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이 되고 사랑채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정목사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께서 제 글에 반응해 주시면서 때론 칭찬해 주시고 때론 격려해 주셨지요. 사실 그 관심과 사랑때문에 처음으로 수필집을 출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곳 다비아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보니 적은 양이 아니라서 여기에 더 글을 추가해 보니 250여 페이지 정도의 책 한권 분량이 되더라구요. 미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한국에 출판사를 접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대장간' 이라는 독특한 출판사를 관심있게 지켜 보다가, 이 출판사는 어쩜 제 글을 출간해 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잘 알고 계신 것 처럼, 이 출판사는 얼마 되지 않는 진보주의 기독교 출판사 중 하나이면서, 규모에 비해 출판 빈도가 높은 나름 탈자본주의 출판사이지요. 비교적 주변 독자평이 좋고, 기독출판계에서도 그 독특성을 인정받는 귀한 회사라서,
저같이 이름없고 불쌍한 사람도 출판사의 존재 목적과 동일하면 과감히 책을 발행해 주는 고마운 회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요.
단지 이 출판사가 저비용 구조로 가다보니, 표지 디자인이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들을 중간에 생략하고 실비용 출판으로 갈 수 밖에 없어서, 눈에 띄는 고비용의 장식들을 과감히 포기해 버립니다. 책을 작성한 저자 입장에서 보면 책표지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관찰됩니다. 하지만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책을 출간하려는 대장간 출판사의 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제 생애 첫번째 책이라는 이 기쁨을 이 곳 다비안님들과 꼬옥 나누고 싶습니다. 막상 책이 출간이 되니 출간될 때까지 지나왔던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복습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늘 무섭고도 편안한 알 수 없는 그 분 이시죠...
출판사에는 책 제목으로 '야물딱진 개독교 칠칠맞은 기독교' 로 제안을 했는데, 제목 속에 너무 큰 담론을 담기보다는 신앙 에세이라는 느낌이 더 좋다는 편집부의 생각에 따라 '남을 가져야 산다' 로 책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제목인 '야물딱진 개독교 칠칠맞은 기독교' 는 프롤로그의 제목으로 옮겨졌습니다.
참 책을 처음 내다보니 제가 말이 참 많네요... 사실 아직 제 손에 이 책을 잡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온라인을 통해 확인했을 뿐입니다. ㅜ.ㅜ
그 프롤로그를 이렇게 썼습니다.
'야물딱진 개독교 칠칠맞은 기독교'
산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건 ‘기억’ 한다는 것이 될 것 같다. 기억하고 있는 많은 것 중에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행복’ 의 기억도 있겠지만,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도 항상 같이 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미래에 이루고 싶은 기억을 ‘믿음’ 이라는 이름으로 영혼 속에 자주 각인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건강’ 이 최고라고…… 그래서 이 책은 기억, 행복, 스트레스, 믿음, 건강의 순서로 전개된다.
모든 글의 바탕에는 청렴한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고자 했던 몸무림이 깔려 있다. 또한 그런 몸무림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던 현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같이 존재한다. 어린시절엔 없었던 ‘개독교’ 라는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비판적 시각을 무조건 기독교인이 당해야 하는 핍박이나 환란으로 해석하면서 기독교는 더 개독교스러운 모습으로 변질됨을 지켜보았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해석을 황제의 왕자로 착각하기 시작하면 기독교는 세상보다 못한 존재감으로 타락되어 간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개독교라는 야물딱진 종교로 변화되어 버린다. 모든 이권과 이윤획득에서 결코 지는 법이 없는 훌륭한 생존전략가로 변신하게 됨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 결과로 얻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그 교만함을 교묘하게 하나님께로 돌려버린다. 또한 개독교는 그 이권과 이윤을 비판하려고 하는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을 하듯 신랄한 복수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 된 듯 그들을 정죄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고수하는 데에 실수하는 법이 없다. 정말로 야물딱지게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고야 마는 타고난 생존가 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개독교는 야물딱진 종교이다.
어감과는 달리 ‘칠칠맞다’ 는 사실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칠칠맞지 못한 것’ 이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정확한 표현이다. ‘칠칠하다’ 는 그 사전적 정의가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 를 뜻하는 좋은 말이다.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는 비록 칠칠맞지 못하게 답답한 원리를 따르는 한심한 집단으로 오해 받는다 하더라도, 선한 원칙을 내면에 담고 겸손함과 청렴함으로 끈질기게 버티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그런 이상적 삶을 통해 사회속에서는 칠칠맞지 못하게 보일지라도 사실은 그것이 칠칠맞는 행동이 될 수 있다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따라서 ‘야물딱진 개독교와 칠칠맞은 기독교’ 는 눈에 보이는 뜻과 실제적인 뜻의 차이를 통해 크리스찬의 현재 모순과 미래의 희망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논리적 전개에만 초점을 맞추고 쓴 글은 절대 아니다. 이 글은 수필을 작성했던 그 당시 상황이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어떤 글은 존칭으로 또 어떤 글은 비존칭으로 쓰여지면서, 소소한 생활의 그림자 속에 담긴 하나님에 대한 추억과 삶의 이유를 그저 발버둥치는 심정으로 때론 주장하고 때론 한탄하였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386세대 후발주자로 성장하면서, 386세대의 처절했던 사회적 투쟁이 급격히 X 세대의 독특한 낭만으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느 새 미국땅에 삶의 둥지를 틀어버린 고독한 이민자의 생활이 이 글의 숨결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기독교였었다. 잠시 개독교의 시대가 있었지만, 짱독교가 되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예베슈 님의 실명이 신용교, 맞지요?
제 이름과 가운데 글짜가 같아서 반갑습니다. ㅎㅎ
성이 신이고 이름이 용교네요.
특별한 느낌이 전달되는 이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평소 예베슈 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시선이 고유하고 글의 흐름이 좋다고 느겼는데
이렇게 책으로 묶여나오게 되었으니, 잘 됐습니다.
구매해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첫번 책 '믿음으로 본 세상'을
1996년도에 대장간에서 출판했습니다.
앞으로 예베슈 님이 글쓰기를 통해서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