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황당! 팡당!

조회 수 5162 추천 수 93 2006.02.14 08: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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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새로 구입하면서 전에 살던 빌라를 매매로 내 놓았다.
6개월이 지나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월세로 내 놓았다. 당시 같은 평수의 바로 옆집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었지만...
들어오려는 사람이 통 사정을 해서
월세 선불을 조건으로 보증금을 대폭 낮추고
월세도 갂아 주었다. 200에 20만원에 살도록 했다.

들어오는 날 부터 월세-선불을 지키지 않더니
멀쩡한 화장실과 싱크대 배수구를 뜯어서 다시 해 달랬다.
안 고쳐주면 월세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배수구는 물이 빠지는 것이 썩 원할하지 않아서
크게 뚫어주고 새롭게 고치고 멀쩡한 욕실 변기는
새로운 걸로 교채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월세마저 선불이 아닌 후불로 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후불 월세 날짜가 훨씬 지나서야 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제 급기야 20만원으로 입금시켜야 할 월세대신
딸랑 20원으로 입금시켜 놓았다.
첨에는 실수겠거니.. 여기고 20원이 들어왔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20원 때문인지 그 달은 월세를 내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한 달이 밀린 상태에서 다시 두달째 월세가
또 20원이 입금된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다.
첨에는 집 주인인 줄 알고 그냥
휴대폰을 꺼 버리더니 이제는
휴대폰 밧대리가 다 되서 껐다고 한다.
그러더니 어저께 입금한 월세 20원도 실수였다고 말한다

정말 실수였을까?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20만원을  20원으로  잘못 입금시키는 것이..?
그것도 연속 이개월 동안 가능한 것인지..?
지금 도합 40만원의 월세 대신..딸랑 동전 40원을 받고 있다.

(세입자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 실수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오히려 큰 소리치고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다.
상대는 50대 뚱뚱한 아줌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렇게 말하니 앞으론 월세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5층짜리 빌라 월세 임대업을 하는 고모의 경우는
이보다 더 황당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단다.

가난한 사람들은 선량할 것이라고 추측했던 내 추측이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세상이 정직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사람이면 사람답게 처신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인간이 싫다..정말....ㅜㅠ

====================================
숫자 4.5와 5가 있었다.
5보다 낮은 4.5는
항상 5를 형님이라 모시며
깍듯한 예의를 차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그렇게 예의바르던
4.5가 5에게 반말을하며 거들먹 거렸다...

화가난 5가
"너 죽을래? 어디서 감히!"
그러자 4.5가
가만히 째려 보면서

.

.

.

.

.

.

.

.
까불지마! 임마. 나 점 뺐어

(4.5의 반란을 꿈꾸며..^^;;)

[레벨:20]신완식

2006.02.14 09:03:22
*.112.201.200

계약서 안쓰고 입주하나요? 참 이해가 안되는군요. 가난한 사람도 다 사람 나름이랍니다. 저는 이 쪽 문화에 조금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됩니다. 한국은 계약문화에 익숙치가 않죠?
그나저나 잘 해결되야 할텐데요.

밑에 있는 얘기 땜에 배꼽이 빠질 지경입니다(^^).

[레벨:1]한진영

2006.02.14 16:53:55
*.236.2.103

한성영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자아에 사회적 구조가 미치는 악영향은, 있는 자든 없는자든 그 세력의 강도는 마찬가지 아닐런지요. 가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입장에 있는 자들(여성도 포함하여)이 가질 수 있는 내면적 독소는, 상대적 우월자들이 가질 수 있는 교만함과 남을 정서적으로 자기 지배하에 두려는 악습등에 비견될만한 것 같네요. 삶의 관조는 그런 통찰에서 우선되야 하지 않을까요..

[레벨:1]한진영

2006.02.14 17:27:33
*.236.2.103

제 글에서 판단하기 어렵나요? 전 아무리 다시 봐도 그 소리가 그 소리라고 생각되는데...위의 강석훈님의 글처럼 요즘에서 내가 하는 말과 글을 더 깊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히 웹에서 짧은 글 몇으로 의사 소통을 한다는 것이 어떤때는 추상회화를 보며 작가의 심오한 생각을 유추해내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배웁니다. 차라리 세상사람들처럼 소주 한잔 곁들여야 이심전심이 빠를라나요.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신 앞에 선 자로서 가진자로서 지배욕구가 열등자의 독함과 동일한 육적인 악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영님과 한끗 차이로 이름이 같네요 . 돌림자는 수 입니다.

[레벨:20]신완식

2006.02.14 18:04:31
*.112.233.212

개인 윤리와 사회적 약속은 다른 문제가 아닌가요? 집 주인이 자선 사업하는 차원에서 방을 제공한 것이라면 10원보다 20원 받는 것이 큰 감동이 되겠지만. 저도 평생 남의 집에서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계약은 계약으로 여기는 문화여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그 가난한 50대 여성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조현아 님이 사회복지 차원에서 그 일을 한 게 아닌데요. 그 집이 <사랑의 집>이라도 되면 모르지만 조현아 님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왜 일방적으로 세입자만 두둔하려 하시는지요.
기독교 신앙일수록 개인윤리와 사회정의 문제를 균형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이 있는 제 아내의 조언은 이러합니다. '원금에서 월세를 매달 분명히 까나가야 하며 그 후에는 내 보내야 합니다. 다음에 사람을 들일 때는 '통사정 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라기 보다는 상호신뢰와 계약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잘못 이해하기 시작하면 약속을 어긴이는 당당해지고 조현아 님만 신앙도 인내심도 사랑도 없는 이상한 크리스챤으로 비난 받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월세를 살면서 매달 돈 값아 나가느라 정신없이 사는 신완식 올림(^^).

[레벨:1]한진영

2006.02.14 18:34:34
*.236.2.103

목사님 그러게요.. 우선 일의 처리는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합리적인 일처리 후 우리 마음에 남게 되는 사람에대한 판단과 성찰은 좀 더 확장된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런지요. 세입자 두둔한 적 없는뎅..^^

[레벨:20]신완식

2006.02.14 18:50:09
*.112.196.131

제가 서구식 사고를 무조건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문제는 그들에게는 하등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요. 이 곳 한인사회에서도 가끔 이런 일로 서로 신뢰를 잃어버리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는 데 피해는 언제나 집 주인들이 고스란히 당하더군요. 우리들의 부정적인 생활문화 중에서 시급히 청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듣자 하니 집 주인들에게 그런 피해를 전문적으로 주는 일을 삶을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던데요. 그런 이들은 아무리 자비를 베풀어 봐야 ‘돼지에게 진주 던지는 격’일 뿐이지요. 자기가 지닌 만큼 살아가고 없으면 더 땀을 흘려서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주위에는 two jobs, three jobs 족들도 많아요.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지만요.
그리고 제가 한진영님께 그런 거 아닌데요(^^).

[레벨:7]우익지

2006.02.14 19:04:15
*.8.200.20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미국 영화가 기억납니다. 제목도 기억에 없는데 내용은 생각이 나네요.

부부가 좀 큰 집을 마련합니다. 빡빡한 예산으로 방 한칸을 젊은 남자에게 세를 줍니다. 물론 계약도 하지요. 그런데 계약이라는 것에는 또 다른 무서운 것이 놓여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없이 내쫒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 세든 남자는 나이스 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갈 수록 방문을 걸어 잠구고 소음을 내기 시작합니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참견하려 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그 방안의 상황을 보게 됩니다. 마루를 뜯고 방을 난장판을 칩니다. 그래서 주인이 경고를 하고 등등 주인의 심리적인 측면을 영화는 다룹니다.

결국은 이 남자는 이런 일로 계약을 파기 시키는 대상과 재판을 전문적으로 해서 집을 빼았는 그런 나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냅니다. 결국 집은 있지만 가난한 부부는 사정도 하고 얼음장도 놓고 등등 하지만 전문가에게 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종국에는 부부는 대항하기 시작하고 어찌어찌하다 그 남자를 죽이고야 맙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파 놓은 마루바닥에 그 사람을 묻고 마루를 고칩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만) 그리고는 세를 놓는다는 다른 공고문안이 마지막 장면을 장식합니다.

조현아님 땅에 파 묻으라는 얘기는 진짜 아닙니다. 문자를 그대로 해석하시면 안되는 것 아시죠?
예수님께서 이런 뜻으로 말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적 가난으로 마음까지 가난해 진 사람만이 진정한 가난한 자로 여겨져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그것을 도구로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현아

2006.02.14 20:11:36
*.117.161.32

wow~~
댓글이 많이 달렸군요.

나름대로 생각케 해주는 글들.. 감사드립니다.

한성영님의 글은 일반적으로 듣기 좋은 꽃노래인데
구체적 실효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도와 줘야 할
가난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아줌마는 술집을 경영하는 아줌마이고
가난하면서도 분수에 맞지 않게 씀씀이가 헤프고
불고기 파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고.. 주변을 통해 들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욕심은 엄청 많은... 그런 사람을 보셨나요?
그런 부류의 사람중에 하나인 듯 합니다. )

그럼에도 유독.. 착해보이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교묘히 악용하려는 수를 놓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자에게 율법보다는 복음의 포용, 휴머니즘을 부르짖으라구요?
(혹..이런 단계에 오른 사람도 있겠지요. 저는 아직 그 정도는 못됩니다)

지금은 듣기 좋은 꽃노래나, 휴머니즘을 표방한 공허한 사랑타령이나
그럴듯하게 보이는 말장난이 필요한 시점이 아닙니다.

강도에게 물건을 훔쳐가라고 눈 감아주는것과
이 일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강간범에게 순결한 누이를 내 주는 격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조현아

2006.02.14 22:28:42
*.117.161.32

세입자 문제 때문에
제 감정이 상해 있는 연고일 겁니다.

한성영님께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레벨:20]신완식

2006.02.14 23:17:47
*.112.239.103

매달 돈을 잘 내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잠시 못 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과 처음부터 작정한 듯 이러는 것은 분명 차이가 납니다. 제가 보기엔 후자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타깝게도 조현아 님께서 잘못 걸리신 셈(?)이지요.

영국 사회는 무엇을 하나 하더라고 반드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시작합니다. 주일학교에서 무슨 행사를 하게 되어 아이들이 교회로 모이게 될 때에도 사전에 부모의 사인이 담긴 동의서를 요구합니다. 사람을 못 믿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뒤탈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처음엔 많이 불편했지만 이젠 그게 결국은 나와 상대방을 위한 것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고 안심이 됩니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주택정책은 국가가 장단기간의 계획을 세워서 펼쳐 나가야 할 문제이지 이것을 개개인의 양심이나 신앙에 맡긴다는 것은 무리가 많습니다.

저는 이 곳 런던에서 진짜 부잣집에도 자주 갑니다. 눈이 튀어 나올 것 같이 호화로운 집들입니다. 마치 내가 영화 속에 출연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지요. 그런데 조금만 방향을 틀면 서민 주택지대가 보입니다. 고층 아파트나 맨션 같은 주책은 거의 그런 집이지요. 여기서는 Council House라 부르지요. 값은 싸지만 평수가 좁고 주로 흑인들이나 서민층 백인들이 사는 데 마약 냄새로 천지를 진동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저 넓은 부잣집들, 그들의 남아 도는 방들에 저 가난한 서민들이 함께 살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부잣집의 자동차 차고 하나가 어느 가난한 집 전체 평수보다 넓어 보이는 곳을 볼 때는 ‘세상 참 불공평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개인이 어떻게 온 세상의 불공평 문제와 구조적 가난 문제를 떠안고 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크리스천이라도요.

지극히 상식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너무 거창한 주제로써 접근하면 조현아 님만 계속 괴로워질 수 있어요. 이 아줌마 나가고 나서 또 그런 사람 들어 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요.

그런데 제가 자꾸 이러면 저도 이상한 기독교인 취급 받겠는데요(^^)? 저도 인정사정 있는 마음 여린 사람입니다. 물론 남의 도움도 많이 받으며 살고 있고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2.14 23:44:19
*.249.178.23

이런 문제는 제 3자가 간섭하기 매우 곤란하군요.
일단 그 상황을 조현아 님의 말만 듣고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다는 게
가장 큰 이유에요.
조현아 님이 상황을 왜곡한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조현아 님의 해석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전달하는 언어의 한계가 개입되어 있죠.
더구나 인간 삶이 엮어내는 상황은 그게 아무리 단순하다고 하더라도
제3자가 정확하게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사연이 담겨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래도 대충을 알 수 있겠지요.
내가 보기에 20원만 입금되었다는 건 아마 의도적인 건 아닌 것 같네요.
실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분이 술집을 경영한다면 아마 술취한 상태에서
카드를 사용했을텐데, 그러다 보면 '만'을 빼놓을 수 있거든요.
일부러 20원만 임급한다는 건
집주인과 오랜 동안의 나쁜 감정이 쌓여 있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조현아 님,
조금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말입니다.
위의 내 생각도 별로 객관적인 건 아닙니다.
잘 모르는 사람의 그냥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한 거니까 크게 참고할 건 없어요.
그래도 전반적인 것만 말한다면
신완식 목사님의 입장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양극화 현상 앞에서
개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게 합리적이니까요.
이런 문제로 영성마저 상처받지 않으시기를 ....

[레벨:0]이종호

2006.02.15 00:24:57
*.110.212.162

이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분의 생각을 읽고 배웁니다.
올려진 글을 읽기만 하다가 모처럼 글을 남겨봅니다.

조현아님의 사건을 보며 "참 황당하고 힘들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위의 댓글을 보면 성산님같은분은 철저히 신앙적시각으로 접근하시는 것 같고,
그외 분들은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말씀하시면서 이문제를 너무 신앙적시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게 조현아님이 덜 상처입는게 될 것 같다라는 의견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접할 때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태복음 5장 후반에 있는 말씀말입니다.

"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이게 이르로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희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5: 38 ~ 42)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조현아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제가 보기엔 그 아줌마의 태도로 보아 저는 악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 사건을 신앙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나의 믿음을 성숙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합니까?
아니면 이런 사건은 사회의 상식적 윤리차원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주실때는 무조건 악한자에게 당하는 대로 당하고 오히려 그가 원하는 것보다
더 해주어 그를 감화시켜라는 의도로 이 말씀을 주신 걸까요?
아니면 이 본문은 또 다른 의도가 있는가요 ?

이건 좀 다른 차원일수도 있지만, 신앙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중 우연한 일이 있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사건으로 우리에게 뜻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하더라도
내마음이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지 못하였는데,
위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행하라고 하는것은 인간에게 너무 가혹하며, 위선적이게 하며,율법적이며, 고통이 아닌가요

평소때 생각하였던 주제들이 조현아님의 사건으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레벨:7]강석훈

2006.02.15 05:57:06
*.239.101.203

‘(마 5:30 ~ 42)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말문이 콱 막히고, 답답해 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로만 고백하고, 속세와 분할하여 이중플레이를 해 온 한계였네요.
… ^^

[레벨:4]윤법렬

2006.02.15 06:37:05
*.159.141.212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논의가 깊습니다. 저도 조금 거들어 봅니다. 쉬운 얘기랑 어려운 얘기를 합니다.

<쉬운 얘기>

1. 가짜 핵심: ‘실수’라고라?
유치한 얘기이지만, ‘사실의 문제’로서 이 사건의 핵심은, 20원만을 (“20만원을”이 아니고!) 낸 세입자가 ‘실수’로 그랬겠느냐, 아니면 ‘고의’로 그랬겠느냐입니다. 세입자의 내심을 ‘해석’하는 일은 성질상 관찰/이해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럴 듯해도 모두 주관적 추측일 뿐이지, 객관적 사실/진실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세입자가 직접 ‘실수’라고 하는 마당에, 조현아님과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일상 경험에 비추어 실수라는 변명을 ‘믿든지 안믿든지’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말로 ‘실수인지 아닌지’가 궁금하다면, ‘사실조사’를 해야지, 객관적 진실을 글로써 파고드는 것은 별로 성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2. 비일비재
위와 같은 일은 세상에서 참 많이도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 사건도 결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의도하였든 (고의이든), 의도하지 않지 않았든 (실수이든), 약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나라마다 송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지요. 물론 이번 일이 조현아님께는 처음일 수도 있고, 월세로 20원만 내는 것도 세상에 처음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계약을 위반하는 일은 (고모님의 말씀대로) 세상에 비일비재합니다.

3. 맘 편하게 드세요, 손해 보실 것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은, 계약위반을 이유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즉, 세입자가 이미 약속을 어겼으니, 집주인도 "집을 계속해서 빌려 주기로 한 약속"을 깨도 된다는 것입니다. "공평"의 관점에서 허용되는 '적법한 약속파기'이지요. 따라서, (1) 집 나가라고 통고한 다음에, (2) 어느 분의 말씀처럼, 임대차보증금에서 밀린 월세 빼고 나머지만 주면 되지요. (3) 그래도 안나가면, (죽이지는 마시고 ^^;) 법원에 가셔야죠.
맘 고생은 크겠지만, 사실 냉정하게 여기까지만 보면, 보증금이 있기 때문에 집주인이 큰 손해 보는 것이 없습니다. 법원비용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맘 편하게 드세요. 물론, 다른 생각으로 임대차를 해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법적인 차원을 넘어서, 윤리적, 기독교적 또는 경제적 차원의 선택들은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어려운 얘기>

1. 진짜 핵심?
이 사건의 (또는 이 사건을 겪은 분의) 진짜 질문과 답은, 한성영님의 정확한 지적처럼 (저는 다시 못 뵈나 했는데,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조현아님의 글 중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에 있다고 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선량할 것이라고 추측했던 내 추측이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세상이 정직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 인간이 싫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추측이 빗나가서 사람들(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이 싫다는 얘기지요. 이 고민에 대한 관점/접근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2. 가난한 사람들의 눈높이
거두 절미하고, ‘선량’을 ‘약속을 잘 지킨다’는 뜻으로 쓰셨다면, 저는 ‘가난한 사람들은 선량할 것’이라고 믿으시면 안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제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약속을 지키기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가이사의 질서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꾸기가 더 힘듭니다. (신용도가 낮으니까요.) 아무리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도, 성실한 은행원이라면, ‘신용도’에 따라서 돈을 꾸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참 맘이 아프고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가 생깁니다.)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기대’를 (월세를 제대로 낼 것이라는 기대를) 낮추시는 게 좋겠습니다.

3. 가이사의 질서와 하나님의 질서
그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세를 주지 않는게 낫다는 말이냐고 물으실 수 있겠습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제제도(원리)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고, 여기에 기독교인의 영적 고민이 위치하겠지요. 일괄적인 답은 없다고 봅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고 선택하는 것이겠지요. 다만, 서구 선진국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서구인들은 이러한 가이사의 질서에 ‘신용사회’이라는 좋은 이름을 붙였지요.

4. 공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을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누가 왈가왈부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인 위로이지만, 저는 조현아님의 ‘싫음’에 공감하고, 오히려 그 세입자가 차라리 악덕 세입자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제가 조현아님이었으면, 저랑 세입자는 욕하면서 대판 싸웠을 것입니다. 조현아님은 저보다는 현명하시겠지요. 또, 이 기회에 큰 의미를 깨달으실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5. 깊은 담론을 기대하며
조현아님의 글이 뜻하지 않게 제도(사회구조)/개인, 사회윤리/개인윤리, 강자/약자 등에 관한 깊은 논의를 이끌어 내었군요. 모든 의견을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이참에 좀더 적실성 있는 사안들을 갖고 이에 관한 논의를 더 깊게 할 수 있기를 (제가 같이 할 능력은 부족하니 정확히는 ‘해 주셨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저는 기독교 영성을 ‘주어진 제도(특히 자본주의)’ 아래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자본주의의 부도덕성은 쉽게 공감이 가지만, 그 체제에 속해 있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훈훈한 소식거리’밖에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제도에 대한 단순한/철저한 거부가 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제 모습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 ‘이론’이나 ‘격려’가 필요합니다.

[레벨:0]나오미

2006.02.15 08:24:45
*.139.152.12

음악은 너무 경쾌하네요.. 전화만 받으라고 소극적으로 행동 하시지 마시고 직접 가서 만나세요.
겁이 나서 안 만나시는 건가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으신 거 같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셔서 임차인과 대화로 푸세요.
그리고 대화가 안 되는 인간이거덜랑 법적으로 하셔야 겠지요.

이미 임차인이 기분 나빠서 돈을 못 주겠다고 말을 한지 적어로 하루 이상은 지난 거 같은데요.
가서 맞짱 뜨라는 말이 아니라,,, 얼굴 보면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했다는 백치기술을 쓰십시요. 속칭"낭창기술"을 써서 난 당신처럼 잔머리 못 굴리지만 나를 보호해 주는 법적 장치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오시면 오히려 상대가 겁 먹지 않을 까요?
강한 사람은 부러지기 마련이죠..
지금 소극적으로 행동하시면 돈잃고 병납니다.
결단을 내리시고 행동으로 옮기세요.
가셔서 시비거는 행동은 안됩니다. 물론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더 커지니 오늘 이라도 가세요... 용기 잃지 마시고,,,, 주님께서 같이 동행해 주실껍니다. 힘내세요.

비슬산

2006.02.15 08:57:34
*.114.182.129

법적인 부분은 한법렬님께서 말씀을 해주셨고..
개인이 성실히 노력하면 가난할수 없다는 누구의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구조적으로 가난할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는것이고
그런면에서 사회적 빈자와 약자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가져야만
된다는 한성영님의 말씀에 동의하며..

이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자의 윤리에 대한 관점에서 볼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도덕양식에 대한 관점과 크리스챤의 현실적 처신에 대한
문제로 보는게 현실적인거 같습니다..

[레벨:1]정세웅

2006.02.15 09:45:06
*.59.44.99

비슬산님의 말을 이어 받으면,,,
해결방법은 나오미님의 말씀에 따르면 될 듯합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몇번은 대화를 해 보고, 진심을 드러내보이면 그 이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나오지 않을까요? 저의 짧은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나오미님 말씀처럼 이론과 심리적극복, 혹은 신앙론에 머물지 마시고, 직접 부딪쳐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딪칠 때는 한성영님의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안되면 그 때는 다음의 행동에 대해 단순한 심리적 충격에서가 아니라, 조금 더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어떤식으로 해결을 하든, 직접만나서 대화하지 않고, 감정과 생각만 키워가면 나중에 정말 후회합니다. 억울하게 끝나더라도 만나서 님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십시오. 그러다가 뜻밖의 대화의 공감을 얻고, 더 좋은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지도 않습니까?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이 곳의 내공이 정말 대단합니다.

[레벨:1]곽순옥

2006.02.15 10:28:52
*.227.136.50

상식이라는 것은 열이면 열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 상식입니다.
세상은 이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막기위해 법이라는 것을 만들었죠.
그것은 상식이 비상식으로 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서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법을 적용하는 것도 이젠 상식이 되었지요
한사람의 잘못(?)된 심리를 토론해 보겠다는 님들의 생각이라면
어쩔수없는 토론의 장이 될수 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 이런 일이 있었다는 흘러가는 이야기 끝에 모여든
님들의 글들은 정말 복잡다다 하게 느껴 집니다.
어려운단어, 심리적묘사,가난한자/가진자,소극적/적극적행동, 관계성의문제..........등등등
이런 내공은 정말 불필요한 내공이 아닐까요
다비아를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몇자 적고자 합니다.
다비아는
신앙지식 자랑의 장도 아니요
신앙코드가 맞는 사람끼리의 모임의 장도 아니요
자신의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장도 아니요
어렵고 수준높은 단어를 열거하는 장도 아니요
세상을 질타하는 장도 아니요
자신의 학문의 깊이를 자랑하는 장도 아닌,
오직, 신앙의 새로운 지평.......
하나님을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신앙의 새로운 지평을 소유하고, 느낄수 있는
그런 다비아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 입니다.


[레벨:0]먼지

2006.02.15 11:20:19
*.255.46.249


바야흐로 잔치가 벌어 졌군요.^^
각자의 다양한 색깔들이 묻어나는 한 폭의 그림입니다.
이런 걸 공동창작이라고 하지요?
보기 좋습니다.
곽순옥님 마저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참여하시고 말았군요.
저도 한 귀퉁이 색칠 해 보겠습니다.
우선 속이 많이 상하실 것 같은 조현아님께 마음 편히 잡수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그 세입자는 나쁜 사람 같습니다.
20원 사건도 명백히 고의적인 행위로 보입니다.
고의가 아니라면 실수라는 걸 알고나서 바로 입금을 했어야지요.
그 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씩이나...
승질대로 하면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기냥 멱살잡고 메다 꽂아버리는 게 제일 멋진 방법이지요.
아니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로 죽여서 파묻어 버리든지...
모기 한 마리 죽이는 것과 다를 게 없지요.
죄가 아닙니다.
힘으로 밀리면 도움을 청하세요.
제가 사시미칼 들고 쫒아 갑니다.
저의 인도자님이신데 당연히 도와 드려야지요.^^
그러니 마음 편히 잡수시고 여유롭게 대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댓글로 이어지는 담론에 붙여 저도 한 마디 해 보자면...
좀 다른 얘기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곳이 기독교 사이트이므로 종교 얘기를 하고 싶네요.
[질문] 나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답변] 나 자신을 위해 믿는다.
저는 그렇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아마 제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겠지요.
예수님 말씀도 모두가 나를 위한 것이겠지요.
불쌍한 사람 도와주라는 거, 때리면 맞으라는 거, 달라면 주라는 거...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겠지요.
그게 정말로 나를 위한 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렇게 할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안 하겠지요.
단지 그 뿐이겠지요.
예수님 말씀은 간단합니다.
‘살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고 살기 싫으면 네 길로 가라.’ 이거지요.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 것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더군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바로 그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지요.
자신이 뭔가를 베푼다고 생각한다는 거지요.
베푸는 자가 받는 자이고, 받는 자가 베푸는 자인데 그걸 거꾸로 생각합니다.
전도몽상이지요.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을 향해 “당신은 왜 이기적이지 않은 거야?” 하고 비판을 합니다.
이기적이지 않은 게 욕먹을 일인가요?
그렇다고 이기적인 게 자랑할 일인가요?
뭐가 뭔지 저도 모르겠군요.
신나게 색칠하다보니 횡설수설입니다.^^

[레벨:0]먼지

2006.02.15 13:24:15
*.255.46.249

써놓고 보니 마치 조현아님께 “예수를 따르는 자답게 때리는 대로 맞으세요.”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사족을 붙입니다.
그런 뜻, 절대 아닙니다.
만약 조현아님께서 그 세입자에게 뭔가를 베풀고 싶으시다면, 칼로 무 자르듯 법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세를 깎아 주고, 사정을 봐 주고, 이런 것만이 베풂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현아님께서 어떤 조치를 취하시든 그것은 옳은 길이 될 것입니다.
이미 할 만큼 하셨으니까요.

[레벨:1]Aslan

2006.07.18 00:19:08
*.37.109.54

[먼지]님의 말씀에 공감 합니다.. 처음 '사시미'란 말에 웃으(?)면서 읽었는데...
깊은 생각을 일깨워주시네요...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겠지요.
예수님 말씀도 모두가 나를 위한 것이겠지요.
불쌍한 사람 도와주라는 거, 때리면 맞으라는 거, 달라면 주라는 거...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겠지요. "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나를위해' 먼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말씀이 '완전 내게 족쇄를 채운다'라고 생각 했었는데.. 사실은 날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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