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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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킹제임스성경만을 쓰는 공동체를 만났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들어보긴 했지만 한번도 보지못했었는데 그 성경만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이란 말을 듣고 정말 어리둥절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성경은 사탄이 변개시킨 성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와서 검색해보니까 말씀보존학회, 이송오박사 등이 보였고 검색해서 설교도 듣고 그들의 주장도 들어보았습니다.
좀 심각하더군요... 저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내가 쓰는 성경이 오류가 많고 사탄이 변개한 성경한 성경이라고는 생각하지못했었기에...
이에 대한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성경은 사탄이 변개시킨 성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와서 검색해보니까 말씀보존학회, 이송오박사 등이 보였고 검색해서 설교도 듣고 그들의 주장도 들어보았습니다.
좀 심각하더군요... 저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내가 쓰는 성경이 오류가 많고 사탄이 변개한 성경한 성경이라고는 생각하지못했었기에...
이에 대한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09.26 16:27:43

또 펌글입니다.
target=_blank>http://cafe.naver.com/chowk0208.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008
출처 :『교/가/연』행복 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 자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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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것…개역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 주장 -
지난 7월호(통권255호)에 말씀보존학회(이하 말보회)에서 발행된 책자들을 이단서적으로 분류해 놓으므로 말미암아 본사에 확인 문의전화가 매일 쇄도하는 한편 그 즉시 말보회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들어 왔다. 그래서 이번 9월호에 특집으로 「개역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며 오로지 말보회에서 「영어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을 100%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1994년 발행)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독선적인 입장을 적극적으로 상세히 다루어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이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성경을 읽으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알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편집자 주)
말씀보존학회(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 목사)는 지난 92년 4월에 창립되어 「한글개역성경을 사단의 변개한 것」이라고 지금껏 주장해 오고 있는 단체이다. 또한 이들은 영어성경인 NIV, NASB, RSV, NEB, GNB, JB, LB, NRSV등 10여 종의 것들도 한글개역성경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 특히 말보회는 NIV성경은 '배교의 결정판'이라고까지 혹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 동안 한글개역성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온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근본을 송두리째 뽑아 흔들어 버리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도전임 셈이므로 성서학계나 신학자, 그리고 교계의 올바른 대책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말보회는 자체 홍보지인「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이란 것을 통해 자체 출판물인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말보회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란 홍보지 창간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주님 오실 날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정착과 바른 신학의 정립이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 나라 교회들의 성경지식이 이 학회지를 통하여 계속 성장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또 이들은 홍보지에서 「교회들은 많은데 교회는 없다. 찬양과 경배는 강조하면서 정작 복음은 없다. 복음 비슷한 것은 있는데 양육은 없다. 50년 된 성도도 늙은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 와중에 이색종파들이 표면에 나와 횡행하므로 혼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홍보지 제3호에서 말보회는 「우리나라에 130여 년 동안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지내왔기에 사단의 무법천지가 될 수 있었다. 지난 130여년 동안에 성도들의 영적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단 한 권의 책도 쓴 사람이 없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
말보회에서는 한글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또한 신학적인 논쟁이나 교리적인 연구는 물론 잘못된 이단교회와도 논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말보회는 우리나라에 있는 신학교에 대해서 말하기를 「장신대나 총신대 그리고 합동신학교, 한신대 등 기존의 한국교회를 이끌어 온 신학교는 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학문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라면서 오로지 펜사콜라 신학원만이 가장 올바른 신학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올바른 교회도 성경침례교회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송오 목사가 말씀보존학회를 창립할 때 성경침례교회도 동시에 세워졌다.
현재 130여명이 이 교회의 성도들이며 대부분이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보회에서 발행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번역상에 있어 부실하기가 그지없다는 게 성서번역 학자들의 주장이다. 문체에 있어서도 개역성경의 흉내만 냈을 뿐 매우 조잡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은 TR(헬라어표준본문)을 사용했다. TR은 헬라어 본문에 대한 이해가 전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성경에 「하데스」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송오 목사는 신약에서 모두 「음부」라고 번역을 해놓았다. 이것은 KJV성경에도 그리고 원문에도 없는 이 목사만의 창작품인 것이다.
한글개역성경에 잘못 번역된 것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번역자가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서 번역했으며 또 어떤 사본을 근거로 해서 번역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없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지지 않은 것을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이송오 목사의 주장대로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는 사실은 정말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이 만든 성경책은 옳고 나머지 성경책은 사단의 변개한 책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각 신학대학의 성서학자들이 밝히는 대로라면 이송오 목사의 인격적인 결함과 번역에 대한 실력이 탁월하지 않다는 지적이 다분하다.
자기자신의 독선적인 그리고 배타적인 시각을 이젠 과감히 벗어나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강조할 것은 강조하는 것」이 진정 옳을진대 계속해서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그 외 출판물들이 성서연구에,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언가 억지이며 개운하지가 않다는 느낌이다.
또 목사라면 최소한 인격적인 발언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지 기자에게 전화 상으로 욕설을 퍼붓고 인신공격을 하는 상황 등을 뒤돌아볼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송오 목사는 「성경의 유래」라는 번역책자에서 신약성경을 4가지로 분류해 놓았는데 복음서는 복음서신으로, 바울서신은 바울서신으로, 일반서신(공동서신, 보통서신-catholic epistle)은 「천주교 서신」으로, 계시록은 계시록으로 번역해 놓았다. 이것만으로도 그 실력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는 또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와(The Holy catholic church)를 「천주교회」로 번역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진정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성경만을 쓰셨다」를 통해 삭제됐다 하면서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성구들이 많이 빠져있으므로 덧붙이는데 더욱 일조를 했던 사람이다. 성경이 잘못 번역돼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2천여 곳 이상이 빠져있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어느 저명한 성서학자나 성서 발행관련 기관에서 제기하지 않으므로 인해 입증된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90년 4월 12일자 국민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신약전서 개역한글판」(1956)에 2천여 개의 헬라어가 빠져있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 신학대학에 원문비평학을 연구하고 계신 분들 중에서 이렇게 지적한 사람이 한 분도 없는 것으로 볼 때 억지 주장이 아닌가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기사 내용에서 이송오 목사는 원문비평학을 공부하고 헬라어 표준본문(TR)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 신약성서에 무려 2천단어 이상이 누락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국내성서에는 「없음」으로 표시된 사도행전 8장 37절이 원문에는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 37절이 개역한글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난외주에, 권위 있는 헬라어사본에는 37절이 빠져 있지만 어떤 사본에 본문에는 다만 「37절이 없음」이라고 괄호 안에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는 37절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대로 번역하여 실었다는 점이다. 신약전서 201쪽 난외주 4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37절은 번역자들이 실수하여 빠뜨린 것이 아니라 원본에 가까운 권위 있는 사본들이 이 구절이 없으니까 빼놓은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어떤 사본에는 37절의 내용이 나오니까 우리말 번역은 그것을 난외주에 번역해서 실었다. 이것은 우리말 번역뿐 아니라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번역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나온 「개혁표준성서(RSV)」「복음성서(GNB)」「새국제성서(NIV)」영국에서 나온 「새영어성서(NEB)」 등이다.
이런 번역들 역시 우리말 번역처럼 본문에는 37절이 없다는 것을 밝혔고, 난외주에는 후대의 사본에 37절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내용을 난외주에 번역해서 실었다. 「새 미국표준성서(NASB)」는 37절을 본문 안에 넣되 괄호 속에 묶어서 넣어 37절이 원래 원문에는 없었던 것임을 밝히고 있다.
신약성서의 중요한 사본들로서 대문자사본들인 4세기의 시내사본,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사본(A), 4세기의 바디칸사본(B), 5세기의 에브라임사본(C), 5-6세기의 것인 베자(Beza)사본(D) 등에는 행8:37이 없다. 다만 6세기 후반 7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E사본과 소문자사본 가운데서 12세기경의 36사본, 323사본, 14세기경의 453사본, 945사본, 323사본, 10세기의 1891사본, 이 밖에 옛 번역들인 이탈리아역(it), 빌케이트역 중에서도 16세기의 클레멘트판(Vgel), 시리아어역(Syh)에서만 나온다. 이레니우스와 칼타고의 씨프리안과 같은 교부들이 인용한 성구에도 행8:37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8:37은 원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후대의 삽입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공회역판들이 이런 첨가구절을 본문에 넣지 않고 난외주에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목사는 눅2:33에 기록된 「그 부모가」는「요셉과 그의 모친이」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개역 본문에서는 「그 부모가 아기에게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원문자체가 문제 있다. 네슬-알란트판 「히랍어 신약전서(Nestle-Aland. Novum Testamentum Graece)」(1970sus 검판 )의 본문을 여기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카이엔「호 파테르 아우투」카이 헤 메테르 타우마존테스에피 토아스 랄루에 누이스 페리 아우투.
이것을 영어로 직역해보면 위의 희랍어 원문의 문제가 무엇인가 잘 드러난다.
And his father and mother was(단수) marvelling(복수) at the things which were spoken concerning him. 단수동사(엔: was)와 복수분사(타우마존테스: marvelling)와 함께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본문 전달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사본에 단수 「엔(was)」이 있다.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시내사본, 바티칸 사본(B), 베자사본(D), 레기우스사본(L)과 많은 소문자사본에는 「엔」다음에 주어진 「호 파테르 아우투(그의 아버지)」가 나온다. 이것은 단수동사인 「엔(was)」과 호응을 이룬다. 그러나 주어 「그의 아버지」다음에 「그리고 그 어머니(카이 헤 메테르)」가 나온다. 그렇다면 동사는 복수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한글개역성경에는 단수이다.
그런데 분사「타우마존테스(놀라다, 기이하게 여기다)」는 복수분사이다. 「기이하게 여긴」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본문의 전달과정에서 어떤 분류상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희랍어 본문의 「호 파테르 아우투 카이 헤 메테르(그의 아버지와 그 어머니)」를 「요셉과 그의 어머니」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데 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리아사본(A)과 코이네 본문 전승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호 파테르 아우투) 대신에 요셉이 나온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사본 복사자가 일부러 고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의 처녀 탄생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를 육신의 아버지는 없고 육신의 어머니만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본문을 변경시켰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시내사본을 포함한 적지 않은 수의 사본들이 「헤 메테르(그 어머니)」다음에 「아우투(그의)」를 집어넣어 「그의 어머니」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눅2:33의 본문은 예수님의 처녀탄생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 하여 예수님의 처녀탄생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성서한국. 제36권 1호. 1990.6)
영어킹제임스성경은 번역상에 있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대단히 높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구약의 경우, 히브리어「bei」「qeber」「shachath」 등을 모두「grave」로 번역하였고 「sheol」중 31단어는 「grave」로 나머지는 모두 「hel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 「sheol」중에서 「grave」에 해당하는 31번을 모두 「무덤」이 아닌 「음부」로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의 경우 킹제임스성경은 「mnema」 혹은 「grave」로 번역하였고 「hades」중에서는 단 한 번 고전 15:33만 「grave」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모두 「hel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경우에도 고린도전서 15장 33절을 「무덤」대신 「음부」로 번역해 놓았다는 점이다. 참고로 새성경 초판에서 3판까지「hades」는「음부」로 「tatarrus」와 「gehinna」는 「지옥」으로 번역했다가 새성경 4판에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만 「음부」로 남겨놓고 나머지는 고쳤다가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와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까지 「지옥」으로 고친 사실이 밝혀졌다.
위와 같은 상황을 살펴볼 때 말씀보존학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번역의 일관된 원칙이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고전6:9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자들 중에 영어킹제임스성경은 「effeminate(여성화된 자들)」을 들고 있는데,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부분을 「여성동성애자」라고 번역해 놓았다. 이송오 목사가 사용한 스테판 TR 의 헬라어 「말라코이(malakoi)」는 분명 주격 남성 복수대명사이고, 영어킹제임스성경의 「effeminate」역시 여성화된 남자를 의미하는데 무슨 근거로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어 「여성동성연애자」라고 번역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목사가 번역할 때 사용한 「Interliner Greek English New Testament by George Ricker Berry(Baker Book House, 1982)」 444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말라코이」란 단어 밑에 리커 베리가 영어로 풀이해 놓은 「abusers of themselves as women」이 눈에 띄었고, 그 옆의 「아르세노코이타이(arsenokoitai)」란 단어 밑에는 「abusers of themselves with men」으로 풀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두 단어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여성동성연애자」와 「남성동성연애자」로 번역을 했다. 그렇지만 「여성동성연애자」에 해당하는 「abusers of themselves as women」은 「자신들을 여자들과(with women) 남용하는 자」라는 뜻이 아니고 「자신들을 여자인 것처럼(as women) 남용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조그마한 부주의가 남성을 여성으로 바꿔놓은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헬라어를 바로 알았더라면 사실 이런 실수를 범치 않았을 것이다.
또 벧후1:20의 「성경기록의 어떤 것도 사적 해석으로 된 것이 아니니(no prophecy of the scripture is of any private interpretation)」를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이 되어서는 안되나니」로 오역하였다. 즉 「성경에는 사적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씀을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된다」로 오역하여 개인적 성경해석을 금지하는 로마카톨릭에게 근거를 제공해주는 꼴(?)을 연출했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16장 1절에서 「교회의 섬기는 자(a servant of the church)」인 뵈뵈자매를「교회의 일꾼」이라 번역하여 여자 직제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으며 「양시장(sheep market, 요5:2)」를 「양문」으로 오역하고, 「아이(child)」를 「아들(son, 행4:27)」로 오역하고, 「장로(elders, 히11:2)」를 「원로」로 오역하고 「세대(generation), 창2:4)」를 「내력」으로 오역하고, 「혼인만찬(marriage supper, 계19:9)」를 「혼인잔치」로 오역하고, 이사야 52장 14절에서는 2인칭(thee, 너)을 3인칭(him, 그)으로 바꿔 번역했으며 욥기 22장 14절에서는 「궤도(circuit)」를 「길(way)」로 오역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본문
근래에 그리스어 성경본문을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말하는「표준본문(Textus Receptus)」이란 후대에 첨가하거나 손질한 곳이 많은 본문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본문을 가치 있는 본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요즈음에 성경을 번역할 때에 번역의 대본으로 삼는 그리스어신약성경은 네슬레와 알란트가 편집한 「신약성경 그리스어」나 세계연합성서공회판 「그리스어신약성경」으로서, 최초의 본문에 가장 가깝다고 인정받은 본문이다.
서로 다른 그리스어 신약 본문들
우리에게 전승되어 보존되어 온 신약성경 본문은 단편사본까지 합쳐서 약 5,000여 개의 그리스어 사본들이 있고, 이 사본들 가운데서 본문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둘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성경의 원어와 본문전승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오래 전부터 최초의 원본에 가까운 그리스어 신약전서를 편집해 보고자 한다.
사본들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사본을 베끼는 사람들이 실수를 하여 본문이 달라져서 전승이 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본을 베끼는 사람들이 일부러 어떤 단어를 넣거나 빼거나 고치거나 하여 본문이 달라져서 전승된 경우이다.
신약성경의 경우에는 초대교회들이 퍼져있던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신약 본문들이 서로 조금씩 달라져서 전승되어 왔다. 곧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칼타고, 로마 이런 곳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본문이 읽히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알렉산드리아 지방본문, 서방본문, 가아샤라본문(동방본문), 비잔틴본문 등을 들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지방본문은 가장 보수적으로 유일한 것이며 4세기 중엽에 필사된 바티칸사본(B)과 시내사본이 여기에 속하는 서방본문은 단어나 절이나 심지어는 문장까지도 자유롭게 첨가되거나 생략되면서 변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이사랴 지방본문은 동방본문으로서 일찍이 3세기부터 읽혀지고 있으며 그 특징은 서방본문과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혼합시킨 것이다. 비잔틴본문은 본문자체의 명확성과 완정성이 특징이다. 알렉산드리아사본(A), 후기 대문자사본, 수많은 소문자사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예전의「표준본문(Textus Receptus)」-(수용본문)
최초로 발행된 그리스어 신약성경은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신약성경으로서, 1516년에 바젤에서 나왔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의「그리스어 신약성경」은 전승되어 오던 어느 한 본문을 반영하지 않고 12세기 경의 서로 다른 세 사본(복음서사본, 사도행전과 서간사본, 요한계시록사본)을 편집하여서 합친 것이다. 특히 계시록의 경우에는 가지고 있던 사본의 마지막 장이 떨어져 나가서 에라스무스가 마지막 여섯 절을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되번역하여 넣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재구성한 그리스어본문은 사실 어느 그리스어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새로 만든 본문이다. 이러한 재구성 작업을 포함하고 있는 본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표준본문'(Textus Receptus)이라 하여 전승되고 있다. 마르틴루터의 독일어역 신약(1522)과 틴테일의 영어역신약(1525)은 둘 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제2판(1519)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에 이어 나온 주목할만한 편집은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이다. 1550년에 나온 그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제3판은 본문비평장치를 갖춘 최초의 비평적 편집이다. 그 이듬해에 나온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 제4판은 최초로 숫자로 절 구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테오드르 베자도 1565년부터 1604년까지 무려 아홉판 이상의 그리스어신약을 출판했고 1611년에 나온 제10판은 사후의 편집이다. 베자가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표준본문」을 대중화하고 정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1611년의 「영어 흠정역」의 신약번역의 대본이 바로 베자가 1588-1589, 1598년에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다.
신약의 표준본문(TR)이란 전승과정에 손질하고 첨가한 곳이 많은 본문, 곧 본문비평 이전시대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 표준본문은 이미 19세기 말의 신약성서학계에서 가장 빈약한 신약본문으로 판정을 받고 있었다.
새로운 표준본문
네슬레의「신약성경 그리스어」는 19세기 신약본문 연구의 결과들인 팃셴도르프, 웨이트콧-호르트, 웨이머트 등의 본문을 기본 본문으로 삼아서 다수결 본문을 만든 것이다. 네슬레판 그리스어 신약은 「네슬레와 알란트」판으로 불리면서 비평적으로 편집된 그리스어 본문자체와 본문비평장치의 우수성 때문에 신약성서 학계에서 새로운「표준본문」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미국 성서공회에서 나이다(E. A. Nida)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에 가입한 110여 개국의 각국 성서공회에 있는 수백 개의 성서번역위원회 위원들과 번역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번역자들이 사용할「번역가를 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1966년에 그리스어 신약성경 초판을 내놓았다. 그리스어 신약본문에 관해서 알란트 자신이 네슬레와 알란트의「신약성경 그리스어」25판을 수정하려던 계획을「그리스어 신약성경」에 그대로 반영하였으므로「그리스어 신약성경」과「신약성경 그리스어」26판 사이에 그리스어 본문이 많이 같아졌으며 드디어「그리스어 신약성경」(1975-1983) 3판과「신약성경 그리스어」26판은 단락구분과 철자법과 구두정 일부를 제외하고는 본문이 거의 일치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1990년 7월 13일 홍콩에서는「그리스어 신약성경」4판과 「신약성경 그리스어」27판을 준비하는 위원회가 열려 그 즉시 출판을 했다.
현재 성경번역에 있어서는 구약으로는 Biblia Hebraica Kittel(BHK)과 Biblica Hebraica Stuttgartensia(BHS)가 있고 신약으로는 네슬레·알란트의 Novum Testamentum Graece(NTG)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The united Bible societies)의 The Greek New Testament(GNT)가 있다.
아무튼 이젠 성경번역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며 말보회와같이 엉터리 번역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이다.
참고 : <조찬구 차장>월간 현대종교 95년9월호
출처 :『교/가/연』행복 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 자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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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가/연』행복 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 자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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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것…개역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 주장 -
지난 7월호(통권255호)에 말씀보존학회(이하 말보회)에서 발행된 책자들을 이단서적으로 분류해 놓으므로 말미암아 본사에 확인 문의전화가 매일 쇄도하는 한편 그 즉시 말보회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들어 왔다. 그래서 이번 9월호에 특집으로 「개역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며 오로지 말보회에서 「영어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을 100%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1994년 발행)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독선적인 입장을 적극적으로 상세히 다루어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이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성경을 읽으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알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편집자 주)
말씀보존학회(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 목사)는 지난 92년 4월에 창립되어 「한글개역성경을 사단의 변개한 것」이라고 지금껏 주장해 오고 있는 단체이다. 또한 이들은 영어성경인 NIV, NASB, RSV, NEB, GNB, JB, LB, NRSV등 10여 종의 것들도 한글개역성경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 특히 말보회는 NIV성경은 '배교의 결정판'이라고까지 혹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 동안 한글개역성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온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근본을 송두리째 뽑아 흔들어 버리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도전임 셈이므로 성서학계나 신학자, 그리고 교계의 올바른 대책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말보회는 자체 홍보지인「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이란 것을 통해 자체 출판물인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말보회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란 홍보지 창간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주님 오실 날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정착과 바른 신학의 정립이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 나라 교회들의 성경지식이 이 학회지를 통하여 계속 성장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또 이들은 홍보지에서 「교회들은 많은데 교회는 없다. 찬양과 경배는 강조하면서 정작 복음은 없다. 복음 비슷한 것은 있는데 양육은 없다. 50년 된 성도도 늙은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 와중에 이색종파들이 표면에 나와 횡행하므로 혼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홍보지 제3호에서 말보회는 「우리나라에 130여 년 동안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지내왔기에 사단의 무법천지가 될 수 있었다. 지난 130여년 동안에 성도들의 영적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단 한 권의 책도 쓴 사람이 없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
말보회에서는 한글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또한 신학적인 논쟁이나 교리적인 연구는 물론 잘못된 이단교회와도 논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말보회는 우리나라에 있는 신학교에 대해서 말하기를 「장신대나 총신대 그리고 합동신학교, 한신대 등 기존의 한국교회를 이끌어 온 신학교는 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학문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라면서 오로지 펜사콜라 신학원만이 가장 올바른 신학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올바른 교회도 성경침례교회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송오 목사가 말씀보존학회를 창립할 때 성경침례교회도 동시에 세워졌다.
현재 130여명이 이 교회의 성도들이며 대부분이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보회에서 발행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번역상에 있어 부실하기가 그지없다는 게 성서번역 학자들의 주장이다. 문체에 있어서도 개역성경의 흉내만 냈을 뿐 매우 조잡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은 TR(헬라어표준본문)을 사용했다. TR은 헬라어 본문에 대한 이해가 전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성경에 「하데스」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송오 목사는 신약에서 모두 「음부」라고 번역을 해놓았다. 이것은 KJV성경에도 그리고 원문에도 없는 이 목사만의 창작품인 것이다.
한글개역성경에 잘못 번역된 것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번역자가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서 번역했으며 또 어떤 사본을 근거로 해서 번역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없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지지 않은 것을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이송오 목사의 주장대로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는 사실은 정말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이 만든 성경책은 옳고 나머지 성경책은 사단의 변개한 책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각 신학대학의 성서학자들이 밝히는 대로라면 이송오 목사의 인격적인 결함과 번역에 대한 실력이 탁월하지 않다는 지적이 다분하다.
자기자신의 독선적인 그리고 배타적인 시각을 이젠 과감히 벗어나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강조할 것은 강조하는 것」이 진정 옳을진대 계속해서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그 외 출판물들이 성서연구에,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언가 억지이며 개운하지가 않다는 느낌이다.
또 목사라면 최소한 인격적인 발언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지 기자에게 전화 상으로 욕설을 퍼붓고 인신공격을 하는 상황 등을 뒤돌아볼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송오 목사는 「성경의 유래」라는 번역책자에서 신약성경을 4가지로 분류해 놓았는데 복음서는 복음서신으로, 바울서신은 바울서신으로, 일반서신(공동서신, 보통서신-catholic epistle)은 「천주교 서신」으로, 계시록은 계시록으로 번역해 놓았다. 이것만으로도 그 실력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는 또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와(The Holy catholic church)를 「천주교회」로 번역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진정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성경만을 쓰셨다」를 통해 삭제됐다 하면서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성구들이 많이 빠져있으므로 덧붙이는데 더욱 일조를 했던 사람이다. 성경이 잘못 번역돼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2천여 곳 이상이 빠져있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어느 저명한 성서학자나 성서 발행관련 기관에서 제기하지 않으므로 인해 입증된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90년 4월 12일자 국민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신약전서 개역한글판」(1956)에 2천여 개의 헬라어가 빠져있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 신학대학에 원문비평학을 연구하고 계신 분들 중에서 이렇게 지적한 사람이 한 분도 없는 것으로 볼 때 억지 주장이 아닌가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기사 내용에서 이송오 목사는 원문비평학을 공부하고 헬라어 표준본문(TR)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 신약성서에 무려 2천단어 이상이 누락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국내성서에는 「없음」으로 표시된 사도행전 8장 37절이 원문에는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 37절이 개역한글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난외주에, 권위 있는 헬라어사본에는 37절이 빠져 있지만 어떤 사본에 본문에는 다만 「37절이 없음」이라고 괄호 안에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는 37절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대로 번역하여 실었다는 점이다. 신약전서 201쪽 난외주 4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37절은 번역자들이 실수하여 빠뜨린 것이 아니라 원본에 가까운 권위 있는 사본들이 이 구절이 없으니까 빼놓은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어떤 사본에는 37절의 내용이 나오니까 우리말 번역은 그것을 난외주에 번역해서 실었다. 이것은 우리말 번역뿐 아니라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번역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나온 「개혁표준성서(RSV)」「복음성서(GNB)」「새국제성서(NIV)」영국에서 나온 「새영어성서(NEB)」 등이다.
이런 번역들 역시 우리말 번역처럼 본문에는 37절이 없다는 것을 밝혔고, 난외주에는 후대의 사본에 37절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내용을 난외주에 번역해서 실었다. 「새 미국표준성서(NASB)」는 37절을 본문 안에 넣되 괄호 속에 묶어서 넣어 37절이 원래 원문에는 없었던 것임을 밝히고 있다.
신약성서의 중요한 사본들로서 대문자사본들인 4세기의 시내사본,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사본(A), 4세기의 바디칸사본(B), 5세기의 에브라임사본(C), 5-6세기의 것인 베자(Beza)사본(D) 등에는 행8:37이 없다. 다만 6세기 후반 7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E사본과 소문자사본 가운데서 12세기경의 36사본, 323사본, 14세기경의 453사본, 945사본, 323사본, 10세기의 1891사본, 이 밖에 옛 번역들인 이탈리아역(it), 빌케이트역 중에서도 16세기의 클레멘트판(Vgel), 시리아어역(Syh)에서만 나온다. 이레니우스와 칼타고의 씨프리안과 같은 교부들이 인용한 성구에도 행8:37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8:37은 원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후대의 삽입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공회역판들이 이런 첨가구절을 본문에 넣지 않고 난외주에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목사는 눅2:33에 기록된 「그 부모가」는「요셉과 그의 모친이」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개역 본문에서는 「그 부모가 아기에게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원문자체가 문제 있다. 네슬-알란트판 「히랍어 신약전서(Nestle-Aland. Novum Testamentum Graece)」(1970sus 검판 )의 본문을 여기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카이엔「호 파테르 아우투」카이 헤 메테르 타우마존테스에피 토아스 랄루에 누이스 페리 아우투.
이것을 영어로 직역해보면 위의 희랍어 원문의 문제가 무엇인가 잘 드러난다.
And his father and mother was(단수) marvelling(복수) at the things which were spoken concerning him. 단수동사(엔: was)와 복수분사(타우마존테스: marvelling)와 함께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본문 전달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사본에 단수 「엔(was)」이 있다.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시내사본, 바티칸 사본(B), 베자사본(D), 레기우스사본(L)과 많은 소문자사본에는 「엔」다음에 주어진 「호 파테르 아우투(그의 아버지)」가 나온다. 이것은 단수동사인 「엔(was)」과 호응을 이룬다. 그러나 주어 「그의 아버지」다음에 「그리고 그 어머니(카이 헤 메테르)」가 나온다. 그렇다면 동사는 복수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한글개역성경에는 단수이다.
그런데 분사「타우마존테스(놀라다, 기이하게 여기다)」는 복수분사이다. 「기이하게 여긴」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본문의 전달과정에서 어떤 분류상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희랍어 본문의 「호 파테르 아우투 카이 헤 메테르(그의 아버지와 그 어머니)」를 「요셉과 그의 어머니」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데 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리아사본(A)과 코이네 본문 전승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호 파테르 아우투) 대신에 요셉이 나온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사본 복사자가 일부러 고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의 처녀 탄생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를 육신의 아버지는 없고 육신의 어머니만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본문을 변경시켰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시내사본을 포함한 적지 않은 수의 사본들이 「헤 메테르(그 어머니)」다음에 「아우투(그의)」를 집어넣어 「그의 어머니」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눅2:33의 본문은 예수님의 처녀탄생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 하여 예수님의 처녀탄생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성서한국. 제36권 1호. 1990.6)
영어킹제임스성경은 번역상에 있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대단히 높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구약의 경우, 히브리어「bei」「qeber」「shachath」 등을 모두「grave」로 번역하였고 「sheol」중 31단어는 「grave」로 나머지는 모두 「hel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 「sheol」중에서 「grave」에 해당하는 31번을 모두 「무덤」이 아닌 「음부」로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의 경우 킹제임스성경은 「mnema」 혹은 「grave」로 번역하였고 「hades」중에서는 단 한 번 고전 15:33만 「grave」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모두 「hel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경우에도 고린도전서 15장 33절을 「무덤」대신 「음부」로 번역해 놓았다는 점이다. 참고로 새성경 초판에서 3판까지「hades」는「음부」로 「tatarrus」와 「gehinna」는 「지옥」으로 번역했다가 새성경 4판에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만 「음부」로 남겨놓고 나머지는 고쳤다가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와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까지 「지옥」으로 고친 사실이 밝혀졌다.
위와 같은 상황을 살펴볼 때 말씀보존학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번역의 일관된 원칙이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고전6:9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자들 중에 영어킹제임스성경은 「effeminate(여성화된 자들)」을 들고 있는데,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부분을 「여성동성애자」라고 번역해 놓았다. 이송오 목사가 사용한 스테판 TR 의 헬라어 「말라코이(malakoi)」는 분명 주격 남성 복수대명사이고, 영어킹제임스성경의 「effeminate」역시 여성화된 남자를 의미하는데 무슨 근거로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어 「여성동성연애자」라고 번역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목사가 번역할 때 사용한 「Interliner Greek English New Testament by George Ricker Berry(Baker Book House, 1982)」 444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말라코이」란 단어 밑에 리커 베리가 영어로 풀이해 놓은 「abusers of themselves as women」이 눈에 띄었고, 그 옆의 「아르세노코이타이(arsenokoitai)」란 단어 밑에는 「abusers of themselves with men」으로 풀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두 단어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여성동성연애자」와 「남성동성연애자」로 번역을 했다. 그렇지만 「여성동성연애자」에 해당하는 「abusers of themselves as women」은 「자신들을 여자들과(with women) 남용하는 자」라는 뜻이 아니고 「자신들을 여자인 것처럼(as women) 남용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조그마한 부주의가 남성을 여성으로 바꿔놓은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헬라어를 바로 알았더라면 사실 이런 실수를 범치 않았을 것이다.
또 벧후1:20의 「성경기록의 어떤 것도 사적 해석으로 된 것이 아니니(no prophecy of the scripture is of any private interpretation)」를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이 되어서는 안되나니」로 오역하였다. 즉 「성경에는 사적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씀을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된다」로 오역하여 개인적 성경해석을 금지하는 로마카톨릭에게 근거를 제공해주는 꼴(?)을 연출했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16장 1절에서 「교회의 섬기는 자(a servant of the church)」인 뵈뵈자매를「교회의 일꾼」이라 번역하여 여자 직제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으며 「양시장(sheep market, 요5:2)」를 「양문」으로 오역하고, 「아이(child)」를 「아들(son, 행4:27)」로 오역하고, 「장로(elders, 히11:2)」를 「원로」로 오역하고 「세대(generation), 창2:4)」를 「내력」으로 오역하고, 「혼인만찬(marriage supper, 계19:9)」를 「혼인잔치」로 오역하고, 이사야 52장 14절에서는 2인칭(thee, 너)을 3인칭(him, 그)으로 바꿔 번역했으며 욥기 22장 14절에서는 「궤도(circuit)」를 「길(way)」로 오역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본문
근래에 그리스어 성경본문을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말하는「표준본문(Textus Receptus)」이란 후대에 첨가하거나 손질한 곳이 많은 본문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본문을 가치 있는 본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요즈음에 성경을 번역할 때에 번역의 대본으로 삼는 그리스어신약성경은 네슬레와 알란트가 편집한 「신약성경 그리스어」나 세계연합성서공회판 「그리스어신약성경」으로서, 최초의 본문에 가장 가깝다고 인정받은 본문이다.
서로 다른 그리스어 신약 본문들
우리에게 전승되어 보존되어 온 신약성경 본문은 단편사본까지 합쳐서 약 5,000여 개의 그리스어 사본들이 있고, 이 사본들 가운데서 본문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둘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성경의 원어와 본문전승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오래 전부터 최초의 원본에 가까운 그리스어 신약전서를 편집해 보고자 한다.
사본들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사본을 베끼는 사람들이 실수를 하여 본문이 달라져서 전승이 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본을 베끼는 사람들이 일부러 어떤 단어를 넣거나 빼거나 고치거나 하여 본문이 달라져서 전승된 경우이다.
신약성경의 경우에는 초대교회들이 퍼져있던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신약 본문들이 서로 조금씩 달라져서 전승되어 왔다. 곧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칼타고, 로마 이런 곳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본문이 읽히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알렉산드리아 지방본문, 서방본문, 가아샤라본문(동방본문), 비잔틴본문 등을 들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지방본문은 가장 보수적으로 유일한 것이며 4세기 중엽에 필사된 바티칸사본(B)과 시내사본이 여기에 속하는 서방본문은 단어나 절이나 심지어는 문장까지도 자유롭게 첨가되거나 생략되면서 변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이사랴 지방본문은 동방본문으로서 일찍이 3세기부터 읽혀지고 있으며 그 특징은 서방본문과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혼합시킨 것이다. 비잔틴본문은 본문자체의 명확성과 완정성이 특징이다. 알렉산드리아사본(A), 후기 대문자사본, 수많은 소문자사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예전의「표준본문(Textus Receptus)」-(수용본문)
최초로 발행된 그리스어 신약성경은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신약성경으로서, 1516년에 바젤에서 나왔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의「그리스어 신약성경」은 전승되어 오던 어느 한 본문을 반영하지 않고 12세기 경의 서로 다른 세 사본(복음서사본, 사도행전과 서간사본, 요한계시록사본)을 편집하여서 합친 것이다. 특히 계시록의 경우에는 가지고 있던 사본의 마지막 장이 떨어져 나가서 에라스무스가 마지막 여섯 절을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되번역하여 넣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재구성한 그리스어본문은 사실 어느 그리스어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새로 만든 본문이다. 이러한 재구성 작업을 포함하고 있는 본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표준본문'(Textus Receptus)이라 하여 전승되고 있다. 마르틴루터의 독일어역 신약(1522)과 틴테일의 영어역신약(1525)은 둘 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제2판(1519)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에 이어 나온 주목할만한 편집은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이다. 1550년에 나온 그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제3판은 본문비평장치를 갖춘 최초의 비평적 편집이다. 그 이듬해에 나온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 제4판은 최초로 숫자로 절 구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테오드르 베자도 1565년부터 1604년까지 무려 아홉판 이상의 그리스어신약을 출판했고 1611년에 나온 제10판은 사후의 편집이다. 베자가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표준본문」을 대중화하고 정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1611년의 「영어 흠정역」의 신약번역의 대본이 바로 베자가 1588-1589, 1598년에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다.
신약의 표준본문(TR)이란 전승과정에 손질하고 첨가한 곳이 많은 본문, 곧 본문비평 이전시대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 표준본문은 이미 19세기 말의 신약성서학계에서 가장 빈약한 신약본문으로 판정을 받고 있었다.
새로운 표준본문
네슬레의「신약성경 그리스어」는 19세기 신약본문 연구의 결과들인 팃셴도르프, 웨이트콧-호르트, 웨이머트 등의 본문을 기본 본문으로 삼아서 다수결 본문을 만든 것이다. 네슬레판 그리스어 신약은 「네슬레와 알란트」판으로 불리면서 비평적으로 편집된 그리스어 본문자체와 본문비평장치의 우수성 때문에 신약성서 학계에서 새로운「표준본문」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미국 성서공회에서 나이다(E. A. Nida)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에 가입한 110여 개국의 각국 성서공회에 있는 수백 개의 성서번역위원회 위원들과 번역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번역자들이 사용할「번역가를 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1966년에 그리스어 신약성경 초판을 내놓았다. 그리스어 신약본문에 관해서 알란트 자신이 네슬레와 알란트의「신약성경 그리스어」25판을 수정하려던 계획을「그리스어 신약성경」에 그대로 반영하였으므로「그리스어 신약성경」과「신약성경 그리스어」26판 사이에 그리스어 본문이 많이 같아졌으며 드디어「그리스어 신약성경」(1975-1983) 3판과「신약성경 그리스어」26판은 단락구분과 철자법과 구두정 일부를 제외하고는 본문이 거의 일치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1990년 7월 13일 홍콩에서는「그리스어 신약성경」4판과 「신약성경 그리스어」27판을 준비하는 위원회가 열려 그 즉시 출판을 했다.
현재 성경번역에 있어서는 구약으로는 Biblia Hebraica Kittel(BHK)과 Biblica Hebraica Stuttgartensia(BHS)가 있고 신약으로는 네슬레·알란트의 Novum Testamentum Graece(NTG)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The united Bible societies)의 The Greek New Testament(GNT)가 있다.
아무튼 이젠 성경번역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며 말보회와같이 엉터리 번역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이다.
참고 : <조찬구 차장>월간 현대종교 95년9월호
출처 :『교/가/연』행복 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 자스민
2007.09.30 15:52:27
말씀보존학회 및, 그들의 뿌리인 킹제임스 근본주의자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인쇄기, 복사기, 타자기, 카메라가 없었으므로,
모조리 손으로 베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극히 조심해서 사본을 만드는 성서의 경우에도,
베낀 것을 또 베끼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 오탈자, 덧붙임 등 오류가 생깁니다.
이것이 누적되면, 사본군(群)들의 계통, 계보가 생깁니다.
더욱이, 옛날에는 요즘 같은 교통이 아니었으므로,
동서방 등, 지방에 따라 그 계보가 다르겠지요.
이러한 성서 사본들의 계통을 역추적하여,
본래의 원문에 보다 가까운, 오류가 적은 본문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본문비평'이라 합니다.
여러 성서비평학 방법론들이 근대에 들어와 생겼듯이,
본문비평학 역시 근대에 와서야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오리게네스, 예로니모 등,
교부 시대, 중세 때에도 비평적 성서학자들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근대 본문비평학의 선구라 할 만하겠죠)
신약성서 그리스어 원본의 사본군은,
크게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방 사본군과,
서방 교회 지역에서 통용된 서방 사본군으로 나뉘는데,
근대 본문비평학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동방 쪽 사본군들이 더 원래 형태에 가깝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수많은 옛날 사본들, 고대 문헌들의 성서 인용구 등을 수집하면서,
본래 형태에 더 가까운 성서 원문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신약성서 네슬판이니, UBS판이니 하는 것들이,
수년 주기로 판이 바뀌어 새로 출판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영미권 개신교의 전통적인 성서 번역본은 KJV이었고, 한국 개신교는 구역-개역인데,
KJV은 신약성서 사본 계보상 서방 사본군에 기초한
[표준원문]이라는 그리스어 신약 원전을 대본으로 번역했고,
(이 [표준원문]은, 비평판 그리스어 신약성서들이 출판되기 이전까지,
그리스어 신약 원전으로 사용된 것임)
구역-개역은, 비록 근대 성서비평학의 연구가 진행되는 중에 나온 번역들이지만,
KJV 등의 영향 탓인지, 서방 형태의 그리스어 원문의 영향이 짙습니다.
그런데, 신학, 특히 신약성서학의 문외한인 일반 평신도들은,
KJV이나 개역에 나오는 단어, 절 등이,
다른 현대의 영어 성서나 한글 성서에 빠져 있으면,
왜 하느님의 말씀을 빼느냐,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할 거란 말이지요.
이 말씀보존학회 등, 킹 제임스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평신도들의 소박하고 당연한 의문을 미끼로,
선동을 일삼고 있는 겁니다.
개신교 근본주의의 중심 요소 중 하나가
KJV라는, 종교개혁 당시의 영어 성서인데,
개신교 근본주의의 감성적 특성상,
성서의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라는 문자주의를,
늘상 보고 읽는 KJV에 투사시킨 겁니다.
예컨대, 우리나라 개신교가, 개역성서를 금과옥조처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암송하는 걸 대회도 하며 상도 주고,
수련회 때 토씨 틀리면 밥 안 주는 그런 것들에는,
이같은 심리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말씀보존학회 등 킹 제임스 근본주의가,
세대주의의 후예라는 것입니다.
킹 제임스 근본주의 및,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형성에는,
전 시대까지 초유의 베스트셀러였던
[스코필드 관주 성서]가 배후에 놓여 있습니다.
(당연히 KJV를 본문으로 채택했음)
성서의 축자적 해석에 기초하여,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고, 날짜 계산을 하는 등,
그런 것이지요.
666, 다미선교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 개신교 이단들의 다수가,
이 세대주의를 골간으로 하고 있는데,
전 시대 미국 개신교 평신도들은, 이 [스코필드 관주성서]가
유일무이하고 당연한 성서 해석인 줄 알 정도로,
그 영향력은 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도, 불과 얼마 전인 80,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주위의 여느 평범한 개신교회들이 휴거니, 전천년왕국이니,
당연한 듯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다루는 게 흔했잖습니까.
축자적인 개신교 근본주의와, 세대주의는 한 지붕이라 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이지요.
성서학적 전문 지식을 잘 알 수 없는 평신도들을 선동하여,
그릇된 지식으로 꾀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의 교리 내용도 이단이기에,
말씀보존학회는 절대 피해야 할 집단이라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인쇄기, 복사기, 타자기, 카메라가 없었으므로,
모조리 손으로 베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극히 조심해서 사본을 만드는 성서의 경우에도,
베낀 것을 또 베끼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 오탈자, 덧붙임 등 오류가 생깁니다.
이것이 누적되면, 사본군(群)들의 계통, 계보가 생깁니다.
더욱이, 옛날에는 요즘 같은 교통이 아니었으므로,
동서방 등, 지방에 따라 그 계보가 다르겠지요.
이러한 성서 사본들의 계통을 역추적하여,
본래의 원문에 보다 가까운, 오류가 적은 본문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본문비평'이라 합니다.
여러 성서비평학 방법론들이 근대에 들어와 생겼듯이,
본문비평학 역시 근대에 와서야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오리게네스, 예로니모 등,
교부 시대, 중세 때에도 비평적 성서학자들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근대 본문비평학의 선구라 할 만하겠죠)
신약성서 그리스어 원본의 사본군은,
크게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방 사본군과,
서방 교회 지역에서 통용된 서방 사본군으로 나뉘는데,
근대 본문비평학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동방 쪽 사본군들이 더 원래 형태에 가깝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수많은 옛날 사본들, 고대 문헌들의 성서 인용구 등을 수집하면서,
본래 형태에 더 가까운 성서 원문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신약성서 네슬판이니, UBS판이니 하는 것들이,
수년 주기로 판이 바뀌어 새로 출판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영미권 개신교의 전통적인 성서 번역본은 KJV이었고, 한국 개신교는 구역-개역인데,
KJV은 신약성서 사본 계보상 서방 사본군에 기초한
[표준원문]이라는 그리스어 신약 원전을 대본으로 번역했고,
(이 [표준원문]은, 비평판 그리스어 신약성서들이 출판되기 이전까지,
그리스어 신약 원전으로 사용된 것임)
구역-개역은, 비록 근대 성서비평학의 연구가 진행되는 중에 나온 번역들이지만,
KJV 등의 영향 탓인지, 서방 형태의 그리스어 원문의 영향이 짙습니다.
그런데, 신학, 특히 신약성서학의 문외한인 일반 평신도들은,
KJV이나 개역에 나오는 단어, 절 등이,
다른 현대의 영어 성서나 한글 성서에 빠져 있으면,
왜 하느님의 말씀을 빼느냐,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할 거란 말이지요.
이 말씀보존학회 등, 킹 제임스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평신도들의 소박하고 당연한 의문을 미끼로,
선동을 일삼고 있는 겁니다.
개신교 근본주의의 중심 요소 중 하나가
KJV라는, 종교개혁 당시의 영어 성서인데,
개신교 근본주의의 감성적 특성상,
성서의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라는 문자주의를,
늘상 보고 읽는 KJV에 투사시킨 겁니다.
예컨대, 우리나라 개신교가, 개역성서를 금과옥조처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암송하는 걸 대회도 하며 상도 주고,
수련회 때 토씨 틀리면 밥 안 주는 그런 것들에는,
이같은 심리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말씀보존학회 등 킹 제임스 근본주의가,
세대주의의 후예라는 것입니다.
킹 제임스 근본주의 및,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형성에는,
전 시대까지 초유의 베스트셀러였던
[스코필드 관주 성서]가 배후에 놓여 있습니다.
(당연히 KJV를 본문으로 채택했음)
성서의 축자적 해석에 기초하여,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고, 날짜 계산을 하는 등,
그런 것이지요.
666, 다미선교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 개신교 이단들의 다수가,
이 세대주의를 골간으로 하고 있는데,
전 시대 미국 개신교 평신도들은, 이 [스코필드 관주성서]가
유일무이하고 당연한 성서 해석인 줄 알 정도로,
그 영향력은 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도, 불과 얼마 전인 80,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주위의 여느 평범한 개신교회들이 휴거니, 전천년왕국이니,
당연한 듯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다루는 게 흔했잖습니까.
축자적인 개신교 근본주의와, 세대주의는 한 지붕이라 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이지요.
성서학적 전문 지식을 잘 알 수 없는 평신도들을 선동하여,
그릇된 지식으로 꾀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의 교리 내용도 이단이기에,
말씀보존학회는 절대 피해야 할 집단이라 하겠습니다.
출처: target=_blank>http://cafe.naver.com/cultcounsel.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3
말씀보존학회와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목사)라는 곳이 있다.
성경침례교회라고도 하는데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성서침례교회와도 다른 곳이다.
그곳은 킹제임스만이 올바른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매우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곳이다.
일반 교회가 사용하는 개역성경(NIV영어성경)이 변개된 사단의 성경이라고 주장하며, 오직 킹제임스성경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진짜 성경이라고 주장하여서, 예장합동을 비롯한 많은 교단에서 이단으로 공표되었으며, 많은 곳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곳이다.
미국의 펜사콜라 신학교(원장: 피터 럭크만,)만이 올바른 신학교이며, 영어킹제임스성경과 이송오자신이 번역한 한글킹제임스(흠정역)만이 참성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교리도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자신의 교회의 교리와 신학(전형적인 극단적 세대주의)만이 참신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개역성경을 보는 모든 교회는 사탄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라면 한국의 복음은 그동안 주님의 복음이 아니라 사탄의 복음이었단 말이 된다.
토론을 해본 그들의 배타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침례가 아니라 세례를 받으면 이단이라는 것이다.
또 인터넷에서 만난 말씀보존학회의 한 사람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가 모두 이단이라고 서슴치 않는다. 그동안 만났던 말씀보존학회 사람들은 모두 배타적이며 공격적이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예의와 에티켓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거침이 없었다.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목사는 국민일보 기자와 인터뷰에서 "신약전서 개역 한글판"에 2천여개의 고의적인 누락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개역성경 사도행전8장37절을 보면 [없음]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킹제임스 한글성경 사도행전8장37절에는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나이다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이것과 같이 개역성경이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독선이 아니라, 무식에 가깝다.
37절은 번역자들이 실수하여 빠뜨린 것이 아니라, 헬라어 사본에 37절이 빠져 있으며, 원본에 가깝다고 평가하는 권위있는 사본에도 그 구절이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없음]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사탄이 감추어 놓은 것을 자신이 찾은 듯이 주장하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나 헬라어 사본은 장과 절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한 장과 절은 후세에 편의를 위하여 첨부되어진 것이다. 즉 권위있는 사본과 대표적인 사본들에 그 구절이 누락되어있으므로 [없음]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것을 그들은 개역성경이 누락하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다른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므로 또하나의 훌륭한 성경번역본이 될 수는 있다.
킹제임스 성경, 자체가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존하는 여러 성경사본을 비교하면서 보다 원문에 충실하여질 수가 있는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은 좋은 성경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어있으므로 안타깝다.
말씀보존학회와 같이 자신이 번역한 성경외에는 모두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요, 독선이 된다.
직접적인 한 예를 들어보자....
이들이 어느날 인터넷을 통하여 다음 성경구절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과 이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지 곧 드러나게 된다.
개역성경: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사14:12)
NIV: How you have fallen from heaven, O morning star, son of the dawn!
KJV: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킹제임스 성경은 이사야14장12절의 계명성을 루시퍼라고 번역하여 놓고, 오직 킹제임스만이 올바른 번역을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예수만이 샛별이다(벧후1:19, 계2:28). 그런데 왜 사단을 샛별(Morning star)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설명에 대해서 동조하는 사람들조차 있다는 것이다.
계명성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헤렐"이며, 이 단어는 금성(Venus)의 별칭이다.
즉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를 번역하면 계명성, 혹은 샛별이 정확하다.
샛별, 혹은 금성이라고 불리는 별은 이른 새벽에 빛을 유난히 발하는데, 그렇기에 새벽별이라고도 불리운다.
다시 말하여, 이른 새벽에 다른 별보다 빛난다는 자체가 교만함을 의미하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샛별이라고 번역하였다고 하여(실제 개역성경은 계명성이라고 번역했음) 예수님과 착각할 수 있다는 이상한 주장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사야 14장12절의 "계명성"은 일차적인 해석으로 바벨론의 통치자를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 단어를 "루시퍼"라고 의역한다면, 그 단어는 유대적인 전승에서 찾을 수 있는 천사장의 의미로서, 일차적인 의미로 바벨론의 통치자의 개념이 되어지지 못하므로, 일차적인 문자적인 개념의 전달이 애매모호하여 진다.
또한 "루시퍼"라는 단어는 정경에 언급되어지지 않는다.
루시퍼가 타락한 천사의 이름이라는 성경은 전혀 없으며, 단지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한 것이다.
또 이 헤렐(계명성)이 예수님을 말하는 샛별과 착각을 할 수가 있을까?
베드로후서의 기자는 "샛별"을 "포스포로스" 즉 빛의 전달자로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설명하고 있다.(벧후1:19)
사도요한은 "광명한 새벽별"을 "아스테르 프로이누스"라는 용어로써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계2:28)
원문상으로 보면 전혀 용어자체가 다르다.
이사야 14:12을 계명성이라고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고 하여, 그리스도와 사단을 착각할 기독교인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루시퍼라는 단어는 "빛을 발하는 자"라는 의미의 라틴어로서, 오히려 그 단어를 사용하였을 때에, 빛이 되시는 예수님과 혼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씀보존학회는 오히려 사탄을 빛을 발하는 자라고 번역하면서, 자신들의 번역이 옳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영어KJV성경에서 라틴어의 "lux fero", 즉 "빛을 발하는 자"라는 뜻
을 근거로 하여 "lucifer(루시퍼)"로 번역을 한 것이며 그렇기에 한글
킹제임스성경 사14:12절도 올바르게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라고
옳게 번역을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킹제임스 말씀보존학회)
그러한 논리라면 "빛을 발하는 자"라는 이상한 주장이 더 착각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 보면 "빛"은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다.
어찌하면 사탄을 빛을 발하는 자라고 번역을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별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보자.
성경에는 "누룩"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구절은 나쁜 의미의 "누룩"을 말한다.(막8:15)
그러나 예수님은 "가루 서말의 누룩"을 확장되는 천국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마13:33)
마3장에서의 누룩은 확장되어진다는 좋은 의미를 갖고 있다.
누룩이라는 단어가 모두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어진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만일 새벽별이 예수 그리스도와 착각을 할 수가 있으므로 달리 번역하였다면.... 킹제임스는 빛을 발하는 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도 안된다.
또 킹제임스는 왜 욥기 38:7에서는 천사들을 그대로 "morning stars" 라고 번역하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여야만 할 것이다. 이 Star 라는 단어는 혹시 예수님으로 착각되지 않는가?
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KJV: When the morning stars sang together.....
자신들은 천사를 새벽별이라고 번역하면 옳은 번역이 된다는 말인가?
미국 넬슨사의 New King James Version(킹제임스를 현대어로 번역)을 보면 그 Lucifer 라는 단어 왼쪽에 조그맣게 t 자가 붙어 있다.
그 t 라는 글자는 무엇인가 하면 Verse Translation 의 약자를 말한다.
뉴킹제임스 영어성경의 open guide를 보면....
The verse translations provide synonyms, alternate translation, literal
meaning, and information from the Hebrew and Greek.
라고 가이드를 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번역하면....
"verse translation 이란 헬라어나 히브리어로부터 정보나 문자적
인 의미, 해석의 변경, 동의어를 제공하고 있다."
즉 그것이 뉴킹제임스성경의 장점이며, 특징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히브리어나 헬라어로부터 그 본 의미를 동의어, 해석변경 즉 의역. 문자적인 의미로 풀어서 해석되었을 때 그것을 t 로 표시한다는 뜻이다.
그 12절 바로 옆에는 이태리체로 day star 라고 주해석을 달고 있다.
킹제임스 옹호자들은 뉴킹제임스도 비난하며 부정한다.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며 다른 성경은 모두 사단이 변개하였다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라틴어 역본을 보고 번역하였으므로 옳은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무지에 가까울 정도이다.
라틴어역본은 무엇이며, 킹제임스 성경이란 무엇인가?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 영국 제임스 국왕에 의하여 성경번역을 하였으므로 "킹제임스"라고 불리운다.
우리는 킹제임스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먼저 TR 본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킹제임스는 TR본문을 영어로 번역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TR의 기원은 중세의 인문주의자요, 신학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 1469- 1536)에서 시작된다.
그 당시까지 시중 판매용으로 제작된 헬라어 성경은 없었다. 그러한 점에서 동기와 목적은 아주 좋았다.
그래서 프로벤(Johann Froben)이라는 인쇄업자의 종용으로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성경 편집 작업을 하기로 하고,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과 스위스 바젤에서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였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므로 12세기경의 것으로 발견된 사본 5권밖에는 입수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입수한 사본 가운데 요한 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한 권뿐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6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부득이 라틴어 불게이트 (Vulgate) 성경에서 번역을 하여 그 부분을 다시 라틴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하여 보충함으로서, 헬라어 성경을 시중에 내놓았다. (오늘날에는 신약성경만 5400개의 발견된 사본을 보고 본문비평과 연구를 하고 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이 1515년 10월2일에 시작된 인쇄가 1516년 3월1일에 완성되었다.
1,000 페이지 가량 되는 방대한 작업을 너무 급히 인쇄했기 때문에 초판은 오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헬라어 성경 출판은 대성공이었다. 그것은 4 판에 69 인쇄가 발행되었다. 마틴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은 그의 2 판이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은 그 후에도 스테파누스 (Stephanus), 베자 (Beza), 엘제비르 (Elzevir)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특히 엘제비르 형제는 그들이 개정한 2 판(1633)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제, 우리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본문(Textus Receptus)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TR(Textus Receptus: 표준원문)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고, 그래서 KJV(킹제임스)의 신약 부분은 TR에서 번역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즉 킹제임스성경이 마치 누구나 인정하는 공인된 표준원문(TR)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구약의 경우에는, KJV는 물론 모든 번역판이 MT(Masoretic Text; "맛소라 본문")로부터 번역된 것이다.
에라스무스 이후,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도 1565년부터 1604년까지 무려 아홉판 이상의 헬라어 신약을 수정 출판했고, 1611년에 나온 제 10판은 사후의 편집이다.
이 베자가 편집한 희랍어 신약 성서는 '표준원문'을 대중화하고 정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1611년의「영어 흠정역 성서(The Authorized or King Kames Version)의 신약 번역의 대본이 되었던 것도 바로 베자가 1588∼1589, 1598년에 편집한 「희랍어 신약성서」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킹제임스 성경은 그 역사가 오래 되고 권위가 있는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2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몇 개의 사본에서 번역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1611년에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은 그 당시 전혀 새로운 성경이 아니라 이전의 번역판을 개정한 것뿐이었고, 제임스 왕이 그 권위를 인정했다하여 흠정역(Authorized Version)이라고 불린다.
이 성경이 아름다운 번역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 번역의 정확성과 성경의 원뜻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과 NIV 영어성경은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등을 번역한 것으로 AD 300년경의 연대를 갖고 있으며, 거의 완벽한 원문이 그대로 보존된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다.
물론 몇권의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본에서 서로 비교, 연구되어자며, 전문학자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약학자 죠지 래드(George Ladd)의 말을 들어보자.
죠지 래드는 성경 헬라어와 교부 헬라어로써 박사학위를 받은 분으로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신약학자이다.
“이른바 흠정역(欽定譯) ‘Autorized Version’이라는 것도 사실상 그 자체는 그 이전의 번역판들을 개정한 것으로 1611년 제임스 왕이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Erasmus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기초로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6개의 후기의 빈약한 그리스어 사본 뿐이었으므로 많이 애용되어 온 흠정역에 있는 재료는 3세기 이상이나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성경으로는 매우 불명확한 것이다. 사실상 Erasmus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그의 사본도 전부 사용하지 않았다…. 만일 Erasmus가 그것(시내산 사본)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흠정역 성경은 의심할 여지없이 좀더 정확한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George E. Ladd, The New Testamentand 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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