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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떨기 나무 앞의 모세 ㅡ 샤갈

조회 수 11020 추천 수 1 2013.09.10 0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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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샤갈이 출애굽기 3장의 모세가 불타는 떨기 나무를 대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두 사람이 있지만 둘다 모세입니다.

전체적으로 샤갈 특유의 신비로운 청색이 화면을 뒤덮고 있고

가운데의 떨기 나무를 중심으로 그림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오른 편의 모세는 흰 옷과 흰 얼굴과 수염으로 쓰러지듯이 앉아있습니다.

멀리 배경의 양 무리들은 그가 지금 광야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나타내고

얼굴에서 보이듯이 젊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주 우리는 모세가 출애굽의 주역이라는 것으로인해 그가 한창의 나이 때라고 생각하는데

이 그림을 보면서 그 생각을 다시 교정했습니다.

모세의 머리에 있는 뿔과같은 것은 그가 이미 이스라엘의 위대한 인물이기에

샤갈이 부여한 힘과 위엄의 상징인 것 같군요.

그의 얼굴과 옷이 지나치게 흰 것은 불타는 떨기 나무를 대하는 중이었기에

두려움과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손은 자신을 모아서 가슴 위에 놓았고, 발은 맨발입니다.

출애굽기의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라는 대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불타는 떨기 나무를 지나

모세의 인생과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일들이 시작됩니다.

왼편의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출애굽의 역사와 그것을 표현한 샤갈의 힘이 놀랍습니다.

흰 얼굴이었던 모세는 푸른 빛이 돌 정도의 황금색의 낯 빛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대한 후의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몸체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로 대체되었으나 그 영혼을 나타내는

뿔이 달린 얼굴은 그림 밖의 절대자를 향하여 있는 듯 합니다.

모세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은 홍해를 상징하는 흰 경계를 넘어 두 무리로 나뉩니다.

자세히 보면 아래의 무리는 병마와 무기가 뒤엉킨 아비규환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며,

흰 경계 너머는 백성들이 한 방향을 향하여 소리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 합니다.

모세는 그의 평생을 통하여 이스라엘 출애굽의 역사를 이룬 것을 몸으로 서술하고,

그의 영혼은 여호와를 대하며 그에 고정된 것을 샤갈은 보여줍니다.

 

이 그림을 새롭게 보게 된 것은

요즘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 Das Heilige>를 읽으면서 입니다.

샤갈이 그린 두 모습의 모세를 있게 한

호렙산의 저 떨기 나무의 불타는 장면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샤갈도 그림의 가운데에 타버리지않는 불타는 떨기 나무를 그리고 있는데,

그 나무 위에는 여호와의 표상이 있고

주변은 아름다운 색깔의 무지개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모세라는 인물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린 이 장면.

왕자였던 신분도, 한낯 양치기인 것도 아무것이 아니게 된 저 때.

레위인의 혈통으로 이방신들 속에서 자라고,

이교도 제사장의 사위라는 혼재된 종교성 마저도 일축하게 되는 순간.

오토가 말하는 누멘적인 것(das numinose)의 시간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누멘적인 것의 요소에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는 존재를 대할 때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무(無)로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옛 아브라함도 스스로를 '티끌과 같은 나라도...'라고 말한 것이

겸손이나 미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 자체의 상태를 그대로 말한 것일 겁니다.

성서 기자는 모세의 저 때를 불 타는 떨기 나무 정도만으로 표현하였으나

더 이상 합리적인 설명은 불가한 상태인지라,

샤갈의 그림에서처럼 모세의 저 양단간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사유해 볼 뿐입니다.

이 그림 가운데에 자리잡은 불타는 떨기 나무 앞에서 모세의 시간,

전혀 다른 존재 앞에서

피조물로서 두렵고 초월적이며 압도되는 그 매혹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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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2013.09.10 11:31:21
*.94.91.64

와, 대단한 통찰, 안목, 글쓰기이군요.
누가 쓴 건지 이름을 가리고 글만 읽는다면
아주 뛰어난 신학자의 것이라고 생각할만 합니다.
그냥 신학 이론만 그럴싸 하게 주절대는 사람이 아니라
인문학과 미학의 세계를 두루 관통하면서
그야말로 기독교적 영성의 진미를 맛본 이의 글이군요.
호렙산의 모세와 시내산의 모세가
요즘 저의 머리에서도 떠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싶어했던 모세,
그의 영광을 보고 싶어했던 모세,
그러나 궁극적인 실체를 직접 경험할 수 없었던 모세,
유대인들은 저 모세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하나님과 민족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본 것일까요?
오늘도 잘 배웠습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어떤 하나의 대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걸 대하는 사람의 영혼을 흔든다는 사실을 말이죠.
오늘도 태양이 비추고 죽림에 바람이 불고
나비와 벌과 새가 날고,
그리고 사람은 싸우고 사랑하고,
그렇게 이 순간이 지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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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3.09.10 16:48:25
*.104.193.3

목사님, 늘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고전읽기>에 함께 하다가보니
예전에 지나치던 그림도 다시 다르게 보게 되었어요.
이번 책이 어렵지만서두 흥미있는 주제라서 읽고 있어요..^^

사족으로 ,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교도의 제사장으로서
모세의 조력자가 되는 것에 이해가 잘 안갔어요.
그러나 비교종교학자인 오토는 이 누멘적인 것은
종교의 근간이 되는 체험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이드로는 모세의 강력한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않았나 싶어요.

목사님,
모세의 저 경험은 그가 바래본 적도 없었고
타의로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도 하지만
바라기도 두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가만히 있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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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여름비

2013.09.11 07:55:03
*.182.17.150

너무 좋은 글 앞에서는 아마도 압도하는 어떤 기운 땜에
댓글 달 엄두를 전혀 못 낼 때가 있는데
유니스 님의 이 글이 그렇네요.ㅎ
그래서 지금 큰 용기를 내어 쓰는 겁니다.
좋은 글과 그림 감사하다구요~

2004, 2005 년도 즈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샤갈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행복감 속에
있다 나온 기억이 나네요.

오토의 저 책이 잘 모르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오밀조밀, 세세함, 했던 말 또 하기 등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시점에서
책의 내용에 꼭 들어맞는 예화를 보여주신 듯하여
무지 좋네요. 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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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3.09.11 15:25:27
*.104.193.40

여름비님, 과찬이십니다.
글을 공감해주시니 감사드려요~~
샤갈전을 보시고 행복하셨다니
진정 샤갈을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간 몇 편의 그림들(성화)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그림들은 대가들의 신앙고백이며
그가 그리는 신학이구나...하는 거여요.
때로는 문자로 쓸 수 없는 것을 더 표현할 수도 있는 것 같구요.

저도 오토를 읽다가 좀 어렵고 해서
이 그림이 번쩍 생각이 났어요...
무엇보다 여름비님과 같은 책을 읽고 있어서
이렇게 나누기에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 글도 다 썼으니 다시 책을 들어야죠......에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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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비가오는날

2013.09.12 08:55:12
*.63.219.187

"피조물로서 두렵고 초월적이며 압도되는 그 매혹의 시간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서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나,
이 지점에서 궁금해 지는군요.

명석한 그림 해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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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3.09.15 20:48:35
*.121.198.240

비가오는날님,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누군가의 경험으로도 그것이 당사자에게만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 싶어요.
불합리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그 경험이
신앙의 본질에 엄연히 존재하고,
비경험자도 그것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모세의 경험에 이스라엘이 함께 한 것처럼
신앙공동체는 이런 경험으로 서로를 터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는 오토의 의도처럼 
맹목적인 비합리나 혹은
비합리적 요소를 무시하는 합리주의를
경계하는 것이 있어야하지않나 싶어요. 

우리는 때가 되면 경험하게 되리라는 소망으로...^^

[레벨:5]이택환

2013.09.15 00:45:33
*.198.45.86

유니스 님,

그동안의 명화해설을 모아 책을 내세요. 저는 꼭 살 겁니다.^^

모세의 뿔은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출 34:29에서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것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에도 이마에 뿔이 있죠.

'뿔이 나다'라는 말과 '광채(광선)가 나다'라는 동사는 모두 같은 히브리어(카란)입니다.

 

성 제롬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불가타역),

이 부분을 광채로 해석하지 않고 뿔로 해석한 결과,

이후, 라틴어 성경을 보게 된 사람들은 모세의 얼굴에 뿔이 났다고 생각했다는군요.

그래도 과연 성 제롬이 뿔과 광채를 구분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욥이 회개한 후 얻은 딸 셋 중 막내의 이름이 ‘게렌합북’(케렌합북)입니다(욥 42:13).

이름의 뜻은 '아름다운 광채'입니다(게렌과 카란은 히브리어가 비슷합니다).

과연 그녀는 이름대로 당시 세계 최고의 미녀였다는데,

그녀의 이름을 ‘아름다운 뿔’로 해석하면 좀 이상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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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3.09.15 21:44:12
*.121.198.240

목사님, 
맞아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에도 뿔이...
이 뿔에 대하여 감은 가는데
유래를 어떻게 명확히 할 수 있을 지 아른아른했었습니다.
찬찬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내는 것은.....ㅡ..ㅡ;
일단 독자 한분은  확보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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