.

 

     주님,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도 오늘 우리의 역사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의 책임을 최선으로 감당하게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레벨:18]天命

2011.10.06 14:39:55
*.62.0.143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이 구호에만 그치고 있을 뿐

그 실질이 없이 형식에만 머물러 있고,

또 소위 보수 정통이라 하며 문자적 근본주의에 머물고 있는 한국 교회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지 아니하면

이미 역사에서 살아진 유대주의적 기독교의 운명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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