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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조회 수 324 추천 수 2 2024.02.03 11: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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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나와 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1. 여호와(Jehovah)
(1) 이름의 역사
1) 이름의 뜻이 정의됨(6:3-5)
2) 처음으로 불리워짐(4:26)
3) 야훼라는 단축형으로도 사용됨(68:4)
(2) 이름의 뜻
1) 주권적 자유에 따라 행동하는 자존자(3:14에서 계시된 히브리어 ‘haya’의 기초 위에서 설명-33:19)
2) 있게 될 것을 잇게 하는 즉 창조자요 역사를 형성하는 자(3:7-10, 15)

2. 하나님은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는가?
(1) 지존자(至尊者: El Elyon, Elyon-highest, The most high): 땅과 하늘의 소유자, 땅과 하늘을 다스리는 권위(14:18-22, 7:17); 통치
(2) 전능자(全能者: El Shaddai, Shad-the breast, The Almighty): 양육, , 만족(17:1, 5:17, 13:6); 양육, 보호
(3) 자존자(自存者: I am Who I am, Lord, 여호와): 계시, 구속(2:4, 3:4); 구속, 계시
(4) 창조자(創造者: Elohim, The Strong One, God, 하나님): 창조(1;1); 창조

3. 모든 필요의 충족자 되시는 복합적 이름
(1) 여호와 이레(Jehovah Jireh): 주께서 준비하시리라(이삭 대신 수양을 준비); 공급(22:13-14)
(2) 여호와 라파(Jehovah Rapha): 치료하는 여호와(마라의 쓴 물을 고치시고 질병에서 치료; 치료(15:25)
(3) 여호와 닛시(Jehovah Nissi): 여호와는 나의 깃발, 우리의 깃발이신 주(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 승리(17:8-15)
(4) 여호와 샬롬(Jehovah Shalom): 여호와는 나의 평강, 우리의 평화이신 주(기드온에게 나타나시고 살게 하심): 평강(6:23-24)
(5) 여호와 라아(Jehovah Ra-ah): 여호와는 나의 목자, 나의 목자이신 주(Roi-나의 목자, Roe-목자): 인도(23)
(6) 여호와 쉬드케누(Jehovah Tsidkenu): 여호와는 우리의 의, 주는 우리의 의(참 목자, 다윗의 후손, 그의 의): 칭의(23:6)
(7) 여호와 삼마(Jehovah Shamma):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이제도 계신 여호와: 임재(48:35)
(8) 여호와 체바오트(Jehovah Sabaoth): 만군의 여호와: 권위, 권세(삼상 1;3, 15:2, 84:8, 23;16)
(9) 여호와 메카이쉬켐(Jehovah Meqaddiskem):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거룩(31:13)
(10) 여호와 엘 게물로트(Jehovah el Gemulot):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 보복(51:56)

4. 서술적인 표현
(1) 살아 계신 하나님(Elohim hayyim): 구원할 능력이 없는 다른 신과 비교(삼상 17:26, 36, 왕하 19:4, 16, 10:10, 살전 1:9),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생동하는 신의 개념(5:26, 3:10, 23;36, 42:2)
(2) 처음과 나중(rison wa aharon, arche kai telos): 이사야가 시간의 전부를 주관하시는 야훼의 영원한 주권을 표현(44:6, 48:12), 하나님의 주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나 있다는 믿음 속에 표현(1:8, 17, 2:8, 22;13)
(3)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atik yomin);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함께(6:26, 12:7), 다니엘이 묘사한 하나님의 모습(7:9, 13, 22), 역사성과 동시에 초월성 강조

5. 그 이외의 칭호들
(1) 엘 올람(El Olam): 영원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부른 하나님 칭호(21:33), 시간성을 초월한 여호와의 높으심이 이 선포에 근거함(90:2, 93:2, 26:4, 40:28)
(2) 엘 로이(El Roi):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갈을 보살펴 주신 데 대하여 하갈이 붙인 이름(16;13)
(3) 엘 엘로에 이스라엘(El Elohe-Israel): 이스라엘의 하나님 엘, 아브라함이 세겜에서 장막 친 곳을 구입한 후 단을 쌓고 붙인 이름(33:18-20).
(4) 여호와 하나님(Yahwah Elohim): 여호와와 하나님의 결합(2:4-3:24)
(5) 바알(Baal: , 소유자): 사람의 지도자(21:28, 9:6, 16:8), 가축의 소유자에게 붙임(1:3), 가나안 민족의 종교신으로 폭풍과 풍요의 신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으나 하나님에게도 사용됨(2:8, 7:9, 2;16), 사울과 다윗이 이 명칭을 사용하여 자녀의 이름을 짓기도 함(삼하 4:1, 5, 대상 8:33-34, 14:7).
(6) 아돈(Adon): 바알이 신의 이름임에 반해 아돈은 본래 존칭어로 상급자에 대한 정중함과 존경을 표하는 칭호로 사용됨(18;12, 24;12, 44;18, 21;5, 11;28, 22;18), 가장 높은 의미의 명예와 주권을 가진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3:11, 13, 97:5, 4;13, 4:14, 6:5), 야훼와 동격으로 사용됨(23:17, 34:23, 1:24, 3:15, 10:16, 8:1). 야훼를 대신해서 사용됨(90:1, 114:7, 6:1, 8:11, 3:1).

6. 기타 다른 칭호들
(1) 반석: 모세의 노래에 나타남(32:4, 15, 18, 30-31), 이스라엘은 야훼가 이스라엘의 반석임을 확인함(30:29), 야훼는 영원한 반석이라 불리움(26:4), 반석은 곧 그리스도임(고전 10:4)
(2) 아버지, 형제, 친척: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사실에 반영됨(4:22-23, 11;1-4), 여호와께서 왕을 자기 아들로 택하셧다는 사실에도 반영됨(삼하 7:14-15, 2:7), 이스라엘의 국민들의 이름에 나타남(1;9, 12, 삼상 16:6).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야훼, 즉 스스로 있는 자, 곧 자존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사실은 야훼, 즉 스스로 있는 자, 곧 자존자는 이름이 아니다. 이것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없다고 하셨을까?

 

노자도덕경 제1장은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라고 말한다. 이름 없음은 천지의 시원(始原), 즉 우주의 본래의 모습을 말하고, 이름 있음은 만물을 생겨나게 한 어머니이다.

 

노자도덕경은 시작부터 도()와 이름()에 대해 말한다. 이름이란 경계지움이다. 이름이란 개념이고 관념이다. 이름이란 생각의 일어남, 즉 분별심(分別心)이다. ‘를 이름 지으니 나 아닌 것들의 경계가 생겨나고, ‘()’을 이름 지으니 ()’’()’의 경계가 생겨난다. ()와 무(), 음과 양, ()과 유(), ()과 허(),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앞과 뒤, 큼과 작음, 안과 밖, 높음과 낮음, 귀함과 천함, 몸과 마음 등 이분법적 사유가 그 이름 지움으로부터 생겨나니, 만물은 이로부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인식이 그 대상물의 상(), 즉 표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상이란 다름 아닌 언어로 된 개념이나 관념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표상을 통해서 만물에 대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므로 이름 없음(無名)은 대상으로서의 만물이 아직 인간의 인식 지평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노자가 언어로 된 이름()이 끊긴 그 자리가 바로 천지의 시원(始原)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대상을 마주할 때 우리가 대상으로 접한 것은 실재가 아니고, 그 대상에 대한 이름, 즉 개념이나 관념, 그리고 표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언설에서 무명(無名)적 사유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름은 대상을 지칭하는 표상일 뿐, 실재가 아니며, 진실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달은 아니라는 말과 같다(見指忘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그것은 방편일 뿐이다. 아무리 달을 보아라! 저기 있는 달을 보아라! 라고 외쳐대도 사람들의 눈엔 달은 보이지 않고 손가락만 보인다. 그래서 그 손가락이 진짜 달인 양 착각하고 거기에 매달린다.

 

그 손가락에 매달려 분별심(分別心)을 내며 그 분별심(分別心)에 집착하니, 본디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 본디 모습, 즉 실재(實在), 곧 리얼리티(reality)란 무엇을 말하는가? 노자의 일성을 들어보자. 노자는 도덕경 제1장에서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이라고 말한다. ()가 도()라고 말해지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지으게 되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찾는 길, 우리가 찾는 실재, 우리가 알고자 하는 진정한 도()는 언어로 말해지는 순간, 그 본래의 도(), 즉 상도(常道)로부터 이탈한다. 이것이 진짜 도()라고 지시하는 순간, 언어적 명칭을 붙이는 순간, ()과 수()를 언표하는 순간, 그 언어는 이미 하나의 상()에 불과할 뿐, 실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제한적인 의미로만 도()를 지시할 뿐이다. 그래서 노자는 가도(可道)라 했다. ()’자의 의미가 재미있다. ‘()’()’의 뜻이다. 즉 가도(可道)란 일정한 한도 내에서만 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도(可道)는 상도(常道)는 아니다.

 

그와 똑같이 불가피하게 언어적 명칭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가명(可名)이라 했다. 역시 가명(可名)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변치 않고 영원한 그런 이름이 아니다는 말이다. 필요에 의해서 이름을 지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그 이름은 매우 제한된 의미로만 쓰일 수 있는 이름이어서 그래서 가명(可名)이다.

 

다시 노자의 말을 경청해보자. 도덕경 제32장은 도상무명(道常無名) 시제유명(始制有名)”이라고 말한다. ()는 항상 이름이 없다. 시작하게 되니 이름이 생겼다. ()의 실상은 이름 없음(無名)의 상태라는 말이다. 다만 언어로 된 우리 인식의 시작으로 인해 이름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는 궁극의 상태는 언어적 분별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사유나 방법론으로는 다가갈 수 없다. 실용의 세계에서 우리 인식의 분별은 분명 필요하고 유용하다. 그래서 언어적 개념, ()과 수()를 통해 인간의 인식과 실천은 풍요로워졌고 인류 문명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발전한 문명의 한계는 바로 그것을 있게 한 이름과 그 이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이 이른바 이름값일 것이다. 이름은 쓰임을 위해 나와서 유익함을 주지만 그 이름으로 인한 대가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상도(常道)’를 추구하는 길에 이름은 충분히 방해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자의 사유법에 의하면 상도(常道)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 곧 구경(究竟)의 세계는 본디 이름 없음(無名)의 그 자리로 되돌아갈 것을 종용하는 것으로 읽혀지게 된다.

 

그래서 위진(魏晉) 시대 노자 주석가 왕필(王弼)이 남긴 득의망어(得義忘語)’, ‘득의망상(得義忘象)’의 사유법은 지금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뜻을 얻었으면 언어()와 상()을 잊으라는 말이다. 언어()와 상()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기 때문이다. 분별의 상()을 여의고 만물일체자(萬物一切者)의 실상(實相)을 바로 보지 않으면 온전한 지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음이다.

 

이분법적 분별지(分別智)는 세계를 둘로 나눔으로써, 어느 일방은 나머지 다른 일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독립적인 것으로 여긴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한 편의 선택을 선호하거나 강요한다. 분별지(分別智)는 원래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을 나누어 놓고서, 그 다음에는 대립되는 어느 한쪽을 지지하고 선택하게 되고,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적대시하여 척결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한 분별은 인식과 실천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불교는 사량분별지심(思量分別之心: 생각하고 헤아려 분별하는 마음)을 금하고, 성서는 선악과나무, 즉 선과 악에 대한 지식나무, 곧 내가 가진 알량한 지식으로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라고 하는 지식나무를 먹지 말고 생명나무를 먹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분별하는가? 시비(是非)와 선악(善惡)과 호오(好惡)를 분별한다. 시비(是非)란 진리에 관련한 것으로 과학적 지식의 대강을 이루고, 선악(善惡)이란 윤리적인 척도로 인간 도덕의 실천적 지도로 활용되고, 호오(好惡)는 예술적 안내 지도와 지침이 되어 미학을 구성한다.

 

그러나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렇게 언어로 사량(思量)되어 나누어진 분별지(分別智)는 가도(可道)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언설된 도(), 즉 가도(可道)는 항상된 도()가 아니다(非常道). 한편 이름도 우리가 유용하고 편리해서 어떤 대상을 지칭해 이름을 붙였으나, 이름이란 다름 아닌 그 대상을 실재에서 분리시켜 인식하고 그 대상을 원래의 경계 없는 상태에서 분리시켜 경계 지우는 것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이름은 이름이라 부를 수는 있으나(名可名) 항상된 이름은 아니다(非常名)라고 하는 것이다.

 

이름은 약()과 독()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름은 유용하게 쓰이면 약()이 되지만 그것의 처방전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독()이 되는 이중성을 애초에 회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유용하게 써야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름에 얽매이게 되면 그것은 그 의미가 왜곡되거나 제한되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과 독()의 이중성은 노자의 언어로 바꾸면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가슴에 안고 있다(萬物負陰而抱陽)”라는 말과 같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한약재에 부자(附子)’라는 약()이 있다. 이 부자(附子)는 매우 뜨거운 열성을 갖고 있어서, 몸이 약하거나 냉한 환자에게 처방하는 매우 좋은 ()’이다. 그러나 부자(附子)는 옛날에 임금이 신하를 유배시키고 사약을 내릴 때 썼던 사약, 즉 독()의 주된 성분이기도 하다. 펄펄 끓도록 뜨거운 방안에서 이 부자(附子)가 든 사약을 먹이면 열에 치받혀서 결국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附子)가 갖는 ()과 독()의 이중성을 잘 알고 이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의사는 이미 명의의 반열에 든다고 한다.

 

만물은 이 약()과 독()의 이중성을 노래하는 중창단과 같다. 우리 몸 안에 활성산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몸이 위기의식을 느낄 때 분비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하면 몸은 자동적으로 한편으로는 우리 몸을 방어하고, 또 한편으로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상태로 돌입하는데, 바로 그때 분비되는 것이 이 활성산소이다. 문제는 이 활성산소는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해서 분비되었지만(즉 약()이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약화시킨다든지 암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즉 독()이다)는 점의 양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데 있다.

 

그와 같이 만물이나 하나님의 이름은 본래 없는 것이지만 이름으로 규정 지을 때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름에 현혹되지도 집착되지도 말고 그 실재를 잘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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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2.03 20:46:50
*.137.91.189

브니엘남 님의 식견이 물씬 풍기는 귀한 글을 한 호흡으로 잘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서 시작해서 활성산소까지 이어졌네요.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레벨:29]모모

2024.02.03 23:02:37
*.134.194.227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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