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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를 생각하며

조회 수 2580 추천 수 19 2005.04.08 01: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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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의 유물론이 추구하는 코뮤니티 사회의 역사발전이론은 근본적으로 합당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체제의 완결성'에서 찾는 한에서 자가당착에 봉착한다. 유물론적 변증단계의 끝은 없다. 마치 깨어지지 않는 피라밋 구조와 같다. 그것은 끝없는 환상순환구조속에 갇히고 말며, 그 과정은 피의 투쟁과 어둠의 통치로 채워질 것이다. 차라리 달콤한 환상속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선택이 현명할 지 모른다. 사실 '체제의 완결성'이란 기계적 해석의 결정판에 다름아니다. 체제란 단어가 사회구조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한에서 그렇다.


   맑스의 사회 변혁사상이 실패한 것으로 말하지만 이 사상이 추구하는 폭발성은 현재의 사회형태가 지속되는 한에 있어서 유효하게 잠복해 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지난날의 과정은 변혁사상의 자기원인의 한계라는 측면보다 반대되는 주류사상의 강력한 반발에 기인한다. 수천년동안 구축되어온 주류사상은 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이 사상은 신의 전사처럼 강력하고 잔인하며, 치밀해져 왔다. 인간의 생존본능을 해부하고, 시회구조의 유기적 관계성을 파악했으며, 신념의 역동성과 파괴력을 어떻게 결합시킬지 알고 있다. 이러한 인간속성과 사회구조의 힘을 이용하여 주류사상은 변혁사상을 잠재울 수 있었다. 주류사상국가는 안으로는 이데올로기의 강화와 심화를 통하여 변혁사상을 부정하도록 집단신념화 시키고, 사회주의 국가에게는 경제적 회유와 압박, 체제우월성을 홍보하면서 수면아래로 억눌러왔던 것이다. 한편 주류사상은 변혁운동과의 대결을 통하여 체제를 수정하고 보완할 필요를 절감한다.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자본의 본질적인 성질은 오히려 강화되고 심화한다. 산을 깎고 골을 메우면 생명이 파괴되는 것을 간과한 채,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왔다.


   이제 우리는 현실을 바라본다. 우리는 지금 생명파괴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으며 함께하고 있다. 세계의 생명탄생이 줄어들고  생명이 파괴되는 까닭이 생명파괴의 미래를 직관적으로 체화한 전조일 지 모른다. 주류사상의 한계는 이제 목전에 왔다. 최근에 자주 회자되는 신자유주의라는 것도 권력과 자본의 축적범위를 넓히려는 것에 다름아니다. 개별국가를 넘어, 지역블럭화를 넘어, 그것도 좁아서 지구를 한 단위로 묶어 삼키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주류사상의 폭발점이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변혁의 시대를 맞이한다. 역사속에 묻혀있는 생명의 씨앗들을 찾아서 모으고, 뿌리며, 현재속에 갇혀있는 생명의 숨결들을 풀어 자유케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간구해야 한다. 변혁사상이 나아가고자 하는 체제의 완결성에, 그 과정에, 생명의 숨결을 부어주는 것이, 이 파국의 시대를 극복하는 한 방편일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실천적 힘이며, 맑스가 부정하고 간과한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다. 사실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을 인간의 나약함이 빚어낸 투사라고 맑스가 부정했지만, 이 하나님을. 자신을 위하여 변형시킨 주류사상도 부정한 것에 다름아니다. 진실로 온전히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을 바라본적이 있었던가 회의한다.


   이제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과의 소통을 다시 간구할 때, 그 안에서 변혁사상은 사라지거나 폐기되지 않는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04.08 14:02:26
*.249.178.15

맑시즘과 십자가를 함께 엮는 작업은
위르겐 몰트만 신학의 특징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주류 역사의 폭발점이고 생각하시는군요.
나는 그렇게 큰 위기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위기는 늘 있었으니까
그것도 하나의 위기가 될 수는 있지만
묵시론적인 위기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구화, 세계화는 단순히 무엇을 담아내는 그릇이지
그것 자체가 실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사회과학은 내가 잘 모르니까 접어어겠네요.
역사 변혁이 '사랑의 실천'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게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이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의 능력이 있는지?
그 사랑으로 역사가 변혁될 수 있다는 것인지?
제 생각에는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역사를 냉소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그런 현실 인식일 뿐입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신학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이 십자가는 메인 스트림을 향한 강력한 신적 도적이면서도
변혁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우리는 왜 십자가가 인간과 역사를 구원하는 근거가 되는지
아직 충분하게 해석하거나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초기 기독교의 전통 안에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주류의 역사를 거부한다고 해서
주류에서 제외된 역사를 무조건 승인한다고 말하기도 힘듭니다.
허 선생,
마지막의 표현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과의 소통"은 허 선생 자신의 말이에요?
아니면 몰트만의 책에서 인용한 거에요?
하나님의 존재론과 인식론의 신비를 충분하게 따라잡아야만 이해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신이 십자가에 죽은 사건에서 변혁 사상이 폐기되지 않는다구요?
옳은 말씀이에요.
문제는 우리가 변헉하려고 노력한다구 해서 변혁되는가에 있습니다.
어디까지 변혁될 수 있을까요?
교회 개혁인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궁극적인 변혁은 역시 하나님의 개입으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역사적 변혁의 책이라고 한다면
부활은 그것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개입이겠지요.
어쨌그나 종말론을 지향하는 기독교는
혁명의 역사를 예언한 맑스를 친구로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레벨:7]허정수

2005.04.09 01:33:00
*.168.236.185

목사님의 말씀에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역사적 사건을 계시의 말씀으로
즉, 예수그리스도의 인성과 하나님의 신성의 유일회적 사건이 주는 계시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정도 입니다.
또한 '소통'은 말씀의 빛 속으로 들어 가고자하는 희망으로 표현했습니다.
저는 몰트만을 잘 알지 못합니다.
'폭발점'은 자본주의의 활동공간의 한계점과 역사적 시간의 성숙점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근간를 자본으로 읽고 있는 저의 편협함은,
신자유주의의 자본을
자기가 확보한 영역을 더욱 견고히 하려는 심화본성과
먹을거리가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하이애나와 같은 집요함,
그리고 끊임없이 신천지를 찾아 헤매는 생존본능으로서의 확장과,
새로운 땅에 자신의 방식을 심고 가꾸는 확신을 가진 적응능력,
이러한 본질을 가진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한편 주류사상의 외면은 다양하다 할 수 있지만,
그 내면에 있어서,
맑스가 본 역사개념인 자본의 대립구조로의 변증법적 지양에 상당히 동의 합니다.
물론 맑스는 자본주의의 수정,보완의 단계를 간과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고-시간의 장단은 있지만- 본 것은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십자가에 대한 주류나 비주류의 역사적 관점이 둘 다 부정적이었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십자가를 '충분히 해석하거나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인식할 준비만 해야 하는지요?
오히려 최선을 다한 노력의 한계 안에서라도,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우리가 인식하려는, 우리가 인식한 만큼의,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닐까요?
비록 가이샤의 땅에서라도...

주님의 평강이 온 누리에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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