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탁월한 영적 기독교 지성 워치만 니는, "예수 믿으면 축복을 얻나요?"라는 가난한 날품팔이 형제의
질문에 "아니요. 밥그릇이 깨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바 있다.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셨던 예수님을 따르던 11사도가 모두?순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사역적 역사의 관점으로 볼 때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게 만약 평범한 세상일이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할 수가 있겠나. 불가능한 일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에 가서 순교당했다. 영력의 인물 요한은 소아시아에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지내다가 위대한 성경의 마감장인 "계시록" 기록을 마치고 순교당했다. 그중 베드로는 결혼까지 했던 사람이다.
우리가 의심이 많았던 제자라고 알고 있는 사도 도마는 한때 이집트인가를 거쳐 인도에 들어가 인도기독교를
세우고 결국은 가마솥에서 구워지는 처참한 형을 받고 순교당했다고 한다. 현재도 인도에 도마의 무덤이 있다고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바 있으며, 한때 도마가 중국에까지 여행했었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온통 괴상한 영적인 모습들과 힌두교 천지인 인도 땅에 현재 전 인구의 약 1퍼센트 정도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니,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그 숫자면에서도 적지가 않은 듯하다.
요한복음 1장 기록에, 예수님께서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라고 말씀하신 상대방인 나다나엘은 바로 바돌로메와 동일 인물이라고 보는데, 그는 나중에
지금의 터키 옆에 위치하고 있는 아르메니아로 올라가서 아르메니아 땅에 기독교를 전파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그 후 현재의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주후 300년대 초에, 실은 로마 기독교보다도 앞서 세계 최초로 기독교가 국가로
부터 공인받은 사례라고 전해지며, 사도 바돌로메는 결국 껍질이 벗겨지는 처참한 형을 받고 순교당했다고 한다.
(바울서신서에서, "우리 중 어떤 이는 톱으로 켬을 당하고 어떤 이는 가죽이 벗겨지는 형을 받았다"라고 기록된
내용이 바로 사도 바돌로메를 한 대상으로 쓴 내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체코에서 후스는 루터의 종교개혁 시기 훨씬 이전 시기에, 성서를 그리스도교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할 것을
주장하며 교황을 위시한 부패한 로마교회 지도자들을 비판하다가, 결국은 1415년 장작더미 위해서 "주여! 주여!"를
외치며 화형에 의해 순교당했다고 한다.
과연, 예수와 "축복"은 어떤 인과관계를 가진 것일까?
50대 중반인 내 어릴적 고향 친구는 직장(한전 기술직)을 퇴직하고 지난 10월 초에 남아프리카 동안의 마다카스카르
섬으로 부부가 함께 영구활동 목적으로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 친구는 떠나기전 내게, 그 곳이 에이즈도 많고 위험한
곳이라면서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의 모친은 지금도 고향 시골에 홀로 지내고 계신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교계에서, '할 수 있다'라는 기독교인 정신으로 무장하고 기업을 창업 성장시켰다며 기독교인
성공사례라고 대표적인 설교 재료가 된 적이 있었던 모 기업은 그 후로 큰 돈을 벌어 국내 모 굴지의 유통업체를 인수
하여 운영하면서 2.3년 전인가 쯤에 가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하여, 그때 해고된 노동자들의 절규하는
모습이 온통 메스컴을 뒤덮으며 큰 사회 이슈로 대두되고 법적인 문제로 비화된 적도 있었다.
많이 벌어서 사회 소수계층에 낄 부자가 되는 그게 바로 축복이고, 앞에 예시된 기업 행태가 그 결과적인 모습일까?
그러한 모습이 소위 결과적인 "축복"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축복이 우리에게 과연 선한 것일까?
세계적으로, 예수를 믿는 미국보다도 믿지 않는 나라로 알려진 중동, 인도, 중국, 일본 땅에 오히려 떼부자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불과 요즈음의 일이다. 과연, 우리는 "축복"을 무엇이라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왜 강단의 설교 내용들은 '축복 = 부의 획득' 이라고 설명되고 있는 것일까? 그래야만 보다 대중 선호적이고 한편은
헌금이 많이 걷히게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목사님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일까?
기독교 부흥에 따라 사회가 발전(곧 경제적 부흥)한다고 선전해왔던 서방 기독교계 혹은 한국 기독교계의 시각들은,
최근 아직 공산국가인 중국 경제의 급부상으로 인해서 보기 좋게(?) 한방 얻어 맞고만 꼴이 되었으니 이제는 어찌
해야 할 것인지.
과거 전남 여수에서 손양원 목사님은 여순사건 당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공산 도배를 바로 양아들로 삼고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켜 지내오던 중 6.25때인가 북으로 탈주하는 괴뢰도당들의 총탄에 맞고 과수원에서 숨졌다.
책의 내용 중에서, "저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왜 멀쩡하게 남겨둔단 말이요?"
내가 워치만 니의 저서 <교회의 정통>을 세번째 읽으면서 도대체 어찌하여야 할런지를 몰라 머리를 박고 눈물을
쏟았던 일이 있다.
내가 믿는 예수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축복" 그게 아닐까.
목사던 평신도던, 진정한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바로 축복이다 라고 또렷하게, 오직 한가지 말로 말할 수 있어
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 다음은 인용 소개글입니다 ----------------------------
워치만 니
그리스도 예수의 신실한 종 워치만 니는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 헌신되었습니다. 아들을 바라며 그의 어머니는 주님께 “나에게 사내아이를 주신다면 내가 그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후 오래지 않아 1903년 워치만 니가 중국의 복주(Foochow)에서 2세대 그리스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총명했을 뿐 아니라 비범한 학생이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반에서 뿐 아니라 전교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워치만 니는 복음을 알았지만 그가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그의 주님으로 영접한다면 그가 반드시 그분을 절대적으로 섬겨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1920년 열 일곱살때 그는 주님을 일생을 다해 섬긴다는 조망을 갖고 구원받았습니다.
워치만 니는 신학교나 성경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성경뿐 아니라 영적인 사람들의 글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와 그 영과 교회에 대하여 뛰어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초기 사역 동안 그는 수입의 삼 분의 일을 들여 팬튼(D.M. Panton)이나 고벳(Robert Govett)이나 펨버(G.H. Pember)나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나 오스틴 스파크(T. Austin-Sparks)나 다비(John Nelson Darby)나 켈리(William Kelly)나 매킨토시(C.H. Mackintosh)와 같은 그리스도인 저자들의 책들을 사보았습니다. 그는 합당한 서적을 고르게 이해하고 분별하고 기억하는데 아주 뛰어난 은사가 있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일세기 부터의 고전적인 기독교 서적들을 포함한 3000여권의 최고의 기독서적을 모아 그 중에서 좋은 성경적 요점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는 영적 지식뿐 아니라 옛 영국 국교회 선교사인 바버자매(Margaret E. Barber)로부터 그의 초기 그리스도인 시절에 많은 영적 함양과 온전케함을 받았습니다.
바버자매와의 이러한 교통과 그의 성경과 많은 영적 책들을 추구함을 통해 워치만 니는 풍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근본적인 깨달음이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완전히 신성한 생명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그의 사역 전체는 일보다 생명을 더 주의하는 것을 배웠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또한 부활의 주관적인 방면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더이상 그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관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 그 영의 충만함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이 되셨음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단순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확대요 확장이요 표현임을 보았습니다. 부활안에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생명이자 내용이시라는 워치만 니의 깨달음은 더욱 전진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이 시대의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로서 그 계시는 주님의 이중의 부담과 위임을 그에게 나타냈는데 먼저는 주 예수의 특별한 간증을 지니는 것이고 둘째로는 지방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사역을 위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가난과 병과 그리스도인들의 강한 반대와 이십년 동안의 힘든 투옥(投獄)생활을 겪었습니다. 그의 계시의 깊이와 사심 없는 고통들은 함께 하여 주님이 그에게 주신 위임에 따라 생명의 풍성한 사역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한 새 언약의 사역을 가져왔습니다.
비록 그가 믿음으로 살고 교회들의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완전히 점유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워치만 니는 괴팍하거나 금욕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1934년 40세의 나이에 주 안에서 자매된 채러티 장(Charity Chang)자매와 결혼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아이는 주시지 않았습니다. 부가적으로, 그는 1939년에 그의 동생의 제약 회사의 운영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얻은 이익으로 그는 얼마간의 그리스도인들의 필요를 돕고 훈련 센터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공장을 주님께 헌금하여 사역의 일을 위해 드렸습니다.
그의 초기 사역때 위트니스 리 라는 젊은 믿는이가 그와 함께 하여 20년간 함께 수고했으며 그의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1949년 공산당의 침공으로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니 형제님의 사역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워치만 니는 주님이 그를 중국 대륙에 남아 그분의 간증을 지키고 교회들을 돌보게 하신다고 느꼈습니다. 1952년 공산당은 그를 체포했는데 그때까지 약 400여개의 지방 교회들이 중국 대륙에 세워졌고 동남 아시아에는 약 30개의 지방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한편, 위트니스 리의 사역 아래 대만에 있는 교회들은 증가하고 번창했습니다.
1972년 5월 30일, 그리스도안에서의 믿음과 지방 교회들에 관여함으로 인하여 20년동안 투옥(投獄)생활을 한 후 워치만 니는 그가 사랑하고 목숨을 다해 섬겼던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했습니다. 그가 주님품에 가기전에, 그는 진리의 간증을 위해 종이 한장을 그의 베개 아래 남겨 두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우주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사실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노라. 워치만 니.”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부담과 위임에 따라 그리스도의 예수의 신실한 간증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기도의 성취로 그는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워치만니의 삶은 온 땅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계시와 공급의 잘 알려진 근원이 되는 사역을 산출했습니다. 62권의 워치만 니 전집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글을 보급하려고 위트니스 리가 설립한 출판사인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www.livingstream.com)-한국 복음서원(www.kgbr.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의 생애와 사역은 또한 수백 개의 지방 교회들을 산출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풍성하고 신실한 사역들을 통해 전 세계에 2300개가 넘는 지방 교회들로 확장되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국내에 지방교회를 통해 알려져 있는데, 한국교회는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막은 잘 모르지만 참고가 되실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사실은, 여기 사이트상에서 누군가에 의해서든 그 얘기가 언급될 것을 이미 예상했습니다.(오히려 그걸
기대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가 워치만니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약 15년 전쯤에 그냥 기독교 서점에서 제목이 번쩍 눈에 띄는 <말씀의
사역>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던 일이 있으며, 그 때는 내가 아무래도 좀 젊었을 때이기에 내게 강렬한 지적추구
의식이 있었지만 그 책을 읽을 때는 신앙적인 깊이 측면에서 굉장한 책 같기는 한데 그 내용들이 내게 와 박히
지는 않았었습니다.(아마도 그 때는 내가 바쁘고 활기차게 일하던 시기라서 산만해서 그랬을 것으로 느낍니다)
그런데 그 후로 (5년 전쯤에) 우연히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교회의 정통>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서 본 것이 바로 두 책이 동일 저자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교회의 정통>이라는 얇은 책을 읽은 그 때의 느낌은 정말로 충격 그 자체였지요. 왜냐면 50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누가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내 마음에 와 닿는 그러한 메시지를 이끌어낸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그게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일부이고 더구나 성경의 마감장인데, 그에 관해 무슨 금기사항이라고 있는 것처럼 말입
니다. 사실은 그걸 해석할 영력이 부족한 것이지요) 그런데 책의 저자는 그걸 내 마음에 와 닿게 분명한 메시지를
이끌어내서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었던 것입니다.(한국의 고명하신 신학자님들은 도대체 무얼하고 계신 건지...)
그리고, 워치만 니에 대한 이단시비가 있다는 것은 그 당시에 책을 하도 감명깊게 읽어서, 그리고 '워치만 니'라는
이름이 좀 색달라서 그게 서양 사람 이름이 맞는지 어떤지도 궁금하고 해서 인터넷 정보를 통해 저자를 검색해 본
결과로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도 나는 개념치 않고서 나중에 시차를 두고 그 책을 두번이나 더 읽어
책의 내용을 더욱 더 명확하게 파악했던 것입니다.
다만 단언하건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워치만니의 책에서는 전혀 그러한 것을 발견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이
분을 누가 이단이라고 말하는가? 과연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 자신은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졌을 뿐입니다.
"이단"설은 남이 그렇게 말한다고 그를 따라가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건 자신의 신앙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큰 신앙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중대한 일이다 라고 감히 주제넘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단"하니까 말이지, 지금 서울 한복판에 (아마도) 제일 크다는 교회의 J목사님이라는 분은 과거에 자신의 발
씻은 물이나 그러한 데 사용한 수건등을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한 적이 있었다면서요?(저는 그런 거 캐고 따지는
성격이 아니라서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르고 그냥 예전에 그러한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있지요)
또 한 사례로, 유명한 부흥강사 출신인 침례교 K목사님은 (저 역시도 그 분의 최근 주장이 좀 이상하게 느껴
지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에 정말로 훨훨 날렸던 분입니다. 내가 국민학교 중학교 다닐 때 우리 고향(익산 산골)의
아주 작은 교회-감리교회로, 당시 출석교인 수 100명 이하로, 분당의 꽤 유명한 M감리교회 K목사님도 군목시절인
60년대 초 한때 시무) 에서 부흥회를 약 3회인가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유명했던 분이 어떻게 서울오가는 교통편도 불편하기만 하고(그때는 서울 갔다온 친구는 출세한 것지요)
사례금도 형편 없었을 그런 산골까지 무려 세번이나 오셨는가 하는 경위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그 때 작은 예배당에 이 사람 저 사람 발디딜 틈 없이 모여서 "울어도 못하네..." 등등 부흥회 전용 찬송을 박수치며
땀 흘리도록 해대던 기억이 어렴풋하지요. (그게 뭔지 정의할 수는 없어도) 그 때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저는 그 K목사님이 언제부터, 어떻게 이단으로 지탄 받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저는 그 분을 존경합니다.
(지금의 그 분의 주장이 내게 생소하고 이상하다 해도 말입니다) 그 분 역시 주님께 쓰임 받으신게 분명해요.
그 때도 우리 시골교회 교인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 교회에서 목사가 지금까지
5~10명 배출 되었을 것이고, 앞에 쓴 것처럼 50대 중반 나이에 부부 함께 아프리카로 영구거주 목적 선교여행 떠난,
꼭 그러할 적절한 나이에 내 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난 신앙계 "큰 바위 얼굴"격인 제 고향 친구도 있지요.
성령의 역사는 정말로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이단 시비도 사실은 엄정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인 만색'이 세상 이치인데, 자기와 좀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하면 기독교계는 설 땅이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니고)사실 강단의 설교자들이 전부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때로는 해괴하고도 참으로 가관인 경우가 어디 한두번입니까? 그냥 좋게 이해하고 넘어가니까 말이지요.
이단은 다른 게 이단이 아니고, 종교를 이용해서 다른 목적을 채우려하는 게 이단인 것이지요.(박씨나 문씨처럼
혹은 신앙양심이 좀 비뚫어진 이곳 저곳 상당 수의 목사님들처럼)
누구처럼 귀신을 내쫒는다거나(실은 귀신 박멸은 예수님의 능력이었던 것이지요) 혹은 신앙 관련 주장이 좀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말하면 안될 것입니다. 그냥 자기는 그런 이와는 같이 신앙생활 안하면 그만인
것이지요. 종교개혁시기 두 위대한 종교개혁자(이름이 생각 안나서 그냥 쉽게 이렇게 말하고 지나갑니다)가
서로 한 자리에 만났다가도 그냥 별 말없이 헤어졌다는 얘기를 <세계 교회사>에서 인가 읽었던 일이 있어요.
이단시비는 예전에 뒤가 구린 카톨릭 지도자들이 비판자들을 숙청하는 대표적인 방편으로 활용했으며, 지금
이 시대라도 이를 상대방 비방, 모략의 도구로 사용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기독교계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저는 꼭 필요한 책이 아니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성향입니다. (다른 책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워치만 니의
<말씀의 사역> 그리고 <교회의 정통> 그 두권의 책의 내용을 들어 그분을 이단이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큰
일날 일입니다.
누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그 분과 그 문제에 관해서 언제든지, 어떠한 곳에서건 간에 공개적으로 쟁논할 의지가
있습니다.
워치만 니를 이단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중에서 일부가 비성경적인 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위트니스 리의 사상은 더욱 문제가 많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지방교회는 이단이라 불릴만한 요소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문제는 이들이 워치만 니의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워치만 니까지 도매급으로 비난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워치만 니의 책들중에는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글들이 많아 감동적입니다만 (언급하신 두권의 책은 그의 중요 서적들 중에서 정말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몇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사상들도 있습니다. 특히, "영에 속한 사람" 의 경우는 그의 인간관(영,육,혼 삼분설)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혼"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분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신자들로 하여금 "나의 이런 생각은 영이 아니라 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심어주게 되어버리고, 심지어는 "저 목사의 설교는 영에서 나오는 음성이 아니라 자기의 혼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므로 내 영이 감동받지 못한다" 는 등의 이상한 행태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지방교회에서 실제로 경험했던 일입니다). 그외에 삼위일체론이나 교회론에서도 여러가지 문제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워치만 니가 처음에 의도했던 바는 아니겠지만 위트니스 리와 그 동역자들때문에 이와 같이 문제있는 행태로 발전해버린 결과의 근본적 책임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단이니 아니니 이런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성경의 본질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매우 감동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의 신학적 개념은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올바른 신학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의 신앙도 모범적이라고 말할수 없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워치만 니의 서적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많다고 해서 모든것을 다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런 게 제게는 좋은 사전 정보인 셈입니다. 아직은 여건상 그의 저서를 두 권밖에 읽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사전정보 없이 다른 많은 책들을 읽다보면 아마도 상당히 혼란스러워질 것 같기도 하네요.
어떻든, 그 누구라하더도 (예수님이나 성경 기록자가 아닌 이상) 어떤 사람을 100% 믿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적어도 (자신할 일은 아니지만서도) 저는 전반적인 내용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그 책의 내용을
선별적으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말씀의 사역>이 아주 경이로운 책이지만 그 내용 중에서 사실은 약간의
퀘션마크가 생기더군요. 그런 건 의문점을 갖은 채로 그냥 넘어갑니다. 내 스스로 그런 것들을 변별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지요. 그게 성숙한 신앙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 누구가 됐든, 100%이거나 아니면 제로이거나(소위 흑백개념) 하는 것은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들에 기인해서 예전에 문씨나 박씨 같은 사람, 혹은 근래 00중앙교회 하면서 L씨 같은 사람이
결국은 많은 이들을 구덩이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과거 (그게 70년대 말인가요?)미국에서는 "인민사원(피플스 템플)사건"으로 인해서 짐 존스라는 이름의 이상한
흑인목사 (사실은 사이비 교주) 에게 속아서, 위험한 세상이니 영원한 도피처를 만들자며 어디론가 영문도 모르
고 끌려가 한 곳에 집단 수용되었다가 결국은 800명 이상이 (마치 자폭하듯이)집단 학살당한 사건도 있었지요.
(사태가 벌어지기 전 그들의 집단 거주지를 조사차 방문했던 의원과 수행원들은 그곳을 떠나기전 헬기장 근처
에서 모두 피살)
이래서 성도간의 교제가 필요한 것이지요. 실은 "교제"라는 게 만나서 얼굴보고 소담하는 그 것이 진정한
교제가 아니고 이렇게 신앙적인 사안들에 관해 의견을 함께 나누는게 진정한 교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를 언제 시간내서 목사님들한테 물어보겠습니까? 실은 항상 너무나 바쁜 목사님 그분들께 그런 거
물어보면 아예 그런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든지, 아니면 극히 단정적으로 짧게 - 질문자의 요구에 미흡하게-
대답을하던지 그럴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게 지금의 개신교회 모습의 한계성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워치만 니의 헌신적인 삶은 많은 귀감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의 사상중에서 일부는 기독교적이지 못한 것들도 섞여 있는 모호한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워치만 니의 제자라고 일컫는 위트니스 리의 사상은 더욱 문제가 많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한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에 푹 빠졌다가 헤어나오는데에 제법 고생했던 경험에 의거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