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글 수 253
신약성경을 전체적인 맥락으로 놓고 볼 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아나니아 부부의
이야기다. 성경은 쉽다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겠지만 적어도 성서해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아나니아의 이야기에 대한 교훈이 무엇이다라고 단편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땅을 팔아 그 전부를 바치겠다고 약속하던 아나니아는 막상 땅을 팔고 보니
그돈이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 베드로에게 갖다 주었다.
이를 눈치 챈 베드로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다'
솔직히 이런 멘트를 날리는 배드로가 뻔뻔스럽게 느껴지는건 사실이다.
베드로는 어린 계집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이는 어린 계집아이를 속인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을 속였다'
라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소위 근본주의 기독인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해명한다.
첫째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는 죄에 대한 긴장감이 없는 크리스천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여 줬으니 하나님의 일방적인 궁휼을 기대하는 ..
사람들이 지은 고의적인 죄까지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 지은죄가 모르고 지은죄 보다 나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죄를 그 의도 여부를 막론하고 죄앞에 이미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죄를 고의성에 국한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둘째 본래 이들의 나눔의 행위는 자발적이었기 때문에 재산의 일부를 바쳐도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들 부부는 '우리가 쓸 데가 있어서 일부만 드립니다'라고
말했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속였던 것이다.
자신의 의를 겉으로 드러내고 싶은 세속적인 허영심이 앞서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경건한 척, 의로운 척, 선한 척, 그런데 이런 모습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만의
모습은 아니다. 좁게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 넓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천의 자화상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예수님의 제자 중 누가 최고인가를 따져 보았고 눈먼 자를 앞에 두고
그의 죄인지 그의 부모의 죄인지를 물었다.
나는 이사건의 교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베드로의 오해이다. 아직 유대교의 틀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초기 기독 공동체에서
율법주의는 여전히 만연하였다. 또한 이런 율법주의는 초기 기독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베드로의 자리에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단호하게 그들에게 심판이 가해졌을까?
나는 가벼운 문제제기를 했을 뿐 여전히 이사건의 교훈은 미궁속에 있는 것 같다.
이야기다. 성경은 쉽다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겠지만 적어도 성서해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아나니아의 이야기에 대한 교훈이 무엇이다라고 단편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땅을 팔아 그 전부를 바치겠다고 약속하던 아나니아는 막상 땅을 팔고 보니
그돈이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 베드로에게 갖다 주었다.
이를 눈치 챈 베드로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다'
솔직히 이런 멘트를 날리는 배드로가 뻔뻔스럽게 느껴지는건 사실이다.
베드로는 어린 계집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이는 어린 계집아이를 속인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을 속였다'
라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소위 근본주의 기독인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해명한다.
첫째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는 죄에 대한 긴장감이 없는 크리스천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여 줬으니 하나님의 일방적인 궁휼을 기대하는 ..
사람들이 지은 고의적인 죄까지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 지은죄가 모르고 지은죄 보다 나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죄를 그 의도 여부를 막론하고 죄앞에 이미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죄를 고의성에 국한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둘째 본래 이들의 나눔의 행위는 자발적이었기 때문에 재산의 일부를 바쳐도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들 부부는 '우리가 쓸 데가 있어서 일부만 드립니다'라고
말했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속였던 것이다.
자신의 의를 겉으로 드러내고 싶은 세속적인 허영심이 앞서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경건한 척, 의로운 척, 선한 척, 그런데 이런 모습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만의
모습은 아니다. 좁게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 넓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천의 자화상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예수님의 제자 중 누가 최고인가를 따져 보았고 눈먼 자를 앞에 두고
그의 죄인지 그의 부모의 죄인지를 물었다.
나는 이사건의 교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베드로의 오해이다. 아직 유대교의 틀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초기 기독 공동체에서
율법주의는 여전히 만연하였다. 또한 이런 율법주의는 초기 기독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베드로의 자리에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단호하게 그들에게 심판이 가해졌을까?
나는 가벼운 문제제기를 했을 뿐 여전히 이사건의 교훈은 미궁속에 있는 것 같다.
2007.08.17 20:49:06
베드로와 성령은 한통속이라고 봐야겠지요^^. 베드로가 쥑인 게 아니라 성령이 그런 거니까요. '성령을 속인 죄'에 대해서 성서신학자들이 여러 썰을 풀어놓은게 있긴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해 행해진 잣대가 한국목사님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살아남을 분은 없을 겁니다.
2007.08.18 05:01:04
아나니아와 삽비라 일화는 죄의 문제라기 보다는 죄인을 향한 문제지요 죄의 문제에 대해 단호한 것과 죄인을 향해 단호한 것은 구분하여야 할 것입니다.
2007.08.18 12:22:19
주석없이 성경읽기식으로 풀자면....군대에서도 시범케이스란게 있습니다만 아나니아 삽비라는 시범케이스에 걸린 것도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생생하게 눈 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말론적인 상황에서의 거짓말은 죄가 큰 것 같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아간의 죄처럼 말입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존론적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쯤 할랍니다.
2007.08.18 14:03:44
어느 목회자가 있는데 교인 중의 한 사람이 반항한다고 가정 해 봅시다. 벌을 받지요. 그러면 누가 벌을 받느냐가 문제입니다. 콰미님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목사를 대적한 교인? 아니면 인도를 받고도 은혜를 모르는 방자한 사람? 이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 가야 아나니아와 삽비라 문제도 해결될 겁니다. 축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는 것은 직분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문제이지요.
2007.08.18 14:18:02
즉 복음을 방해한 사람은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님께 이렇다저렇다 하고 단정적으로 얘기 해서 미안하군요. 그러나 사실임을 확신합니다. 복음을 받아 들이면 복이 그 사람에게 갈 것이요. 거절 하면 되돌아 온다는 주님의 말씀을 공식으로 삼을 때 그러하니까요. 복음을 현상화 할 때 생명이니까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목사님에게 진정 복음이 있는 분이라면 대항한 자에게 화가 임할 것이요. 목사가 짜가이며 대항하는 자가 복음을 사랑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복이 임할 것입니다. 복음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목사라는 직분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강도도 뒤따른다는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베드로의 능력이 약하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아무 이상이 없었겠지만, 그 시간의 베드로는 천지를 흔들만큼 성령으로 충만 했으니까 그렇 수 있다고 봅니다. 베드로의 성령 충만에도 상대적인 요구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 자리에서 믿음을 보인 자는 그만큼의 믿음이 성장 했을 것이고 의심 하는 자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주어졌으니 죽음이 임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약해졌기 때문에 온갖 거짓말을 다하고 교회를 가지고 사기를 쳐도 아무 일도 발생 하지 않습니다. 너무 왜곡 되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