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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조회 수 3161 추천 수 21 2005.01.13 23: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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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城)

하울의 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오두막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오두막은 아니고, 이층집 정도가 된다.
그런데도 그 집을 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실제 공간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세계가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어느 색깔에 맞추어 놓느냐에 따라서
그 밖의 세계가 네댓 가지의 현실로 변화한다.
하나는 원래의 장소인 산,
둘은 소피의 고향,
셋은 마법의 마을 ....
현관 안의 세계도 역시 ‘엘리스의 신기한 나라’처럼 여러 시간과 공간이 엇갈려 있다.
흡사 어떤 곤충의 모습과 비슷하게 생긴 이 하울의 성은
마법의 불로 인해서 무한의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지만 결국 파괴된다.
파괴된다기보다는 소피가 파괴시킨다.
그 어떤 마법이나 전쟁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던 성이지만
그 성을 지키기 위해서 하울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소피는 성을 그야말로 오두막으로 개조했다가
결국 그나마 산산이 부서진다.
여기서 구원이 발생했다.
무한의 힘을 소유한 하울의 성을 축소하고 포기함으로써
이제 생명의 힘이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작된다.
과연 하울의 ‘성’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군사기업, 국가주의, 혹은 핵에너지인가?
그것은 좋은 뜻이었든지 나쁜 뜻이었든지 자체적으로 완전한 방어가 가능한 어떤 체제이다.
그것은 곧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그것 자체가 성으로 남아있는 한 평화는 요원하다.
평화는 힘으로 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게 미야자키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아름다운 평원 위를 날아가는 폭격 군함을 보고 소피가 하울에게 누구 편 군함인가 묻는다.
그때 하울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편이든, 적이든 마찬가지야.”

이 에니에는 위에서 말한 가장 큰 주제 말고도 몇 가지 소소한 주제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젊음과 늙음에 관한 경구들이다.
17살 소녀 소피가 마법에 걸려 90살 노파로 변한다.
이 노파는 늙음의 미학을 피력하고 있다.
“늙으니까 무서운 게 없어서 좋군.”
“늙으니까 잃을 게 별로 없어서 좋군.”
90살 노파가 느끼는 평화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경지니까 말이다.
시간에 대한 미야자키의 생각도 이 영화에 담겨 있다.
물론 동화의 특성이 그런 것처럼 여기에도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소피가 하울의 어린 시절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여행 같은 것 말이다.
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혼재하는 것일까?
이게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실재의 시간과 전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이런 논리를 당연하다.
지금의 1년은 긴 것 같지만
100억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동시의 시간이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상반된 장면이 교차하고 있다.
하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과 일상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장면이다.
전쟁과 평화는 늘 우리와 함께 하는 현실들이다.
소피를 노파로 만든, 그리고 하울의 심장을 먹으려고 하는 황야의 마녀가
모든 힘을 잃고 소피의 시중을 받는 신세가 되었는데,
소피는 그녀를 끝까지 돌본다.
미야자키는 그 황야의 마녀를 보기 좋게 끝장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끌어들였을까?
우리는 악과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 악이 능력을 잃었기 때문일까.
혹은 소피의 지극한 사랑, 무심의 경지에 이른 사랑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었을까?

그건 그렇고,
그림도 볼만 했다.
이번 겨울에 본 미야자키의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에 비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볼만한 장면들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성 자체의 모양이나 움직임에 실감이 있었고,
산이나 평원, 강 같은 자연에 대한 묘사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이 에니에 나오는 소피는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하다.
소피의 세계에 나오는 소피도 이 영화의 소피와 마찬가지로
현실과 비현실,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어떤 궁극적 실재를 경험해나간다.

일종의 구원론적 지평을 확보하고 있는 이런 대중문화 현상 앞에서
신학은 어떻게 구원을 설명해야만 할까?

이길용

2005.01.14 02:59:26
*.113.130.54

역시 정목사님 답게 세밀하고 섬세한 평.. 정말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동화로 먼저 나와있습니다. 그것도 한번 읽어보세요~
동화를 쓴 다이애나 윈 존스 여사는 '하울의 성'에 다리까지 달아주고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동화로 만들어준 미야자키의 솜씨에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레벨:6]유희탁

2005.01.17 08:47:37
*.230.164.165

저도 이번에 수련회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하울의 멋진 모습에 탄성을 지르던데....
역시 목사님은 구원과 세상을 보는 시간에서 지켜보시네요...
영화를 보면서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목사님과 이길용박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감독의 숨겨진 의도를 발견하는 제2의 탐험을 요청하는 것 같습니다..
성서를 보는 눈도 아마도 성서가 말하려는 숨겨진 의도..본의를 찾는 탐험을 해야 하겠죠...
이 영화를 보면서...한 가지 느낀 것은...사랑은 모든 것의 우선이었다는 것이고...소피가 구원자로..모든 것을 정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두서가 너무 없네요...암튼...추천해주신 영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이 글도..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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