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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4

조회 수 637 추천 수 0 2015.09.07 13: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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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4

일억불 계약을 따낸 어느 중소기업의 간부가 회장으로 부터 모든 회사원이 모인 가운데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보너스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손 한가득 가족들의 선물을 챙긴다. 아빠가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 이미 연락을 받은 아내의 입가에 피어나는 기쁨에 겨운 미소와 선물로 인한 아이들의 함박웃음이 카메라에 잡힌다. 이건 아주 흔한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행복을 보여주기 위해 프로듀서가 무난히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더 신파적으로 나가보자. 병으로 누워계신 아버지는 전혀 거동을 못하신지 10년 째이다. 삼남매를 홀로 책임진 어머니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고시를 앞두고 있는 장남이다. 마침내 고시에 합격한 아들의 이름을 일간지에서 확인할 때 조그만 단칸방 구석에 누워있던 아버지는 소리내어 흐느끼고 뭔가 조금씩 알기 시작한 막내는 우리 이제 부자되는 것이냐고 자꾸 물어보면서 우는 모습을 감추려 돌아서 있는 엄마를 자꾸 보챈다. 이건 옛날 드라마에 종종 나왔던 장면이다. 

우린 행복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가지 장면들을 연출한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꿈꾸면서 말이다. 

지금 자신의 통장에 삼백만불의 현금이 들어있고 완전히 자기의 소유가 된 이백만불 상당의 집이 있으며 천만불의 상업용 건물을 통해 들어오는 임대료의 연간 순수익이 칠십만불이라 할 때, 비록 남이 부러워하는 멋진 직업은 아닐지라도 자기 소유의 건물에 방 하나를 멋지게 꾸며 그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으며 명함에는 원하는 어떤 직위도 마음대로 넣을 수 있다. 오히려 일반인들이 직장 생활에서 얻게 되는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으며 좋은 관리자를 만난 덕에 다른 곳보다 월급을 조금 더 주었을 뿐인데 지난 10년간 세입자와의 마찰 없이 매달 임대료를 빠짐없이 받아내고 있다. 나태해지기 쉬운 상황이니 개인 트레이너를 두고 매일 같이 운동을 하는 그와 그의 아내의 몸은 사십대가 지닐 수 없는 근육질을 자랑한다. 아내나 남편 모두 정확하고 값비싼 정기정검을 통해서 현재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상태이며 초고가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앞으로 닥칠 건강 문제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공신력 있는 인증 기관으로 부터 배달되는 가장 좋은 식재료를 매주 공수 받고 있다. 자녀들은 가장 공부를 잘 하는 그룹에 속하지는 않을지라도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다양한 체험학습과 풍부한 사교육을 통해 어딜 가든 이른바 통하는 스펙을 형성 중에 있다. 사십대 중반의 그가 이런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십년이 지나 육십 중반에 접어들게 되면 아마 그의 부는 훨씬 더 증폭되어 있을 것이다. 빌딩을 몇 채 더 소유할 수도 있으며 제대로 투자하여 그 재산을 수십배 더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돈이 많으니 그에 따라 모여드는 사람도 많다. 성격만 그리 모나지 않다면 최소한 많이 외롭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자산 액수로는 그가 그렇게 큰 부자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나의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의 마음엔 묘한 감정이 섞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는 돈의 몰림현상에 따른 부조리와 악순환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며, 나머지 하나는 저렇게 살아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하는 기대감이다. 위의 두 가지 마음 중에서 내가 하나를 선택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동화 속에 한 장면이 내 앞에 펼쳐 진다면 난 솔직히 후자를 거부할 자신이 없다. 그 풍요를 나와 내 가족외에 다른 이웃과도 나누어 쓰겠다는 조건을 양심에 각인하면서 후자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서로 다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그 사실이 재미있다. 전자는 우리 삶의 현실이며 실존이다. 정확한 부의 분배는 인류의 사활이 걸려 있는 존재론적 투쟁이다. 이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곧 우리의 모습이며 인류의 역사가 되어 왔다. 하지만 후자를 천박한 자본주의 산물이라 몰아 붙일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은 그렇게 근심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근심을 제거할 방법을 이 세상 속에서 그 소재를 찾으려 했다는 것이 잘못이면 잘못인 것이다. 그 근심없는 삶의 염원에는 오히려 하늘나라를 향한 우리의 오래된 숙원이 잠들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내 마음은 오늘도 모순 속에서 그러나 그럴싸하게 말되는 변명으로 잠시 동안 행복을 느껴봤다. 실존을 인지해야 하는 전자가 주는 인식의 활력을 통해서, 그리고 후자가 주는 뭔가 기대되는 로또복권 당첨과도 같은 달콤함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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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9.07 22:12:39
*.94.91.64

예베슈 님의 글이 재미있습니다.

말씀하신 두 가지 마음으로 평생 갈등을 겪는 게

우리 인생살이인 거 같습니다.

profile

[레벨:10]예베슈

2015.09.08 00:04:31
*.219.238.254

바울처럼 두가지가 싸운다고 표현하는 격렬함보다 그냥 두가지가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맡기면서 나름 살짝 즐기는 것이 위험할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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