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6
안녕하세요?
<하랑>입니다.
지난번 박찬선님의 이야기처럼 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많지는 않을것 같지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다비아에 진작에 인사를 올렸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81년생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에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대학 입학 후 기독교동아리 <실로암>에 가입하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종교, 경제학, 철학, 미학, 정신분석학입니다.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화가는 라파엘로와 세잔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는 랭보와 프로이트, 그리고 애드가 앨런 포입니다.
그런데 아는 것은 많이 없으며 다만 책보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제 또래들처럼 장난치고 다른 사람 놀리는 것을 좋아하며 술먹고 노는 것도 좋아합니다.
성격은 까불까불한 편입니다.^^
최근의 관심사가 있다면 책을 한 권 내고싶다는 것입니다.
문자주의 해석을 비판하는 일관된 주제로 원고지 800장 분량을 써놓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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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뮬라크르 - 복제의 복제

이 그림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다.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보고 베껴 이 그림들을 그렸다. 이 그림 속에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마릴린 먼로의 복제이고 이 그림은 복제(사진)를 다시 복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복제의 복제. 플라톤의 말을 빌려서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하랑>입니다.
지난번 박찬선님의 이야기처럼 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많지는 않을것 같지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다비아에 진작에 인사를 올렸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81년생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에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대학 입학 후 기독교동아리 <실로암>에 가입하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종교, 경제학, 철학, 미학, 정신분석학입니다.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화가는 라파엘로와 세잔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는 랭보와 프로이트, 그리고 애드가 앨런 포입니다.
그런데 아는 것은 많이 없으며 다만 책보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제 또래들처럼 장난치고 다른 사람 놀리는 것을 좋아하며 술먹고 노는 것도 좋아합니다.
성격은 까불까불한 편입니다.^^
최근의 관심사가 있다면 책을 한 권 내고싶다는 것입니다.
문자주의 해석을 비판하는 일관된 주제로 원고지 800장 분량을 써놓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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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뮬라크르 - 복제의 복제

이 그림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다.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보고 베껴 이 그림들을 그렸다. 이 그림 속에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마릴린 먼로의 복제이고 이 그림은 복제(사진)를 다시 복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복제의 복제. 플라톤의 말을 빌려서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림 속 마릴린 먼로들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시뮬라크르들의 차이. 이 그림에서 우린 서로 다른 시뮬라크르들을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2. 원본을 살해한 시뮬라크르
우리에게 마릴린 먼로는 보통 섹스 심볼, 미국의 연인, 섹시한 여자라는 <기호>이다. 그러나 이 기호들 역시 모두 시뮬라크르이다. 이러한 시뮬라크르들이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생산되어 소비되면서 결국 원본(original) 마릴린 먼로는 사라져버렸다. 이제 섹스 심볼같은 시뮬라크르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즉 실재 마릴린 먼로는 <시뮬라크르 기호>들에 의해 대체된 것이다.
3. 예수의 케리그마
동정녀에서 잉태된 예수, 삼위일체 예수, 대속 예수 등 니케아 신경에서 선포하는 예수의 케리그마 역시 시뮬라크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들은 모두 복음서와 신약성경에서 복제된 것들인데 복음서와 신약성경의 예수 역시 복제된 예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이를 실재 예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니케아 신경이 선포하는 시뮬라크르의 <기호들>이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생산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니케아 신경의 예수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실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지도 않다. 실재를 대체한 시뮬라크르 기호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실재 예수는 케리그마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리고 시뮬라크르가 실재인체 하게 되었다.
4. 역사적 예수는 없다
역사적 예수 역시 시뮬라크르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바탕에는 정경과 정경 외 예수 자료가 바탕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자료들 역시 실재 예수의 복제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나오는 역사적 예수들 역시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따라서 엄격히 말해 온전한 역사적 예수는 영원히 없다.(역사적 예수 연구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5. 부활한 예수
그런데 예수는 시뮬라크르에 의해 알려진다. 2000년 가까이 기독교가 전도한 예수는 케리그마 예수였고 그로인해 예수가 알려졌다.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리고 있다. 즉 시뮬라크르는 예수를 살해했지만 시뮬라크르에 의해 예수는 부활한 것이다.
6. 시뮬라크르 놀이
다시 잠깐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르네 마그리트는 다음과 같은 그림들을 남겼다.




모두 나뭇잎과 새라는 동일한 모티브들을 사용한 그림이다. 이것들은 모두 시뮬라크르인데 이 역시 좀 전의 마릴린 먼로처럼 <차이>가 난다. 마그리트는 아예 원본을 닮아야 하거나 지시해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시뮬라크르들의 차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즉 마그리트는 <시뮬라크르 놀이>를 하고 있다.
예수도 실재는 사라지고 <차이>만 남았다. 케리그마의 예수나 역사적 연구를 통해 나오는 예수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예수 이미지 역시 모두 시뮬라크르이지만 각각 다르다. 케리그마 예수와 역사적 예수는 서로 다르고 대립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시뮬라크르 놀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7. 역사적 예수는 있다.
내가 믿는 역사적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예수이다. 사실 이 역시 시뮬라크르일 뿐이며 시뮬라크르 놀이의 연속성상에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랑과 용서의 예수를 <믿는다.> 이것이 벤야민의 주장처럼 차이에서 나타나는 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이러한 믿음은 나에게 근본주의자들처럼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이것은 나에게 신비이지만 일종의 강박증일지도 모른다. 근본주의자들의 예수가 케리그마의 예수이어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예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케리그마의 예수는 교리로 포장되어 역사속에서 수많은 폭력을 자행해왔고 사랑과 용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만약 역사적 예수 연구 역시 사랑과 용서의 예수에서 멀어져버린다면 나는 그러한 예수를 쓰레기통에 치운 후 소각할 것이다.
8. 재선포
오늘도 나는 스스로 사랑과 용서의 역사적 예수를 믿음으로 선포한다. 나름대로 이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위해 부던히 노력할 것이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그러한 근거들 역시 시뮬라크르인 이상, 사랑과 용서의 예수가 원본(original) 예수라고 입증할 자신은 없다. 결국 나는 그저 무턱대고 선포할 수 있을 뿐이며 케리그마가 <선포하는 행위>라는 뜻을 가진 이상, 사랑과 용서의 예수 역시 케리그마이다. 따라서 기존의 대속이나 삼위일체 따위의 케리그마에서 사랑과 용서의 케리그마로 재선포 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고백하지만 이는 내가 역사적 예수와 기독교의 정수가 사랑과 용서에 있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만 쓰시다가 오늘은 본인 소개를 해주셨군요.
재기가 넘치는 분이시라고 느끼기만 했는데
이 글로 통해서 좀 더 하랑님을 알겠습니다.
뭐 얼마나 알겠습니까만은요...ㅎㅎ
미학, 철학,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있으시고
랭보와 포우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런데 라파엘로와 세잔을 좋아하신다는 대목에서
분위기를 좀 깨는군요...ㅋㅋ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긴장을 해소하시는 것 같습니다.
부록으로 올리신 글도 잘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오리지널로 향하는 예수의 상은 있겠습니다.
예수 본인만이 오리지널이기에 우리는 오리지널 지향자이겠지요.
하랑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분은 사랑과 용서의 주이시므로
모든 시뮬라크르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그 생산자들을 사랑하실 겁니다.
저는 예수를 '사랑과 용서'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그냥 그 분은 그렇기도 하시지...라고만 할께요.
앞으로도 좋은 글 선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