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정병선 목사님!

조회 수 2119 추천 수 12 2005.11.22 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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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 목사님,

목사님의 이 메일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 글을 드렸는데,
이렇게 기독교의 한계상황까지 밀고 들어가는 질문을 다시 받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습니다.
예수가 과연 우리의 유일한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여러 그리스도 중의 하나인지에 대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알고 싶다는 거겠지요.
지금 목사님이 뭘 몰라서 나에게 질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정도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도 이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겠지만
굳이 구체적인 질문으로 끌어들이지 않을 뿐이겠지요.
혹은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런 질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접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런 건 논리적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신앙적 결단의 차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본으로 목사님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그 어떤 가르침도 질문에서 자유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기독론의 핵심을 붙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한다고 해서 모든 게 완전하게 해명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질문할 자유는 있으나 반드시 대답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세계도 역시
우리가 질문할 수는 있지만 대답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꽃 한 송이와 우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우리가 질문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완전한 대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태평양 한 구석에서 펄럭인 나비의 날갯짓이 원인이 되어
결국 태풍을 몰고 오는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잖아요?
시간이 흘러 과학이 발달하면 알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또 다른 모르는 문제들이 나타나겠지요.
결국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에 근거해서,
그러니까 부분적인 앎에 근거해서 미래를 희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그를 중보자로 인식하고 해석하고 신뢰하고 신앙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근거가 타당한지 아닌지를
우리가 먼저 검토해야하겠지요.
그들의 신앙이 타당하다면 우리는 예수를 중보자로 믿어야 합니다.
이게 곧 교회의 ‘사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인식과 신앙이 매우 정직하고 참되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왜 예수를 ‘참 하나님, 참 인간’으로 믿게 되었는지,
즉 그들에게 어떻게 메시아로 인식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사도들에 의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예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목사님은 친절하게도 졸저의 쪽수까지 표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로
내가 주장한 것처럼 설명하셨더군요.
그렇게 보셨다면 그건 반만 맞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한정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이잖아요.
그렇다면 예수의 중보성이 무의미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까지 구원하실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요.
이렇게 말하다가 구설수에 오를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지금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는 게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여러 가지니까 어떤 종교라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말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그런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에 충실하면 충분한 거에요.
그런 마음으로 타종교인들을 이해하고,
다른 생명체와 사물들을 사랑하면 충분한 거죠.
부처를 통해서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은
종교학자에게는 필요한지 모르지만  
신학자와 기독교인에게는 각주일 뿐이지 근본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마 여전히 바르티안(Barthian)적이라고 핀잔을 받을지 모르겠네요.
글쎄요.
그게 나의 한계일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의 생각에 따르면
예수를 모르지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기를
절실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난다면
결국 예수의 중보성은 상대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거죠?
간디를 예로 들으셨습니다.
간디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개연성과
예수가 중보자라는 사실이 대립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보자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류에게 중보자이십니다.
그러나 그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구원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수학적인 계산서로는 이런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사실 삼위일체도 역시 그런 계산서와는 다르지요.
그것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이런 모양으로 ‘있다’는 사실도 계산서가 아닙니다.
내 말이 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이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억지가 아니라 구원의 심층을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를 통한 구원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예수 밖의 구원까지 포함할 수 있는
그런 구원의 신비를 말하는 겁니다.
이게 불가능한 일인가요?
이렇다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을까요?
아직 우리에게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명제,
즉 예수만이 메시아라는 명제와
아직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을 개연성이 있다는 명제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도록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이 구원의 신비와 그 현실들을
심화하고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신학이고, 그게 21세기의 선교가 아닐까요?
목사님은 내가 어떤 ‘선을 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더군요.
내가 의도적으로 선을 넘는다, 않는다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곧 역사적인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경험된 그 예수 사건을 정확하게 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본질적이고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 알기에도 힘에 벅차기 때문에
타종교에 대해서는 시간을 낼 수도 없습니다.
이건 시간을 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한 가지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그 한 가지를 통해서 절대의 세계를 들여다보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보았으면 그릇은 이제 버려라, 합니다.
그게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릇을 버리면 그 안에 있는 보물도 보존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라는 그릇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겁니다.
말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갔군요.
목사님도 이런 걸 말하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드려야겠군요.
“예수는 길을 가리킨 분일뿐만 아니라 길 자체다.”
이게 어떻게 한 인격 안에서 가능할까요?
나는 그 신비를 사도들과 교부들에게서 배웠고,
그 길을 따라서 살아갈 뿐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구요?
그들에게도 예수는 역시 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고단하겠지만 이걸 해명하는 게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변증적 사명이 아닐는지.

목사님,
이 글이 변명 비슷하게 됐는지,
더 답답하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대림절이 옵니다.
주의 은총이.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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