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6
정용섭목사님께서 전통적'구원론'에 대해서 신학적 훈련이 덜된, 예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이론쯤으로 폄하하셨지만 정작 본인이 가지고 있는 구원에 대한 생각은 자세히 밝히시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내용설명도 없는 '우주론적..','무슬림도 개종없이 얻을 수 있는..','자기 아내를 사랑하면 남의 아내도 인정해야..'정도였지요.
다비아의 분위기가 성서의 중심주제이며, 조직신학의 핵심인 '구원'에 대해 어떤 이유로 해서 논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무시해버리는지 대충 짐작이 안가는 바는 아닙니다만, 신학훈련이 많이 되신 입장에서, 예수를 더 잘 아는 입장에서 상세히 알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정용섭목사님이 소위 '우주론적 구원론'을 잠깐 언급하시면서 종교다원주의는 아니다.란 말을 한적은 있습니다만, 예수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종교다원주의 아닐까요?
제 주위에 있는 친인척 친구 중에도 독일 미국 유수대학에서 신학박사를 마치고 목회나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도 제법됩니다만, 다비아의 직접적인 설명이나 논리를 알고 싶습니다.
다비아의 분위기가 성서의 중심주제이며, 조직신학의 핵심인 '구원'에 대해 어떤 이유로 해서 논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무시해버리는지 대충 짐작이 안가는 바는 아닙니다만, 신학훈련이 많이 되신 입장에서, 예수를 더 잘 아는 입장에서 상세히 알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정용섭목사님이 소위 '우주론적 구원론'을 잠깐 언급하시면서 종교다원주의는 아니다.란 말을 한적은 있습니다만, 예수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종교다원주의 아닐까요?
제 주위에 있는 친인척 친구 중에도 독일 미국 유수대학에서 신학박사를 마치고 목회나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도 제법됩니다만, 다비아의 직접적인 설명이나 논리를 알고 싶습니다.
2007.08.20 21:38:06
최근들어 코람데오님, 도루박님, 대장님(?), 또 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들과 또 다른 다수의 분들이 댓글토론이 벌어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토론이라기 보다는 위에 언급하신 분들이나 다른 상대방 분들이나 상대방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오직 자기생각만 이야기를 하는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결코 조화롭게 될 수 없겠다는 사실을 관전자들은 다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다비안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구경만을 하기도 하고, 일부 댓글에 참여하시는 분 들은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심고 주시고 싶어 하시고...
어쩌다(?)보니 어떤 분은 글쓰기 제한도 당하시기도 하시고...
저렇게 조화될 수 없는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저 댓글에 뛰어들어 한 번 내 이야기를 풀어볼까, 아님 이왕 참은 것 끝까지 참고 그냥 보기만 할까? 이런 쓸데 없는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첨 언급해드린 분 중에서 글쓰기 제한을 당하신 대장님을 제외하고, 코람데오님과 도루박님의 글들을 보면 두 분은 어떤 신성한 임무를 띄고 이 곳에 오셨는지 오로지 남의 글들에 대해서는 생각의 여지없이 생무시하고, 자기주장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대고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 분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하여 한 치의 의심없이 확신을 가지고 계신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역시 참 소중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습니다.
성서의 각 구절들을 그 자체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오늘날의 언어로 나름대로 해석(?)하시는 분은 여기저기에서 적용될 수 있는 구절들을 끄집어내어 나열합니다.
구원에 관계되는 말은 구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다 붙이고, 배타적 구원을 말하고 싶으면 그 비슷한 구절들을 열심히 찾아서 나열하며, 전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땐 전도와 관련있다고 보요지는 구절들을 나열하시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밀어부칩니다.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제시하시면서 말이죠.
그런데, 저와 같은 기독인은 그렇게 보지않음에도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과 교제를 하고 있으며, 하나님(예수님)과 사랑을 주고 받는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믄, 성경이란 하나님에 대한 선조들의 언어로 쓰여진 신앙고백서이며, 인간의 언어한계를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책이며,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계시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낸 책이라고 인식하고 있슴에도 결코 내가 기독인으로서 살아감에 이상이 없단 것입니다.
단지, 이상이 없는 것이아니라 저도 님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구원을 확신하며 살아간단 말이지요.(물론 구원관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님들은 그렇게 믿고 있고, 저는 저대로 믿고 있으니,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는데,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너흰 틀렸고, 나만이 옳다라고 하면 결코 합의점을 찾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아~, 당신들은 그렇게 믿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당신들은 그렇게 구원을 해석하며, 당신들은 그렇게 하나님나라를 이해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난 구원을 이렇게 해석하며,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이해하며 신앙한단다.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무슨 토론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상대방의 말이 무슨 말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해야지(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해?), 당신들은 틀렸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단 그런 야그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만약 그렇게 따지고 싶다면 첨으로 가서 기독교교리를 가지고 하나하나 따져봐야 될 것입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서로 다르다는 것밖엔 확인할 것이 없을 것이고, 그 근본원인은 성서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것입니다.
코람데오님이나 도루박님과 같은 분들은 이미 인문학적 성서읽기를 인정하지 않으신 분들로 느껴지는데 과연 다비아에서 건전한 토론을 열어갈 수 있을까요?(제가 보기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분들과의 댓글토론에 그냥 입을 다무는 것일 것입니다.(제 경우에 정말 많이 참았기에 다른 분들도 저와 같았으리라 짐작해서 하는 이야기니 아닐 수도 있겠지요.)
제가 이 댓글을 쓴 이유는 코람데오님이나 도루박님이 읽으시고 깨달으란 뜻이 아니고, 댓글토론으로 참여하시는 다비안들에게 굳이 위의 분 들을 이해시킬려는 노력이 소용없는 이유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인문학적인 성서읽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논의가 되겠는가? 하는 바로 그 말입니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토론이라기 보다는 위에 언급하신 분들이나 다른 상대방 분들이나 상대방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오직 자기생각만 이야기를 하는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결코 조화롭게 될 수 없겠다는 사실을 관전자들은 다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다비안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구경만을 하기도 하고, 일부 댓글에 참여하시는 분 들은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심고 주시고 싶어 하시고...
어쩌다(?)보니 어떤 분은 글쓰기 제한도 당하시기도 하시고...
저렇게 조화될 수 없는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저 댓글에 뛰어들어 한 번 내 이야기를 풀어볼까, 아님 이왕 참은 것 끝까지 참고 그냥 보기만 할까? 이런 쓸데 없는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첨 언급해드린 분 중에서 글쓰기 제한을 당하신 대장님을 제외하고, 코람데오님과 도루박님의 글들을 보면 두 분은 어떤 신성한 임무를 띄고 이 곳에 오셨는지 오로지 남의 글들에 대해서는 생각의 여지없이 생무시하고, 자기주장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대고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 분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하여 한 치의 의심없이 확신을 가지고 계신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역시 참 소중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습니다.
성서의 각 구절들을 그 자체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오늘날의 언어로 나름대로 해석(?)하시는 분은 여기저기에서 적용될 수 있는 구절들을 끄집어내어 나열합니다.
구원에 관계되는 말은 구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다 붙이고, 배타적 구원을 말하고 싶으면 그 비슷한 구절들을 열심히 찾아서 나열하며, 전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땐 전도와 관련있다고 보요지는 구절들을 나열하시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밀어부칩니다.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제시하시면서 말이죠.
그런데, 저와 같은 기독인은 그렇게 보지않음에도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과 교제를 하고 있으며, 하나님(예수님)과 사랑을 주고 받는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믄, 성경이란 하나님에 대한 선조들의 언어로 쓰여진 신앙고백서이며, 인간의 언어한계를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책이며,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계시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낸 책이라고 인식하고 있슴에도 결코 내가 기독인으로서 살아감에 이상이 없단 것입니다.
단지, 이상이 없는 것이아니라 저도 님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구원을 확신하며 살아간단 말이지요.(물론 구원관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님들은 그렇게 믿고 있고, 저는 저대로 믿고 있으니,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는데,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너흰 틀렸고, 나만이 옳다라고 하면 결코 합의점을 찾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아~, 당신들은 그렇게 믿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당신들은 그렇게 구원을 해석하며, 당신들은 그렇게 하나님나라를 이해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난 구원을 이렇게 해석하며,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이해하며 신앙한단다.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무슨 토론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상대방의 말이 무슨 말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해야지(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해?), 당신들은 틀렸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단 그런 야그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만약 그렇게 따지고 싶다면 첨으로 가서 기독교교리를 가지고 하나하나 따져봐야 될 것입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서로 다르다는 것밖엔 확인할 것이 없을 것이고, 그 근본원인은 성서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것입니다.
코람데오님이나 도루박님과 같은 분들은 이미 인문학적 성서읽기를 인정하지 않으신 분들로 느껴지는데 과연 다비아에서 건전한 토론을 열어갈 수 있을까요?(제가 보기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분들과의 댓글토론에 그냥 입을 다무는 것일 것입니다.(제 경우에 정말 많이 참았기에 다른 분들도 저와 같았으리라 짐작해서 하는 이야기니 아닐 수도 있겠지요.)
제가 이 댓글을 쓴 이유는 코람데오님이나 도루박님이 읽으시고 깨달으란 뜻이 아니고, 댓글토론으로 참여하시는 다비안들에게 굳이 위의 분 들을 이해시킬려는 노력이 소용없는 이유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인문학적인 성서읽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논의가 되겠는가? 하는 바로 그 말입니다.
2007.08.20 21:51:34
All-live님 제 글들이 남의 생각을 생 무시했다고 느껴지셨다면 지송합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벗어나서 그냥 철학과 인문학의 영역에서 진리를 찾아 합의점을 도출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고 생각 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토론이며,
그리고 많은 토론중에 서로 이해 시키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피차일반아닐까요?
그리고 본 사이트가 알려진 것은 설교자들에 대한 비평 때문 입니다.
"비평"이 무었입니까? 상대방의 오류를 지적 하는 작업 입니다..
all-live 님 말씀대로라면 서로 서로의 신앙을 인정해야하며
상대방의 설교와 그 설교를 따르는 자들을 비평할 필요도
없으며 설교비평 자체가 무의미한 작업이라 생각 합니다..
비평당한는 분들 정목사님에게 호되게 비평당하는 부분 많이 있어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에 나름 전혀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적어도 본 개시판이 인문학적 성경읽기에 완전히 동의한 사람들만이
글을 쓸수 있는 닫힌 공간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벗어나서 그냥 철학과 인문학의 영역에서 진리를 찾아 합의점을 도출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고 생각 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토론이며,
그리고 많은 토론중에 서로 이해 시키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피차일반아닐까요?
그리고 본 사이트가 알려진 것은 설교자들에 대한 비평 때문 입니다.
"비평"이 무었입니까? 상대방의 오류를 지적 하는 작업 입니다..
all-live 님 말씀대로라면 서로 서로의 신앙을 인정해야하며
상대방의 설교와 그 설교를 따르는 자들을 비평할 필요도
없으며 설교비평 자체가 무의미한 작업이라 생각 합니다..
비평당한는 분들 정목사님에게 호되게 비평당하는 부분 많이 있어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에 나름 전혀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적어도 본 개시판이 인문학적 성경읽기에 완전히 동의한 사람들만이
글을 쓸수 있는 닫힌 공간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7.08.21 09:21:27
역시 오해이십니다.
제가 말씀을 드렸듯이 코람데오님과 같이 글을 쓰시는 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역시 글쓰기에 제한을 두자는 것도 자격이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비평하시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글구 물론 닫힌 공간이 아니기에 저같은 사람도 있고, 님과 같은 분도 계신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제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코람데오님에게 뭔가를 깨달으시라고 쓴 글이 아니라 댓글로 응대하시는 분들이 알고 있어야 할 점을 언급한 것입니다.
코람데오님 말씀대로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비평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비평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개인의 신앙을 뭐라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목회자)는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다수의 신앙인들을 인도해가는 자리이기에 오류를 줄여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님의 말씀대로 "정목사님에게 호되게 비평당하는 부분 많이 있어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에 나름 전혀 이상 없습니다.. " 맞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혼자만의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지도를 받는 많은 수의 신도들이 있다는 것이 비평의 이유가 되며, 당연히 검증을 받아야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은 코람대오님의 글을 가지고 뭐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시죠?
코람대오님이나 도루박님의 꼭지글에 대해서 몇 몇 분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시길래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목사님의 설교비평을 100% 수용하거나 신학적 입장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진보적이며 다원주의에 가까운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라인에서 토론이 벌어진다고 합의점이 도출될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도 꼭 합일점이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정목사님은 정목사님대로 존중하며, 또 다른 분들도 또 그분대로 존중합니다.
코람대오님이나 도루박님, 대장님, 작은자님 등 모두 들 나름으로는 확신을 가진 신앙인입니다.
그 분들이 믿는 하나님은 제가 믿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점이 좀 다를 뿐 아니겠습니까?
지금 사회적 이슈이자 큰 문제인 아프간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하러 간 사람들의 신앙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곳으로 보내고 있는 리더들의 사고방식이 결국 이런사태를 불러오는 것이며, 순교를 각오하고 선교시로 임하시는 선교사들보다 그런 파송을 주도하고 교육하는 한국의 공격적 선교방식을 이끄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신앙의 관점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신도(성도)들을 리더하고 있는 지도자는 당연히 여러 방향의 검증을 받아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코람데오님과 같은 분들이 다비아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님과 다른 분들과의 댓글토론의 효용성이나 대응방식을 제가 님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반대쪽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꽤 건방지죠? 저도 똑 같으면서...)
다만, 좀 덧붙이자면
어떤 분(누군지 아실래나?)은 비평이라고 한 것이 비평이 아니라 비꼬는 수준에 머무러거나 자신의 주장은 없고 성경구절만 잔뜩 나열해두니 설마 우리가 그런 구절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건 참 어이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남을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지 그게 얼마나 가당찮게 가소로운지...
그래서 저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이 제 속내입니다.
그럼, 이만 ...
제가 말씀을 드렸듯이 코람데오님과 같이 글을 쓰시는 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역시 글쓰기에 제한을 두자는 것도 자격이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비평하시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글구 물론 닫힌 공간이 아니기에 저같은 사람도 있고, 님과 같은 분도 계신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제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코람데오님에게 뭔가를 깨달으시라고 쓴 글이 아니라 댓글로 응대하시는 분들이 알고 있어야 할 점을 언급한 것입니다.
코람데오님 말씀대로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비평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비평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개인의 신앙을 뭐라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목회자)는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다수의 신앙인들을 인도해가는 자리이기에 오류를 줄여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님의 말씀대로 "정목사님에게 호되게 비평당하는 부분 많이 있어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에 나름 전혀 이상 없습니다.. " 맞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혼자만의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지도를 받는 많은 수의 신도들이 있다는 것이 비평의 이유가 되며, 당연히 검증을 받아야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은 코람대오님의 글을 가지고 뭐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시죠?
코람대오님이나 도루박님의 꼭지글에 대해서 몇 몇 분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시길래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목사님의 설교비평을 100% 수용하거나 신학적 입장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진보적이며 다원주의에 가까운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라인에서 토론이 벌어진다고 합의점이 도출될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도 꼭 합일점이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정목사님은 정목사님대로 존중하며, 또 다른 분들도 또 그분대로 존중합니다.
코람대오님이나 도루박님, 대장님, 작은자님 등 모두 들 나름으로는 확신을 가진 신앙인입니다.
그 분들이 믿는 하나님은 제가 믿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점이 좀 다를 뿐 아니겠습니까?
지금 사회적 이슈이자 큰 문제인 아프간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하러 간 사람들의 신앙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곳으로 보내고 있는 리더들의 사고방식이 결국 이런사태를 불러오는 것이며, 순교를 각오하고 선교시로 임하시는 선교사들보다 그런 파송을 주도하고 교육하는 한국의 공격적 선교방식을 이끄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신앙의 관점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신도(성도)들을 리더하고 있는 지도자는 당연히 여러 방향의 검증을 받아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코람데오님과 같은 분들이 다비아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님과 다른 분들과의 댓글토론의 효용성이나 대응방식을 제가 님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반대쪽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꽤 건방지죠? 저도 똑 같으면서...)
다만, 좀 덧붙이자면
어떤 분(누군지 아실래나?)은 비평이라고 한 것이 비평이 아니라 비꼬는 수준에 머무러거나 자신의 주장은 없고 성경구절만 잔뜩 나열해두니 설마 우리가 그런 구절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건 참 어이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남을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지 그게 얼마나 가당찮게 가소로운지...
그래서 저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이 제 속내입니다.
그럼, 이만 ...
2007.08.21 11:51:04
all-live 님 말씀 잘 읽었습니다. 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진지한글 감사드립니다..
성경구절 나열한 가소로운 사람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이왕나온김에 성경이야기 하나더 하죠^^
이사야의 시대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여기저기서 인용하여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고 가르치려고 하자 그들이 이사야에
대해서 한 말이 있죠..
"우리를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지 이사야 자네가 가소롭게 누굴
성경말씀 여기저기 인용해서 교훈하고 경계하려 들어!
우릴 어린애 취급하는 거야!!" ㅎㅎㅎ
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분들이 성경구절 적은 것에 대해서
엘러지 반응 일으키는데 이해를 잘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사야 28:9~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그럼 다음에 또^^ㅎㅎ
진지한글 감사드립니다..
성경구절 나열한 가소로운 사람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이왕나온김에 성경이야기 하나더 하죠^^
이사야의 시대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여기저기서 인용하여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고 가르치려고 하자 그들이 이사야에
대해서 한 말이 있죠..
"우리를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지 이사야 자네가 가소롭게 누굴
성경말씀 여기저기 인용해서 교훈하고 경계하려 들어!
우릴 어린애 취급하는 거야!!" ㅎㅎㅎ
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분들이 성경구절 적은 것에 대해서
엘러지 반응 일으키는데 이해를 잘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사야 28:9~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그럼 다음에 또^^ㅎㅎ
2007.08.25 23:58:31
구원은 철지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오류중에 권위에의 호소!가 있습니다.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다른 주장을 일축해 버리는 수법이죠.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경말씀 인용함으로서 다른 주장들을 일축해 버립니다.
그러니... 누가 그말씀을 모른대? 하는 반응이 나옵니다. 해석이 다르다는 거지... 이런식으로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어렵습니다. 토론의 목적이라면, 글쎄요 합의점을 찾는다기 보다는 다른 생각, 다른 의견에 대한 이해가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습니다. 헤겔의 정반합을 꼭 도출하지 않더라도.. 토론 그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욥기에서도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논쟁에 또 논쟁을 기록해 놓았을까요?
제 나름대로 해석은... 인간들도 뚤린입에 할말은 많다...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논리가 있다.. 뭐 이런 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논쟁에 대해 일축해 버리는 센스를 발휘하시죠... 유구무언하게 만들어 버리는 센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입을 만드신 분이, 말씀을 만드신 분이...
침묵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들려 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잘못은 아닐런지...
논리적 오류중에 권위에의 호소!가 있습니다.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다른 주장을 일축해 버리는 수법이죠.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경말씀 인용함으로서 다른 주장들을 일축해 버립니다.
그러니... 누가 그말씀을 모른대? 하는 반응이 나옵니다. 해석이 다르다는 거지... 이런식으로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어렵습니다. 토론의 목적이라면, 글쎄요 합의점을 찾는다기 보다는 다른 생각, 다른 의견에 대한 이해가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습니다. 헤겔의 정반합을 꼭 도출하지 않더라도.. 토론 그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욥기에서도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논쟁에 또 논쟁을 기록해 놓았을까요?
제 나름대로 해석은... 인간들도 뚤린입에 할말은 많다...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논리가 있다.. 뭐 이런 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논쟁에 대해 일축해 버리는 센스를 발휘하시죠... 유구무언하게 만들어 버리는 센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입을 만드신 분이, 말씀을 만드신 분이...
침묵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들려 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잘못은 아닐런지...
2007.08.26 00:15:30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자신의 욕심이나 자신의 정당성을 옹호하기위해선 모든 면에서 관용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제 자신을 보아도 그러하구요. 타협은 쉽고...지조는 어렵다.. 모든 것이... 무위자연, 그냥 물흘러가듯 그저 그러하다... 나도 나 나름대로 너도 너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삶의 방식이 있으며 나는 내 하나님을 너는 너의 신을 믿고 산다...다 이해한다.. 뭐 이런것 말입니다.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늘 마음속의 갈등은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삶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시며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은 과연 성경을 통해 나에게 어떠 메시지를 주시는가?
과연 내가 이렇게 적당히 인정하며 타협하며 관용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일까?
하나님이 사신 하나님이신대..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인정하며 느껴지는 이 고민이 잘못된 것일까요?
제 천성(?)은 아주 모든 사람에 대해 관용적인데요. 저의 이러한 성격이 물론 여러 사람들 모여살때 피스메이커로서의 기능은 한번씩 하지만, 적당히 아무런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양 그냥 덮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진리의 문제에 대해서 칼을 뽑아야 할 때 조차, 적당히 타협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그래서 늘 갈등입니다. ㅎㅎ
아무튼.. 다원주의 좋지요. 다원주의 좋은겁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서로 인정하고 용납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것이고,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인정하시는 삶은 따로 있다고 좁은길 십자가의 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시길 요구하시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성경구절도... 이전에 보았고 들었던 말씀도 어제보았던 말씀다르고 오늘 보는 말씀이 다른것 모르시나 보네요. 말씀이 내가 분명 읽었고 어떤 것은 외웠고 그랬던 말씀인데 어느날엔 그 말씀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와 마음속에 깊이 찔림을 당하고 회개하게 되고 뭐 그런 경험들 다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심플하게 취급하기엔 하나 하나의 말씀의 깊이와 넓이.. 측량할 수 없는 그분의 계시와 사랑이 너무 깊은데요..
그리고 여기 목사님들도 많이 계시고 실력 좋으신 성경과 신학에 조예가 깊으신 훌륭한 회원님들 많이 계신데요.. 신학교 다니면 기본적으로 현대신학, 철학, 교회사, 등등 다 배우지 않습니까? 다 배운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듯이... 다원주의에 대해 왜 모르겠으며,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대해 다 아는 것 처럼 이야기 하듯이.. 인문학적 성서읽기도 뭐 별것 있습니까? 인문학적으로 성서는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뭐 이런거 아닙니까? 물론 그 깊이와 미래에 대해 열려있는 계시의 점진성에 대해 장점도 많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다 받아들이기에 힘든 것도 많이 있죠. 그것은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몰라서라기 보다는 전통적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있듯이... 인문학적 성서읽기라는 것이... 정서적으로 자유주의의 한 지류가 아닌가? 자유주의라면 아주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한국의 신앙정서가 있기 때문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뭐 그게 그거 아냐? 이렇게 매도하는 조금만 다르면 정죄하는 그런 한국교회의 정서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것 뿐이지.. 상대방이 이런 저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저리 주저리 논지도 없고..그냥 저도 뚤린입에 몇마디 지껄여봅니다.
과연 내가 이렇게 적당히 인정하며 타협하며 관용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일까?
하나님이 사신 하나님이신대..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인정하며 느껴지는 이 고민이 잘못된 것일까요?
제 천성(?)은 아주 모든 사람에 대해 관용적인데요. 저의 이러한 성격이 물론 여러 사람들 모여살때 피스메이커로서의 기능은 한번씩 하지만, 적당히 아무런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양 그냥 덮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진리의 문제에 대해서 칼을 뽑아야 할 때 조차, 적당히 타협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그래서 늘 갈등입니다. ㅎㅎ
아무튼.. 다원주의 좋지요. 다원주의 좋은겁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서로 인정하고 용납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것이고,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인정하시는 삶은 따로 있다고 좁은길 십자가의 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시길 요구하시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성경구절도... 이전에 보았고 들었던 말씀도 어제보았던 말씀다르고 오늘 보는 말씀이 다른것 모르시나 보네요. 말씀이 내가 분명 읽었고 어떤 것은 외웠고 그랬던 말씀인데 어느날엔 그 말씀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와 마음속에 깊이 찔림을 당하고 회개하게 되고 뭐 그런 경험들 다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심플하게 취급하기엔 하나 하나의 말씀의 깊이와 넓이.. 측량할 수 없는 그분의 계시와 사랑이 너무 깊은데요..
그리고 여기 목사님들도 많이 계시고 실력 좋으신 성경과 신학에 조예가 깊으신 훌륭한 회원님들 많이 계신데요.. 신학교 다니면 기본적으로 현대신학, 철학, 교회사, 등등 다 배우지 않습니까? 다 배운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듯이... 다원주의에 대해 왜 모르겠으며,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대해 다 아는 것 처럼 이야기 하듯이.. 인문학적 성서읽기도 뭐 별것 있습니까? 인문학적으로 성서는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뭐 이런거 아닙니까? 물론 그 깊이와 미래에 대해 열려있는 계시의 점진성에 대해 장점도 많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다 받아들이기에 힘든 것도 많이 있죠. 그것은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몰라서라기 보다는 전통적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있듯이... 인문학적 성서읽기라는 것이... 정서적으로 자유주의의 한 지류가 아닌가? 자유주의라면 아주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한국의 신앙정서가 있기 때문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뭐 그게 그거 아냐? 이렇게 매도하는 조금만 다르면 정죄하는 그런 한국교회의 정서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것 뿐이지.. 상대방이 이런 저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저리 주저리 논지도 없고..그냥 저도 뚤린입에 몇마디 지껄여봅니다.
저는 구원이란 것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불완전하고 한계적 개체성을 가진 존재인 '나'가 그 실존을 깊이 깨닫고, 예수가 가진 하나님의 절대하고 완전한 생명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것은 '신비'임과 동시에 '일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구원이란 것이 그저 죽고 난 이후에만 의미가 있는 그 무엇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의 삶에서나 나중에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나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 구원이 아닐까요? 솔직히 죽음은 두렵습니다만...
로마서 8장 18절에서 25절까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리스도, 하나님의 구원 은총은 풀 한포기, 작은 미물 하나에게까지도 미치는 우주론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