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작고 하찮은 단풍나무

조회 수 1484 추천 수 0 2021.03.12 10: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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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는

아주 작고 하찮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작고 하찮은'이라고 표현해서 좀 미안한 감이 있지만

볼품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 해를 봐왔는데 몸통이 어째 더 얇아지는 느낌이고

가지들은 정말이지 부실하기 짝이 없어요.

원래 나무는 저렇게까지 변화가 없나, 싶을 만큼

늘 그렇게 작고 하찮게 뭐랄까 버티듯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실은 그래서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동생과 집앞 작은 산에 올라갔다 오는 길에

그 단풍나무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얀 꽃뭉치 같은 것이 두 군데서 나부끼고 있더라고요.

순간 꽃인가, 했지만 한두 해 단풍나무를 본 게 아닌데

하얀 꽃은 처음입니다.

그래 참 이상도 하구나 싶어 다가갔더니

얼핏 보기에 비둘기 깃털 같더라고요?

비둘기 놈이 우리 단풍나무에 깃털을 꽂아두고 갔다고,

아주 깜빡 속았다고 혼자 크게 웃었어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깃털이 바람이 부는데도 의연해요. 

깃털은 훅 날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손을 뻗쳐서 스마트폰으로 건드려 봤는데

날아가기는커녕 이리저리 대롱대롱 약올리듯 흔들리는 겁니다.


무.서.워.


뭐지? 뭘까?

사진을 몇 장 찍어두고 계속 고민해봐도 답이 안나왔습니다.

숲 해설가인 서울샘터 이 집사님께 여쭤보고 기다렸지요.

저녁 때쯤 나가는 길에 다시 봐도 역시 아까 모습 그대로입니다.

'작고 하찮은' 단풍나무에 뭐가 저렇게 붙어있는 걸까,

아주 궁금하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집사님이 답을 알려줬어요.

일종의 균사체라고 합니다.

버섯 같은 것인가 봐요.

날이 건조해지면 날아간다고 하니 지켜보기로 합니다.

혹시 저 솜뭉치 같은 것이 단풍나무의 영양분을 죄다 빨아들여

어느 날 단풍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래도 며칠 지켜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균사체 놈을 떼어내야겠습니다.


작고 하찮은 단풍나무야, 

작고 하찮아도 괜찮아.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ps. 단풍나무 왈, 나는 작고 하찮지 않아.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살아. 이럴 수도 있겠네요.^^


단풍나무 균사체2.jpg



단풍나무 균사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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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Nomad

2021.03.12 16:05:53
*.229.77.108

집사님을 반기며 흔드는 손사래(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집사님도 반기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시기를...!

재미있는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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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1.03.12 22:26:47
*.181.143.58

균사체인지 뭔지, 아름답네요.

장애동생을 데리고 산보 다니는 착한 누나라서 

어떤 사람이 일부러 설치 미술 비슷한 작품을 달아놓은 건 아니까요?

저도 저런 물체는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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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은빛그림자

2021.03.15 11:59:33
*.108.173.60

이건 설샘터 최모 집사가 보내준 사진입니다.

어디에라도 있지만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현상ㅋ



균사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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