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위 '초대교회')들이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했었다는
교회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에 앞서 예수님과 제자들 역시도 일종의 공동체
삶을 영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공동체적인 삶 추구 대신, 단지 각자 개개인별 '천국 가기 학교'일 뿐인
지금의 교회, 이는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으면서도 각자 대학
가기 경쟁심에 몰두해 있는 학교 교실을 연상케 만드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이러한 왜곡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금의 한국 교회는 진정 본래적
의미의 "교회" 맞나, 아니면 그냥 "신앙학교"인가?
이러한 논제의 목적은 비판적인 뜻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개혁,
앞으로 교회의 나아갈 방향 등의 설정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이 논제와 관련된 <뉴스앤조이>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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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주도한 초대 교회에 모일 때마다 '하나님께 돈이나 재물을 바치는 행위'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가난한 다른 교인들의 구제를 위한 연보'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한국교회는 변질의 명수입니다. 연보는 헌금으로, 연보 궤는 헌금 채로, 예배당은 성전으로, 목사는 제사장으로, 주의 종은 교회의 왕으로, 그리고 '중세적 십일조'를 복제하여 '한국적 십일조'로 변질시켰습니다."
전체기사 보기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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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성 안토니오 네그리(이태리,78), 그는 '공동체'를 금세기 인류
삶의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10.9일자 국내 한 일간지에 그와의 인터뷰 기사로 소개된바 있는
안토니오 네그리(78)에 대한 소개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현존하는 가장 급진적인 학자
- 마르크스의 마지막 후계자
- 지성인의 지성
인터뷰 기사의 핵심 부분은 유감스럽게도 요지 파악이 꽤나 어려운 것이었으며,
다만 '공동체'와 관련된 기사를 발췌 요약한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것이었다.
'제국'의 현상 분석과 '다중'을 그 대안으로 찾은 그의 시리즈의
마지막 저서 '공동체'와 관련한 그의 설명 :
" '공동체'는 구체적이지 않은 개념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고,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난다."
네그리는 아우또노미아, 이탈리아의 자율주의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죠.
네그리의 '제국으로의 이행'은 자본주의가
이제 국가의 경계조차도 무너뜨리고 전 세계적으로
자유롭게 영역을 펼쳐나가는 신자유주의로 이행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죠.
자본주의의 기존 국가 개념인 제국주의가
국경을 초월한 전세계적인 국가를 초월한 개념인 '제국'으로 이행했다고 말하죠.
이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측면으로 막스 계급론에서의 노동자 계급 즉 민중의 개념도
'다중'이라는 개념으로 이행한다고 말하죠.
네그리의 다중은 막스의 노동 계급의 민중은 아니고
그렇다고 시민사회에서 무리를 일컫는 일반적인 대중도 아니죠.
다중은 집단적 특이성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상호 인정하는
이른바 소통의 능동적 주체들을 뜻하죠.
또한 네그리는 기존 자본주의의 근간인 노동을 '비물질적 노동'으로 대체시키려 하죠.
비물질적 노동이란 상호 노동부조, 협동노동 같은 뭐 그런 거죠.
이게 자본의 자기증식을 막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하죠.
거기다 네그리의 정치철학은 대의민주주의를 거부하죠.
다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정치제도를 구상하죠.
네그리는 대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의 암적 요소인 것으로 보거든요.
네그리의 공동체는 막스 이후의 새로운 공산주의 형태에 대한 구상이라고 보면 쉽겠네요.
천국에 대한 개념부터가 다른 것 아닐 까요?
저는 교회는 천국의 모델하우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천국은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겠지요!
예수가 선포했던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겠지요.
간단하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의한 통치를 거부하는 개념에서 나온것이지요. 학교다닐때 지금은 경동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박종화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납니다.
세상에서 독재는 옳지않지만 오직 유일하게 하나님의 독재만이 옳다고요. 그때는 독재라는 말 자체에 반감이 있었는데요.
하나님의 독재,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독재와 통치를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 주 요지입니다.
그게 실현될 때 인간의 욕심에 의한 혹은 불안전한 통치가 차단되는 것이지요.
천국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인간 상호간에 온전한 공동체의 나눔이 있는 곳이지요.
펄시 콜레류의 홤금으로 치장된 공간말고요. 그런 천국을 이곳에서 이루려고 맛보는 곳-기본적으로 이 땅에 이루려하시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이루질 수 없어 종말론적으로 소망하게 되는 천국과 대비되어-이 교회여야 하고요. 천국은 온전한 것으로 오는 것이지요.
위의 기사의 링크를 따라보았으나 오류가 나서 접근이 안되어 내용을 볼 수는 없네여.
가정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에 대한 기사 같은데, 아마도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서울침례교회 스타일의 가정교회는 아니겠지요?
위의 기사에숴 나들목교회를 소개하는 것을 정리한 부분을 보니 [가정교회]-[마을 공동체]-[연합교회]의 모습을 띄곻 있네요. 결국 서울침례교회 스타일의 가정교회인데. 이것은 셀교회와 그리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프랜차이즈 일 뿐이고요. 그곳에서 말하는 가정교회는 또 하나의 제도화된 교회일 뿐이고, 진정한 가정교회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정교회는 하나의 무브먼트여야지 프로그램으로 접근하면 결국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제도화되는 순간 본질의 손실을 가져올것이고요.
또한 그저 다른 방식의 마케칭이 되지 않을 까 염려됩니다.
가정교회에 관하여 볼프강 짐존의 '가정교회'를 읽어보았는데, 거기에서 추구하는 가정교회는 진정 형태가 없지요.
미국에도 가정교회가 많이 있다고 하지만 진정한 가정교회는 드러나지 않기에 통계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통계될 수 있는 가정교회는 이미 가정교회라고 부를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정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 진정한 공동체 추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위 원문에 덧붙입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 연상되는 신앙적 삶의 화두는 오직 "신앙공동체" 바로 그것입니다.
공동체를 구현하지 못하고서는 어떤 방식으로서도 기독교적인 신앙 실천을 완성시킬
수는 없겠다고 하는 의식이 점점 크게 의식속에 싹터옵니다. 이유는, 신앙공동체 추구
외에 신앙적인 언행일치를 실천할 방법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우리가 아는 죠지 뮐러 같은 분의 삶이 그러한 실천적인 삶을 살았던 어떤 사례에
해당될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지금의 한국교회 분위기를 보면, 약간 젊은층(예를 들어 50세 미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소규모 공동체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우리(50대 이상) 세대의 사회적 후배들입니다. 나이가 어리면 별반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한국적인 정서라서, 그분들은 그간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목회자들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분들은 뒷전에 밀려있던 사명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의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새로운 분위기에 희망을 걸고 신앙계의 미래를 예의주시
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가정교회'를 근본으로 하여
예전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추구했던 '공동체'를 구현(재현)하고자 시도하는 교회가
<뉴스앤조이>에 새로 소개됐군요.
- 10.7일 기사, 제목 : '가정교회와 공동체가 대안' -
기사보기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49
아래는 그 교회 사역 비전으로 선포된 글을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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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교회는 매우 역동적이고 또 자율적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교회 형태는 가정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것도 나타납니다. 나들목교회가 시도하려는 가정교회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를 합니다. 나들목교회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들의 연합이다. 8-12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개척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교회가 모든 자율성을 가지고 서로 서로를 사랑하며, 돌보며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공동체들이 연합하여 전체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이것은 유기체적 연합입니다. 중심에 있는 교회는 이 가정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것 (예를 들어, 찾는이를 위한 예배, 또한 깊은 성경강해와 찬양을 통한 예배, 주일학교 교육, 리더 훈련이나, 제자 훈련중 일부, 여러 가지 네트워크가 필요한 사역 등)을 하여서 각 가정교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원심력(각 가정교회)과 구심력(중심의 교회)이 건강한 균형을 이룬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정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진정한 공동체를 세워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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