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5:11-31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탈선하여 남편에게 신의를 저버렸고
13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그의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14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더럽혀졌거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15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
16 제사장은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17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18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의 머리를 풀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맹세하게 하여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몸을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21 (제사장이 그 여인에게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가 마르고 네 배가 부어서 네가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를 마르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23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24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리라
25 제사장이 먼저 그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그 소제물을 여호와 앞에 흔들고 제단으로 가지고 가서
26 제사장은 그 소제물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그 여자에게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로 제단 위에 불사르고 그 후에 여인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할지라
27 그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의 배가 부으며 그의 넓적다리가 마르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28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
29 이는 의심의 법이니 아내가 그의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더럽힌 때나
30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자기의 아내를 의심할 때에 여인을 여호와 앞에 두고 제사장이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31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
위 구절에는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민수기의 본격적인 율법 이야기에서 왜 간통한 아내가 초반에 다루어지는지도 이상하긴 합니다. 실제로 간통했지만 증거가 없거나, 또는 간통이 의심되는 여자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거의 돌에 맞아 죽거나 그에 버금가는 벌을 받습니다. 위 이야기는 증거가 없는 경우입니다. 제사장은 저주의 말을 적은 두루마리를 물에 풀어서 여자에게 먹입니다. 그 뒤에 나타나는 현상에 따라서 이 여자의 죄가 갈립니다. 실제로 죄가 있으면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르게 되고, 죄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술적인 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게 당시에서는 최선이었을 겁니다. 그 일을 당한 아내나 남편이나 늘 의심하면서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나마 확신을 하게 되면 부부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겠지요. 오늘날 대개의 나라에서는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양심이나 종교적인 차원은 내려놓고 실정법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간통죄가 살아 있을 겁니다. 무엇이 최선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주님, 한 가정의 평화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 바른 길을 찾아가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해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