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바쁜 마음에 이것 저것 막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
아예 새 글로 올립니다.
제가 월요일부터 3일간 학회를 가거든요.
글은 못 쓰겠지만 다비아엔 종종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균형님께,
창조과학은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앞의 창조는 균형님이나 제가 똑같이 고백하는
‘하나님에 의한 창조’를 믿는 것입니다.
창조론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창조란
철저히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씩 6일동안에 창세기에 쓰여진
그 순서대로 그 내용대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거지요.
님께서 창조과학이 진화가설 (참고로 과학계에 이런 단어는 없습니다)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셨는데 절반은 맞은 셈입니다.
그 나머지 절반은, 당시 신학의 흐름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등비평을 비롯한 여러 신학적 흐름들이
성경의 권위를 바닥에 떨어 뜨렸다고 생각하여
문자주의적 성경해석만이 옳다고 주장한 사람들과,
제 7일 안식일 교회 목사였던 프라이스란 사람의
‘홍수론’ (노아의 홍수가 모든 화석들과
현재의 지구 지형을 낳게 한 유일한 원인)의 만남이
바로 창조과학의 시작이니까요.
냉정히 말씀 드리면 진화론은 이들이 만난 이 후
찾아낸 공동의 적이라 할 수 있고,
이 두 그룹의 근본 바탕엔 성경의 권위회복이라는
한 가지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한국 창조과학회의 동기도 바로 성경의 권위회복이라는데엔
본인들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문자주의적 해석이야
기도교내에서 또, 신학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이지만,
뭔가를 과학이라 주장하려면, 당연히 과학계에서의
평가를 각오해야지요.
위키 백과사전을 보니 과학을 아래와 같이 정의 하였더군요.
“과학이란 인류가 경험주의와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근거하여
실험을 통해 얻어낸 자연계에 대한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계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을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자연적인 (초자연적이지 않은)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과학적 방법론(scientific method)이란 연역과 귀납의 논리학을 바탕으로
관찰-이론-실험-재현을 바탕으로 한 과학, 즉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통칭한 말이다.”
Noll박사의 글은 연역과 귀납의 논리학으로
창조과학자들의 주장들이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성경적 또는 신앙적 관점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과학자들의 “하나님이 윤리체계를 설정해 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방종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들은 윤리 도덕 체계를 얼마든지 세울 수 있고,
하나님 역시 인간 행위에 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해명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에 대한 반론은
‘인간들은 스스로 윤리체계를 세울 수 없고,
하나님은 당신이 명령하지 않은 인간 윤리에는관심을 갖지 않는다’ 라는
것을 다시 논리적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관을 떠나서 저자의 논리체계가 잘못되고
창조과학자들의 논리체계가 옳다고 판단되면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논리적으로 비판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사실 저 역시 그러한 글을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제를 과학 쪽으로 돌리죠.
먼저 진화와 진화론에 관해 살펴보죠.
과학계에서 진화는 사실 (fact)입니다.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진화를 굳이 한 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모든 생물체는 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진화라는 개념은 다윈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당시 지질학의 발전 (퇴적, 융기, 침식등의 과정이 잘 밝혀져 있었음)과
함께 수 많은 동, 식물의 화석들이 발견됩니다.
단순한 화석의 배열 만으로도, 그 당시의 박물학자나
아마추어 과학자들은 (그들 대부분이 성직자였음)
곧바로 생물의 변화를 추론할 수 있게 됩니다.
수 많은 화석들로부터 얻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은,
그 대부분의 생물이 오늘날엔 존재하지않는다는사실입니다.
화석이 발견된 지층의 지질학적 연대 (그 정확성은 지금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만)를
통하여 지구의 나이도 당시의 일반적 생각보단 훨씬 길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시간에 따른 생물의 변화를 그들은 진화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상당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생물체가 진화한다’라는 사실이
과학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 변화의 작용기작 (mechanism)이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변화하는건 알겠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론)이 없었다는 이유입니다.
잠깐, 다른 예를 하나 들지요.
기상학은 주류, 정상과학입니다. (하도 유사, 사이비과학이 많아서
요즘은 그냥 과학이라고해선 부족한가 봅니다)
그런데 태고적부터 인간들은 먹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경험적 증거는 넘쳐 난 거지요.
그러나 과학의 한 분야가 되기위해선, 그 먹구름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떤 상황에서 그 먹구름이 비가되느냐는
‘작용기작’이 서술되기를 기다려야 했던 겁니다.
기상학의 일기예보는 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일기예보는 미국이나 한국 모두 퍼센티지를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 올 확률 35% 또는 70%.
실 생활에서 우리는 비가 오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35 %는 뭐고 70%는 도대체 뭘까요?
그건 과학이 최대 근사치를 목표로 하는 학문이며,
그 서술방법이 정량적이라는데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그 양적 변화를 측정할 수 있을 뿐이지
질적인 것의 측정은 과학의 영역 밖의 문제인 것이죠.
따라서 오늘 비 올 확률 70% 예보가 나왔는데 비가 안 올 경우
사람들은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질적 판단) 불평 하는데 반해
기상학자들은 오늘은 나머지 30%가 일을 했다며 (양적판단)
한숨 쉬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기예보가 자주 틀린다고 해서
기상학 (대기학)이 설명하는 먹구름의 생성과정 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실수가 생길까요?
우리가 먹구름의 생성요인과 비가 내리는 조건들에 대해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하나 규명해 가면서 부족한 점들이 채워지겠만
그렇다고 해도 70%에서 71%로의 증가하는 식이겠지요.
다시말해 여전히 비가 안오는 날이 있을거란 이야기.
진화란 사실에 대한 경험적, 물질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 작용기작을 몰라서 과학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을 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다윈입니다.
다윈은 당시까지 쌓였던 증거에다 자신의 오랜 관찰 결과를
더해 두 가지 작용기작을 제안하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온
생물체내의 무작위적 ‘변이’와 ‘자연 환경에 의한 선택’ 말입니다.
논리적 추론만으로도 이 두 이론은 그 동안의 궁금증에 대해
충분한 답을 줄 수 있는 이론임에도
당시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즉각 받아들여지진 않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설명은 더 많은 질문들을
불러 일으키는 과학의 근본 생리가 작동한거죠.
자연 선택은 논리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그런대로 이해가 되지만,
생물체의 변이에 대해선 그 당시 과학자들로선
쉽게 수긍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다시 그 작용기작 (어떻게?)이 문제가 된 거죠.
이번 경우엔 그 물질적, 경험적 증거도 없는 마당이니까요.
어떤 과학적이론이 한 이론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다른 이론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하면서
그 이론을 뒷 받침할 실험적 증거들이 보충되어야 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위의 두 가지를 모두 통과하며
오늘에 이릅니다.
많은 대안적 이론 (라마르크의 진화론등)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현대 유전학의 발전으로 무작위적 ‘변위’의 실체와
그 작용기작이 해명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다윈의 진화론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건 아닙니다.
과학에서 완벽함을 찾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도 않습니다.
유사, 사이비 과학을 구별하는 아주 쉬운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차이점을 잘 고려해 보는 것입니다.
다윈 이후 유전학, 분자 생물학, 생태학의 괄목할 만한
발전으로 진화론은 많은 수정과 보완 과정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두 가지 작용기작의
골격은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다윈의 진화론’이라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정과 보완이라는 과정이 때론 아주 격렬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과학자들 사이에
속된 말로 목숨걸고 싸우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거든요.
가끔 창조과학자들이 주류 과학자들이 이러한 논쟁을 예로 들면서,
과학자들도 진화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서로들 싸운다고
왜곡하곤 합니다.
의도적으로 진화와 진화론을 같이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논쟁은 진화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작용기작에 관한 논쟁인 것입니다.
그들이 진화를 부정한다면,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작용기작을 인정 받기위해 그토록 싸우겠습니까?
이쯤해서 우리들이 보다 관심을 갖는 창조과학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죠.
창조과학의 주장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은 문자적으로 정확하며
과학적으로도 정확하다”입니다.
과학의 정의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순간 ‘아, 이건 과학이 아니구나’하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미 결론이 났고, 어떤 근거에서든 자신들의 결론이
옳다고 전제하고 있는 상태에선
과학이란 게임의 규칙들을 따라야 할 이유도
또 따르고 싶어도 따를 방법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란
자신들의 주장에 영향을 줄 만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 입니다.
모은 자료를 어떻게 분석하는지는 님께서도 짐작하실거라 믿습니다.
이건 과학이 아닙니다 (위키 사전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과학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구요.
과학에서 증명의 부담은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쪽에 있습니다.
균형님께선
“그들의 방식이 과학적인 해명인 만큼,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내용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겠지요” 라고 했는데,
실제론, 창조과학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그래서 자신들이 주장하는게 과학적이라는 증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균형님께선
“창조과학이, 과학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의 한 주제에 대한 해명”
일 수 있으며, “창조과학의 시도를 과학의 범주 안에서 보는 이유는
그들의 시도가 입술의 신앙고백 차원뿐 아니라 과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과학의 도구와 방식을 사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님의 생각이 그들에 대한 단순한 심정적 동감인지
아니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만,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죠.
님께서도 이미 ‘날로 먹지 않겠다’는 의도를 표시했으니까요.
균형님의 ‘창조과학이 과학이라는 범주안에서 과학의도구와 방식을 사용한다’라는 생각을
확인시켜 줄 만한 근거를 몇 가지만 들어 주실 수 있나요?
도움이 필요하면 창조과학회 홈 페이지에 가보세요.
창립된지 25년 (미국은 80년)이 넘었으니 과학의 도구와 방식을 사용하여 맺은
열매가 있지 않을까요?
만일 창세기의 과학적 증명은 그 규모나 어려움이 너무커
25년 정도론 불가능하다면, 설사 몇 백년이 걸리더라도
이러한 과학적 방법으로 이러 이러한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라는 식의
계획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없습니다’ 한다고 해서 믿을 필요도 없고, 또 그대로 믿어서도 안되지요.
꼭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홈페이지 방문하신김에 창조과학회 이사라는 임번삼씨의 글을 빼지 말고 읽어 보세요. 제가 조금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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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 컨콜디아사에서 발간한 '중국한자 속에 나타난 천지창조' (The Discovery of Genesis)를 번역하고 있다.
이 책은 1988년 독일출장 중에 발견한 것인데, 중국한자에 하나님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내용이다. 읽을수록 나를 사로잡았기에 번역을 결심했다.
약 5만자로 추산되는 중국의 한자는 상형문자 6백여 개, 표의문자 7백여 개, 표음문자 2만여 개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한자 형성 시기는 BC 24세기쯤으로 성경역사에 비춰보면 바벨탑 사건 직후가 된다. BC 2230년 중국은 동지와 하지 때 하늘을 향해 제사를 드렸다. 그 비문에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오성(五星) 운행 전 태양과 달 있기 전 공허와 암흑 뿐 이 땅 창조 전 찬란한 영광만 빛나는 하늘에 대전쟁 있었노라. 우주통치자 신황(神皇)이 왕으로 오셔서 선악을 분리시키셨도다. 그분이 하늘을 열고 땅 펴시고 인간을 자기 모양대로 창조하니라. 그분 능력으로 천지와 만물이 지음 입었노라' 4천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를 알리는 내용이 중국제사 비문에 적혀 있을까. 상형문자를 보면서 나는 더욱 놀랐다.
선(船)자는 배 주(舟)에 여덟 팔(八)자와 사람을 나타내는 입구(口)자로 되어 있어 노아의 방주에 8명이 탄 것을 암시한다. 또 창조한다는 지을 조(造)자는 먼지와 흙을 나타내는 토 (土)자에 입 구(口)자, 동작이나 생명을 나타내는 1획, 사람이 걸을 수 있다는 之로 구성되어 있다. 창세기 2장 7절은 이 지을 조(造)자를 그대로 증명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土)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口) 불어 넣으시니 (丿)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辶)'
중국인 찬첸킹 목사와 미국 해부학의사인 넬슨 여사가 같이 집필한 책 '중국한자 속에 나타난 천지창조'의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확실히 증거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중국은 유교 도교 불교 등이 발생하기 전 약 2천년간 유일신인 하나님만 믿어왔다고 밝힌다. 당시 하나님을 썅띠(上帝), 센(神), 솅링(聖靈)으로 불렸다. 이것은 발음상 샹, 셴, 솅등과 유사하며, 이는 히브리어의 하나님 칭호인 샤데(샤다이)와 연결된다.
----------------------------------------
왜 임번삼씨는 이 처럼 중대한 업적을 공개적인 학회같은데서
떳떳이 주장하지 못하고 교회 안으로만 가지고 들어올까요?
왜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주축으로)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걸까요?
제 생각엔 손해볼께 없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일거 양득입니다.
과학계로부터 처참한 대우를 받을수록
이들은 자신들에게 순교자적인 이미지를 붙여나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당해야 할 당연한 핍박인거죠.
그들에게 동조하는 교회 지도자나 일반 신도들의 입장에선
속세에서 잘 나가는 과학이 내가 믿는 성경이 옳음을 입증해 준다니
이 또한 반갑지 아니 하겠습니까?
일말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차원도 되구요.
(왜 그러한 입증이 필요한가에 대해선
저도 지금까지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성경의 문자주의 해석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창조과학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창조과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두 문자주의자들만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창조과학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화/창조의 논쟁여부가 아니라
올바른 과학의 정의와 의미가 제대로 알려지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자들(기독교인이건 아니건)의
그 동안의 침묵과 소극적 반응엔 당연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겁니다.
제가 신학자의 글을 번역한 이유는
과학자 (특히 무신론적 과학자)의 창조과학 비판 글들은
너무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자들 스스로가 성경을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수술대에 던져 준 셈인데,
얼마나 잔인하게 파 헤치겠습니까?
과학적 방법론으로 성경을 해부하기 시작하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그대로 찢겨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예수님의 부활,
바로 찢겨 나갑니다.
왜냐구요? 다시 한 번 위키백과의 과학에 대한 정의를 읽어 보세요.
거기에 한 가지 더,
어떤 사건이든 일회성 사건은 과학에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사건의 일회성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까?
“왜 창조론을 뒷받침 하는 과학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들 스스로가 “신의 영역은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과학적 근거를 찾을수 없다”는 답을 하면서도 과학을 한다고 우겨대는 그들,
또 그들과 함께 소위 ‘창조사역의 길’을 떠나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을 바라보는 현실이 슬픕니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천지에 널려 있는데------.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3-17 19:31)
아예 새 글로 올립니다.
제가 월요일부터 3일간 학회를 가거든요.
글은 못 쓰겠지만 다비아엔 종종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균형님께,
창조과학은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앞의 창조는 균형님이나 제가 똑같이 고백하는
‘하나님에 의한 창조’를 믿는 것입니다.
창조론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창조란
철저히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씩 6일동안에 창세기에 쓰여진
그 순서대로 그 내용대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거지요.
님께서 창조과학이 진화가설 (참고로 과학계에 이런 단어는 없습니다)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셨는데 절반은 맞은 셈입니다.
그 나머지 절반은, 당시 신학의 흐름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등비평을 비롯한 여러 신학적 흐름들이
성경의 권위를 바닥에 떨어 뜨렸다고 생각하여
문자주의적 성경해석만이 옳다고 주장한 사람들과,
제 7일 안식일 교회 목사였던 프라이스란 사람의
‘홍수론’ (노아의 홍수가 모든 화석들과
현재의 지구 지형을 낳게 한 유일한 원인)의 만남이
바로 창조과학의 시작이니까요.
냉정히 말씀 드리면 진화론은 이들이 만난 이 후
찾아낸 공동의 적이라 할 수 있고,
이 두 그룹의 근본 바탕엔 성경의 권위회복이라는
한 가지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한국 창조과학회의 동기도 바로 성경의 권위회복이라는데엔
본인들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문자주의적 해석이야
기도교내에서 또, 신학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이지만,
뭔가를 과학이라 주장하려면, 당연히 과학계에서의
평가를 각오해야지요.
위키 백과사전을 보니 과학을 아래와 같이 정의 하였더군요.
“과학이란 인류가 경험주의와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근거하여
실험을 통해 얻어낸 자연계에 대한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계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을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자연적인 (초자연적이지 않은)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과학적 방법론(scientific method)이란 연역과 귀납의 논리학을 바탕으로
관찰-이론-실험-재현을 바탕으로 한 과학, 즉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통칭한 말이다.”
Noll박사의 글은 연역과 귀납의 논리학으로
창조과학자들의 주장들이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성경적 또는 신앙적 관점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과학자들의 “하나님이 윤리체계를 설정해 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방종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들은 윤리 도덕 체계를 얼마든지 세울 수 있고,
하나님 역시 인간 행위에 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해명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에 대한 반론은
‘인간들은 스스로 윤리체계를 세울 수 없고,
하나님은 당신이 명령하지 않은 인간 윤리에는관심을 갖지 않는다’ 라는
것을 다시 논리적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관을 떠나서 저자의 논리체계가 잘못되고
창조과학자들의 논리체계가 옳다고 판단되면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논리적으로 비판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사실 저 역시 그러한 글을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제를 과학 쪽으로 돌리죠.
먼저 진화와 진화론에 관해 살펴보죠.
과학계에서 진화는 사실 (fact)입니다.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진화를 굳이 한 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모든 생물체는 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진화라는 개념은 다윈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당시 지질학의 발전 (퇴적, 융기, 침식등의 과정이 잘 밝혀져 있었음)과
함께 수 많은 동, 식물의 화석들이 발견됩니다.
단순한 화석의 배열 만으로도, 그 당시의 박물학자나
아마추어 과학자들은 (그들 대부분이 성직자였음)
곧바로 생물의 변화를 추론할 수 있게 됩니다.
수 많은 화석들로부터 얻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은,
그 대부분의 생물이 오늘날엔 존재하지않는다는사실입니다.
화석이 발견된 지층의 지질학적 연대 (그 정확성은 지금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만)를
통하여 지구의 나이도 당시의 일반적 생각보단 훨씬 길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시간에 따른 생물의 변화를 그들은 진화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상당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생물체가 진화한다’라는 사실이
과학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 변화의 작용기작 (mechanism)이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변화하는건 알겠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론)이 없었다는 이유입니다.
잠깐, 다른 예를 하나 들지요.
기상학은 주류, 정상과학입니다. (하도 유사, 사이비과학이 많아서
요즘은 그냥 과학이라고해선 부족한가 봅니다)
그런데 태고적부터 인간들은 먹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경험적 증거는 넘쳐 난 거지요.
그러나 과학의 한 분야가 되기위해선, 그 먹구름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떤 상황에서 그 먹구름이 비가되느냐는
‘작용기작’이 서술되기를 기다려야 했던 겁니다.
기상학의 일기예보는 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일기예보는 미국이나 한국 모두 퍼센티지를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 올 확률 35% 또는 70%.
실 생활에서 우리는 비가 오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35 %는 뭐고 70%는 도대체 뭘까요?
그건 과학이 최대 근사치를 목표로 하는 학문이며,
그 서술방법이 정량적이라는데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그 양적 변화를 측정할 수 있을 뿐이지
질적인 것의 측정은 과학의 영역 밖의 문제인 것이죠.
따라서 오늘 비 올 확률 70% 예보가 나왔는데 비가 안 올 경우
사람들은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질적 판단) 불평 하는데 반해
기상학자들은 오늘은 나머지 30%가 일을 했다며 (양적판단)
한숨 쉬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기예보가 자주 틀린다고 해서
기상학 (대기학)이 설명하는 먹구름의 생성과정 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실수가 생길까요?
우리가 먹구름의 생성요인과 비가 내리는 조건들에 대해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하나 규명해 가면서 부족한 점들이 채워지겠만
그렇다고 해도 70%에서 71%로의 증가하는 식이겠지요.
다시말해 여전히 비가 안오는 날이 있을거란 이야기.
진화란 사실에 대한 경험적, 물질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 작용기작을 몰라서 과학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을 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다윈입니다.
다윈은 당시까지 쌓였던 증거에다 자신의 오랜 관찰 결과를
더해 두 가지 작용기작을 제안하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온
생물체내의 무작위적 ‘변이’와 ‘자연 환경에 의한 선택’ 말입니다.
논리적 추론만으로도 이 두 이론은 그 동안의 궁금증에 대해
충분한 답을 줄 수 있는 이론임에도
당시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즉각 받아들여지진 않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설명은 더 많은 질문들을
불러 일으키는 과학의 근본 생리가 작동한거죠.
자연 선택은 논리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그런대로 이해가 되지만,
생물체의 변이에 대해선 그 당시 과학자들로선
쉽게 수긍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다시 그 작용기작 (어떻게?)이 문제가 된 거죠.
이번 경우엔 그 물질적, 경험적 증거도 없는 마당이니까요.
어떤 과학적이론이 한 이론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다른 이론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하면서
그 이론을 뒷 받침할 실험적 증거들이 보충되어야 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위의 두 가지를 모두 통과하며
오늘에 이릅니다.
많은 대안적 이론 (라마르크의 진화론등)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현대 유전학의 발전으로 무작위적 ‘변위’의 실체와
그 작용기작이 해명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다윈의 진화론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건 아닙니다.
과학에서 완벽함을 찾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도 않습니다.
유사, 사이비 과학을 구별하는 아주 쉬운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차이점을 잘 고려해 보는 것입니다.
다윈 이후 유전학, 분자 생물학, 생태학의 괄목할 만한
발전으로 진화론은 많은 수정과 보완 과정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두 가지 작용기작의
골격은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다윈의 진화론’이라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정과 보완이라는 과정이 때론 아주 격렬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과학자들 사이에
속된 말로 목숨걸고 싸우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거든요.
가끔 창조과학자들이 주류 과학자들이 이러한 논쟁을 예로 들면서,
과학자들도 진화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서로들 싸운다고
왜곡하곤 합니다.
의도적으로 진화와 진화론을 같이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논쟁은 진화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작용기작에 관한 논쟁인 것입니다.
그들이 진화를 부정한다면,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작용기작을 인정 받기위해 그토록 싸우겠습니까?
이쯤해서 우리들이 보다 관심을 갖는 창조과학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죠.
창조과학의 주장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은 문자적으로 정확하며
과학적으로도 정확하다”입니다.
과학의 정의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순간 ‘아, 이건 과학이 아니구나’하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미 결론이 났고, 어떤 근거에서든 자신들의 결론이
옳다고 전제하고 있는 상태에선
과학이란 게임의 규칙들을 따라야 할 이유도
또 따르고 싶어도 따를 방법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란
자신들의 주장에 영향을 줄 만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 입니다.
모은 자료를 어떻게 분석하는지는 님께서도 짐작하실거라 믿습니다.
이건 과학이 아닙니다 (위키 사전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과학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구요.
과학에서 증명의 부담은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쪽에 있습니다.
균형님께선
“그들의 방식이 과학적인 해명인 만큼,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내용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겠지요” 라고 했는데,
실제론, 창조과학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그래서 자신들이 주장하는게 과학적이라는 증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균형님께선
“창조과학이, 과학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의 한 주제에 대한 해명”
일 수 있으며, “창조과학의 시도를 과학의 범주 안에서 보는 이유는
그들의 시도가 입술의 신앙고백 차원뿐 아니라 과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과학의 도구와 방식을 사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님의 생각이 그들에 대한 단순한 심정적 동감인지
아니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만,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죠.
님께서도 이미 ‘날로 먹지 않겠다’는 의도를 표시했으니까요.
균형님의 ‘창조과학이 과학이라는 범주안에서 과학의도구와 방식을 사용한다’라는 생각을
확인시켜 줄 만한 근거를 몇 가지만 들어 주실 수 있나요?
도움이 필요하면 창조과학회 홈 페이지에 가보세요.
창립된지 25년 (미국은 80년)이 넘었으니 과학의 도구와 방식을 사용하여 맺은
열매가 있지 않을까요?
만일 창세기의 과학적 증명은 그 규모나 어려움이 너무커
25년 정도론 불가능하다면, 설사 몇 백년이 걸리더라도
이러한 과학적 방법으로 이러 이러한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라는 식의
계획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없습니다’ 한다고 해서 믿을 필요도 없고, 또 그대로 믿어서도 안되지요.
꼭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홈페이지 방문하신김에 창조과학회 이사라는 임번삼씨의 글을 빼지 말고 읽어 보세요. 제가 조금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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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 컨콜디아사에서 발간한 '중국한자 속에 나타난 천지창조' (The Discovery of Genesis)를 번역하고 있다.
이 책은 1988년 독일출장 중에 발견한 것인데, 중국한자에 하나님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내용이다. 읽을수록 나를 사로잡았기에 번역을 결심했다.
약 5만자로 추산되는 중국의 한자는 상형문자 6백여 개, 표의문자 7백여 개, 표음문자 2만여 개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한자 형성 시기는 BC 24세기쯤으로 성경역사에 비춰보면 바벨탑 사건 직후가 된다. BC 2230년 중국은 동지와 하지 때 하늘을 향해 제사를 드렸다. 그 비문에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오성(五星) 운행 전 태양과 달 있기 전 공허와 암흑 뿐 이 땅 창조 전 찬란한 영광만 빛나는 하늘에 대전쟁 있었노라. 우주통치자 신황(神皇)이 왕으로 오셔서 선악을 분리시키셨도다. 그분이 하늘을 열고 땅 펴시고 인간을 자기 모양대로 창조하니라. 그분 능력으로 천지와 만물이 지음 입었노라' 4천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를 알리는 내용이 중국제사 비문에 적혀 있을까. 상형문자를 보면서 나는 더욱 놀랐다.
선(船)자는 배 주(舟)에 여덟 팔(八)자와 사람을 나타내는 입구(口)자로 되어 있어 노아의 방주에 8명이 탄 것을 암시한다. 또 창조한다는 지을 조(造)자는 먼지와 흙을 나타내는 토 (土)자에 입 구(口)자, 동작이나 생명을 나타내는 1획, 사람이 걸을 수 있다는 之로 구성되어 있다. 창세기 2장 7절은 이 지을 조(造)자를 그대로 증명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土)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口) 불어 넣으시니 (丿)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辶)'
중국인 찬첸킹 목사와 미국 해부학의사인 넬슨 여사가 같이 집필한 책 '중국한자 속에 나타난 천지창조'의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확실히 증거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중국은 유교 도교 불교 등이 발생하기 전 약 2천년간 유일신인 하나님만 믿어왔다고 밝힌다. 당시 하나님을 썅띠(上帝), 센(神), 솅링(聖靈)으로 불렸다. 이것은 발음상 샹, 셴, 솅등과 유사하며, 이는 히브리어의 하나님 칭호인 샤데(샤다이)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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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임번삼씨는 이 처럼 중대한 업적을 공개적인 학회같은데서
떳떳이 주장하지 못하고 교회 안으로만 가지고 들어올까요?
왜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주축으로)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걸까요?
제 생각엔 손해볼께 없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일거 양득입니다.
과학계로부터 처참한 대우를 받을수록
이들은 자신들에게 순교자적인 이미지를 붙여나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당해야 할 당연한 핍박인거죠.
그들에게 동조하는 교회 지도자나 일반 신도들의 입장에선
속세에서 잘 나가는 과학이 내가 믿는 성경이 옳음을 입증해 준다니
이 또한 반갑지 아니 하겠습니까?
일말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차원도 되구요.
(왜 그러한 입증이 필요한가에 대해선
저도 지금까지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성경의 문자주의 해석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창조과학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창조과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두 문자주의자들만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창조과학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화/창조의 논쟁여부가 아니라
올바른 과학의 정의와 의미가 제대로 알려지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자들(기독교인이건 아니건)의
그 동안의 침묵과 소극적 반응엔 당연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겁니다.
제가 신학자의 글을 번역한 이유는
과학자 (특히 무신론적 과학자)의 창조과학 비판 글들은
너무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자들 스스로가 성경을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수술대에 던져 준 셈인데,
얼마나 잔인하게 파 헤치겠습니까?
과학적 방법론으로 성경을 해부하기 시작하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그대로 찢겨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예수님의 부활,
바로 찢겨 나갑니다.
왜냐구요? 다시 한 번 위키백과의 과학에 대한 정의를 읽어 보세요.
거기에 한 가지 더,
어떤 사건이든 일회성 사건은 과학에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사건의 일회성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까?
“왜 창조론을 뒷받침 하는 과학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들 스스로가 “신의 영역은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과학적 근거를 찾을수 없다”는 답을 하면서도 과학을 한다고 우겨대는 그들,
또 그들과 함께 소위 ‘창조사역의 길’을 떠나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을 바라보는 현실이 슬픕니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천지에 널려 있는데------.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3-17 19:31)
2007.03.12 13:42:40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창조과학회에 속한 어느 교수님이 강의를 하신 것이 기억이 나는데, 그 중에 박쥐의 눈은 거의 악세사리에 가까운데도 모든 장애물들을 보는 것 처럼 잘 피해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비밀이 박쥐가 쏘는 초음파에 있다고 했습니다... 초음파를 쏘면 그 초음파가 다시 박쥐에게 돌아오면 초음파에 의한 형상이 박쥐의 뇌 속에 입체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리가 의료기기인 초음파의 원리와도 같다는 이야기에 경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
창조과학은 객관적인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섣불리 성서 설화적인 증거를 들이대는 방식이 아니라, 위에서 예를 들었던 것 처럼 현재적인 관점에서 "만물 속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규명해내고, 신앙적으로 도움을 주는 선까지만 자신들의 역할을 제한하는 겸손함을 보였으면 합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창조과학회에 속한 어느 교수님이 강의를 하신 것이 기억이 나는데, 그 중에 박쥐의 눈은 거의 악세사리에 가까운데도 모든 장애물들을 보는 것 처럼 잘 피해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비밀이 박쥐가 쏘는 초음파에 있다고 했습니다... 초음파를 쏘면 그 초음파가 다시 박쥐에게 돌아오면 초음파에 의한 형상이 박쥐의 뇌 속에 입체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리가 의료기기인 초음파의 원리와도 같다는 이야기에 경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
창조과학은 객관적인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섣불리 성서 설화적인 증거를 들이대는 방식이 아니라, 위에서 예를 들었던 것 처럼 현재적인 관점에서 "만물 속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규명해내고, 신앙적으로 도움을 주는 선까지만 자신들의 역할을 제한하는 겸손함을 보였으면 합니다...
2007.03.12 14:55:24
잘 읽었습니다. 글 읽다 보니 작년에 읽었던 이웅상/이영욱 교수 토론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봤습니다.
"젊은 지구론"을 각각 지지/반박하는 내용이었는데, 이영욱 교수의 "전공 과학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창조과학자들에게 수용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발언이 저에겐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련 전공이 아니라서 이런 논리도 있구나... 하고 흥미롭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전공이 같아도 세부 분야가 다르면 내용을 깊이있게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고생물학 전공하신 분이 관련 내용을, 지질학/천문학/생물학/유전학 전공하신 분들이 각 세부 전공 내용"만" 말씀하시고 다른 분들은 돕는, 창조 과학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번 고건 교수 (전산학이였지요) 글도 그렇고, 아직은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더군요.
"젊은 지구론"을 각각 지지/반박하는 내용이었는데, 이영욱 교수의 "전공 과학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창조과학자들에게 수용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발언이 저에겐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련 전공이 아니라서 이런 논리도 있구나... 하고 흥미롭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전공이 같아도 세부 분야가 다르면 내용을 깊이있게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고생물학 전공하신 분이 관련 내용을, 지질학/천문학/생물학/유전학 전공하신 분들이 각 세부 전공 내용"만" 말씀하시고 다른 분들은 돕는, 창조 과학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번 고건 교수 (전산학이였지요) 글도 그렇고, 아직은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더군요.
2007.03.12 15:38:03
80년 넘은 미국 창조학회도 빈이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분위기 못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데 관심없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 내에서도 일관성없이 하고싶은 말 그냥 합니다.
동우회에서 교회내에서 한 이야긴데
자신이 일하는 곳에 돌아간들 누가 따지기나 합니까?
고건 교수라는 사람도 그렇지요.
자신이 주장하듯 미국의 내노라하는 생물학자들도 그 타임즈 기사에
한 마디 반론을 못 피는 그런 이야기였다면,
교회나 기독교 언론에 떠들일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인 서울대의 생물학과에 찾아가서
당당히 따지고 잘못된 교육과정을 바꾸도록 항의했어야지요.
뭘 기대하겠어요?
그런데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아 답답할 뿐입니다.
사실 그런데 관심없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 내에서도 일관성없이 하고싶은 말 그냥 합니다.
동우회에서 교회내에서 한 이야긴데
자신이 일하는 곳에 돌아간들 누가 따지기나 합니까?
고건 교수라는 사람도 그렇지요.
자신이 주장하듯 미국의 내노라하는 생물학자들도 그 타임즈 기사에
한 마디 반론을 못 피는 그런 이야기였다면,
교회나 기독교 언론에 떠들일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인 서울대의 생물학과에 찾아가서
당당히 따지고 잘못된 교육과정을 바꾸도록 항의했어야지요.
뭘 기대하겠어요?
그런데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아 답답할 뿐입니다.
2007.03.12 16:05:25
breeze님의 성의 있는 답글 감사합니다.
마침 공교롭게도, 월~수 동안 저 역시 자리를 비우게 됩니다.
단순한 감상차원에서 섣불리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성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주로 언급하신 과학의 원리에 입각한 해명을
제대로 파악하고 의견을 제시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고... 참 난감하네요.
더우기 제가 창조 과학자가 아닌 이상
직답을 드릴수 없는 안타까움도 있고요.
혹시 제가 이해하는, '문자주의'와 '창조론'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과 신앙차원의 의견을 요청하는 글은 아니지요?
혹시라도, 그렇다고 하신다면 저도 한 마디쯤은 언급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그 많큼 님의 글이 진지하다는 의미에서요.)
하물며 이 글이 저의 동의를 요청하는 의도가 아니라
과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과학적인 원리에 입각한 입장을
소개해 주시는 의도라면 감사히 잘 읽었다고 말씀 드립니다.
첫날처럼님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창조과학계가 지녀 할 바람직한 태도가,
'만물속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를 니티내려는 겸손하며 소박한 동기이기를
바란다는 의견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Noll 박사의 의견에는 여전히 동의 하지 않습니다.
마침 공교롭게도, 월~수 동안 저 역시 자리를 비우게 됩니다.
단순한 감상차원에서 섣불리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성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주로 언급하신 과학의 원리에 입각한 해명을
제대로 파악하고 의견을 제시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고... 참 난감하네요.
더우기 제가 창조 과학자가 아닌 이상
직답을 드릴수 없는 안타까움도 있고요.
혹시 제가 이해하는, '문자주의'와 '창조론'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과 신앙차원의 의견을 요청하는 글은 아니지요?
혹시라도, 그렇다고 하신다면 저도 한 마디쯤은 언급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그 많큼 님의 글이 진지하다는 의미에서요.)
하물며 이 글이 저의 동의를 요청하는 의도가 아니라
과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과학적인 원리에 입각한 입장을
소개해 주시는 의도라면 감사히 잘 읽었다고 말씀 드립니다.
첫날처럼님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창조과학계가 지녀 할 바람직한 태도가,
'만물속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를 니티내려는 겸손하며 소박한 동기이기를
바란다는 의견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Noll 박사의 의견에는 여전히 동의 하지 않습니다.
2007.03.12 16:20:05
breeze 님의 탁월한 글을 읽으니 제 속에 잠재해 있는 과학성이 이제야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진작 이렇게 배웠더라면~~~
"과학계로부터 처참한 대우를 받을수록 이들은 자신들에게 순교자적인 이미지를 붙여나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당해야 할 당연한 핍박인 거죠."
이 표현이 왜 이다지도 마음에 와 닿는지요. 그것도 한 없는 아픔으로......제 칼럼 쓸 거리가 생기는 데요^^. 적지 않은 그리스도들의 뇌리에 '과학'에 대한 편견과 찌꺼기가 깊이 박혀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옥의 티가 하나 있어요 ㅎㅎㅎ. 우리 한국인들이 제일 자주 틀리는 사용하는 표현을 breeze님도 쓰셨네요^^. <애시당초>는 <애초>나 <당초>로 써야 된답니다~~~.
다음 글이 기다려지네요. 눈 빠져라 지둘리겠습니다(^^)~~~
학회 잘 다녀 오세요~~~
"과학계로부터 처참한 대우를 받을수록 이들은 자신들에게 순교자적인 이미지를 붙여나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당해야 할 당연한 핍박인 거죠."
이 표현이 왜 이다지도 마음에 와 닿는지요. 그것도 한 없는 아픔으로......제 칼럼 쓸 거리가 생기는 데요^^. 적지 않은 그리스도들의 뇌리에 '과학'에 대한 편견과 찌꺼기가 깊이 박혀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옥의 티가 하나 있어요 ㅎㅎㅎ. 우리 한국인들이 제일 자주 틀리는 사용하는 표현을 breeze님도 쓰셨네요^^. <애시당초>는 <애초>나 <당초>로 써야 된답니다~~~.
다음 글이 기다려지네요. 눈 빠져라 지둘리겠습니다(^^)~~~
학회 잘 다녀 오세요~~~
2007.03.12 17:17:24
저는 과학이라는 면에 국한한 진화론이면 모르겠지만, 하느님의 현존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라 한다면 동의할 수 없습니다... Noll 박사님(?) 글을 읽어보면서 균형님처럼 느끼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7.03.12 17:20:34
창조과학에 대해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편견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는데, 솔직히 생각해보면 과학을 연구하는데 편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네요. 왜냐하면 자연 현상으로부터 관찰 주제를 설정하고 관찰 방법 및 절차 고안, 관찰 수행을 하는 귀납적 연구방법이나 문제 인식에 대해 가설을 설정하고 관찰 설계 및 수행, 자료해석, 결론도출을 하는 연역적 연구방법이나 처음에 가설을 설정할 때 연구자가 가진 기존의 상식 안에서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창세기 1장이 문자적으로 확실하다고 마음 속 깊이 믿고 있는 과학자가 생물의 발생에 대해 연구를 한다면 창세기 1장이라는 상식의 틀에서 가설을 세울 것이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실재 실험을 수행하면서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는 허다하고 그럴 경우 자신의 처음 가설을 포기하고 다시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못하는 분들이 요즘 문제가 되는 날조, 변조, 표절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되지요. (사실 가설을 세우고 연구비를 탄 후에 자기 가설이 틀려서 결론도 몽땅 틀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그런데 창세기 1장의 문자적 정확성이라는 틀 속에서만 가설을 세운다면 도중에 실험적으로 모순되는 결과가 얻어질 경우 어떻게 할지 대략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사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저도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엉터리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다가 도중에 가설을 수정하는 바람에 윗 분들로부터 한 소리 들은 적도 많습니다만... 그런 소리 들으면 데이터 날조, 변조에 대한 유혹에 사로잡히지요.)
창조과학을 연구하시는 분들도 훌륭한 과학자들이실테니 가설 자체에 얽매이지 말고 결과에 따른 가설을 수정할 수 있는 마음들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좋은 글 읽기만 하기 뭐해서 생각나는데로 댓글 달았는데 너무 두서없네요. 죄송하고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글을 읽으면서 편견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는데, 솔직히 생각해보면 과학을 연구하는데 편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네요. 왜냐하면 자연 현상으로부터 관찰 주제를 설정하고 관찰 방법 및 절차 고안, 관찰 수행을 하는 귀납적 연구방법이나 문제 인식에 대해 가설을 설정하고 관찰 설계 및 수행, 자료해석, 결론도출을 하는 연역적 연구방법이나 처음에 가설을 설정할 때 연구자가 가진 기존의 상식 안에서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창세기 1장이 문자적으로 확실하다고 마음 속 깊이 믿고 있는 과학자가 생물의 발생에 대해 연구를 한다면 창세기 1장이라는 상식의 틀에서 가설을 세울 것이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실재 실험을 수행하면서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는 허다하고 그럴 경우 자신의 처음 가설을 포기하고 다시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못하는 분들이 요즘 문제가 되는 날조, 변조, 표절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되지요. (사실 가설을 세우고 연구비를 탄 후에 자기 가설이 틀려서 결론도 몽땅 틀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그런데 창세기 1장의 문자적 정확성이라는 틀 속에서만 가설을 세운다면 도중에 실험적으로 모순되는 결과가 얻어질 경우 어떻게 할지 대략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사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저도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엉터리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다가 도중에 가설을 수정하는 바람에 윗 분들로부터 한 소리 들은 적도 많습니다만... 그런 소리 들으면 데이터 날조, 변조에 대한 유혹에 사로잡히지요.)
창조과학을 연구하시는 분들도 훌륭한 과학자들이실테니 가설 자체에 얽매이지 말고 결과에 따른 가설을 수정할 수 있는 마음들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좋은 글 읽기만 하기 뭐해서 생각나는데로 댓글 달았는데 너무 두서없네요. 죄송하고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2007.03.12 18:07:01
1) breeze 선생님께서도, 균형님의,
“그들의 방식이 과학적인 해명인 만큼,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내용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겠지요”
라는 말씀이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하셨습다만,
균형님께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같은 주장은 조선일보가 즐겨 써먹습니다.
누구를 좌파로 자기 마음대로 규정해 놓고,
그들은 자신이 좌파가 아님을 증명해야 될 것이다라는 식 말이죠.
혐의를 밝힐 책임이 있는 쪽은, 그 혐의를 제기한 사람입니다.
그걸 밝히지 못하면, 도리어 그가 무고죄로 쇠고랑 찹니다.
멀쩡히 가만 있는 그 대상은, 자신이 무죄하니 마니 밝힐 필요가 없는 거지요.
2) 다윈은, 자신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나서,
다른 과학자들에게, 이미 내가 제기한 문제를 그대로 베껴 써먹느냐는,
분노에 찬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진화론은, 다윈에 이르러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3) 지질학에 있어, 판 구조론이 있습니다.
애초에는 최악의 이단으로 비난받았지만,
이것이 정설로 입증되자,
그렇게 비난했던 과학자들이 다 판 구조론을 긍정하는 쪽으로 돌아섰지요.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충분한' 검증 뒤에는,
자신의 신념도 접고 입증된 바를 긍정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입장을
과학, 역사 등 전 영역에 대해 관철시키려는 고집은,
놀 박사의 말씀마따나, 하느님의 자녀답지 못하고,
그렇게 신봉하는 성서의 정신도 팔아먹는, 부도덕한 짓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비난해 마지 않으신,
성서의 정신은 삼키고 문자의 토씨에만 매달리는 반성서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4) 아무리 믿음 좋은 자연과학자라도, 자연과학이라는 작업의 장 안에서는,
신앙, 철학 등, 현상계 밖의 가치적 영역에 관한 사안에는,
괄호를 쳐 놓고, 없는 것처럼 무시합니다.
이것이 무신론, 반그리스도교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상 무신론도 아니고, 반종교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진한, 또한 종교패권주의적인 착각을 일삼는데요,
아무리 신앙이 독실하더라도,
살다보면, 신앙을 괄호 안에 묶어둬야 될 상황은 자주 있습니다.
목소리 크다고 잘난 사람 아니듯이,
사사건건 신앙과 성서를 들이민다고 믿음이 깊은 것도 아닐 테지요.
5) 자연과학에 대한 훌륭한 정보와,
과학과 신앙 사이의 긴장성과 상보성을 명쾌하게 풀어주시는,
breeze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방식이 과학적인 해명인 만큼,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내용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겠지요”
라는 말씀이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하셨습다만,
균형님께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같은 주장은 조선일보가 즐겨 써먹습니다.
누구를 좌파로 자기 마음대로 규정해 놓고,
그들은 자신이 좌파가 아님을 증명해야 될 것이다라는 식 말이죠.
혐의를 밝힐 책임이 있는 쪽은, 그 혐의를 제기한 사람입니다.
그걸 밝히지 못하면, 도리어 그가 무고죄로 쇠고랑 찹니다.
멀쩡히 가만 있는 그 대상은, 자신이 무죄하니 마니 밝힐 필요가 없는 거지요.
2) 다윈은, 자신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고 나서,
다른 과학자들에게, 이미 내가 제기한 문제를 그대로 베껴 써먹느냐는,
분노에 찬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진화론은, 다윈에 이르러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3) 지질학에 있어, 판 구조론이 있습니다.
애초에는 최악의 이단으로 비난받았지만,
이것이 정설로 입증되자,
그렇게 비난했던 과학자들이 다 판 구조론을 긍정하는 쪽으로 돌아섰지요.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충분한' 검증 뒤에는,
자신의 신념도 접고 입증된 바를 긍정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입장을
과학, 역사 등 전 영역에 대해 관철시키려는 고집은,
놀 박사의 말씀마따나, 하느님의 자녀답지 못하고,
그렇게 신봉하는 성서의 정신도 팔아먹는, 부도덕한 짓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비난해 마지 않으신,
성서의 정신은 삼키고 문자의 토씨에만 매달리는 반성서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4) 아무리 믿음 좋은 자연과학자라도, 자연과학이라는 작업의 장 안에서는,
신앙, 철학 등, 현상계 밖의 가치적 영역에 관한 사안에는,
괄호를 쳐 놓고, 없는 것처럼 무시합니다.
이것이 무신론, 반그리스도교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상 무신론도 아니고, 반종교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진한, 또한 종교패권주의적인 착각을 일삼는데요,
아무리 신앙이 독실하더라도,
살다보면, 신앙을 괄호 안에 묶어둬야 될 상황은 자주 있습니다.
목소리 크다고 잘난 사람 아니듯이,
사사건건 신앙과 성서를 들이민다고 믿음이 깊은 것도 아닐 테지요.
5) 자연과학에 대한 훌륭한 정보와,
과학과 신앙 사이의 긴장성과 상보성을 명쾌하게 풀어주시는,
breeze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07.03.12 20:07:45
브리쯔 님의 글은 따로 모아둘 필요가 있군요.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운영진들과 의존해 보겠습니다.
자연과학자의 글은 다비아을
여러가지 면에서 풍서하게 만들어 줄 것 같군요.
감사.
깜빡한 게 있어서 수정 글을 올립니다.
브리쯔 님이 세번에 걸쳐서 번역한 글을
<기독교사상>에서 관심을 보이네요.
그래서 게재할 수 있으면 하라고 말했습니다.
브리쯔 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구요.
만약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운영진들과 의존해 보겠습니다.
자연과학자의 글은 다비아을
여러가지 면에서 풍서하게 만들어 줄 것 같군요.
감사.
깜빡한 게 있어서 수정 글을 올립니다.
브리쯔 님이 세번에 걸쳐서 번역한 글을
<기독교사상>에서 관심을 보이네요.
그래서 게재할 수 있으면 하라고 말했습니다.
브리쯔 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구요.
만약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2007.03.15 12:11:25
무명재님,
기왕에 의견주셨으니 저도 한 마디만 할께요.
“그들의 방식이 과학적인 해명인 만큼,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내용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겠지요”
저의 글에 나오는 표현중 일부입니다.
이러한 언급이 나오된 배경과 대상
그리고 표현의 의도는 헤아리지 않는군요.
breeze님 역시 같은 경우이고요.
님이 언급하신, 전형적인 조선식의 사설이지요.
다시한 번 저의 글을 읽어보시고,
조선일보식의 방식인지 아닌지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님의 조선식 언급이,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 되신다면 해명해 주시고,
아니라면 이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기대해도 될까요?
제가 '조선' 무척 마음에 안들어 하거든요.
기왕에 의견주셨으니 저도 한 마디만 할께요.
“그들의 방식이 과학적인 해명인 만큼,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내용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겠지요”
저의 글에 나오는 표현중 일부입니다.
이러한 언급이 나오된 배경과 대상
그리고 표현의 의도는 헤아리지 않는군요.
breeze님 역시 같은 경우이고요.
님이 언급하신, 전형적인 조선식의 사설이지요.
다시한 번 저의 글을 읽어보시고,
조선일보식의 방식인지 아닌지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님의 조선식 언급이,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 되신다면 해명해 주시고,
아니라면 이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기대해도 될까요?
제가 '조선' 무척 마음에 안들어 하거든요.
어쩌면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세요?
예, 박쥐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합니다.
참, 신기하죠?
생물학 전체가 그렇게 신기한 이야기들로 꽉차 있답니다.
그래서 이 번 토론이 어느정도 마무리되면,
다비아에서 제가 공짜로 배우는 그 많은 것에 대한
심심한 감사의 표시로
생명과학, 의학분야의 신비한 이야기들을
기회되는대로 소개드릴까 하고 있답니다.
한국은 지금 점심 때 아닌가요? 무얼 드셨는지요?
왜 이렇게 요즘은 한국 음식들만 생각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