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로마 카톨릭이 예수를 서양귀신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는지에 관한 담론을 원합니다. ---------------------------------------
개신교도들에 있어, 아니 큰 틀에서 보면 기독교계 전체에 있어서 카톨릭(혹은 이에 동방 정교회를 포함)과 개신교 이 양자의 정체성 구분에 관한 문제는 하나의 명제로 다뤄져야만 할 사안임에 충분할 것이고, 혹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사안은 유대교까지도 상당부분 연관이 있다. 라고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혁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분 이전의 것인 유대교까지는 우리와의 관계성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하고, 우선은 본 사안을 주님 이후 크게 두 종류로 현존하고 있는 교회 형태인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회의 양자 관계로 돌려도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명제를 제시하는 바의 배경설명>
이러한 명제가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가에 관한 배경설명으로는, 지금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성당을 놓고 도대체 어디에 가야 할 것인지에 관해 고심을 하고 있다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성당으로 이미 옮겼거나 옮기려고 고려중이며 혹은 이전에 그게 어떠한 종류건 기독교도가 아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 양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고, 간혹은 개신교도인 우리들에게 그 차이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실정이다. 물론 그이들 나름대로 어는 정도의 판단은 얻은 상태에서 한편은 우리를 떠보려는 의도일 수 있겠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한편, 아예 어떤 경우는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을 향해서 이 문제에 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는 그러한 사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외적인 모습을 들어 일반론적으로만 판별한다면, 카톨릭이나 정교회 미사는 아직도 경건의 전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개신교 예배는 요즘 들어서 가뜩이나 속세적인 모습으로 변질돼서, 그러한 분위기의 예배론적인 효율성이나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시각에서는 다분히 경박스러운 쪽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토록 중요한 사안인데도 개신교계에서는 도대체 여기에 공식적인 답안을 내려 하지 않는 형편이고, 단지 종교개혁 주일에 설교자의 주관에 따라 카톨릭의 오류 등에 관해 간략한 견해를 언급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는 정도이다.이 명제는 많은 신학적인 논란이 따를 문제이고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기가 어려운 사안일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우리 개신교도들은 이 문제에 관한 어떠한 식이든 그에 관해 답을 공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 명제에 관한 답을 얻기 위해 적지 않게 고심해 온바 있다.
수년전에는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조카(男)가 성당으로 옮겼다. 그 조카는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며 성장했으며, 우리 집안에는 성당 주변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한 그 아이가 자랄 때 간혹은 내가 신앙에 관해 말해줬던 그러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하나이다.언젠가 내가 그에게 "왜 성당에를 가느냐? 그 곳은 잘못된 곳인데..." 라고 질문하자, 그 때 조카 대답은 한마다로 "에이--- 교회는 못쓰겠어..."라는 공허한 일침이었다. 아마도 그가 말하고픈 내용은 "요즘 교회의 모든 것이 너무 속세적이다" 라는 묵언의 답변이 생략되어 있는 듯했다.
=== 다음 사항은 제가 알고 있는 혹은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카톨릭의 오류들에 관한 대강의 내용들입니다. ==
* 이 내용의 대부분은 시카고 신학대학원의 클라이드 맨슈랙이 저술하고 총신대에서 번역한 <세계교회사> 책에서 터득한 지식들을 기초로한 것이고,(단, 저는 신학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다 절간과의 비교 등 일부는 순전히 제 느낌과 주관에 따라 기술한 것임을 밝힙니다.
1. 성모 마리아 및 기타의 성상 숭배와 각종 성화로 치장된 카톨릭 교회(성당)
O 성모 마리아 상을 숭배하고 그에 기도하며, 성당 건축물들은 각종 성상들과 성화들로 치장되어 있으니 이는 절간에 놓여있는 각양각색의 우상들 및 절간에 그려진 그림이나 단청들과 동질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O 또한, 성당에 그려진 성화의 회화적 기법들은 대부분 인물상을 통통하게 살진 손매, 그러한 모습의 얼굴과 몸매 등으로 표현되어 있어 유심히 관찰해 보면 특히나 절간의 그것들과 비슷한 기법으로 그려진 것으로, 이는 큰 틀에서 사고하면 인간이 본래 추구하는 바(즉, 어떠한 모습도 만들지 말라고 한 종교적 계명을 도외시 했을 때의 인간 본래의 욕망) 소위 “복”을 받은 (혹은 받기에 적당한) 인물 상으로, 이는 인간의 상상속의 본래적인 우상들의 모습 그 자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물론 간혹 ‘십자가에 달린 예수 모습’ 그림 등에서 예외에 해당하는 작품이 존재하기도 한다.)
2. 성당, 정교회에서는 미사시에 향, 성수, 각종 성구 등을 사용하며, 이는 세상의 모든 일반론적인 종교들과 유사한 예배행태와 동류의 것이다.
3. 교황을 실질적으로는 예수와 같은 반열(즉 예수의 후계자 위상)에 두고 있으며, 단지 하나의 인격체일 뿐인 사람에 대하여서 성모, 성인, 神父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하나의 카톨릭 신앙 선대인 소위 "성인"들에 대하여 추모하고 그에 예배한다.
4. 카톨릭에서도 두 손을 합장하기를 좋아하고 묵주 등을 사용하는바 이 역시 동양의 불교 행태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5. 카톨릭의 전례음악인 레퀴엠(즉 장례미사곡)은 그 내용이 산 사람들이 죽은자를 위하여 자비를 구함으로써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단계 상승하여 사후에 천국으로 들림받을 수 있다는 신앙적 바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내용의 것으로, 이는 불교에서 죽은 사람을 위하여 천도제니 혹은 49제니 그런 것을 거행하는 행태와 같다고 판단된다.
<기타사항>
스페인계가 전한 남미쪽의 (잘못된)카톨릭 유산의 모습의 한 예로, 그곳 일부 지역에서는 사설 종교의식에서 여러 가지 우상들(그 대부분이 악마상들)과 여러 종교의 상징물들 중에 십자가가 나란히 하고 있는, 참으로 참담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 이는 얼마 전 남미쪽 민생들이 생활상을 소개하는 TV프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로, 통상 이러한 모습을 지칭하는 종교학적인 용어로 “만신전”(萬神殿)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초기 로마 기독교도들이 당시의 사회 지도세력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게 된 이유의 하나가 바로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만신전에 올리는 신의 하나로 삼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은바 있습니다.
<부언 말씀>
예전에는, 과연 카톨릭에도 구원이 있을까, 혹은 만약에 그 반대 상황을 가정하면 그곳에 구원이 있다면 개신교회에는 구원이 인정 안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고심도 가져본 적이 있었지만, 이에 관한 문제는 믿을 만한 신앙선대가 저술한 책을 읽고 나서 카톨릭에도 역시 구원이 있다는 것으로 나름대로 확신이 가는 충분한 결론에 다다른 바가 있음을 부언하여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서양 귀신으로 전락시켰다"는 얘기는, 한마디로 이해하기 쉽도록 직언으로 표현하면, 중세 카톨릭 시대에 기독교를 원래의 예수 그대로의 모습 즉, 무형 - Unvisibe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가르침과 그를 실천하는데 몰두하기보다는 모든 걸 인본위적인 양상 즉, 인간의 오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모습으로 만들어 놔서(그 주안점은 神이라하더라도 어떻게든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결국은 기독교를 변질시켜버려 마치 불교, 힌두교, 유교 등 세속 종교의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전락시켰다)는 뜻을 종교 현상학 내지는 사회 현상학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최대한 피부에 와 닿도록 직설적으로 비판한 말입니다. 극히 한국의 토속적인 어법을 사용해서 개념을 표현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성모 마리아도 원래 로마 카톨릭이 당시 서양 사회에 만연하던 여신숭배 사상을 민중들의 요구에 못이겨 교회로 들여온 것이라고 하지요. 마치 불교에서 보이지 않아야 마땅한 인간들의 "관념상의 부처"를, 굳이 '바로 저것이야!' 라고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상을 깍거나 부어 많들어서 절간에 모셔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구약 말씀에서, 한편 생각으로는 인간 천연의 모습일 듯하기도 한 인간의 보편적인 종교심에서 발단되는 그러한 행위들(절대적이고 신적인 대상마저도 인간 오감의 대상의 하나로 만들어서 쉽게 프레젠테이션하여 해결하려 하는 시도)을 최고 강한 톤으로 질타하셨지요.
글 속의 "귀신"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세속 종교들의 숭배 대상(우리 쪽에서 평하면 온갖 잡신들)을 일괄하고 있습니다.
이를 굳이 학술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유일 신을) 세속 잡신들의 동류로 만들어버렸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음, 뭔가 '성상 논쟁'과 비슷한 느낌의 문제 제기라고 생각되는군요. 사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무형->유형으로의 상징들이 나타나게 된건 중세 이전이겠죠.(물론 말씀하셨듯, '상징'이 보다 더 '입맛'에 맞도록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시기가 중세 즈음이기도 하겠지만. 맞나요? 중세사는 아는 바가 없네요;)
그런데 사실 좀 그렇습니다. 예전에 학교에 신부님을 모셔서 가톨릭(요게 표준어랍니다. 근데 저도 '카'가 익숙하긴 하네요) 전통에 대한 질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말씀하셨던 것이 가톨릭의 공식적 차원과 비공식적, 그러니까 대중적 차원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죠. 대중적 차원에서의 종교 혼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현상 자체는 인정하지만, 공식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공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죠.(사실 흔히 가톨릭을 마리아 숭배나, 행위구원론으로 보는 오해들이 이런 혼동에서 온다. 뭐 이런 식의 대답으로 기억합니다.) 이 논의의 문제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그리스도교 전통을 무형 지향의 유일신론으로 보는 것도 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맞나? 싶은 경우들도 많고, 얼핏 떠오르는 이콘과 같은 상징물들을 어떻게 봐야하는가라는 문제도 있지않나 싶구요.(사실 여기서 명확히 단정할 문제였다면, 몇 백년동안이나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할 필요가 없었겠죠ㅡㅡ;;;) 좀 긴 호흡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역시 그 책에 보면 마리아 숭배사상 발생 경위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그 내용인즉 당시 그리이스 등 지중해 연안의 서양 문화가 부지기 수의 여신들(다이아나 등)을 숭배하는 사상이 만연하고 있었으며, 기독교라하더라도 대중들은 꼭 뭔가를 눈으로 보여줘야만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보고(사실 한편 생각하면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괜히 알아서 인간적인 술수를 동원한 것 같지요) 그걸 수용한 것이 바로 성상숭배 사상이 자리잡게 된 경위이고 또한 이러한 일들을 둘러싸고 옥신각신, 왈가왈부 하다가 결국은 동방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영원히 두갈래고 나뉘게 됐다는 것입니다.(다만 오래 전에 읽은(당시 3회 연속 숙독) 내용이라 만에 하나 기억에 약간 착오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참고로, 왓치만 니의 의견도 모든 기독교 형태 중 카톨릭이 가장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브레드린(형제회)파 신앙인이었을 것입니다.
'오류'라고 지적하신 가톨릭 전통들의 여러 모습들은, (물론 해석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종교 전통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모습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굳이 그런 것에 가치 판단을 해서 옳으니 그르니 할 이유가 있을까 싶네요. 미사 때 하는 여러 상징 행위들은 그 전통에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 '개신교'라는 관점(혹은 제 3의 관점)에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이건 종교학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게 아닌가싶기도 하고.) 전 별로 즐겨 쓰진 않는 레토릭이지만 본질적인 점에 대한 시도가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 부차적인 판단이라는 것이지요. 신앙과 종교 전통의 각기 다른 색깔이 아니겠습니까? 빨갛고 파란 색이 잘못된 것이 아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