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아에 오면 무언가 새로운 생각거리를 늘 얻을수 있다는
기대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입장(보수,진보)이건 비평이 필요합니다.
일부 비평이 내부 결속용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본래의 의도는 상대를 향한 권면이지요.

문제는 나름 진지하게 상대를 향해 말했는데,
정작 상대는 자신과 무관한 예기라고 간주하고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입니다.

많은 경우, 그 주된 이유는 상대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는 이유는
서로가 이해하고 사용하는 용어(jargon)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여러말들이 난무하지만
정작 상대로부터 기본적인 ‘공명’을 얻어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팽팽한 두 평행성이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구도를 만드는 배경이지요.

저는 이 한계를 벗어나보자는 시도가 ‘다비아’ 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자기만족을 위해 '배설'하는 장이 아니라 믿기에 이런 의견을 드리게 됩니다.

개신교 안에서 신학적 경향을 표현하기에 사용되는 용어만 해도 여러가지 입니다.
(기존 한국 기독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에서, 진보주의 와는 구별해서 사용합니다.)
정통주의, 근본주의, 보수주의, 개혁주의, 복음주의 등 입니다.
이러한 용어들은 각자의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정통주의’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지지 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곧 내 측만 정통(orthodox)이고 나 이외에는 모두 사이비(pagan)임을 부각하자는 말이 아니지요.

‘근본주의’는 19세기의 자유주의에 대항해서
기독교의 근본(fundermantal)을 지키자는 입장입니다.
자유주의를 반대 한다는 입장에서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보수주의’ 입니다.
곧 보수주의라는 큰 틀안에 ‘19세기 근본주의’라는 입장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개혁주의’는 같은 기독도 전통안에 서있지만,
신 정통주의를 비롯한 근래의 입장과 구분되는 의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자주 언급되는 ‘복음주의’는, 선교지향이라는 의도에서
사소한 교파간의 차이는 존종하자는 동기로 출현 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점에서 개혁주의는 좀더 엄밀한 종교개혁의 전통에 서려는 입장이라 할수 있습니다.

위의 다양한 표현 중에서
정통주의, 보수주의, 개혁주의, 복음주의는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한편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호칭되기도 하지요.  

문제는 ‘근본주의’ 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존의 정통주의, 보수주의,… 안에서
자신을 19세기 근본주의와 동일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근본주의’ 라고 생각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류를 이루는 한국 개신교안에서 근본주의를 전통의 영역안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기독교의 근본을 지키려는 그들의 정신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스스로를 근본주의라고 지칭하지 않는 이유는,
단적인 이원론에 입각해서 시대발전을 대하는 폐쇄성 때문입니다.

이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
근본주의=문자주의=스코필즈의 세대주의
혹은 문자주의는 곧 축자영감설 이라는 성급한 단정 때문에,
나름 진지한 주장임에도
결국 '남 의 다리 긁는' 식의 무 의미한 소모가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범주에서 한국 기독교안에 100% 문자주의는 없습니다.
사이비 이단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마찬 가지로, 성경을 100% 상징으로만 이해하는 진보도 없습니다.
다원주의가 아닌이상 혹은 철저한 자유주의가 아닌 이상 그럴리가 없지요.

과연 몇 %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를 가르는 기준 일가요?
단지 비판의 대상이 말 하는 한 마디로 만 으로
‘근본’ 내지 ‘자유’라는 딱지를 쒸우는 형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마치 진보진영을 향해 진보는 무조건 자유주의라고 단정하는 경우가 같습니다.
근본주의의 이름으로 이 시대의 한국기독교를 진단하고 비난하는 일이
정작 의도한 공명을 울리지 못하는 한 예이지요.

상대를 지칭하며 뭉뚱거려 사용하는 ‘근본주의 적’, 혹은 ‘근본주의’가
과연 성경을 대하는 축자영감과 일치될수 있는지
아니 근본주의가 과연 문자주의 였는지 부터 다시 숙고 할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근본주의이며,
근본주의는 문자주의라는 주입된 선입관을 극복하고
실체를 바라보는 일이 공명을 울리는 비평의 시작이겠지요..

결국 설득력 있는 비평은
이렇게 상대 이해를 전제로 하기에 배설과는 다른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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