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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기원과 역사에 대하여

조회 수 1425 추천 수 0 2022.10.28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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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올리는 이 글은 <이교에 물든 기독교: 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서> 중에서 설교에 관한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설교의 기원과 역사

 

현대 기독교 설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1) 규칙적으로 -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변함 없이 강단에서.

2) 똑같은 사람에 의해 - 일반적으로 목사 또는 안수 받은 초청 강사에 의해.

3) 수동적인 청중을 향해 - 본질적으로 일방적인 독백임.

4) 다듬어진 연설 형식으로 - 일반적으로 서론, 3개에서 5개쯤 되는 요점, 그리고 결론 이렇게 일정한 구조로 되어 있음.

 

다음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설교와 가르침의 특징들이다.

1) 청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청중에 의해 중단되는 일이 흔했다.

2)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정해진 원고가 아닌, 당면한 문제에서 생긴 부담을 안고 즉석에서 외쳤다.

3) 구약성서의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정기적으로 설교했다는 암시가 없다. 오히려 구약성서식 설교의 본질은 산발적이고, 유동적이며, 청중의 참여에 열려 있었다. 고대 회당에서의 설교도 같은 방식을 따랐다.

 

이제 신약성서로 가보자. 예수님은 똑같은 청중을 향해 정기적으로 설교하시지 않았다. 주님의 설교와 가르침은 여러 다른 형식들을 취했다. (물론 주님은 가르침의 대부분을 제자들에게 집중시키셨다. 하지만,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는 언제나 즉석에서 나왔고 격식이 없었다.)

 

주님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설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1) 그것은 산발적이었다.

2) 그것은 특별한 문제를 다루고자 특별한 경우에 전해졌다.

3) 그것은 즉석에서 행하여졌고 수사학적 구조가 없었다.

4) 그것은 일방적인 독백 설교가 아니라 거의 대화체 형식을 띠고 있었다. (, 청중의 의견을 포함했고 그들에 의해 설교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의 사역을 교회의 일반 모임들에서 교회 전체가 감당했음을 신약성서의 서신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 사역에 가르침, 권면, 예언, 노래, 충고가 포함되어 있음을 로마서 12:6-8, 15:14, 고린도전서 14:26, 그리고 골로새서 3:16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모든 지체"가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또한 대화형식이었고(고전 14:29), 중단되는 것이 특징이었다.(고전 14:30) 마찬가지로 지역교회 장로들의 권면도 보통 준비 없이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사도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게서 설교를 물려받았는가? 그 대답은 분명하다: 기독교의 설교는 이교 그리스 문화에서 도입된 것이다!

 

설교의 진원지를 찾으려면 우리는 소피스트(궤변론자)라고 불렸던 주전 5세기의 떠돌이 교사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피스트는 수사학(설득력 있게 말하는 기술)을 만들어낸 장본인들로 알려졌다. 그들은 제자들을 택했고, 또 그들이 하는 연설의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소피스트는 전문적인 토론가였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팔기' 위해 외모에 신경을 쓰고, 감정에 호소하고, 재치 있는 말을 구사하는 데 능했다. 머지 않아 소피스트의 스타일과 형식과 연설기술이 그들이 말하는 내용의 정확도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스타일을 위해 스타일을 개발하다"라는 강령을 내건 전문가 집단을 양산해냈다. 그들이 외친 진리는 그들의 삶 속에서 실천된 진리가 아닌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들은 실제적이 아닌 형식을 모방하는 데 있어 숙련된 달인이었다.

 

소피스트는 당대에 가장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연설만 해서 먹고 살았을 정도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영예를 위해 대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동상을 건립하도록 하기도 했다.

 

1세기 후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3개의 개요로 연설하는 것을 수사학에 가미시켰다. 그는 "전체가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머지 않아 그리스 연설가들은 그들의 연설에 아리스토텔레스의 3가지 개요 원리를 접목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수사학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래서 소피스트에 대한 대우가 좋았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을 때, 로마 사람들 또한 수사학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누군가에 의한 유창한 연설을 듣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개발시켰다. 이것이 얼마나 유행했는지, 저녁식사 후에 전문 철학자에게서 '짧은 설교'를 듣는 것이 일종의 정기적인 엔터테인먼트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수사학을 가장 위대한 예술의 하나로 여겼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연설가들은 오늘날의 미국인들이 영화나 프로 스포츠 스타들을 떠받들 듯 아주 화려한 지위를 영위했다. 그들은 당대에 찬란하게 빛나는 스타들이었다.

 

그리스 연설이 어떻게 기독교 교회 속으로 파고들게 되었을까? 3세기를 전후해서 상호 간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시들어지게 되자 공백이 생겨났다. 이 때 즈음 예언의 부담과 자발적 확신에 의해 말씀을 전했던 순회 사역자들이 교회 역사의 장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 사람들의 공백을 메우려고 성직자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열린 모임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교회 모임은 더욱 더 의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교회 모임''예배 의식'으로 탈바꿈해버린 것이다.

 

계급적 구조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종교 전문가"의 개념이 생겨났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 지체의 기능을 발휘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진화된 교회 구조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의 은사들을 사용할 곳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4세기에 와서 교회는 완전히 제도화되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많은 이교 연설가와 철학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결과, 이교 철학사상들이 부지 중에 기독교 공동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 초창기에 교회의 신학자나 지도자가 되었다. 그들이 바로 "교부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이고, 그들이 쓴 문서 일부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다.

 

따라서 돈을 받고 연설을 하는 훈련된 전문 연설가의 개념이 기독교 주류 속으로 직수입되었다.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받지 않으려고 자기 직업을 따로 갖고 있던 것이 유대교 랍비들의 관습이었다.

 

기독교 교회 안에 새로운 스타일의 메시지 전달 수단이 탄생하게 되었다 - 품위 있는 수사법, 세련된 문법, 화려한 웅변, 그리고 일방적인 스타일. 그것은 설교자의 연설기술을 과시하도록 설계된 스타일이었다. , 그리스와 로마식 수사법이었다. 그리고 오직 수사학에 훈련된 사람들만 청중 앞에서 연설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어떤 학자는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기독교 메시지의 선포는 원래 쌍방통행의 대화였다 ... 그러나 서방 세계 연설의 대가들이 기독교 메시지를 손에 넣게 되자 그들은 그것을 아주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연설이 대화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이다. 연설가의 위대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건을 대체해버렸다. 그리고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대화는 시들해져서 일방적인 설교로 탈바꿈해버렸다.

 

일찍이 3세기경,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설교를 그리스 연설가들이 그들의 연설에 붙였던 것과 같은 이름인 하멀리스(설교)로 불렀다. 오늘날에는 설교하는 것을 배우려고 '설교학'이라는 과목을 택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리스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가서 수사학 법칙이 적용된 일종의 과학'이라고 여겨진다.

 

존 크리소스톰은 당대에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설교자 중의 하나였다. (크리소스톰은 '금으로 된 입'이라는 뜻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크리소스톰의 설교보다 '더 능력 있고, 재치가 번뜩이고, 솔직한' 설교는 결코 들을 수 없었다.

 

천부적인 연설가의 재주를 가졌던 크리소스톰은 4세기의 탁월한 소피스트였던 리바니우스 문하에서 연설하는 법을 사사했다. 크리소스톰의 유창한 강단설교를 따라갈 사람은 없었다. 그의 말재주가 얼마나 탁월했던지, 그의 설교는 종종 회중의 박수갈채에 의해 중단되기도 했다. 크리소스톰이 어느 날 하나님의 집에서는 박수소리가 적합하지 않다고 그것을 비난하는 설교를 했는데, 이에 아랑곳없이 설교가 끝나자 그의 설교에 매료된 회중에게서 또다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 얘기는 그리스 수사학의 못 말리는 위력을 증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크리소스톰과 전직 수사학 교수였던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을 강단설교를 기독교 신앙의 주요 부분으로 유입시킨 장본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스식 설교는 크리소스톰에 와서 절정에 달했다. 그리스식 설교 스타일은 수사학적인 재능과 시구의 인용이 두드러졌고, 청중을 감명시키는 데 그 초점을 맞추었다. 크리소스톰은 "설교자가 유창한 웅변능력을 얻으려면 자신의 설교를 놓고 장시간 씨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거스틴에게는 라틴 설교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라틴 설교 스타일은 그리스 스타일보다 더 실제적이었다. 그것은 "보통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더 단순하고 도덕적인 면을 다루었다. 츠빙글리는 존 크리소스톰을 그의 설교 모델로 삼았고, 루터는 어거스틴을 그의 모델로 삼았다. 라틴과 그리스 스타일 둘 다 알기 쉽게 해설하는 형식과 구절을 한 절씩 해석하는 주석 형식을 포함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은 그리스 소피스트의 계보에 속했다. 그들은 세련된 기독교 수사법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기독교'설교, 즉 내용은 성서적이지만 스타일은 그리스적인 그런 설교를 물려주었다는 말이다.

 

루터는 교회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한 때 교회 건물을 '입 또는 연설의 집'이라고 불렀다.

 

루터를 신호탄으로, 장 칼뱅은 설교자를 '하나님의 입'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둘 다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개념을 신랄하게 비난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개혁자가 수사학을 공부했고, 어거스틴이나 크리소스톰이나 오리겐이나 그레고리 같은 사람들의 그리스와 로마식 설교에 크게 영향받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청교도들은 칼뱅에게서 설교방법을 빌려왔다. 그 방법은 어떤 식이었을까? 그것은 매주 성서를 조직적으로 강해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교부들에게서 물려받은 방법으로써 르네상스 때 유행했던 것이었다. 르네상스 학자들은 고전문학 작품들의 문장마다 주석을 달았었는데, 칼뱅이 이런 방식의 대가였다. 그는 회심하기 전에 이교 학자인 세네카의 주석에 이 스타일을 적용시켰다. 회심하고 설교에 눈을 돌렸을 때는 똑같은 분석방식을 성서에 적용시켰다.

 

청교도들은 장 칼뱅의 발자취를 따라서 교회의 모든 예배를 성서의 조직적인 교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들은 영국을 개신교화시키면서(영국 국교회의 오류들을 정화하면서) 그들의 모든 모임을 매우 구조적이고 방법론적이고 논리적인 성서구절 강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개신교를 '성서'의 종교라고 강조했다.

 

청교도들은 또한 '평범한 스타일'이라는 설교방식을 고안해냈다. 이 스타일은 설교원고를 암송하는 것에 그 뿌리를 두었다. 그들은 성서 본문을 나누고 더 세분해서 나누고 분석함으로써 설교를 우수한 과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방식은 오늘날도 여전히 수많은 목사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부연하자면, 청교도들은 한 시긴짜리 설교(어떤 청교도 설교는 90분 동안 계속되었음), 회중이 설교를 듣고 기록하는 관습, 네 개의 부분으로 작게 나뉜 설교 개요, 그리고 목사의 설교원고 노트의 사용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현대 설교에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인 대각성 운동은, 초기 감리교회들에서 유행했었고 지금도 현대 오순절 교회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부류의 설교에 책임이 있다.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강단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 등을 포함한 강한 감정의 표출은 모두 이 전통에서 이어받은 것들이다.

 

현대 설교의 기원에 대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독교는 그리스와 로마식 수사학을 택해서 그 목적을 위해 도입한 다음 침례(세례)를 베풀고, 강보로 쌌다. 그리스식 설교는 2세기 경에 기독교 교회에 침투했고, 4세기 때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 같은 강단 설교자들에 와서 절정에 달했다.

 

설교는 그리스 수사학의 자궁 속에서 잉태되었다. 그것은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그들의 연설방식을 교회로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태어났다. 3세기에 가서 기독교 지도자들의 설교가 일반화되었다. 4세기에 가서는 설교가 표준이 되었다.

 

프랭크 바이올라/조지 바나 지음, 이남하 옮김, <이교에 물든 기독교: 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서>, 대장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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