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Articles 253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프가니스탄에 단기선교에 나섰다가
탈레반들에게 피랍된 샘물교회 신자 23명 중에서
살해당한 2명과 조기 석방된 2명을 제외하고
19명이 오늘(2007년 9월2일) 오전에 한국으로 돌아옴으로
이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비록 2명의 인명이 살해당했지만
나머지 분들이 무사히 귀환된 것만 하더라도
천만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돌아온 21명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가족들과 샘물교회 교우들이 견뎌야 했을 고통도
우리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에 직접 관련된 분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
19명의 인질들이 한국 땅을 밟은 것으로
이 사태가 종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만약 이런 정도의 사태 해결로 모든 것을 묻어두고 지나가려고 한다면
한국교회는 훨씬 더 큰 시련을 맞을지도 모른다.
한국사회가 이번 사태에 보인 반응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네티즌들은 이번 사태에 직접 연루된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서 온갖 비판과 냉소를 넘어서 저주까지 퍼부었다.
물론 네티즌들의 반응이 한국사회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지만,
그리고 황우석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네티즌들의 반응이라는 게
경우에 따라서 비이성적인 전체주의적 현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교회를 향한 그들의 공격은
한국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반(反)기독교적 정서를 보여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안티-기독교 사이트를 중심으로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교회 안에 광신자들이 있듯이
교회 밖에도 반기독교적 광신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들이 활동하게 된 빌미를
우리가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와 교회 대표자들이 보인 행태는
반기독교 운동이 자라게 된 토양이다.
툭 하면 서울시청에서 정치적인 시위를 벌이고,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서 삭발하고,
반공주의를 설교하고,
중도에도 못 미치는 현 정부를 친북좌파로 몰아세우는 등,
우리는 입이 열 개가 있어도 할 말은 없다.
안티-기독교라는 종교적 탈레반은 우리 한국교회가 키운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터졌으니
그들이 보인 반지성적 행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한국교회의 공격적 선교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게 선교인가, 사회봉사인가 하는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선교와 봉사의 두 차원이 함께 하겠지만,
실제적으로는 선교의 차원이 중심이었을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의 슬로건인 ‘단기선교’가 그 모습을 띤 게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는 아주 미묘해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슬람 측에서는 기독교의 선교방식을 비판하지만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슬람 선교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게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그쪽에 살고 있는 다비안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유럽에서 이슬람교도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것 때문에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가 정당화한다는 말이 아니다.
종교의 본질에서 볼 때 자신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여기서도 방식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듯이
일방통행의 방식으로 행해지는 그런 전도와 선교에 동의하는 기독교인은,
최소한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이들 중에서 거의 없을 것이다.
어쨌든지 현재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면에서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한국교회의 갱신, 개혁을 견인해낼 수 있는가?
교회 밖으로 나가서 안티-기독교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가?
아니면 교회라는 제도에 머물면서 자정의 목소리를 높여야하는가?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가?
한국교회를 허무는 방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행위는 참으로 경솔한 일이다.
한국교회는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이다.
우리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현재 그 모습의 한국교회를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교회를 우리 신앙의 모태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이 더 중요하다.
오늘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서 확연하게 드러난 한국교회의 위기를
솔직하게 진단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번 사태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문제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다비아가 너무 신중하게 나오는 탓에
자기검열을 받았다고 하는 분들도
오늘은 그런 장치를 치워버리시라.
위의 발제에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다.
자유의 영이 여러분을 이끌어주시기를....
난상토의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특별한 제한 규정은 없다.
2. 이번 사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올려도 된다.
3. 다른 사람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올려도 된다.
4. 상대를 지정해서 질문해도 좋다.
5. 여러 사람이 글을 올리다 보면 시차에 따라서 대글 순서나 흐름이 허물어질 텐데,
그것에 상관하지 말 것.
6. 다른 사이트에서 퍼오지는 말 것. 부분적인 인용은 가함.
7. 가능한대로 설교 조로 나가지는 말 것.
8. 인신공격은 삼갈 것.
9. 토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 공지한대로 3시간을 채우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2시간으로 마칠 수도 있음.
10. 해외에 계신 분들은 마감 시간이 지난 후에도 참가할 수 있지만,
답 글을 보장하지는 못함.
참고- 새로 올라온 글을 읽기 위해서는 화면 위의 그림 중에서
소용돌이치는 화살표(새로 고침표시)를 클릭하시든지
다른 꼭지로 옮겼다가 새로 들어와야 합니다.
자, 가자!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단기선교에 나섰다가
탈레반들에게 피랍된 샘물교회 신자 23명 중에서
살해당한 2명과 조기 석방된 2명을 제외하고
19명이 오늘(2007년 9월2일) 오전에 한국으로 돌아옴으로
이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비록 2명의 인명이 살해당했지만
나머지 분들이 무사히 귀환된 것만 하더라도
천만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돌아온 21명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가족들과 샘물교회 교우들이 견뎌야 했을 고통도
우리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에 직접 관련된 분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
19명의 인질들이 한국 땅을 밟은 것으로
이 사태가 종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만약 이런 정도의 사태 해결로 모든 것을 묻어두고 지나가려고 한다면
한국교회는 훨씬 더 큰 시련을 맞을지도 모른다.
한국사회가 이번 사태에 보인 반응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네티즌들은 이번 사태에 직접 연루된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서 온갖 비판과 냉소를 넘어서 저주까지 퍼부었다.
물론 네티즌들의 반응이 한국사회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지만,
그리고 황우석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네티즌들의 반응이라는 게
경우에 따라서 비이성적인 전체주의적 현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교회를 향한 그들의 공격은
한국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반(反)기독교적 정서를 보여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안티-기독교 사이트를 중심으로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교회 안에 광신자들이 있듯이
교회 밖에도 반기독교적 광신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들이 활동하게 된 빌미를
우리가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와 교회 대표자들이 보인 행태는
반기독교 운동이 자라게 된 토양이다.
툭 하면 서울시청에서 정치적인 시위를 벌이고,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서 삭발하고,
반공주의를 설교하고,
중도에도 못 미치는 현 정부를 친북좌파로 몰아세우는 등,
우리는 입이 열 개가 있어도 할 말은 없다.
안티-기독교라는 종교적 탈레반은 우리 한국교회가 키운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터졌으니
그들이 보인 반지성적 행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한국교회의 공격적 선교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게 선교인가, 사회봉사인가 하는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선교와 봉사의 두 차원이 함께 하겠지만,
실제적으로는 선교의 차원이 중심이었을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의 슬로건인 ‘단기선교’가 그 모습을 띤 게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는 아주 미묘해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슬람 측에서는 기독교의 선교방식을 비판하지만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슬람 선교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게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그쪽에 살고 있는 다비안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유럽에서 이슬람교도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것 때문에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가 정당화한다는 말이 아니다.
종교의 본질에서 볼 때 자신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여기서도 방식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듯이
일방통행의 방식으로 행해지는 그런 전도와 선교에 동의하는 기독교인은,
최소한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이들 중에서 거의 없을 것이다.
어쨌든지 현재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면에서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한국교회의 갱신, 개혁을 견인해낼 수 있는가?
교회 밖으로 나가서 안티-기독교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가?
아니면 교회라는 제도에 머물면서 자정의 목소리를 높여야하는가?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가?
한국교회를 허무는 방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행위는 참으로 경솔한 일이다.
한국교회는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이다.
우리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현재 그 모습의 한국교회를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교회를 우리 신앙의 모태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이 더 중요하다.
오늘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서 확연하게 드러난 한국교회의 위기를
솔직하게 진단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번 사태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문제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다비아가 너무 신중하게 나오는 탓에
자기검열을 받았다고 하는 분들도
오늘은 그런 장치를 치워버리시라.
위의 발제에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다.
자유의 영이 여러분을 이끌어주시기를....
난상토의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특별한 제한 규정은 없다.
2. 이번 사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올려도 된다.
3. 다른 사람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올려도 된다.
4. 상대를 지정해서 질문해도 좋다.
5. 여러 사람이 글을 올리다 보면 시차에 따라서 대글 순서나 흐름이 허물어질 텐데,
그것에 상관하지 말 것.
6. 다른 사이트에서 퍼오지는 말 것. 부분적인 인용은 가함.
7. 가능한대로 설교 조로 나가지는 말 것.
8. 인신공격은 삼갈 것.
9. 토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 공지한대로 3시간을 채우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2시간으로 마칠 수도 있음.
10. 해외에 계신 분들은 마감 시간이 지난 후에도 참가할 수 있지만,
답 글을 보장하지는 못함.
참고- 새로 올라온 글을 읽기 위해서는 화면 위의 그림 중에서
소용돌이치는 화살표(새로 고침표시)를 클릭하시든지
다른 꼭지로 옮겼다가 새로 들어와야 합니다.
자, 가자! 앞으로!
2007.09.03 00:09:17
유럽에 이슬람사원 적잖이 있습니다.
온건이슬람국가(터키,이집트,모로코,튀니지등)에서도 교회당을
볼 수 있습니다. 지하교회 그런거말고 진짜교회당여..
제가 런던에 있었을때 Flat mate가 옥스포드대학생이면서 독실한무슬림 이었는데 포교라고
말하기엔 그렇지만
친해지니까 한번 사원에 가보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물어와
'별로..'라고 대답한후에는 그 친구가 더이상 별말 없었던 기억이있구여
이태원의 이슬람사원의 이맘(한국인)의 말에 의하며 별도의 포교활동은 안하지만
오시는분들은 친절히 안내하고 인도한다고 하였습니다. (몇년전뉴스보도에서..)
온건이슬람국가(터키,이집트,모로코,튀니지등)에서도 교회당을
볼 수 있습니다. 지하교회 그런거말고 진짜교회당여..
제가 런던에 있었을때 Flat mate가 옥스포드대학생이면서 독실한무슬림 이었는데 포교라고
말하기엔 그렇지만
친해지니까 한번 사원에 가보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물어와
'별로..'라고 대답한후에는 그 친구가 더이상 별말 없었던 기억이있구여
이태원의 이슬람사원의 이맘(한국인)의 말에 의하며 별도의 포교활동은 안하지만
오시는분들은 친절히 안내하고 인도한다고 하였습니다. (몇년전뉴스보도에서..)
2007.09.03 00:09:48
이 박사님의 말씀에 동의하면서,
종교의 입장에서도 정치를 볼 때 똑같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학이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바울 사도가 그렇게 로마로 가고자 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가 한 몫 작용했을 거구요.
아시겠지만 이러한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재의 진보적인 종교계이든 보수적인 종교계이든 어떻게든 종교적인 목적에서 정치를 이용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이 비치니까요. 이는 기독교의 입장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겠지요.
여기서 질문 하나. 종교와 정치 가운데에서...이슬람은 어느 쪽에 무게가 더 실립니까?
물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역사적인 시각에서 판단해 볼 때 말입니다.
종교의 무게가 더 무거운걸까요? 정치의 무게가 더 무거운 걸까요?
종교의 입장에서도 정치를 볼 때 똑같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학이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바울 사도가 그렇게 로마로 가고자 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가 한 몫 작용했을 거구요.
아시겠지만 이러한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재의 진보적인 종교계이든 보수적인 종교계이든 어떻게든 종교적인 목적에서 정치를 이용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이 비치니까요. 이는 기독교의 입장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겠지요.
여기서 질문 하나. 종교와 정치 가운데에서...이슬람은 어느 쪽에 무게가 더 실립니까?
물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역사적인 시각에서 판단해 볼 때 말입니다.
종교의 무게가 더 무거운걸까요? 정치의 무게가 더 무거운 걸까요?
2007.09.03 00:10:04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 뒤라서 여기 이야기들이 조금 아쉽네요...
특히 국내 개신교회 선교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오히려 언론매체를 포함해서 비신자들이 더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이길용 박사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신앙의 차원으로만 접근하기엔 너무도 한계가 크니까요..
아무튼 한국교회가 힘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보통 큰 힘을 가져야(대형교회들이 되어야) 크게 일을 할 수 있다고들 이야기하는데, 힘이 커지니까 세속적인 욕망을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선교냐, 봉사냐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죠. 교회의 힘을 나타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드러내놓고 싶은 교회의 힘에 치인 사람들이 지금 한마디씩 내뱉는 것 같아요. 한마디씩 나올 때마다 상승효과도 더 커지는 것 같고...
미자립교회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런 교회들 돕는 것은 생색이 크게 안납니다. 이왕이면 세계선교...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같은 생색 내기 좋은 곳(?)으로 몰리는 것 같습니다. 인터콥 같은 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SF소설 말이죠...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무슨 평양대부흥운동100주년이니 하는 이런 말들이 쏙 들어갔습니다. 일반 교우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 말들이 난무하더니 조용해졌네요... 사실 올 해 평양대부흥운동(?)100주년기념대회니 뭐니 하면서 정말 많은 예산이 쉽게 지출되었습니다. 각성이나 회개보다도 오직 부흥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치뤘던 그 많은 대회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허망합니다. 그 예산이면 정말 여러가지로 도움을 줄 수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을텐데... 이런 점에서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하나님의 매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픕니다...
특히 국내 개신교회 선교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오히려 언론매체를 포함해서 비신자들이 더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이길용 박사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신앙의 차원으로만 접근하기엔 너무도 한계가 크니까요..
아무튼 한국교회가 힘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보통 큰 힘을 가져야(대형교회들이 되어야) 크게 일을 할 수 있다고들 이야기하는데, 힘이 커지니까 세속적인 욕망을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선교냐, 봉사냐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죠. 교회의 힘을 나타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드러내놓고 싶은 교회의 힘에 치인 사람들이 지금 한마디씩 내뱉는 것 같아요. 한마디씩 나올 때마다 상승효과도 더 커지는 것 같고...
미자립교회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런 교회들 돕는 것은 생색이 크게 안납니다. 이왕이면 세계선교...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같은 생색 내기 좋은 곳(?)으로 몰리는 것 같습니다. 인터콥 같은 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SF소설 말이죠...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무슨 평양대부흥운동100주년이니 하는 이런 말들이 쏙 들어갔습니다. 일반 교우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 말들이 난무하더니 조용해졌네요... 사실 올 해 평양대부흥운동(?)100주년기념대회니 뭐니 하면서 정말 많은 예산이 쉽게 지출되었습니다. 각성이나 회개보다도 오직 부흥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치뤘던 그 많은 대회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허망합니다. 그 예산이면 정말 여러가지로 도움을 줄 수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을텐데... 이런 점에서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하나님의 매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픕니다...
2007.09.03 00:15:43
늦게 왔습니다.
우선 정 목사님이 언급하신 '이슬람의 공격적 선교'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타종교인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물어보면 반드시 가르쳐 주어라'고 되어 있답니다.
저는 위의 댓글들을 보면서 사실 굉장히 놀랐습니다.
다비아 대중들은 이렇게 정보에 어두운가? 하고.
YouTube를 타고 한국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돌아다닌
이번 선교단과 다른 아프칸 단기 선교단들이 행한
피가 끓게 만드는 동영상(모슬렘 편에서 볼 때)을 보신 분이 없다니.
제 의견은 제 칼럼에 썼습니다.
우선 정 목사님이 언급하신 '이슬람의 공격적 선교'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타종교인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물어보면 반드시 가르쳐 주어라'고 되어 있답니다.
저는 위의 댓글들을 보면서 사실 굉장히 놀랐습니다.
다비아 대중들은 이렇게 정보에 어두운가? 하고.
YouTube를 타고 한국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돌아다닌
이번 선교단과 다른 아프칸 단기 선교단들이 행한
피가 끓게 만드는 동영상(모슬렘 편에서 볼 때)을 보신 분이 없다니.
제 의견은 제 칼럼에 썼습니다.
2007.09.03 00:18:04
앗~시간이 벌써..내일을 위해 잠자리로~^^
'이번 기회에 해외 선교와 국내선교,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이 있기를 그래서 한국교회에
갱신과 참개혁으로 희망이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이번 기회에 해외 선교와 국내선교,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이 있기를 그래서 한국교회에
갱신과 참개혁으로 희망이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2007.09.03 00:19:14
저의 생각으론, 이슬람은 종교의 무게와 정치의 무게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를 따질 수 없어 보입니다.
종교적 행위가 곧 정치적 행위이고 그들의 정치적 행위가 곧 종교적 행위이로 보여지거든요.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행보 자체가 곧 정교 일체 아니었습니까?
현실 세계에서 이슬람의 비극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국부 케말 파샤의 개혁에 의해 정교분리를 국시로 하고 있는 터키도 참 힘겹게 정교분리정책을 지켜나가고 있는데, 최근의 상황은 미래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네요.
종교적 행위가 곧 정치적 행위이고 그들의 정치적 행위가 곧 종교적 행위이로 보여지거든요.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행보 자체가 곧 정교 일체 아니었습니까?
현실 세계에서 이슬람의 비극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국부 케말 파샤의 개혁에 의해 정교분리를 국시로 하고 있는 터키도 참 힘겹게 정교분리정책을 지켜나가고 있는데, 최근의 상황은 미래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네요.
2007.09.03 00:20:54
모스크를 세우는 것은 전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집회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지금 유럽에서는 모슬렘이 늘어나면서 대형 모스크를 짓는 것을 못짓게 하느라고 난리들 입니다.
종교적 이유보다는 집값 떨어진다고.
이맘이 그러더군요. 물어 보지 않는데 먼저 소개하지 않는다구.
설마 거짓말이야 했을라구요.
지금 유럽에서는 모슬렘이 늘어나면서 대형 모스크를 짓는 것을 못짓게 하느라고 난리들 입니다.
종교적 이유보다는 집값 떨어진다고.
이맘이 그러더군요. 물어 보지 않는데 먼저 소개하지 않는다구.
설마 거짓말이야 했을라구요.
2007.09.03 00:41:59
현재 이슬람권 사람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말하는 新 십자군(반미감정 등)들의 일방적인 통행 때문에 무참히 질밟히고 학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문명은 아랍권 형제들에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친이스라엘 정책에 따른 팔레스타인의 대량학살 방관, 레바논 사태 침묵, 이라크 침략, 아프카니스탄 침략 등 많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인과응보에 따라 이슬람권 형제들은 기독교 문명에 대해 거부와 반감을 가질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나쁜 탈레반 폭정 밑에 있었도, 그들은 민족적 감정과 그들만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들을 미개한 원시 부족으로 보았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전쟁중의 아프카니 스탄 사람들을 감정을 무시한채, 직접적인 선교을 하지 않고 봉사로 온다고 할지라도 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프칸을 현재 학대하고 있는 군대들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또다른 점령군으로 보일 밖에요.
우리가 보기에는 편협한 시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고통을 당하다는 입장에서는 똑같이 보입니다.
아무리 봉사로 온다고 해도, 그 역시 선교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혐오하는 기독교 문명)
대량으로 학살해 놓고서, 다시 치료해주겠다는 우리 기독문명의 이중성에 분노와 경멸의 눈으로 보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거기에 기독교 복음이라니...
이스마엘 사람들도 어차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을 우리식으로 바꾸고 개조한다고 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가 치유가 될까요?
정말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한다면 먼저 다가가 사과를 해야 합니다.
우리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의료적 혜태, 복지시설 확충 등 일까요?
지금 아프칸에는 선교, 봉사가 우선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을 일으켜 아프칸 민중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新 십자군(반미감정 등)들의 일방적인 통행 때문에 무참히 질밟히고 학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문명은 아랍권 형제들에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친이스라엘 정책에 따른 팔레스타인의 대량학살 방관, 레바논 사태 침묵, 이라크 침략, 아프카니스탄 침략 등 많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인과응보에 따라 이슬람권 형제들은 기독교 문명에 대해 거부와 반감을 가질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나쁜 탈레반 폭정 밑에 있었도, 그들은 민족적 감정과 그들만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들을 미개한 원시 부족으로 보았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전쟁중의 아프카니 스탄 사람들을 감정을 무시한채, 직접적인 선교을 하지 않고 봉사로 온다고 할지라도 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프칸을 현재 학대하고 있는 군대들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또다른 점령군으로 보일 밖에요.
우리가 보기에는 편협한 시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고통을 당하다는 입장에서는 똑같이 보입니다.
아무리 봉사로 온다고 해도, 그 역시 선교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혐오하는 기독교 문명)
대량으로 학살해 놓고서, 다시 치료해주겠다는 우리 기독문명의 이중성에 분노와 경멸의 눈으로 보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거기에 기독교 복음이라니...
이스마엘 사람들도 어차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을 우리식으로 바꾸고 개조한다고 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가 치유가 될까요?
정말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한다면 먼저 다가가 사과를 해야 합니다.
우리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의료적 혜태, 복지시설 확충 등 일까요?
지금 아프칸에는 선교, 봉사가 우선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을 일으켜 아프칸 민중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2007.09.03 02:40:31
이런 탁상공론을 마음 아파하실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21명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용서하시는 주님의 은혜이지만
공개적으로 전도도 하지 못하는 그 어둠의 땅에서
그들을 사랑하려고 몸부림치며 살아온 선교사님들의 피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끄러운 이곳에도 주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기를 기도하며 이만 물러갑니다.
21명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용서하시는 주님의 은혜이지만
공개적으로 전도도 하지 못하는 그 어둠의 땅에서
그들을 사랑하려고 몸부림치며 살아온 선교사님들의 피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끄러운 이곳에도 주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기를 기도하며 이만 물러갑니다.
2007.09.03 10:20:52
이번 난상토론을 너무도 기대하여 어제 처음으로 댓글을 달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다 아내님의 지엄하신 명령에 눈물을 머금고 로그아웃하고 지금에야 들어왔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토론에 참여했고 많은 좋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토론이라는 것이 원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분들은 토론에 참여하는 토론자의 자세보다 자신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탁상공론이니 참과 거짓이니 등의 말을 하면서 말이지요.
토론의 기본자세는 열린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과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고 수준 낮은 행동으로 치부하고 위에 군림하려들지 말고 말입니다.
내가 옳으면 상대방도 옳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기독교 신앙과 성경이 절대 진리이기에 그 이외의 것은 거짓일까요?
타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것일까요?
석가탄신일 성당에서는 [아기부처님 탄신을 축하드립니다!]라는 플랭카드를 내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개신교인들은 카톨릭이 저래서 이단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합니다.
신앙이 약한 저나 일반인들이 보기에 좋은 이런 일들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인가요?
참 많이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참 많은 분들이 토론에 참여했고 많은 좋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토론이라는 것이 원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분들은 토론에 참여하는 토론자의 자세보다 자신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탁상공론이니 참과 거짓이니 등의 말을 하면서 말이지요.
토론의 기본자세는 열린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과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고 수준 낮은 행동으로 치부하고 위에 군림하려들지 말고 말입니다.
내가 옳으면 상대방도 옳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기독교 신앙과 성경이 절대 진리이기에 그 이외의 것은 거짓일까요?
타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것일까요?
석가탄신일 성당에서는 [아기부처님 탄신을 축하드립니다!]라는 플랭카드를 내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개신교인들은 카톨릭이 저래서 이단소리를 듣는다는 말을 합니다.
신앙이 약한 저나 일반인들이 보기에 좋은 이런 일들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인가요?
참 많이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2007.09.03 12:11:52
어제 잠이 와서 참석하지 못하고 정목사님 글만 읽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사실 목회현장에서 목사님을 협력하며 평생을 살아 오면서 보아온 목사님들의 내면을
저는 예리한 눈으로 지켜 보았던 한 사람 입니다.
이번 사태는 여러가지로 분석할수도 있지만 똘똘 뭉쳐서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한국교회 목사님 들은 자신의 야망 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야망도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 도 자신의 야망 인것 처럼 뒤죽박죽 상태 입니다.
왜?
한결같이 그렇게들 야망이 큰지...
도무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가 안 될 일들을 목사님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잔소리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인 목사님의 야망에 협조 해야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가장 쎄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선교 와 교회건축 입니다.
선교만 많이 하면 하나님뜻대로 가는 교회 라는 것 입니다.
그런 유행처럼 번지는 목사님 들 의 야망 그 최후 가 바로 이번 사건 입니다.
교회마다 현관에 붙혀놓고 자랑하는 게시판 광고는 바로
우리교회는 어디 , 어디 , 선교 하고 있다는 선교지 현장 사진 입니다.
선교만 많이 하면
지금여기에서 벌어지는 강도만난 사마리아 인 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것 처럼
교회는 그렇게 그렇게 확산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성도 들 역시 선교만 많이 하면 괜찮은 교회 라고 인정을 합니다.
한국교회 목사님 들은
자신의 야망 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탈레반 으로 부터 순교당한 두분에게 속죄 라도 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목회현장에서 목사님을 협력하며 평생을 살아 오면서 보아온 목사님들의 내면을
저는 예리한 눈으로 지켜 보았던 한 사람 입니다.
이번 사태는 여러가지로 분석할수도 있지만 똘똘 뭉쳐서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한국교회 목사님 들은 자신의 야망 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야망도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 도 자신의 야망 인것 처럼 뒤죽박죽 상태 입니다.
왜?
한결같이 그렇게들 야망이 큰지...
도무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가 안 될 일들을 목사님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잔소리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인 목사님의 야망에 협조 해야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가장 쎄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선교 와 교회건축 입니다.
선교만 많이 하면 하나님뜻대로 가는 교회 라는 것 입니다.
그런 유행처럼 번지는 목사님 들 의 야망 그 최후 가 바로 이번 사건 입니다.
교회마다 현관에 붙혀놓고 자랑하는 게시판 광고는 바로
우리교회는 어디 , 어디 , 선교 하고 있다는 선교지 현장 사진 입니다.
선교만 많이 하면
지금여기에서 벌어지는 강도만난 사마리아 인 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것 처럼
교회는 그렇게 그렇게 확산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성도 들 역시 선교만 많이 하면 괜찮은 교회 라고 인정을 합니다.
한국교회 목사님 들은
자신의 야망 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탈레반 으로 부터 순교당한 두분에게 속죄 라도 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007.09.03 12:17:54
논문을 위해 모교를 찾았습니다.
본관 현관 한 모퉁이에 있는 기도실을 잠시 들렸습니다.
추억이 아른거렸습니다.
도서관에 앉아 이제서야 들렸습니다.
어제 밤에 난상토론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의견을 개진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태 이후 많은 네가티브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공격적 선교,
배타적 선교,
박은조 목사님의 아프칸에서의 3,000명의 순교자,
2,000만불의 몸값,
구상권 청구,
이런 이야기들에 앞서 담장안(교도소)에 갇힌 한 형제가
제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지금 아프카니스탄에 23명의 선교 팀원들이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샘물 교회와 그 사역자들, 그리고 가족들, 특별히 잡혀 있는 이들에게 믿음의 담대함과 평안함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그들의 순교가 떠오름은 무엇 때문일까요.(중략)
이런 와중에 출국 자제 지역에 선교를 나가서 인질로 잡히게 되었으니 믿지 않는 그리고 믿음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죄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이 되며 성결교단의 100주년이 되는 이 해에, 그리고 수 많은 이들이 다시 부흥을 갈망하며 주께 부르짖는 이 때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시는 것일까요?” 주께서는 주의 종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행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기에 주 앞에 종용히 나아가 주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부흥이 있기 전에 순교의 피가 필요한 것일까요. 눈물이 납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선교를 나간 이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선교를 떠났을 것입니다. 저 또한 2000년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침공을 받았을 때 선교를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희는 미리 유서를 써 놓고 떠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들이 진정 우험한 지역인지 몰랐겠습니까. 아닙니다. 알고 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들은 담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으로 여길 것입니다.
기도를 하며 그들이 오히려 부러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오히려 그 자리에 함께 하길 바라는 저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비단 저의 마음뿐이겠습니까? 수 많은 이들이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을 것입니다. 부흥을 갈망하는 이 때에 ‘천국의 섬’이란 책을 통하여 주께서 ‘순교의 영성’을 심어 주심은 무엇 때문일까요.
모든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순교할지도 모르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심은 어찜입니까. 주님... 부활 이전에 십자가의 고통이 필요했듯이 이전에 없었던 그리고 이후에도 없을 큰 부흥을 한국에서 일으키시기 위해 먼저 십자가를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아버지··. 이 땅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 백성들이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옵소서. 이 땅에 기름 부으시고 고쳐 주옵소서. 회복시켜 주옵소서. 새롭게 하옵소서. 주께서 하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아버지께서만 영광 받으시고 이 땅이 온전히 하나 되어 주를 경배하며 주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곧 이 땅에 큰 핍박이 오리라 그런 후에 수많은 죽었던 생명들이 살아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에 큰 환란이 오리니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밀알이 죽어져야 살아나리라. 한국교회도 죽은 후에야 살아나리라 아멘. 주님. 아멘."
격한 감정으로 보낸 편지였습니다.
지나치게 정적인 편지임에도 분명합니다.
이 편지는 두 분이 피살 되기 전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읽고 저는 이 땅에 공격적 선교를 감행했던
토마스 선교사들과 많은 선교사들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슬람이 한국을 선교 대상지로 선정하고,
이슬람권의 노동자들을 한국에 보내면서
그들의 훈련된 종교 지도자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진주의 사랑의 집 방용문 선교사 외에
여러 현장에서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들의 선교 역시 공격적입니다.
선교가 공격적이라는 비판에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할 얘기가 많지만 여기쯤 끊겠습니다.
본관 현관 한 모퉁이에 있는 기도실을 잠시 들렸습니다.
추억이 아른거렸습니다.
도서관에 앉아 이제서야 들렸습니다.
어제 밤에 난상토론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의견을 개진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태 이후 많은 네가티브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공격적 선교,
배타적 선교,
박은조 목사님의 아프칸에서의 3,000명의 순교자,
2,000만불의 몸값,
구상권 청구,
이런 이야기들에 앞서 담장안(교도소)에 갇힌 한 형제가
제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지금 아프카니스탄에 23명의 선교 팀원들이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샘물 교회와 그 사역자들, 그리고 가족들, 특별히 잡혀 있는 이들에게 믿음의 담대함과 평안함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그들의 순교가 떠오름은 무엇 때문일까요.(중략)
이런 와중에 출국 자제 지역에 선교를 나가서 인질로 잡히게 되었으니 믿지 않는 그리고 믿음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죄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이 되며 성결교단의 100주년이 되는 이 해에, 그리고 수 많은 이들이 다시 부흥을 갈망하며 주께 부르짖는 이 때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시는 것일까요?” 주께서는 주의 종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행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기에 주 앞에 종용히 나아가 주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부흥이 있기 전에 순교의 피가 필요한 것일까요. 눈물이 납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선교를 나간 이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선교를 떠났을 것입니다. 저 또한 2000년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침공을 받았을 때 선교를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희는 미리 유서를 써 놓고 떠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들이 진정 우험한 지역인지 몰랐겠습니까. 아닙니다. 알고 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들은 담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으로 여길 것입니다.
기도를 하며 그들이 오히려 부러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오히려 그 자리에 함께 하길 바라는 저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비단 저의 마음뿐이겠습니까? 수 많은 이들이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을 것입니다. 부흥을 갈망하는 이 때에 ‘천국의 섬’이란 책을 통하여 주께서 ‘순교의 영성’을 심어 주심은 무엇 때문일까요.
모든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순교할지도 모르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심은 어찜입니까. 주님... 부활 이전에 십자가의 고통이 필요했듯이 이전에 없었던 그리고 이후에도 없을 큰 부흥을 한국에서 일으키시기 위해 먼저 십자가를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아버지··. 이 땅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 백성들이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옵소서. 이 땅에 기름 부으시고 고쳐 주옵소서. 회복시켜 주옵소서. 새롭게 하옵소서. 주께서 하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아버지께서만 영광 받으시고 이 땅이 온전히 하나 되어 주를 경배하며 주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곧 이 땅에 큰 핍박이 오리라 그런 후에 수많은 죽었던 생명들이 살아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에 큰 환란이 오리니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밀알이 죽어져야 살아나리라. 한국교회도 죽은 후에야 살아나리라 아멘. 주님. 아멘."
격한 감정으로 보낸 편지였습니다.
지나치게 정적인 편지임에도 분명합니다.
이 편지는 두 분이 피살 되기 전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읽고 저는 이 땅에 공격적 선교를 감행했던
토마스 선교사들과 많은 선교사들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슬람이 한국을 선교 대상지로 선정하고,
이슬람권의 노동자들을 한국에 보내면서
그들의 훈련된 종교 지도자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진주의 사랑의 집 방용문 선교사 외에
여러 현장에서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들의 선교 역시 공격적입니다.
선교가 공격적이라는 비판에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할 얘기가 많지만 여기쯤 끊겠습니다.
2007.09.03 13:17:04
바다지기님 부흥을 위한 순교라고요?
그리고 이번 사태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비난도 포함) 믿음이 부족한 증거가 될까요?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선교를 떠났고 담대하고 오히려 축복으로 여길 것이라는 글을 쓰셨는데 동영상으로 본 피랍인질들의 육성을 들어보면 바다지기님이 말씀하신 그것과는 거리가 있군요.
그렇다면 그분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걸까요?
바다지기님이 생각하시는 부흥은 사람들의 목숨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까?
공격적 선교에 대한 비평과 비판에 대해서 이슬람권도 그러고 있으니 대응할 가치를 못느낀다고 했습니까?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우리의 잘못이 상쇄가 되는것입니까?
참으로 편리한 논리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슬람권이 그런 공격적인 선교를 지향하더라도 그것의 해악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공격적 선교를 지양하고 올바른 길로 주님의 사역을 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바다지기님의 글을 읽으면 순교가 너무 수단적으로 쓰여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래서 제가 목사님들께 인본주의자라는 평을 받는지 몰라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어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순교를 원하실까요?
그리고 이번 사태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비난도 포함) 믿음이 부족한 증거가 될까요?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선교를 떠났고 담대하고 오히려 축복으로 여길 것이라는 글을 쓰셨는데 동영상으로 본 피랍인질들의 육성을 들어보면 바다지기님이 말씀하신 그것과는 거리가 있군요.
그렇다면 그분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걸까요?
바다지기님이 생각하시는 부흥은 사람들의 목숨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까?
공격적 선교에 대한 비평과 비판에 대해서 이슬람권도 그러고 있으니 대응할 가치를 못느낀다고 했습니까?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우리의 잘못이 상쇄가 되는것입니까?
참으로 편리한 논리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슬람권이 그런 공격적인 선교를 지향하더라도 그것의 해악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공격적 선교를 지양하고 올바른 길로 주님의 사역을 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바다지기님의 글을 읽으면 순교가 너무 수단적으로 쓰여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래서 제가 목사님들께 인본주의자라는 평을 받는지 몰라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어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순교를 원하실까요?
2007.09.03 13:26:49
소음공명님! 탁상공론이라는 말씀과 시끄러운 이곳에도라는 표현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토론의 시간은 끝났지만)
저도 분명히 그들이 무사히 살아 온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이곳에 토론하는 것은 한국 교회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려는 노력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 하고 있다고 봅니다.
토론의 장에 마치 찬물을 끼어는듯한 느낌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분이 상합니다.
(아직은 제가 신앙이 너무 낮아서)
그리고 이제는 19세기 제국주의시선으로 선과악으로 보는 모습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교사님의 피눈물이 있어지만, 선교라는 미명아래 무참히 살해된 선량한 사람들을 생긱은 해보셨는지요?
구차하게 지나간 선교의 역사를 따지는 않겠습니다.
남이 듣든 말든 나만의 소리내는 지하철에서의 불신지옥,예수천국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소음공해로 보입니다.
붉은 십자가를 높이 들고 길거리로 선교하시는 분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사찰에서 벌어지는 목 잘린 부처님 상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선교방식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절명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곳 다비아를 통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건전한 토론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이 발전을 한다면 이것 또한 성도의 교통이라고 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주님과 동행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분명히 그들이 무사히 살아 온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이곳에 토론하는 것은 한국 교회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려는 노력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 하고 있다고 봅니다.
토론의 장에 마치 찬물을 끼어는듯한 느낌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분이 상합니다.
(아직은 제가 신앙이 너무 낮아서)
그리고 이제는 19세기 제국주의시선으로 선과악으로 보는 모습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교사님의 피눈물이 있어지만, 선교라는 미명아래 무참히 살해된 선량한 사람들을 생긱은 해보셨는지요?
구차하게 지나간 선교의 역사를 따지는 않겠습니다.
남이 듣든 말든 나만의 소리내는 지하철에서의 불신지옥,예수천국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소음공해로 보입니다.
붉은 십자가를 높이 들고 길거리로 선교하시는 분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사찰에서 벌어지는 목 잘린 부처님 상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선교방식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절명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곳 다비아를 통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건전한 토론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이 발전을 한다면 이것 또한 성도의 교통이라고 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주님과 동행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007.09.03 13:53:55
첫날처럼 님의 말씀은 좀 과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은 생각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사지로 몰아넣었다?
정말 그렇다면 그들은 성직자는 커녕 인간적으로도 기본이 안된 사람이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은 생각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사지로 몰아넣었다?
정말 그렇다면 그들은 성직자는 커녕 인간적으로도 기본이 안된 사람이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7.09.03 14:16:25
이곳은 월요일이 국경일이라 조금 여유를 갖고끼어듭니다.
한 가지 질문이랄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열 명을 선교 전도 하기 위해서 백명, 천명 아니 그 이상 사람들을 복음에 마음 닫고 등돌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 가지 질문이랄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열 명을 선교 전도 하기 위해서 백명, 천명 아니 그 이상 사람들을 복음에 마음 닫고 등돌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07.09.03 18:47:38
정용섭 목사님 질문대로 무슬림들도 공격적인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지성수 목사님 말씀 대로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소극적인 방식일지 몰라도 무슬림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선교사들이 똑똑한 학생들을 자기 나라로 공부보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 지식인들을 육성했던것 처럼 아프리카 지역 같은 곳에서는 학생들을 경제적으로 부유한 무슬림 국가에서 유학보내서 무슬림 지식인으로 양성하는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금 말씀 드린 것은 그냥 몇가지 예에 불과하구요, 순수하게 무슬림 전파인지 혹은 과거의 서구 제국주의 처럼 다른 정치/경제적 속내가 있는 것인지 - 둘 다 이겠죠 - 모르겠지만 무슬림도 선교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무슬림의 전도활동을 선교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말콤 엑스의 전기나 그에 관한 영화를 보면 감옥에서 무슬림에 대해 소개를 받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흑인들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아주 활발히 합니다. 물론 말콤엑스의 활동을 순수한 이슬람 전도활동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하여간 무슬림이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전에 이라크 전쟁 시에 프랑스에서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것도 프랑스의 무슬림들을 의식해서라지요. 그리고 유럽에서는 무슬림의 정치적인 입장이 꽤 강화되고 있는 것 같구요. 여튼 종교적 차원이든 정치, 경제적 차원이든 그 동안 주변부에 있던 무슬림들이 조금씩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지성수 목사님 말씀 대로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소극적인 방식일지 몰라도 무슬림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선교사들이 똑똑한 학생들을 자기 나라로 공부보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 지식인들을 육성했던것 처럼 아프리카 지역 같은 곳에서는 학생들을 경제적으로 부유한 무슬림 국가에서 유학보내서 무슬림 지식인으로 양성하는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금 말씀 드린 것은 그냥 몇가지 예에 불과하구요, 순수하게 무슬림 전파인지 혹은 과거의 서구 제국주의 처럼 다른 정치/경제적 속내가 있는 것인지 - 둘 다 이겠죠 - 모르겠지만 무슬림도 선교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무슬림의 전도활동을 선교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말콤 엑스의 전기나 그에 관한 영화를 보면 감옥에서 무슬림에 대해 소개를 받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흑인들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아주 활발히 합니다. 물론 말콤엑스의 활동을 순수한 이슬람 전도활동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하여간 무슬림이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전에 이라크 전쟁 시에 프랑스에서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것도 프랑스의 무슬림들을 의식해서라지요. 그리고 유럽에서는 무슬림의 정치적인 입장이 꽤 강화되고 있는 것 같구요. 여튼 종교적 차원이든 정치, 경제적 차원이든 그 동안 주변부에 있던 무슬림들이 조금씩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2007.09.03 21:33:07
눈은 아프지만 위의 댓글들을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모두들 한국교회를 사랑해서 하는 자성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이 사태를 이해하는 방식의 다양함에서 이미 풍성한 토론이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0개가 넘는 댓글속에서 양적풍성함은 맛볼수 있으나, 질적으로는 빈약한 감이 듭니다. 상대의 주장에 대한 이해나, 코드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목사님 말대로 손가는대로 자신의 의견들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또한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죠. 위에서 정말 좋은 통찰력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주마간산처럼 스치듯 지나가 버려서 약간의 아쉬움은 있네요.
아프간 내부에서 본다면, 아프간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 현지 아프간의 상황과 정서는 어떠한가? 그리고 탈레반이 왜? 테러단체인가?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탈레반 그들은 누구인가?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 알려져있죠. 이슬람의 원리를 실천하려는 학생운동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정치적 개입이 지금의 탈레반을 만들어냈습니다. 냉전시대에 아프간과 러시아와 전쟁을 할적에 러시아가 전쟁에서 지기를 원하는 영국과 미국은 아프간, 탈레반들에게 전쟁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무기와 자금을 대주었고, 영국에서는 최고의 특수부대 SAS가 아프간군인들에게 전술지원을 해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아프간의 탈레반은 미국과 영국을 등에업고 전쟁에서 대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탈레반 정권이 세워지죠. 문제는 전쟁에서 승리한 탈레반이 오사마빈라덴과 같은 탈레반 리더들을 중심으로 미국에 등을 돌리면서 시작됩니다.
이라크의 후세인을 세웠던 미국이 후세인을 축출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 아프간을 침공한것은 두 나라의 실세들이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독자노선을 걸었던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튼, 탈레반도 정치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죠. 이슬람원리주의자들 답게 사람들을 너무나 율법주의적으로 대했습니다. 이것은 이슬람뿐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면 나타날 수 있는 타락한 인간들의 오류이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반공이데올로기도 절대화되면 서로 서로 죽이잖습니까? 이것은 한국역사에서도 이미 경험한 것들입니다. 아무튼 탈레반은 너무 율법주의적으로 사람들을 탄압했고 수만의 난민들이 파키스탄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해서, 수많은 탈레반뿐 아니라 민간인들을 죽였습니다.
한쪽엔 채찍 한쪽엔 당근을 들고, 한쪽에서는 미군들이 탈레반군인들을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아프간 사람들을 죽이고 한쪽에서는 아프간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병원을 세우고 UN과 NGO와 선교사들이 활동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결국 실리와 명분을 다 챙기겠다는 속셈이죠. 이유야 어떻든 탈레반이 볼때 서구의 군대나 서구의 사람들은 침략자들임에는 분명합니다. 거기에 한국사람들은 뭐냐? 서구 사람들을 돕는 군대를 파견한 나라. 거기에다 이슬람 사람들을 전도하려는 기독교인들.. 그러니 그들이 볼때 한국인들도 침략자나 마찬가지 입니다. 아프간 정부도 일제시대의 친일파처럼, 그들이 일본앞잡이 노릇을 할때 콩고물이 많이 떨어지니까 과잉충성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던 것 처럼, 미국이 뒤에서 밀어주니까 미국 꼭두각시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일부지역을 제외하곤 모든 지역에서 탈레반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많은 부족, 많은 분파가 있지만, 정서적으로 그들은 하나입니다.
탈레반은 약간 과격한 성향은 있지만 아프간인들에겐 독립투사입니다. 일제시대의 우리의 광복군과도 같습니다. 우리도 윤봉길, 안중근을 열사, 의사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일본사람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할 것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반대가 될 것입니다.
-선교의 성육신 모델...
역사가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람들이 역사가 주는 교훈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올더스 헉슬리
어찌되었든, 미국과 서구가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한 사실은 그 명분이 바르던 바르지 않았던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기독교NGO단체와 선교단체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구요. 그들을 정치적으로 바라볼 땐, 결국 이번 사태처럼 탈레반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처럼, 그들은 민간인이 아니라, 침략자들이 자신의 침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곳에 간것입니다. 탈레반은 이렇게 해석하고 그들의 납치와 테러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누가 어떠한 동기를 가지고 그곳에 가던 탈레반은 계속 그들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무모하고 처절한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개신교 선교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다양한 선교전략이 있고 선교정책이 있는데요.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 모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신 것 처럼, 천상의 언어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시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신성을 극히 제한하시며 인간으로 사신 것처럼, 선교사가 그 땅에 가면 그곳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장기로 평생 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예수께서 이땅에 거하시며 자신의 구속사역의 사명을 완수하신 것처럼, 순교를 하던, 평생을 함께 지내던 그들과 함께 숨쉬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며 헌신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단기사역이라면 당연히 그곳에 사역하는 장기사역자들을 돕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 줄 압니다. 교회간의 선교경쟁, 선교가 삶이 아닌 사업이 되어버린 순간.... 짧은 기간에 승전보를 올리려는 조루현상, 전시효과만 있고 실제 삶의 변화나 회심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아무튼 이번 사태의 핵심은 탈레반과 미국입니다. 이들의 정치적 게임에 한국이 놀아난 것입니다. - 이길용 목사님의 지적에 많이 공감합니다.
단기선교를 가장한 비전트립, 여행도 안전한 센터에서 이루어져야 할것입니다. 정말 선교로 헌신하고 싶다면 그곳에서 그곳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 가야 할 것입니다. 정말 훌륭한 선교사님들 이땅에서든 그 땅에서든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런 분들이 정말 많은데 도매급으로 한국의 개신교 선교 전체가 매도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구요..
토론은 좀더 구체적으로 개신교의 단기선교, 선교정책, 경쟁적 선교, 이렇게 구체적인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 논제가 너무 광범위해서 담아내기가 힘들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만 가지고 해석하기에 너무 복잡하네요..
손가락가는대로 쓰다보니 저도 제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약간 언급한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아프간 내부에서 본다면, 아프간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 현지 아프간의 상황과 정서는 어떠한가? 그리고 탈레반이 왜? 테러단체인가?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탈레반 그들은 누구인가?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 알려져있죠. 이슬람의 원리를 실천하려는 학생운동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정치적 개입이 지금의 탈레반을 만들어냈습니다. 냉전시대에 아프간과 러시아와 전쟁을 할적에 러시아가 전쟁에서 지기를 원하는 영국과 미국은 아프간, 탈레반들에게 전쟁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무기와 자금을 대주었고, 영국에서는 최고의 특수부대 SAS가 아프간군인들에게 전술지원을 해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아프간의 탈레반은 미국과 영국을 등에업고 전쟁에서 대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탈레반 정권이 세워지죠. 문제는 전쟁에서 승리한 탈레반이 오사마빈라덴과 같은 탈레반 리더들을 중심으로 미국에 등을 돌리면서 시작됩니다.
이라크의 후세인을 세웠던 미국이 후세인을 축출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 아프간을 침공한것은 두 나라의 실세들이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독자노선을 걸었던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튼, 탈레반도 정치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죠. 이슬람원리주의자들 답게 사람들을 너무나 율법주의적으로 대했습니다. 이것은 이슬람뿐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면 나타날 수 있는 타락한 인간들의 오류이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반공이데올로기도 절대화되면 서로 서로 죽이잖습니까? 이것은 한국역사에서도 이미 경험한 것들입니다. 아무튼 탈레반은 너무 율법주의적으로 사람들을 탄압했고 수만의 난민들이 파키스탄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해서, 수많은 탈레반뿐 아니라 민간인들을 죽였습니다.
한쪽엔 채찍 한쪽엔 당근을 들고, 한쪽에서는 미군들이 탈레반군인들을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아프간 사람들을 죽이고 한쪽에서는 아프간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병원을 세우고 UN과 NGO와 선교사들이 활동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결국 실리와 명분을 다 챙기겠다는 속셈이죠. 이유야 어떻든 탈레반이 볼때 서구의 군대나 서구의 사람들은 침략자들임에는 분명합니다. 거기에 한국사람들은 뭐냐? 서구 사람들을 돕는 군대를 파견한 나라. 거기에다 이슬람 사람들을 전도하려는 기독교인들.. 그러니 그들이 볼때 한국인들도 침략자나 마찬가지 입니다. 아프간 정부도 일제시대의 친일파처럼, 그들이 일본앞잡이 노릇을 할때 콩고물이 많이 떨어지니까 과잉충성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던 것 처럼, 미국이 뒤에서 밀어주니까 미국 꼭두각시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일부지역을 제외하곤 모든 지역에서 탈레반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많은 부족, 많은 분파가 있지만, 정서적으로 그들은 하나입니다.
탈레반은 약간 과격한 성향은 있지만 아프간인들에겐 독립투사입니다. 일제시대의 우리의 광복군과도 같습니다. 우리도 윤봉길, 안중근을 열사, 의사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일본사람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할 것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반대가 될 것입니다.
-선교의 성육신 모델...
역사가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람들이 역사가 주는 교훈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올더스 헉슬리
어찌되었든, 미국과 서구가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한 사실은 그 명분이 바르던 바르지 않았던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기독교NGO단체와 선교단체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구요. 그들을 정치적으로 바라볼 땐, 결국 이번 사태처럼 탈레반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처럼, 그들은 민간인이 아니라, 침략자들이 자신의 침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곳에 간것입니다. 탈레반은 이렇게 해석하고 그들의 납치와 테러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누가 어떠한 동기를 가지고 그곳에 가던 탈레반은 계속 그들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무모하고 처절한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개신교 선교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다양한 선교전략이 있고 선교정책이 있는데요.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 모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신 것 처럼, 천상의 언어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시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신성을 극히 제한하시며 인간으로 사신 것처럼, 선교사가 그 땅에 가면 그곳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장기로 평생 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예수께서 이땅에 거하시며 자신의 구속사역의 사명을 완수하신 것처럼, 순교를 하던, 평생을 함께 지내던 그들과 함께 숨쉬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며 헌신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단기사역이라면 당연히 그곳에 사역하는 장기사역자들을 돕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 줄 압니다. 교회간의 선교경쟁, 선교가 삶이 아닌 사업이 되어버린 순간.... 짧은 기간에 승전보를 올리려는 조루현상, 전시효과만 있고 실제 삶의 변화나 회심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아무튼 이번 사태의 핵심은 탈레반과 미국입니다. 이들의 정치적 게임에 한국이 놀아난 것입니다. - 이길용 목사님의 지적에 많이 공감합니다.
단기선교를 가장한 비전트립, 여행도 안전한 센터에서 이루어져야 할것입니다. 정말 선교로 헌신하고 싶다면 그곳에서 그곳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 가야 할 것입니다. 정말 훌륭한 선교사님들 이땅에서든 그 땅에서든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런 분들이 정말 많은데 도매급으로 한국의 개신교 선교 전체가 매도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구요..
토론은 좀더 구체적으로 개신교의 단기선교, 선교정책, 경쟁적 선교, 이렇게 구체적인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 논제가 너무 광범위해서 담아내기가 힘들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만 가지고 해석하기에 너무 복잡하네요..
손가락가는대로 쓰다보니 저도 제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약간 언급한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2007.09.04 00:34:22
제 소견으로는 이번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는 언제든지 재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어느 기독교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덧글들을 보았는데, 글을 올린 분들의 내용속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이번 사태에 대한 자성이 없었습니다. 자세하게 언급하면 비판적인 글이 될 것 같아서 언급까지는 안 하겠지만, 열정만 앞선 비이성적인 선교활동과 그로 인한 제 2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가 언제든지 벌어질 것 같아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였습니다.
추신: 저도 조던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없는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넒은 분인지 알 수 있거든요..
추신: 저도 조던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없는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넒은 분인지 알 수 있거든요..
2007.09.04 02:20:08
할말이 많을 수록 말을 아껴야 하는 법인데, 아직 어리고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계속 떠들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수년전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1년정도 단기선교를 명분으로 다녀왔드랬습니다. 그곳에서 배우고 느꼈던 점을 조금 나눌까 합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비교하면서 단기선교에 대해 몇자 적어봅니다.
과격무슬림과 온건무슬림의 차이
이슬람내에서도 원리주의자들(extreme)은 소수입니다. 기독교내에서도 광신도들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히 열심을 내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슬람에서도 대부분은 다 적당히 믿고 적당히 열심내고 남이 보는 곳에서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 처럼 행동하고, 남들이 보지 않을때는 돼지고기도 먹고, 금식기간에 식사도 하고 그럽니다.-이것은 제가 현지에서 겪고 들은 이야기입니다-심지어 터키 사람들은 술을 즐겨마시는데 이중 잣대를 가지고 해석합니다. 우리는 무슬림으로서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적으로 술을 금지한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잔치나 연회, 결혼식, 손님접대할때는 술을 마십니다. 그래서 질문을 합니다. 아니 무슬림이 술을 마실수 있습니까? 아니요, 우리는 종교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돌궐족(투르크)의 오랜 역사적 전통입니다. 나는 무슬림으로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안에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
래서 이런 문화에 동화된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나는 적용들 때문에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터키의 이슬람교는 이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종교를 신봉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입김이 센곳은 과격무슬림이라고 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슬람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온건무슬림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종교적, 인종적 마찰이 있는 곳은 온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과격 무슬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을 가진 자들이 생존권을 위협할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 처럼, 자살폭탄테러라는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국제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의 성전교리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천국에 가려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가미가제특공대도 그들이 남달리 애국심이 뛰어나서 자살로 일왕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기 위해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가미가제 특공대에게 술과 마약 같은 환각제를 먹여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는 증거도 발견됩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가난한자 억눌린자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항거해서 과격무슬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있는자들이 좌지우지하며 있는자들의 편을 드는 국제사회가 그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다 매도할 순 없겠지만,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테러와 또한 테러조직을 이슬람에서 정죄하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입으로는 정죄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들의 성전을 옹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테러조직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것 또한 처처에 돕는 세력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쪽에도 이슬람선교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전의 기독교 국가의 식민지였던 곳들이 거의다 이슬람화 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영국의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부의 민다나오를 중심한 이슬람지역.
필리핀은 대부분 미신적 천주교가 교세를 가지고 있지만, 남부쪽의 공산당과 과격무슬림 테러단체들을 어찌 하지도 못합니다. 주로 이 테러단체들은 동남아 해안지역을 돌며 해적활동과 납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지역엔 아부사얍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 악명을 높이고 있지요.
말레이시아 연방은 국가 자체가 개방적이고 사람들이 온순하여 테러가 거의 없습니다. 한번씩 사건 사고가 나긴하지만 주로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넘어온 해적들이 말썽을 부리는 수준입니다. 이에 비해 바로 옆나라인 인도네시아는 테러가 아주 잦습니다. 물론 섬마다 부족마다 그 정도나 문화가 다르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국가대 국가로 비교해 보았을때는 그렇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화가 되기 전에 살았던 선주민들에 대한 예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택하지 않은 부족들에게 자신들의 자치권, 영토등을 인정해 줍니다. 그리고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줍니다. 그래서 그 부족의 족장이 이슬람을 선택하면 엄청난 혜택을 줍니다. 그런데 대부분 크고 작은 선주민들은 이슬람을 택하지 않고 기독교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족의 인구는 얼마 안되지만, 많은 소수부족들이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국가에서는 그들을 인정해주고 배려를 해 줍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연방이 국교로 이슬람을 선택하기 이전에 이미 들어와있던 다른 종교의 종파들을 그대로 다 인정해 줍니다. 그래서 성공회, 천주교, 침례교등 기독교의 교파들도 합법적으로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합니다. 나라는 이슬람국가이지만, 그안에 있는 기독교도 정식종교로서 다 인정해줍니다. 그리고 화교들이 많아서 그들이 세운 큰 절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교회, 100년. 150년이상된 교회도 몇이 있는데 그런 교회당 수리비까지도 정부에서 지원해 줍니다. 이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말레이시아의 힘입니다.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슬림이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에 대한 종교도 인정해 주는 곳이 말레이시아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한 또하나의 방편으로 무슬림에 대한 전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너를 인정하니까 너도 나를 인정하라..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곳이 말레이시아입니다. 그래서 무슬림을 대상으로 전도하면 대부분 다 감옥에 갔다가 추방을 당합니다.
법적으로 선교가 금지되어있는 곳이 말레이시아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곳의 기독교인들의 삶과 전도로 인해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무슬림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직접 개종해라 말하지 않아도, 진리의 빛은 감출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곳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성경을 번역한다든지, 문맹퇴치운동, 지역개발운동등으로 그곳의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지는 않아도 그들을 돕는 원동력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겠지요. 그래서 현지교회와의 협력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는 반대로 전도의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적 성향은 아주 거칩니다. 특히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교회당에 불지르는 것은 아주 흔한일이구요.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 실컷 전도해라, 우리는 너희를 가만히 두지 않을테니까...이런 식입니다. 드러내 놓고 전도한다고 했을때 말리는 사람은 없지만, 그 행위 자체가 그들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법적으로 개종하지 않고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상당수의 니고데모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1억9천만명정도 되는데요, 천주교를 포함하여 비공식적으로 4천만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인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되지는 않지만요. 우리나라 남한의 인구와 맞먹는 수의 기독교인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볼때 물론 국교가 이슬람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 전부가 무슬림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국가에서 선교하려면 적어도 그 지역의 교회와 절대적으로 협력함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과를 올리려고 무모한 선교를 하는 것은 명분만 선교일 뿐 말대로 무모한 도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선교는 현지인들과의 협력하에 절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선교전략이 부족중심의 선교, 현지인들을 세우는 교육하는 선교로 그 방법이 바뀌고 있습니다. 문제는 준비없이 전략없이 우리의 것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단기간에 주입하고 적용하려는 선교일 것입니다.
이번 샘물교회의 단기선교는 그런 것으로 보았을때 의료선교라는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 조직원 구성이 어찌 되었던 간에 단기선교 전략적으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미국과 탈레반이 나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선교전략도 위험한 지역에는 단기사역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그들을 섬기는 것이 사명이라면 철저한 훈련과 준비를 통해 그들을 섬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선교적 약점이 드러났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 위기와 잘못된 모습들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들려오는 많은 소리들 중에는 마귀소리도 있을것이고, 약이 되는 소리, 분열시키는 소리, 격려의 소리, 위로의 소리 많은 소리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듣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말씀을 통해 들어야겠지만,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들려주는 음성이 있다면,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주저리 주저리 말이길었네요. 제 생각에도 제 글에는 논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긴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비교하면서 단기선교에 대해 몇자 적어봅니다.
과격무슬림과 온건무슬림의 차이
이슬람내에서도 원리주의자들(extreme)은 소수입니다. 기독교내에서도 광신도들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히 열심을 내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슬람에서도 대부분은 다 적당히 믿고 적당히 열심내고 남이 보는 곳에서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 처럼 행동하고, 남들이 보지 않을때는 돼지고기도 먹고, 금식기간에 식사도 하고 그럽니다.-이것은 제가 현지에서 겪고 들은 이야기입니다-심지어 터키 사람들은 술을 즐겨마시는데 이중 잣대를 가지고 해석합니다. 우리는 무슬림으로서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적으로 술을 금지한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잔치나 연회, 결혼식, 손님접대할때는 술을 마십니다. 그래서 질문을 합니다. 아니 무슬림이 술을 마실수 있습니까? 아니요, 우리는 종교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돌궐족(투르크)의 오랜 역사적 전통입니다. 나는 무슬림으로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안에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
래서 이런 문화에 동화된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나는 적용들 때문에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터키의 이슬람교는 이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종교를 신봉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입김이 센곳은 과격무슬림이라고 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슬람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온건무슬림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종교적, 인종적 마찰이 있는 곳은 온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과격 무슬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을 가진 자들이 생존권을 위협할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 처럼, 자살폭탄테러라는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국제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의 성전교리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천국에 가려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가미가제특공대도 그들이 남달리 애국심이 뛰어나서 자살로 일왕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기 위해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가미가제 특공대에게 술과 마약 같은 환각제를 먹여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는 증거도 발견됩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가난한자 억눌린자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항거해서 과격무슬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있는자들이 좌지우지하며 있는자들의 편을 드는 국제사회가 그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다 매도할 순 없겠지만,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테러와 또한 테러조직을 이슬람에서 정죄하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입으로는 정죄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들의 성전을 옹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테러조직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것 또한 처처에 돕는 세력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쪽에도 이슬람선교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전의 기독교 국가의 식민지였던 곳들이 거의다 이슬람화 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영국의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부의 민다나오를 중심한 이슬람지역.
필리핀은 대부분 미신적 천주교가 교세를 가지고 있지만, 남부쪽의 공산당과 과격무슬림 테러단체들을 어찌 하지도 못합니다. 주로 이 테러단체들은 동남아 해안지역을 돌며 해적활동과 납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지역엔 아부사얍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 악명을 높이고 있지요.
말레이시아 연방은 국가 자체가 개방적이고 사람들이 온순하여 테러가 거의 없습니다. 한번씩 사건 사고가 나긴하지만 주로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넘어온 해적들이 말썽을 부리는 수준입니다. 이에 비해 바로 옆나라인 인도네시아는 테러가 아주 잦습니다. 물론 섬마다 부족마다 그 정도나 문화가 다르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국가대 국가로 비교해 보았을때는 그렇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화가 되기 전에 살았던 선주민들에 대한 예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택하지 않은 부족들에게 자신들의 자치권, 영토등을 인정해 줍니다. 그리고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줍니다. 그래서 그 부족의 족장이 이슬람을 선택하면 엄청난 혜택을 줍니다. 그런데 대부분 크고 작은 선주민들은 이슬람을 택하지 않고 기독교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족의 인구는 얼마 안되지만, 많은 소수부족들이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국가에서는 그들을 인정해주고 배려를 해 줍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연방이 국교로 이슬람을 선택하기 이전에 이미 들어와있던 다른 종교의 종파들을 그대로 다 인정해 줍니다. 그래서 성공회, 천주교, 침례교등 기독교의 교파들도 합법적으로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합니다. 나라는 이슬람국가이지만, 그안에 있는 기독교도 정식종교로서 다 인정해줍니다. 그리고 화교들이 많아서 그들이 세운 큰 절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교회, 100년. 150년이상된 교회도 몇이 있는데 그런 교회당 수리비까지도 정부에서 지원해 줍니다. 이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말레이시아의 힘입니다.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슬림이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에 대한 종교도 인정해 주는 곳이 말레이시아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한 또하나의 방편으로 무슬림에 대한 전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너를 인정하니까 너도 나를 인정하라..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곳이 말레이시아입니다. 그래서 무슬림을 대상으로 전도하면 대부분 다 감옥에 갔다가 추방을 당합니다.
법적으로 선교가 금지되어있는 곳이 말레이시아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곳의 기독교인들의 삶과 전도로 인해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무슬림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직접 개종해라 말하지 않아도, 진리의 빛은 감출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곳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성경을 번역한다든지, 문맹퇴치운동, 지역개발운동등으로 그곳의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지는 않아도 그들을 돕는 원동력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겠지요. 그래서 현지교회와의 협력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는 반대로 전도의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적 성향은 아주 거칩니다. 특히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교회당에 불지르는 것은 아주 흔한일이구요.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 실컷 전도해라, 우리는 너희를 가만히 두지 않을테니까...이런 식입니다. 드러내 놓고 전도한다고 했을때 말리는 사람은 없지만, 그 행위 자체가 그들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법적으로 개종하지 않고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상당수의 니고데모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1억9천만명정도 되는데요, 천주교를 포함하여 비공식적으로 4천만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인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되지는 않지만요. 우리나라 남한의 인구와 맞먹는 수의 기독교인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볼때 물론 국교가 이슬람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 전부가 무슬림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국가에서 선교하려면 적어도 그 지역의 교회와 절대적으로 협력함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과를 올리려고 무모한 선교를 하는 것은 명분만 선교일 뿐 말대로 무모한 도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선교는 현지인들과의 협력하에 절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선교전략이 부족중심의 선교, 현지인들을 세우는 교육하는 선교로 그 방법이 바뀌고 있습니다. 문제는 준비없이 전략없이 우리의 것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단기간에 주입하고 적용하려는 선교일 것입니다.
이번 샘물교회의 단기선교는 그런 것으로 보았을때 의료선교라는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 조직원 구성이 어찌 되었던 간에 단기선교 전략적으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미국과 탈레반이 나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선교전략도 위험한 지역에는 단기사역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그들을 섬기는 것이 사명이라면 철저한 훈련과 준비를 통해 그들을 섬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선교적 약점이 드러났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 위기와 잘못된 모습들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들려오는 많은 소리들 중에는 마귀소리도 있을것이고, 약이 되는 소리, 분열시키는 소리, 격려의 소리, 위로의 소리 많은 소리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듣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말씀을 통해 들어야겠지만,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들려주는 음성이 있다면,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주저리 주저리 말이길었네요. 제 생각에도 제 글에는 논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긴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9.05 01:47:39
올려주신 정보 잘 읽었습니다. 근디, 필리핀 로마 가톨릭을 미신적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편견이 아닐런지요..제가 알기에 필리핀 로마 가톨릭교회는 군사정권때 찍소리도 못하거나, 찬동한 한국 개신교 교회와는 달리 단식투쟁 지도로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저항한 예언자적인 교회인 것으로 압니다..개신교의 시각에서 필리핀 로마가톨릭교회를 미신이네, 아니네 또는 혼합신앙이네 아니네 하는 것은 편견이 아닐런지요.
2007.09.05 14:37:43
장기간 출타했던지라 늦게 들어왔습니다만, 조르단님의 글에서 늘 많은 걸 배웁니다.
조르단님께서는 당신을 골수 고신파라고 늘 소개하셨습니다만,
한국 개신교의 수많은 보수복음주의 목사님들, 교우들, 아니,
진보까지도, 조르단님과 같은 통찰을 갖추고 계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조르단님께서는 당신을 골수 고신파라고 늘 소개하셨습니다만,
한국 개신교의 수많은 보수복음주의 목사님들, 교우들, 아니,
진보까지도, 조르단님과 같은 통찰을 갖추고 계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007.09.06 23:26:28
네 감사합니다. 바우로님.. 맞습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필리핀 가톨릭을 미신주의적 천주교라고 표현한 것은 좀 과격한 표현인것 같네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개신교라 할지라도 미신적인 요소, 기복신앙이나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문화라면 제가 개신교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미신적인것이다..라고 말할것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배운게 그래서 그런것 같습니다. 물론 기독교회 내에서도 미신적인 요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천주교회는 그것들이 양성적으로 표현되는 것이구요, 개신교는 음성적으로 퍼져있는 것인데,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교회의 부끄럽고 미신적이고 잘못된 교회답지 못한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사태들이 교회가 교회다워지는데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는데 하나님의 회초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신적이라는 것은 편견이라면 편견일수 있지만, 천주교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아니랍니다. 기분 얺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샬롬~
결국 선교는 내 안의 일인데 말이죠..
'내'가 선교되어가는 과정.. 그것이 선교겠죠..
헌데 '내'가 선교되기도 전에 '남'에게 무언가 하려고 하는데서 삐걱거림이 생겨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