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돌아가고픈 탕자"에서 아이콘 욕심에..닉이 짧아야 한다고 해서 "런너"로 바꾸었습니다만,,
솔직히 어디로 어떻게 달려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참 어렵네요,,,
무엇을 믿으란 것인지..어떻게 믿으란 것인지..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어느 분이 쉽게 갈쳐 주시면 좋겠는데..어렵겠지요?
한참을 달렸다 싶었더니..아직 출발도 덜 한것 같고..확신이 선것 같다 싶다가도
어느새 고개 쳐들어 올리는 의문(?) 말씀들어도 갈수록 별 느낌이 없어지는것 같고.
누구 말대로 사탄 마귀의 방해를 이기지 못해서,,?
말도 미처 못배웠을때 부터,,,다녀온 교회...우연한 기회로 심도있게 파 보려 하니까,,,
왜 이렇게 어려운거죠?
한글도 읽는것만 띄엄 띄엄 깨우치셨던 울 어머님의 그 단순한 믿음이 오히려 부럽고,,,
그렇게 단순히 믿으면 구원받고, 복받고, 천국가는 쉬운거라 했는데..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런 믿음은 타종교를 믿는 이들과 크게 다름 없는...
잘나가는 무속인들도,,병고치고 복주고,,귀신쫒아내고 하잖아요,,무엇보다도 날 시퍼렇게 선
작두도 막타고 해도 다치지 않던데...에구 혼나겠다...
어느분은 이렇게 혼란스럽고 힘든게 당연하다 하시던데...
누가좀 보다 쉽게 좀 풀어봐 주세요,,,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게..
그리고 맹목적이고 맹신적이지 않게.
기독교가 여타의 종교와 확실이 구분지어 질수 있는 그 무엇(?)을
확실히 증거 해주실분 않계신가요?
"오직 예수"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다"
이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그들만의(?)" 문구 말고요,,
"믿을수 없는 것을 믿는것이 참된 믿음"이다 라고 한 이천년쯤 전의 교부 누군가가
말씀 하신듯 한데..진짜 그런것인가요?
솔직히 어디로 어떻게 달려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참 어렵네요,,,
무엇을 믿으란 것인지..어떻게 믿으란 것인지..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어느 분이 쉽게 갈쳐 주시면 좋겠는데..어렵겠지요?
한참을 달렸다 싶었더니..아직 출발도 덜 한것 같고..확신이 선것 같다 싶다가도
어느새 고개 쳐들어 올리는 의문(?) 말씀들어도 갈수록 별 느낌이 없어지는것 같고.
누구 말대로 사탄 마귀의 방해를 이기지 못해서,,?
말도 미처 못배웠을때 부터,,,다녀온 교회...우연한 기회로 심도있게 파 보려 하니까,,,
왜 이렇게 어려운거죠?
한글도 읽는것만 띄엄 띄엄 깨우치셨던 울 어머님의 그 단순한 믿음이 오히려 부럽고,,,
그렇게 단순히 믿으면 구원받고, 복받고, 천국가는 쉬운거라 했는데..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런 믿음은 타종교를 믿는 이들과 크게 다름 없는...
잘나가는 무속인들도,,병고치고 복주고,,귀신쫒아내고 하잖아요,,무엇보다도 날 시퍼렇게 선
작두도 막타고 해도 다치지 않던데...에구 혼나겠다...
어느분은 이렇게 혼란스럽고 힘든게 당연하다 하시던데...
누가좀 보다 쉽게 좀 풀어봐 주세요,,,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게..
그리고 맹목적이고 맹신적이지 않게.
기독교가 여타의 종교와 확실이 구분지어 질수 있는 그 무엇(?)을
확실히 증거 해주실분 않계신가요?
"오직 예수"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다"
이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그들만의(?)" 문구 말고요,,
"믿을수 없는 것을 믿는것이 참된 믿음"이다 라고 한 이천년쯤 전의 교부 누군가가
말씀 하신듯 한데..진짜 그런것인가요?
2007.08.31 16:17:00
"사랑"이지 않을까? 아니 "사랑"이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랑만이 예수로 통하는 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있다가 다시 써보겠습니다...
2007.08.31 16:26:50
일주일이나 이주일만에 만나는 울 마눌님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왜 예수를 믿는데???
당신처럼 믿으면 교회 안다녀도 되겠네?
그럼 교회 안나가도 예수 안믿어도 되는데 당신은 왜 교회를 나가고, 왜 예수를 믿고, 왜 아침(?)마다 기도를 하는데???
성경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씌여진 사실이 아니면, 대체 왜 당신은 맨날 성경공부한다고 시간을 다 보내는데???
담에 이에 대한 답을 함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왜 예수를 믿는데???
당신처럼 믿으면 교회 안다녀도 되겠네?
그럼 교회 안나가도 예수 안믿어도 되는데 당신은 왜 교회를 나가고, 왜 예수를 믿고, 왜 아침(?)마다 기도를 하는데???
성경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씌여진 사실이 아니면, 대체 왜 당신은 맨날 성경공부한다고 시간을 다 보내는데???
담에 이에 대한 답을 함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007.09.01 00:09:57
안녕하세요^^
오늘 다비아에 작별 인사를 하려다가 이 글을 봅니다.
진심으로 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너무 괴로워 하지 마세요
사실 제대로 알고 믿는사람 없다는게 제 생각이올시다
부족하나마 배낀글에 제가 올린 요한복음을 참고하시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신학에도 무지하고
모든게 무식하기때문에 어렵게 쓰지 못합니다
단순화시켜서 쉽게 쓴다고 썼습니다
걱정마시고 말씀을 믿으세요^^
샬롬~
오늘 다비아에 작별 인사를 하려다가 이 글을 봅니다.
진심으로 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너무 괴로워 하지 마세요
사실 제대로 알고 믿는사람 없다는게 제 생각이올시다
부족하나마 배낀글에 제가 올린 요한복음을 참고하시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신학에도 무지하고
모든게 무식하기때문에 어렵게 쓰지 못합니다
단순화시켜서 쉽게 쓴다고 썼습니다
걱정마시고 말씀을 믿으세요^^
샬롬~
2007.09.01 18:50:24
실존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 해답을 다른 종교에서
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적인 인격에 의해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답은 시간과 우연에 의해 실존세계가 존재한다는
결론 밖에는 얻을 수 없었기 때문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실존 세계를 시간과 우연의 산물이라는 결론은
지적인 인격체의 설계라는 시각보다 훨씬 비합리적이며 모순이
가득하다 생각 합니다..
성경은 사랑이 본체인 삼위 하나님이라는 인격에서 실존세계의 그 근원을
설명하고 있으며 창조자의 실존 세계와의 관계와 연관성을 가장 합리적인
선에서 대답하고 있는 유일한 종교라 생각 합니다..
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적인 인격에 의해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답은 시간과 우연에 의해 실존세계가 존재한다는
결론 밖에는 얻을 수 없었기 때문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실존 세계를 시간과 우연의 산물이라는 결론은
지적인 인격체의 설계라는 시각보다 훨씬 비합리적이며 모순이
가득하다 생각 합니다..
성경은 사랑이 본체인 삼위 하나님이라는 인격에서 실존세계의 그 근원을
설명하고 있으며 창조자의 실존 세계와의 관계와 연관성을 가장 합리적인
선에서 대답하고 있는 유일한 종교라 생각 합니다..
2007.09.02 02:22:01
런너님, 우째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저도 모태신앙이고 님과 같은 동일한 의문을 20여 년 동안 계속 가졌던 사람이구요.
이 정도면 고민 권위자는 되겠죠.
그래서인지 동질감을 느낍니다.
님의 의문은 구원과 또 구원 받은 후의 삶에 대한 방법론을 말씀 하시는 것 같군요.
전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간단히 다 적은 후에는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참고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 글에는 저의 간증이 조금 있기 때문입니다.
런너님의 문제는
1. 무엇을 믿느냐?
2. 어떻게 믿느냐(믿음 생활과 그리고 삶)
3. 어머님의 믿음이라면 무속 신앙과 같은 수준이 아니냐?
4. 독선은 피하자.
5. 어려울 것이다.
위와 같은 5가지 정도로 생각 해 봅니다.
제 얘기를 다 들으실 때 까지는 런너님에게 믿음이 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믿음이란, 편견을 버린 상태에서 읽어 달라는 것입니다.
말을 제대로 하려면 엄청 길어질 것이지만,
최소한의 말만 하겠습니다.
5번: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민을 스스로 자꾸 만들기 때문입니다.
3번 : 그러므로 어머님의 믿음이 진실 된 믿음입니다.
현대인들이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학문을 다 섭렵 한 후에 나름의 믿음을 정립하겠다는 등, 꾀를 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에 거의 근접 하는 지식을 소유 할 수 있다면, 진리를 선택 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식을 다 배운다는 현실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절대자는 이미 진리를 엑기스화 시켜서 간단히 소유할 수 있도록 다 주셨습니다.
1번: 무엇을 믿느냐 하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일인데, 수많은 하나님(신)들 가운데서
참 神은 “하늘에서 온 者” 뿐입니다. 다른 모든 믿음은 땅에서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혹 하늘에서 받았다고 한들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에 대한 기록을 우리는 성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성경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만, 역사상 가장 정확한 고전문서가 “함무라비 법전”이며 그 정확도는 거의 100%에 가까운 줄로 압니다.
그런데 성경의 정확성은 함무라비 보다 훨씬 더하지요?
또 성경은 다 연결 되어 있어서 성경은 성경으로 푼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학적인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할 자리가 못되겠습니다.
4번: 독선이라든지 배타적이라는 것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매력 있는 사상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믿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좋으면 조용히 믿으면 된다“는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은 절대자에 대한 인격을 부여하지 않는 그냥 그런 믿음이지요.
변화라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모태신앙이고 님과 같은 동일한 의문을 20여 년 동안 계속 가졌던 사람이구요.
이 정도면 고민 권위자는 되겠죠.
그래서인지 동질감을 느낍니다.
님의 의문은 구원과 또 구원 받은 후의 삶에 대한 방법론을 말씀 하시는 것 같군요.
전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간단히 다 적은 후에는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참고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 글에는 저의 간증이 조금 있기 때문입니다.
런너님의 문제는
1. 무엇을 믿느냐?
2. 어떻게 믿느냐(믿음 생활과 그리고 삶)
3. 어머님의 믿음이라면 무속 신앙과 같은 수준이 아니냐?
4. 독선은 피하자.
5. 어려울 것이다.
위와 같은 5가지 정도로 생각 해 봅니다.
제 얘기를 다 들으실 때 까지는 런너님에게 믿음이 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믿음이란, 편견을 버린 상태에서 읽어 달라는 것입니다.
말을 제대로 하려면 엄청 길어질 것이지만,
최소한의 말만 하겠습니다.
5번: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민을 스스로 자꾸 만들기 때문입니다.
3번 : 그러므로 어머님의 믿음이 진실 된 믿음입니다.
현대인들이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학문을 다 섭렵 한 후에 나름의 믿음을 정립하겠다는 등, 꾀를 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에 거의 근접 하는 지식을 소유 할 수 있다면, 진리를 선택 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식을 다 배운다는 현실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절대자는 이미 진리를 엑기스화 시켜서 간단히 소유할 수 있도록 다 주셨습니다.
1번: 무엇을 믿느냐 하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일인데, 수많은 하나님(신)들 가운데서
참 神은 “하늘에서 온 者” 뿐입니다. 다른 모든 믿음은 땅에서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혹 하늘에서 받았다고 한들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에 대한 기록을 우리는 성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성경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만, 역사상 가장 정확한 고전문서가 “함무라비 법전”이며 그 정확도는 거의 100%에 가까운 줄로 압니다.
그런데 성경의 정확성은 함무라비 보다 훨씬 더하지요?
또 성경은 다 연결 되어 있어서 성경은 성경으로 푼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학적인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할 자리가 못되겠습니다.
4번: 독선이라든지 배타적이라는 것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매력 있는 사상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믿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좋으면 조용히 믿으면 된다“는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은 절대자에 대한 인격을 부여하지 않는 그냥 그런 믿음이지요.
변화라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2007.09.02 02:50:47
텔레비 소리에 잠이 반 쯤 깼다.
한 두 마디 할 때 마다 웃고 난리다.
파리가 괴롭힌 것 보다는 그 웃음소리가 거슬려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길레 저 여자들이 저렇게도 웃고 난리냐?
짜증스러운 눈으로 나는 한 5분 동안 들어 보았다.
오로지 육체에 해당하는 즐거움에 웃고 야단이었다.
인생 속에서 저렇게도 의미 있는 일을 찾지 못했는가.
하기사 저들은 돈 벌기 위해서 저러겠지만
저 자리에 참석해서 함께 웃는 사람들은 여자들은 또 무엇인가.
저 사람들도 뭔가 얻을 것이 있어서 참석 해 주는 것일까.
그래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어쨌든 간에 관람 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춘 끼어 맞춘 내용이기에
듣는 사람들의 수준도 저 정도가 아니겠는가.
#########################################
인생! 이건 장난도 아니고 연습도 아닌데.......
순탄한 내 삶에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 때였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들의 죽음에서
육체의 생명이 끝나고 땅으로 묻히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
나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쳤고, 나에게 발전(?)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의 얘기라도 듣고 싶었고 또 서적을 통해서도 알고 싶었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고 오직 의문만 더 해 갈 뿐이었다.
아무 해결도 없고 오히려 번민과 고민으로 인한 나의 정신상태와 마음은
마치 쓰레기장과 같이 복잡해 갈 뿐이었고, 나로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나는 내 일생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젊었을 때는 이럭저럭 현상 유지 하면서 먹고 살다가
늙어서는 취미생활을 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제일 많은 지금이야말로 취미를 한두 개 만들 수 있는 기회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세계 명작이나 철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좀 탐독해 두었다. 명상의 즐거움을 이미 맛 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바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왜 독서와 바둑을 선택했느냐 하면 돈이 제일 들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란 필요한 것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고, 이러한 나의 생각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을 심어 주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유도 없이 계속 솟아나는 인생 본질의 문제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고 계속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에서 바둑을 둘 때는 한두 판을 둘 때 까지는 괜찮았지만
두 판을 넘기고 세 판을 둘 때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배고픈 짐승이 먹이를 얻고자 하는 모습이랄까.
성경의 내용을 빌리자면,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랄까.......
“내가 왜 살지?
이렇게 바둑을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평안할까?“
아무 해결도 없고...... 마음속의 번민은 쓰레기장처럼 그대로이고.......
시도 때도 없이 불청객처럼 솟아오르는 이러저러한 상념들은
항상 나에게 붙어 다니면서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돌아 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군 입대해서도 이러한 괴로움이 붙어 다닌 것은 당연한 일......
심심하면 인생의 회의가 솟아나 나를 괴롭혔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것과 동일한 어려움이었으니
나는 두 개의 짐을 짊어지고 군 생활을 한 셈이었다.
제대를 하고나서 이전에 보던 책들을 뒤적거려 보니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정립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의 말이라고 한들, 거기서 거기였고 도토리 키재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한 그들의 말들도 많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핵심을 나열하지 못한 말들이었기 때문에
같은 한 울타리 안에서 지르는 비명으로만 들려 올 뿐이었다.
나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없어진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교회도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었고 거추장스러운 대상이었다.
나는 건방지기 시작했는데 마음의 소용돌이와 공허함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나는 비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진리를 찾는 나에게
진리는 가만히 놔두지 아니하였다.
서른 살 때인가, 서른한 살 때인가.....
나의 상처가 스스로 곪아 터지고 터져서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은 나를 붙드신 것이었다.
나에게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음을 스스로 알았을 때,
나에게는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을 때
나의 생각이나 나의 행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나의 모든 것 가지고도 진리에 이르기에는 역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나의 마음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나서야
하나님이 기록 하신 성경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애기 수준인 것은 당연한 일.....
구원 받은 후에 당황 하는 수준은 구원 받기 전의 방황 하는 수준과 같았다.
설교를 무수히 들었고 적지 않은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기독교 서적을 뒤적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나에게는 참고가 될 뿐이지
정작 필요한 나 자신의 양식을 얻는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왜 이리 어려운가??
기독교의 세계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역시 전쟁터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다.
적과의 전투만이라도 힘겨워 죽겠는데
내부에서의 첩자(諜者)들에 의한 상처.
전장에서의 약탈..... 외부에서의 또 다른 약탈자들의 공격!!
또 아군의 반란 등......
따라서 설교도 의미 없는 설교들로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
이 모든 상황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들은 필사의 실력으로 계속 싸워야 하는 현실이 기독교의 세계이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내가 목격한 50년 대 부터의 한국 기독교라도 좀 들여다보자.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60년대 말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이단(異端)에게 걸려들어서 신음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본연의 자세를 잃고 게을러지기 시작한 교회들.
따라서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 또 개혁 하는 모습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의 교묘한 속임수.
어지럽고 복잡한 기독교의 상황을 누가 실감나게 설명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이 모두가 영적 전쟁 속에서의 한국 기독교 실태다.
이러한 기독교의 상황이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당황이 쉽게 낫지 않고 믿음이 성장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 자신도 잘 싸우고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결론은 이것이었다.
양적으로 큰일은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게 속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가 살도록 나를 내드려야 한다는 사실과
그래서 믿음을 잃지 않고 더욱 잘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기분이다.
앞으로도 이 목숨 다할 때 까지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헤매던 것 과 같이
헤매면서 또 싸워야할 날이 많을 것 같다.
잠시 인터넷에 대하여 얘기로 돌아가고 싶다.
한 5년 전만 해도 기독교 사이트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고 안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우연히 인터넷 안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사상과 신앙을 접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는 누구인가”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머무른 것 같다.
3년 정도 머물면서 여러 가지 종교인들의 사상을 접하면서 답답함도 느끼고 화도 내고 웃기도 했는데, 남는 것은 고혈압과 배움이었다.
이 사이트 내에서의 엉토당토 않는 말대꾸가 고혈압으로 연결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반면에 얻어진 것도 많으니 적어 보겠다.
내가 이 사이트에 본문으로 적은 글만 해도 430여개가 된다는 알았다(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을 겨우 며칠 전에 알게 됨)
지금도 하나씩 꺼내 읽어 보니 내용이 참 좋다. 다만 글 쓰는 솜씨는 영 아니지만.........(단 성경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한 마디 정도가 틀렸다고 실토한 기억이 난다)
3년 후에 읽어도 괜찮은 게 아니라 10년 50년 후에 읽어도 변치 않고 좋은 내용일 것이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니고 자기 생각이라면 나중에는 변하기 마련이다. 반드시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적은 글은 나중에 몇 번이나 읽어도 은혜스러우니 참 좋다.
나의 기독교 사상은 이렇게 해서...... 나는 누구인가 회원 여러분을 대상으로 해서 기록된 나의 신앙고백은 나에게 오랫동안 보관 되어 읽혀질 것이다.
나는 유명인이 아니라 무명인이고 우명인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만 좋아하고 내 스스로만 읽을 내용에 불과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혹, 혹시 믿게 되면 내 글을 참고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구원 받고 나서는 단 1초도 의심이 안 된다고 한 고백을 듣지 아니했는가!!
나의 신앙에 대한 소재를 얻는 데는 기독교 사이트도 있긴 하다.
1여 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바로 그곳이다.
그 곳에는 나의 선생이 될 만한 분들이 몇 분 있는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성경을 보는 눈이 기독교 텔레비나 기독교 방송 보다는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트 한두 군데는 자주 방문하여 배운다.
그 사이트에서 혹 내가 가르칠 것이 있다고 한들 말하기를 자제한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들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교만 해 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절차인지 모른다.
툭이한 것을 발견 하여 소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내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온갖 종교인들로 짭뽕된 여기를 더 좋아 하는 것 같다.
물론 기독교 밖에 있는, 여기사람들의 교만은 그 열기가 더 심하지만
철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일이기에 더욱 정이 가는 것 같다.
가끔 뒤통수를 때리는 일도 이제는 불쌍히 여길 뿐이다.
나를 더욱 가소롭게 여긴 나머지 비웃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과거처럼 어리석게 말대꾸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아이디를 묵묵부답으로 바꾼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아이디는 자장면 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인생과 돈이라든가 인생해답이라는 아이디였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다른 아이디를 사용
하지 않고 어디서든지 묵묵부답이라는 아이디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말도 안 되는 대꾸에 꼬리말을 적으려니 시간 낭비 하는 것 같고, 내 혈압만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꼬리말로 대꾸 하지 않더라도 섭섭해 하지 말라는 뜻으로 아이디를 이렇게 바꾼 것이고,
욕이나 비난도 감수 한다는 뜻으로 묵묵부답이 된 것이다.
복음이란 억지로 전해야 하는 경우는 따로 있는 것이기에
이전처럼 붙들어 매 놓고 억지로 약 먹이는 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 부탁의 말은,
여러분들의 젊음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조용히 그리고 솔직하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 텔레비의 골 빈 여자들 처럼 살아야 정상인지 생각해 보리는 말이다!!!
죽음의 문제라도 속 시원하게 해결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잠시 밖에 갔다 오니 또 쓸 내용(생각)이 다 꾸겨졌네.......)
고마 결론 맺자.
어제 카페지기 그대로님의 쪽지는 기독교인들이 보내는 쪽지 10통 보다도 더 반가웠다.
사실 기독교 밖의 사람으로서는 처음 받았다.
카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자장면, 아니 묵묵부답이라도 엑스트라 로서는 필요하기에 쪽지를 보내
신 걸로 안다.
그러나 과거의 자장면이 아니라 꿀 먹은 묵묵부답이 되어 버렸으니
과거와는 달리 주가가 많이 떨어질 거라는 추측을 하시길 바란다.
제발 좀 잘 듣고, 저렇게 가치 없는 일에 웃지 말고
차원 높은 일로 즐거워하는 인생들이 바라면서 마치고자 한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두 마디 할 때 마다 웃고 난리다.
파리가 괴롭힌 것 보다는 그 웃음소리가 거슬려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길레 저 여자들이 저렇게도 웃고 난리냐?
짜증스러운 눈으로 나는 한 5분 동안 들어 보았다.
오로지 육체에 해당하는 즐거움에 웃고 야단이었다.
인생 속에서 저렇게도 의미 있는 일을 찾지 못했는가.
하기사 저들은 돈 벌기 위해서 저러겠지만
저 자리에 참석해서 함께 웃는 사람들은 여자들은 또 무엇인가.
저 사람들도 뭔가 얻을 것이 있어서 참석 해 주는 것일까.
그래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어쨌든 간에 관람 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춘 끼어 맞춘 내용이기에
듣는 사람들의 수준도 저 정도가 아니겠는가.
#########################################
인생! 이건 장난도 아니고 연습도 아닌데.......
순탄한 내 삶에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 때였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들의 죽음에서
육체의 생명이 끝나고 땅으로 묻히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
나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쳤고, 나에게 발전(?)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의 얘기라도 듣고 싶었고 또 서적을 통해서도 알고 싶었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고 오직 의문만 더 해 갈 뿐이었다.
아무 해결도 없고 오히려 번민과 고민으로 인한 나의 정신상태와 마음은
마치 쓰레기장과 같이 복잡해 갈 뿐이었고, 나로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나는 내 일생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젊었을 때는 이럭저럭 현상 유지 하면서 먹고 살다가
늙어서는 취미생활을 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제일 많은 지금이야말로 취미를 한두 개 만들 수 있는 기회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세계 명작이나 철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좀 탐독해 두었다. 명상의 즐거움을 이미 맛 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바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왜 독서와 바둑을 선택했느냐 하면 돈이 제일 들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란 필요한 것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고, 이러한 나의 생각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을 심어 주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유도 없이 계속 솟아나는 인생 본질의 문제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고 계속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에서 바둑을 둘 때는 한두 판을 둘 때 까지는 괜찮았지만
두 판을 넘기고 세 판을 둘 때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배고픈 짐승이 먹이를 얻고자 하는 모습이랄까.
성경의 내용을 빌리자면,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랄까.......
“내가 왜 살지?
이렇게 바둑을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평안할까?“
아무 해결도 없고...... 마음속의 번민은 쓰레기장처럼 그대로이고.......
시도 때도 없이 불청객처럼 솟아오르는 이러저러한 상념들은
항상 나에게 붙어 다니면서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돌아 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군 입대해서도 이러한 괴로움이 붙어 다닌 것은 당연한 일......
심심하면 인생의 회의가 솟아나 나를 괴롭혔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것과 동일한 어려움이었으니
나는 두 개의 짐을 짊어지고 군 생활을 한 셈이었다.
제대를 하고나서 이전에 보던 책들을 뒤적거려 보니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정립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의 말이라고 한들, 거기서 거기였고 도토리 키재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한 그들의 말들도 많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핵심을 나열하지 못한 말들이었기 때문에
같은 한 울타리 안에서 지르는 비명으로만 들려 올 뿐이었다.
나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없어진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교회도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었고 거추장스러운 대상이었다.
나는 건방지기 시작했는데 마음의 소용돌이와 공허함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나는 비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진리를 찾는 나에게
진리는 가만히 놔두지 아니하였다.
서른 살 때인가, 서른한 살 때인가.....
나의 상처가 스스로 곪아 터지고 터져서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은 나를 붙드신 것이었다.
나에게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음을 스스로 알았을 때,
나에게는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을 때
나의 생각이나 나의 행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나의 모든 것 가지고도 진리에 이르기에는 역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나의 마음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나서야
하나님이 기록 하신 성경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애기 수준인 것은 당연한 일.....
구원 받은 후에 당황 하는 수준은 구원 받기 전의 방황 하는 수준과 같았다.
설교를 무수히 들었고 적지 않은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기독교 서적을 뒤적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나에게는 참고가 될 뿐이지
정작 필요한 나 자신의 양식을 얻는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왜 이리 어려운가??
기독교의 세계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역시 전쟁터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다.
적과의 전투만이라도 힘겨워 죽겠는데
내부에서의 첩자(諜者)들에 의한 상처.
전장에서의 약탈..... 외부에서의 또 다른 약탈자들의 공격!!
또 아군의 반란 등......
따라서 설교도 의미 없는 설교들로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
이 모든 상황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들은 필사의 실력으로 계속 싸워야 하는 현실이 기독교의 세계이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내가 목격한 50년 대 부터의 한국 기독교라도 좀 들여다보자.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60년대 말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이단(異端)에게 걸려들어서 신음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본연의 자세를 잃고 게을러지기 시작한 교회들.
따라서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 또 개혁 하는 모습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의 교묘한 속임수.
어지럽고 복잡한 기독교의 상황을 누가 실감나게 설명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이 모두가 영적 전쟁 속에서의 한국 기독교 실태다.
이러한 기독교의 상황이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당황이 쉽게 낫지 않고 믿음이 성장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 자신도 잘 싸우고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결론은 이것이었다.
양적으로 큰일은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게 속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가 살도록 나를 내드려야 한다는 사실과
그래서 믿음을 잃지 않고 더욱 잘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기분이다.
앞으로도 이 목숨 다할 때 까지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헤매던 것 과 같이
헤매면서 또 싸워야할 날이 많을 것 같다.
잠시 인터넷에 대하여 얘기로 돌아가고 싶다.
한 5년 전만 해도 기독교 사이트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고 안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우연히 인터넷 안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사상과 신앙을 접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는 누구인가”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머무른 것 같다.
3년 정도 머물면서 여러 가지 종교인들의 사상을 접하면서 답답함도 느끼고 화도 내고 웃기도 했는데, 남는 것은 고혈압과 배움이었다.
이 사이트 내에서의 엉토당토 않는 말대꾸가 고혈압으로 연결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반면에 얻어진 것도 많으니 적어 보겠다.
내가 이 사이트에 본문으로 적은 글만 해도 430여개가 된다는 알았다(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을 겨우 며칠 전에 알게 됨)
지금도 하나씩 꺼내 읽어 보니 내용이 참 좋다. 다만 글 쓰는 솜씨는 영 아니지만.........(단 성경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한 마디 정도가 틀렸다고 실토한 기억이 난다)
3년 후에 읽어도 괜찮은 게 아니라 10년 50년 후에 읽어도 변치 않고 좋은 내용일 것이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니고 자기 생각이라면 나중에는 변하기 마련이다. 반드시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적은 글은 나중에 몇 번이나 읽어도 은혜스러우니 참 좋다.
나의 기독교 사상은 이렇게 해서...... 나는 누구인가 회원 여러분을 대상으로 해서 기록된 나의 신앙고백은 나에게 오랫동안 보관 되어 읽혀질 것이다.
나는 유명인이 아니라 무명인이고 우명인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만 좋아하고 내 스스로만 읽을 내용에 불과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혹, 혹시 믿게 되면 내 글을 참고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구원 받고 나서는 단 1초도 의심이 안 된다고 한 고백을 듣지 아니했는가!!
나의 신앙에 대한 소재를 얻는 데는 기독교 사이트도 있긴 하다.
1여 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바로 그곳이다.
그 곳에는 나의 선생이 될 만한 분들이 몇 분 있는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성경을 보는 눈이 기독교 텔레비나 기독교 방송 보다는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트 한두 군데는 자주 방문하여 배운다.
그 사이트에서 혹 내가 가르칠 것이 있다고 한들 말하기를 자제한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들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교만 해 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절차인지 모른다.
툭이한 것을 발견 하여 소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내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온갖 종교인들로 짭뽕된 여기를 더 좋아 하는 것 같다.
물론 기독교 밖에 있는, 여기사람들의 교만은 그 열기가 더 심하지만
철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일이기에 더욱 정이 가는 것 같다.
가끔 뒤통수를 때리는 일도 이제는 불쌍히 여길 뿐이다.
나를 더욱 가소롭게 여긴 나머지 비웃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과거처럼 어리석게 말대꾸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아이디를 묵묵부답으로 바꾼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아이디는 자장면 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인생과 돈이라든가 인생해답이라는 아이디였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다른 아이디를 사용
하지 않고 어디서든지 묵묵부답이라는 아이디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말도 안 되는 대꾸에 꼬리말을 적으려니 시간 낭비 하는 것 같고, 내 혈압만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꼬리말로 대꾸 하지 않더라도 섭섭해 하지 말라는 뜻으로 아이디를 이렇게 바꾼 것이고,
욕이나 비난도 감수 한다는 뜻으로 묵묵부답이 된 것이다.
복음이란 억지로 전해야 하는 경우는 따로 있는 것이기에
이전처럼 붙들어 매 놓고 억지로 약 먹이는 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 부탁의 말은,
여러분들의 젊음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조용히 그리고 솔직하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 텔레비의 골 빈 여자들 처럼 살아야 정상인지 생각해 보리는 말이다!!!
죽음의 문제라도 속 시원하게 해결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잠시 밖에 갔다 오니 또 쓸 내용(생각)이 다 꾸겨졌네.......)
고마 결론 맺자.
어제 카페지기 그대로님의 쪽지는 기독교인들이 보내는 쪽지 10통 보다도 더 반가웠다.
사실 기독교 밖의 사람으로서는 처음 받았다.
카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자장면, 아니 묵묵부답이라도 엑스트라 로서는 필요하기에 쪽지를 보내
신 걸로 안다.
그러나 과거의 자장면이 아니라 꿀 먹은 묵묵부답이 되어 버렸으니
과거와는 달리 주가가 많이 떨어질 거라는 추측을 하시길 바란다.
제발 좀 잘 듣고, 저렇게 가치 없는 일에 웃지 말고
차원 높은 일로 즐거워하는 인생들이 바라면서 마치고자 한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9.02 10:08:07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한다는 것은, 마치 백주에 벌거 벗는 것과 같은 부끄러움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부끄러움도 넘어설 수 있는 죄악에 대한 아픔이 있어야합니다.
부자 되기를 공상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도와 주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각만 풍성한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하나님 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기도를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소원을 두고 큰소리로 기도 된다면 확률은 더욱 클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매너가 통하지만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 술수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찾는데는 이성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이성이란 믿음을 얻고 난 다음에야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2000년 전의 그가 어떻게 시간적을 초월한 현대의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인가"라든지
"동물과 사람과의 확연한 구별" 등등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성숙도에 따라서 의문의 강도는 더 해 지는 것인 것이므로 성경 안에서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내용을 보나따나 저는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배울 점이 많군요. 탐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있어서는 배울점이 없어서 이만 접을까 합니다.
확실히 다른 세계에 온 것이랍니다.
그동안 고맙습니다.
부자 되기를 공상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도와 주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각만 풍성한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하나님 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기도를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소원을 두고 큰소리로 기도 된다면 확률은 더욱 클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매너가 통하지만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 술수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찾는데는 이성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이성이란 믿음을 얻고 난 다음에야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2000년 전의 그가 어떻게 시간적을 초월한 현대의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인가"라든지
"동물과 사람과의 확연한 구별" 등등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성숙도에 따라서 의문의 강도는 더 해 지는 것인 것이므로 성경 안에서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내용을 보나따나 저는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배울 점이 많군요. 탐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있어서는 배울점이 없어서 이만 접을까 합니다.
확실히 다른 세계에 온 것이랍니다.
그동안 고맙습니다.
2007.09.25 13:10:24

먼저 묵묵부답님께서 떠나시고 싶으시다는 섭섭하네요. 묵묵부답님의 말씀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여기저기서 계시판을 기웃거려 보고 먼저 용어가 딸려서 읽기가 어려웠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글이 무슨 종교학과나 철학과 강의를 듣는듯 아리송한 용어 투성이었습니다. 특별히 코람데오님 말씀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 코람데오님 악의는 없읍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나는 여기서 얻을게 없어 하고 떠나신다면 너무 혼자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 섭섭하네요.
많은 분들이 기독교 하면 첫날처럼님처럼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드리지요. (1) 왜 예수님꼐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을까요? (2) 왜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특히 코람데오님과 뭄묵부답님의.
많은 분들이 기독교 하면 첫날처럼님처럼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드리지요. (1) 왜 예수님꼐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을까요? (2) 왜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특히 코람데오님과 뭄묵부답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