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성서에는 많은 기적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오병이어의 기적,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 물위를 걸으신 기적 등등등... 예수님의 치유사역,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조금은 성격이 다른 성격으로 느껴집니다만...
예전에 교회에서 탤런트 이영호 장로님 -“할 수 있다 하신 이는....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의 원 작사 작곡자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께서 오셔서 간증집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습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믿습니까? 물위를 걸으신 기적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그러자 회중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주 기어들어가는 약한 목소리로 “아멘”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에도 아멘을 못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그러자 이번엔 큰 소리로 “아멘!!!~” 이 터져나왔습니다...
회중들의 심리를 분석해보면, 첨에 질문을 던졌을 때, 일단 당황했을테고, 거기다가 “이성의 검열”이라는 것에 턱 걸리니 자기를 속이는 거 같아서 제대로 강한 아멘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강사의 윽박지르는 소리에, 일단 복도 걸려 있고 체면도 있고 하니 “이성의 검열”을 정지시키고 “강박적 자기 확신”을 발동시켜서 대답부터 하고 보자는 심리가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우격다짐 식으로라도 “기적”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이고, 무슨 소용인가 회의가 들었습니다...
의미 생각할 것 없이 그냥 믿어야지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 하냐고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를 신앙지상주의(fideism)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는 달리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믿는 분들의 패턴은, 뭐랄까... 근거가 박약한 자기 확신이 강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안들에 있어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남들이 틀리다고 하는 것을 자신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버릇들이 기독교 신앙 속에는 누룩처럼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흥회 때 자신의 전세금을 다 빼서 교회에 다 바치고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시켜 줄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빠지기도 하고, 가족들을 다 버리고 교회에 매달리면서 휴거를 기다리는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시처럼 이라크 침공을 이스라엘을 포로로 만들어서 고난을 당하게 한 바빌론을 심판하는 성전으로 생각하게도 합니다.(부시도 매일 큐티를 한다죠?)
그 반면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진보적인 교단 교회의 게시판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집사라는 분이 아주 자신있고, 당당하게 이런 글을 써놓으셨더군요...
“나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 예수는 사생아였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그냥 죽었을 뿐이다. 나는 예수의 사상, 정신이 제자들에게 다시 상기 되어 의식화 된 것을 부활이라고 믿을 뿐이다.”
저는 이 말에도 동의할 수가 없어서 다음 요지의 답 글을 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해도 좋다. 그렇지만 그건 신앙의 어법이 아니다. 만약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칫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과 초월적 신비까지도 다 부정하는 결과는 낳는다면 어떻게 할거냐?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까지도 다 반납할거냐?”
저는 양쪽 극단의 어떤 태도도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과학적 사실과는 완전히 다른, 이런 “기적”을 믿는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초월자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믿으며, 그가 주시는 생명의 신비를 받아 누린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성서 속의 “기적”이 믿어진다고 할 때, 그 의미는 과학적으로 이해가 되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져서 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느끼게 되어서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전에 정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나요? 기적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신앙적 어법” 이라고...
영어도 보면 가정법으로 가면 문법적 “일치”가 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I 에는 be 동사의 과거형인 was를 쓰는 것이 맞지만, 가정법 과거에서는 were 를 씁니다. If I were~ 의 문형이란 것이 사실은 가당치도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문법의 “일치 현상”을 파괴하면, 현재에는 있을 수가 없는 가정의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솔직히 그 “기적”이란 것이 인간이 “자기 확신” 으로 믿는다, 안 믿는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예전에 교회에서 탤런트 이영호 장로님 -“할 수 있다 하신 이는....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의 원 작사 작곡자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께서 오셔서 간증집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습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믿습니까? 물위를 걸으신 기적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그러자 회중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주 기어들어가는 약한 목소리로 “아멘”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에도 아멘을 못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그러자 이번엔 큰 소리로 “아멘!!!~” 이 터져나왔습니다...
회중들의 심리를 분석해보면, 첨에 질문을 던졌을 때, 일단 당황했을테고, 거기다가 “이성의 검열”이라는 것에 턱 걸리니 자기를 속이는 거 같아서 제대로 강한 아멘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강사의 윽박지르는 소리에, 일단 복도 걸려 있고 체면도 있고 하니 “이성의 검열”을 정지시키고 “강박적 자기 확신”을 발동시켜서 대답부터 하고 보자는 심리가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우격다짐 식으로라도 “기적”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이고, 무슨 소용인가 회의가 들었습니다...
의미 생각할 것 없이 그냥 믿어야지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 하냐고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를 신앙지상주의(fideism)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는 달리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믿는 분들의 패턴은, 뭐랄까... 근거가 박약한 자기 확신이 강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안들에 있어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남들이 틀리다고 하는 것을 자신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버릇들이 기독교 신앙 속에는 누룩처럼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흥회 때 자신의 전세금을 다 빼서 교회에 다 바치고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시켜 줄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빠지기도 하고, 가족들을 다 버리고 교회에 매달리면서 휴거를 기다리는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시처럼 이라크 침공을 이스라엘을 포로로 만들어서 고난을 당하게 한 바빌론을 심판하는 성전으로 생각하게도 합니다.(부시도 매일 큐티를 한다죠?)
그 반면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진보적인 교단 교회의 게시판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집사라는 분이 아주 자신있고, 당당하게 이런 글을 써놓으셨더군요...
“나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 예수는 사생아였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그냥 죽었을 뿐이다. 나는 예수의 사상, 정신이 제자들에게 다시 상기 되어 의식화 된 것을 부활이라고 믿을 뿐이다.”
저는 이 말에도 동의할 수가 없어서 다음 요지의 답 글을 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해도 좋다. 그렇지만 그건 신앙의 어법이 아니다. 만약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칫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과 초월적 신비까지도 다 부정하는 결과는 낳는다면 어떻게 할거냐?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까지도 다 반납할거냐?”
저는 양쪽 극단의 어떤 태도도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과학적 사실과는 완전히 다른, 이런 “기적”을 믿는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초월자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믿으며, 그가 주시는 생명의 신비를 받아 누린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성서 속의 “기적”이 믿어진다고 할 때, 그 의미는 과학적으로 이해가 되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져서 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느끼게 되어서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전에 정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나요? 기적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신앙적 어법” 이라고...
영어도 보면 가정법으로 가면 문법적 “일치”가 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I 에는 be 동사의 과거형인 was를 쓰는 것이 맞지만, 가정법 과거에서는 were 를 씁니다. If I were~ 의 문형이란 것이 사실은 가당치도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문법의 “일치 현상”을 파괴하면, 현재에는 있을 수가 없는 가정의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솔직히 그 “기적”이란 것이 인간이 “자기 확신” 으로 믿는다, 안 믿는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2008.07.15 13:47:38
청개구리님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알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다비아에 들어왔을 때 공포(?) 알게 해주신 분이죠 (혹시 ㄷㅏㄿ빛...) 요즘 자중하고 계시다는데 언제 또 활화산이 되어서 다비아를 뜨겁게 달구실지 모르죠.
2008.07.15 14:05:28
너무 딴 얘기만 했군요. 기적에 대해서 저는 성경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나 전공이 전공인지라 꼭 뒤집어 보고 토를 다는 걸 좋아하죠. 무턱대고 믿는 것 보다 열심히 생각해 보고 왜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 왜 하나님은 그러셨을까 고민하면서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희한한 것은 성경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지만 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데이타가 너무 부족해요. 캘빈을 공부할 ㄸㅒ 나름 대로 열심히 이유를 대면서 알마니안 학파를 공격하더군요. 그러나 똑 같은 논리로 뒤집어 보면 캘빈도 꼭 같이 공격을 받죠?
예를 들어서 아래서 논란이 되었던 동정녀 탄생. 사실이라고 우기면 얼마든지 우길 수 있고 아니라고 혹은 비유라고 우기면 얼마든지 우길 수 있죠.
그러나 고민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을 때 믿음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아요. 결론은 데이타를 가지고 맞나 틀리나 보다 하나님께서 무슨 의도로 그렇게 하셨나 하시는 것 같아요.
동정녀 탄생? 증거가 없습니다. 굳이 증거라고 내세우는 것은 성경 어느 구절 어느 구절 ㄸㅒ문이라고. 구약에 명시되어있다고. 꼭 같은 구절을 거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리 재보고 저리 재 보는 와중에 결론은 하나님 뜻 밖에 없더군요.
욥이 선합니까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맘이다' 한 마디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죠. "내가 천지를 창조할 때 너가 있었느냐?" 하실 때 무한한 하나님 앞에 피조물임을 깨닫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방향을 못잡고 글을 쓴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기적을 믿건 안 믿건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주님께 더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성경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지만 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데이타가 너무 부족해요. 캘빈을 공부할 ㄸㅒ 나름 대로 열심히 이유를 대면서 알마니안 학파를 공격하더군요. 그러나 똑 같은 논리로 뒤집어 보면 캘빈도 꼭 같이 공격을 받죠?
예를 들어서 아래서 논란이 되었던 동정녀 탄생. 사실이라고 우기면 얼마든지 우길 수 있고 아니라고 혹은 비유라고 우기면 얼마든지 우길 수 있죠.
그러나 고민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을 때 믿음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아요. 결론은 데이타를 가지고 맞나 틀리나 보다 하나님께서 무슨 의도로 그렇게 하셨나 하시는 것 같아요.
동정녀 탄생? 증거가 없습니다. 굳이 증거라고 내세우는 것은 성경 어느 구절 어느 구절 ㄸㅒ문이라고. 구약에 명시되어있다고. 꼭 같은 구절을 거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리 재보고 저리 재 보는 와중에 결론은 하나님 뜻 밖에 없더군요.
욥이 선합니까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맘이다' 한 마디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죠. "내가 천지를 창조할 때 너가 있었느냐?" 하실 때 무한한 하나님 앞에 피조물임을 깨닫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방향을 못잡고 글을 쓴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기적을 믿건 안 믿건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주님께 더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2008.07.15 17:10:14
"내가 천지를 창조할 때 너가 있었느냐?" 하실 때 무한한 하나님 앞에 피조물임을 깨닫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제가 찾던 욥기의 해답을 이야기하신 것 같기도 하구요...
신앙의 첫 출발은 절대자 앞에서 내가 한갖 피조물일 뿐임을 뼛속깊이 깨닫는 것부터가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그 분의 은혜를 입고 그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
폴 님, 감사합니다...
정말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제가 찾던 욥기의 해답을 이야기하신 것 같기도 하구요...
신앙의 첫 출발은 절대자 앞에서 내가 한갖 피조물일 뿐임을 뼛속깊이 깨닫는 것부터가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그 분의 은혜를 입고 그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
폴 님, 감사합니다...
2008.07.16 16:18:39
저는 성서의 기적에 대해서 "반상식적인 믿음"이 아닌, "초상식적 믿음"을 가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기적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지니깐요... 자기확신으로만 똘똘 뭉친 자폐증적 소통불능의 신앙인이 되는 것,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마저도 불확실한 지적인 종교 회의론자가 되는 것, 둘 다 신앙의 "핵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2008.07.16 18:05:49
이미 여러번 얘기가 나왔던 주제네요. 예전에 데미님이란 분과 제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참조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 쟁토방에 있을 겁니다. "판넨베르크 교수와 진화론, 그리고 인문학적 성경읽기"라는 제목인데...그곳에 있는 댓글들의 맥락을 살펴보시면 제기하신 질문에 필요한 사유가 꽤나 분명히 나올 것 같습니다.
2008.07.23 17:40:20
첫날처럼의 초상식적 믿음이라는 말이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유한이 무한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무한이 다 이해되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무한이 아니니깐요 반면에 저는 무한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자리로 오심을 통해 우리와 그분이 관계를 맺는다는 말씀도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초상식적인 기적들도 그분과의 관계속에서 그분이 자신을 보이심으로 받아드리게 되고 이해 할수 있는 여지들이 열리게 되니깐요. 그분에 대한 인정 그러나 그것이 사귐을 통해 얻어지는 것일 때 우리는 진정으로 그분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8.07.24 12:16:07
기다리는 나무 님 말씀 깊이 와닿네요... 무한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자리로 오심을 통해 우리와 그 분이 관계를 맺는다는 말씀이 너무 인상깊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08.08.02 07:13:59
믿음을 갖게 되는 과정이 생략된채 지금 당장 확신있는 믿음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는데서.. 문제가 발생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 자체가 일단 명확하지 않구요.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기적이고 초월적인 영역인가? 이것부터 따지고 봐야 할 것 입니다. 과학으로 성경을 증명하는 것은 일단 불가능 하지요. 실험하여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만물이 살아 숨쉬는 이것 지구가 한치의 오차없이 공전과 자전을 하고 이 지구상에서 아무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속도 때문에 멀미하거나 우주밖으로 튕겨져 나간 일이 없다는 사실.. 뭐 이런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일 수 있겠지요.. 너무 큰 기적을 당연히 받아들여서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생각없이 지나가는 일상일 수 도 있지만요.. 병고치고 죽은자가 살아나고 천지창조하시고 물을 포도주로 이런것만 기적일까요? 물론 지금도 일어나는 초월적 영역의 일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지금도 이런 이런 기적들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하면... 글쎄요.. 어떻게 반응하실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경험하고 보고 들은 것 만 이야기해도...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이 지금도 실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것 같네요..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 내 세포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모르고 있는 영역에서 조차 창조주의 의도하시는 대로 자기의 기능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으니.. 내가 알고 있는 영역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듯...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의 영역, 초월적 영역을 우리의 이성과 사고로 제한하는 것도 우물안개구리가 아닐까요... 믿음을 갖게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다는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그리고 계시의 점진을 통해 또한 계시의 완성을 통해 그 세계를 실제로 경험할 날이 우리 앞에 펼쳐지겠죠.. 주저리 주저리 포인트 없는 말들을 늘어놨네요 ㅋ
저별과 달님. 지난번에는 제가 무례하게 글을 올렸지만 팬이 되었어요. 빨강색이건, 파랑색이건, 핑크색(?)이건 자신만의 색깔을 낸다는 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 것이 무슨 색이건 한 색깔만 있스면 무슨 재미겠어요? 아름다운 색깔의 다비아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