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가끔은 속물이 되고 싶다

조회 수 1151 추천 수 0 2018.04.23 12: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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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십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같은 날짜에 태어난 히틀러 아저씨가 너무 악랄하게 살다 죽어서, 전 나름 그걸 희석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아주 인류애가 가득하게 살기를 기대했었는데 정말이지 그게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래서 그런지 글이 조금 처량합니다. ㅎㅎ


가끔은 속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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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지 인어인지 알 수 없는 긴 머리의 여인이 꼬리 지느러미를 두 다리처럼 잡고 있는 초록색 심볼이 나를 은근히 유혹한다. 그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방이 나타났다. 이내 반짝이는 치아로 미소를 날리고 있는 초록색 행주치마를 걸치고 있는 아가씨가 날 반갑게 맞이한다. 이 아가씨는 분명 인어가 아니고 사람이다. 그리고 지체없이 나에게 방금 전 그 미소의 대가를 요구한다. 할 수 없이 난 한잔의 쓴 물을 주문했다. 

주문했던 시커멓고 뜨거운 물이 나의 몸을 따라 흘러 들어오면 그로 인한 포근한 열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 이 친숙한 맛을 습관적으로 기억하는 내 두뇌는 이것이 휴식이라고 나에게 말해 준다. 그럼 나는 그렇게 정의해 준 두뇌에게 감지 않은 머리로부터 느껴지는 야릇한 간지러움 일지라도,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다 라는 안도감을 재빨리 전송한다. 그 때 내 두뇌는 나에게 무장해제를 명한다. 

아아…… 잠시 근두운을 탄 손오공이 된다. 귀찮은 몸단장을 거부해 버린 외로운 행복감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나에게 내 두뇌가 다시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한다. 정신 차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생활비가 모자라니 이러고 있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우울한 경고를 날린다. 내 마음에 자주 반복되는 이런 감정은 전혀 반갑지 않는 천덕꾸러기이다. 내키지 않는 이 느낌을 창 밖으로 던져 버렸다. 나에게 버림 당한 이 마음은 커피 전문점 창 밖에 서 있는 앙상한 나무가지에 서글프게 꽂혔다.

내 양심은 그 뻣뻣한 나무를 향해 하염없이 한 눈을 팔다가 어느새 고개를 든 속물 근성에 그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다. 갑작스레 대놓고 속물이 되고 싶은 강한 유혹이 일렁인다. 한마디로 자화자찬의 시간으로의 몰입이다. 평창올림픽 경기장에 울려 퍼졌던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제일 잘 나가” 의 세계로 겸손의 긴장을 마음 놓고 풀어 버렸다. 이 글을 누가 읽지 않는 한 나의 교만을 판단할 상대가 없으니 제대로 한 번 교만을 떨어 봐야겠다. 만약 누가 읽기라도 한다면 정말 재수 없음의 최첨단이라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바로 그 교만을 접어야 했다. 자랑할 게 너무 많아 밤새도록 글을 써도 끝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순간 혼자 ‘씩’ 하며 웃고 말았다. 방금 전 쓴 글 만큼 기네스북 수준의 교만한 글을 내 스스로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그냥 그렇게 ‘씩’ 웃자! 

생명을 오롯이 육체에 담아 소중한 존재로 세상에 등장한 그 순간부터 생명유지라는 명분을 핑계 삼아 마구 저질러 버린 ‘우수함’ 을 향한 그 속물적 근성을 그냥 인정하자! 사실 그것이 우리의 솔직한 인생 여정이며 모두의 자화상이자 사람의 역사가 되어 왔지 않은가.

이제 내 나이 오십…… 앞으로도 여전히 난 속물 근성과의 전쟁을 감당해 내야 한다. 오십이 되도록 겨우 깨우친 것이 있다면 그건 그 속물 근성을 잘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젊은 날의 투쟁은 그 속물 근성을 의도적으로 배격하는 것이었다. 십대의 원기 왕성함은 그 순수함 만큼 그 작업은 가능해 보였었다. 하나님께선 그런 나를 외부에서 줄곧 지켜 보고 계셨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타인의 이목으로부터 나에게 그런 근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현명으로 무장된 도덕성을 경륜이라 주장하는 삶이었다. 대신 이전의 하나님이란 존재의 무거움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군 이런 현상을 유혹 이라고도 하고 때론 타락 이라고도 하면서 다시 십대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길 갈망한다. 원기 왕성함이 예전과 같이 않다는 걸 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 나이 오십이 되었다. 부연한 것처럼 이제는 그 근성을 잘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이것을 일종의 승화된 체념이라 말해야 할까. 혹시 하나님께서 그걸 말씀해 주기 위해 공자를 통해 지천명을 미리 암시하셨던 것일까? 

‘결국 뻔한 삶의 이유를 명분으로 포장하여 절대자의 뜻으로 감히 가치 매김을 하려는 호모사피엔스의 발악……’ 

발악은 거부이며 이런 거부는 모순의 인지를 반증한다. 모순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곧 지천명이다.

오십 평생 자기 핑계를 일삼으며 오늘까지도 그 알 수 없는 인생의 공간 속을 헤매는 나를 변호해 주고 지켜줄 합당한 변명은 없다. 그냥 속물이란 야수의 본능을 잘 타일러 가면서 공존해야 할 뿐이다. 너무 나대지 않게 적절히 기를 죽여 가면서 그러나 가끔은 달래주어야 하는, 말도 안되는 모순의 삶을 모순이 아닌 것처럼, 속으로 그냥 울면서 모른 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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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8.04.23 21:22:09
*.182.156.212

예베슈 님의 필력은 아주 섬세하고 내밀하군요.

마음이 그렇게 글로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재미있고 따뜻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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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예베슈

2018.04.25 11:22:24
*.219.238.174

감사합니다. 요즘 전 정목사님의 '목사구원' 시리즈를 잘 읽고 있습니다. 200편 이상의 글이 나온 후에 혹시 책으로 출판하시려는지요. 

[레벨:8]바람소리

2018.04.27 08:50:48
*.105.187.79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올해 50이 되었는데, 지천명은 뭐....ㅎㅎ

profile

[레벨:10]예베슈

2018.04.28 02:44:14
*.160.88.252

그때 오십은 지금 70쯤 되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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