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체험과 지식

조회 수 2014 추천 수 34 2006.01.12 16:26:12
조현아 *.117.161.32
관련링크 :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체험이 대수롭지 않다거나, 별 것 아니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성경기록도 실상은
믿음의 조상들이 체험한 바를 기록한 것입니다.
체험이 성경의 주요 메뉴가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체험, 모세의 체험,  이사야의 체험,
에스겔의 체험, 요나의 체험
베드로의 체험, 사도바울의 체험, 요한의 체험등
기록의 거의 전부가 하나님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약 성경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성경의
바로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크든 작든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고, 인간에게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실제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는 능력있는 분이라면
체험이 없는 신앙이.... 오히려 문제가 있는 신앙이 아닐까요?

그러나 존재하시는 하나님, 절대타자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 즉
우주에 기운처럼 스며있는 범신론적, 자연 정령식의 하나님이라면
체험이 없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며..... 당연한 것이 되겠죠.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을 잘 안다고 지나치게 확신했던(체험했던)
자들에 의해 많은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가 발생한 것이고 보면
체험은 반드시 성경 안에서 해석되고
성경 아래서 성령의 조명과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어느 누군가의 지적처럼 ㅡ"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은 기독교 영성에 이르는 두 가지 방편이 됩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다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지식적 영성’은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오도되는 위험이 있는 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더 존중하는 인본주의가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알 수 있는 잘못된 신론, 기독론, 성령론을 들고 나온
여러 이단들은 성경의 지식을 오용한 잘못에서 나왔습니다.
반대로 ‘체험적 영성’은 신비주의로 빠지는 위험성과
지나친 영의 세계를 풀려고 하다가 이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하나님에 대한 간접적인 지식은
서로 조화되고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지
어느 하나라도 더 중요시되거나  혹은 덜 중요시되어
고의적으로 무시, 억압되거나,  은근 슬쩍 방치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암튼.... 하나님의 음성 2탄 3탄을
계속 올려야 할지..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정정희

2006.01.12 20:44:38
*.120.203.176

올리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에게는 전인격의 변화를가져온 엄청난 사건이겠지만 공감을 못하는 분들도 계실것이기에 귀하게 간직하는것이....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1.12 23:25:59
*.249.178.14

조현아 님,
편한대로 하세요.
여기 사이트 분위기가 아니다 싶으면 말하지 않아도 좋고,
기다 싶으면 말해도 좋습니다.
아마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세상 이치를 알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신앙의 본질도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요.
신앙의 본질과 세상 이치는 크게 다른 게 아니에요.
뭐, 보기에 따라서 다를 수 있긴 하겠지요.
그건 그렇다 하고,
체험 자체만 갖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어요.
시인들은 이상한 체험을 하지요.
며칠 전에 어떠 분에게서 전해들은 <연금술사>라는 책이 생각나는군요.
모레, 납, 금, 이런 모든 사물에서 어떤 영적인 생명을 발견한답니다.
사람이 바람과 일체가 된답니다.
이게 다 신비한 경험들이지요.
그러나 이런 신비경험은 합리성을 바탕에 깔고 있어요.
틸리히도 그의 강의에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신비주의와 합리주의는 하나라구요.
나는 틸리히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기독교의 신비체험은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합리주의에요.
시냇물을 시냇물로 보고,
나무를 나무로 보고,
그리고 그것의 깊이에서 심층적 생명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거죠.
그래서 셰익스피어 같은 극작가는 요정과 유령을 자주 등장시킵니다.
내가 공연한 이야기를 하는군요.
한 마디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놀랍지요?
따라서 인간은 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종말이 와야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듯이 알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시나브로 조금씩 드러나지만 전체로, 전적으로는 아니지요.
그러니 세상 사는 재미가 나는 게 아닐까요?
조현아 님의 글 제목이 "체험과 지식"이라고 했군요.
그 둘은 일치합니다.
그 둘이 각자 영적인 현실에 연결되어 있으면 말이죠.
이만.

profile

[레벨:4]이상훈

2006.01.13 00:08:31
*.91.161.178

어떻게 보면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체험적'신앙의 한 형태로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믿음과 영성이 그리 깊지 못해서 기도를 하지만, 바른 기도인지..또한 무엇을 응답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제겐 확신이 서지 않는 입장입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면서,골치덩어리였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답변을 얻고 돌아오시는 분들을 보면 놀라우면서도, 궁금합니다.. 크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담론이 오가는 이 곳에서 조현아님의 체험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레벨:6]유희탁

2006.01.13 06:13:54
*.230.134.48

라즈니쉬의 말이 생각납니다. 삶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기도라는 말....

[레벨:1]최종운

2006.01.13 08:45:11
*.51.176.244

체험이란 각각입니다. 사람마다 특성이 있는데 이를 표준화하거나 규격화하여 절대시 한다면 안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체험은 고유한것인데 이를 두고 비교하거나 우월의식을 가지면 오히려 영적 손해입니다.

그리고 영성이란것도 요즘 유행하고 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성적이 삶을 자연을 통하여 계시하고 있는데 인위적인 영성을 강조하는것은 또 하나의 가공적인 메뉴에 불과할것입니다. 교회안에서 자꾸만 발명되는 신앙 아이템이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수 도 있다는걸 아시면 좋겠습니다

조현아

2006.01.15 01:09:13
*.117.161.32

E.M.바운즈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믿음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는 성경말씀은
그것이 지식적이거나 이성적인 앎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식적이거나 이성적인 앎보다는 깊습니다.

하나님과의 감화나 인격적 교제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믿음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나누는 실제적인 교제없이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로이드 존스의 책 중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군요.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지성조차
가장 무식한 사람의 지성만큼이나 무력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성경말씀에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대신
순복하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며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가지는 사람입니다.
영생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은 단순히 어떤 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실체와 사실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직접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저는 이 dabia 사이트를 통해 영혼들이 밝은 진리의 빛가운데로가 아닌
희미한 영적 안개지역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설교비평이나 잘못된 영성에 대한 판단은 탁월하시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지대,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된 그런 곳,
하나님과 사단, 선과 악이 혼합된 그런 곳을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또 길을 가면 갈 수록...그나마 조금 있었던
믿음마져도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곳이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간간히 보여지는 범만물신론적 경향 역시...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에게 건의 드리는 심정으로...
제 심중을 이렇게나마 슬쩍 흘려봅니다.

개인적으로...
정목사님의 비평글에 대한 비평글도 보고싶습니다만..
제 욕심이 지나친거겠죠? 좋은 밤 되세요^^;;

[레벨:7]강석훈

2006.01.15 04:51:30
*.239.101.246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믿음을 길잡이 삼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성경 말씀은
그것이 지식적이거나 이성적인 앎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식이나 이성에 갇히지 않는, 도도한 변화 그 흐름을 대하는
마땅한 태도, 실천과 결단의 차원입니다.

하나님과의 감화나 인격적 교제를 느낄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의 참됨을 확신해봅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 숱한 오류를 알기에,
나의 확신이 착각일 수 있다는,
진리를 고정 짓지 않는 마음은,
나의 믿음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지성조차
가장 무식한 사람의 지성만큼이나 무력한 것입니다.
저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진심으로 알고 싶기에 성경말씀에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면서, 자연스레 순복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생명을 소유한 나는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찾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려 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솜씨에 경탄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가지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가진 나에게는 하나님은 단순히 어떤 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명백한 힘으로 경험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직접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경험에 대해 거듭 성찰합니다.

조현아 님, 님의 글을 읽고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보다가,
님께서 인용하신 글을 저의 방식으로 읽어보았습니다. ^^;
님의 글을 대하면 늘 반갑습니다. ^^


[레벨:7]우익지

2006.01.15 14:30:42
*.107.92.247

조현아 님의 글을 읽고 "체험과 지식"에 대해 생각해 왔었는데 오늘 보니 "인격적 교제"에 대해 또 생각할 거리를 던지시는군요. 설교를 들으면서 인격적 만남 또는 인격적 경험이라는 말이 나오면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난감합니다. 저는 아직 말씀하시는 체험없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말씀하시는 체험을 감성적 체험 또는 영적 체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이성적 체험에 의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 그 말씀 안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그외에도 많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느낌을 제 감성적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적 체험에서 감성적 체험으로 옮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끼는 감성적 체험이라는 것은 어떤 극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에 의해 증폭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감성적 체험이 이성적 체험으로 옮아 갈 수 있을까? 보통 사랑을 하게 되면 이성을 잃는다는 말을 자주 쓰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감성적 체험, 이성적 체험 모두 하나님을 체험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두 요소가 어우러져 영적체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만 이성적 체험으로부터 감성적 체험으로 옮아가는 것을 택하고 있습니다.

인격적 교제, 여기서는 인격적 체험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 말씀을 더 알고 부터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느낌을 스스로 느낍니다. 아마 이런 것이 인격적 만남이 아닐까요? 예수가 내 안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간혹 들 때가 있잖아요.

비슬산

2006.01.15 19:50:04
*.114.182.33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체험이 당사자에게는 중요할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신자들에게는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의미없는 일이지요..

조현아님의 표현중 이부분은
"저는 이 dabia 사이트를 통해 영혼들이 밝은 진리의 빛가운데로가 아닌
희미한 영적 안개지역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설교비평이나 잘못된 영성에 대한 판단은 탁월하시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지대,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된 그런 곳,
하나님과 사단, 선과 악이 혼합된 그런 곳을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또 길을 가면 갈 수록...그나마 조금 있었던
믿음마져도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곳이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간간히 보여지는 범만물신론적 경향 역시...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에게 건의 드리는 심정으로...
제 심중을 이렇게나마 슬쩍 흘려봅니다."

좀 지나쳐 보입니다
경계는 넘지 않아야 되겠지요..

[레벨:20]신완식

2006.01.15 21:17:09
*.40.131.65

<저는 이 dabia 사이트를 통해 영혼들이 밝은 진리의 빛 가운데로가 아닌 희미한 영적 안개지역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 참 묘한 느낌이 드는 표현이네요. 같은 사이트를 드나들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느끼는 이 재미(^^)!

조현아 님의 글을 읽으면서 <로이드 존스>의 설교가 언급된 부분이 눈에 띄어 그냥 지나치기가 좀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한 재미있는(?) 분이랍니다. 칼빈을 엄청 존경하는 듯 하면서 때로는 묵사발을(^^) 내고, 웨슬리를 엄청 흠모하는 듯 하면서 여지없이 비판을 해대고, 무디를 칭찬하는 듯 하면서 박살을 내버리고, 입만 열면 ‘부흥 부흥’하지만 정작 세계가 다 공인하는 대복음전도자인 빌리 그레함의 전도집회는 한 마디로 무시해 버리지를 않나…… 이 쪽에서 보면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만을 노래하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인간의 결단과 노력을 매우 존중하는 알미니안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이는 그를 알미니안주의자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체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는 신비하기까지 한 여러 인물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설교 예화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적지 않은 오순절 및 카리스마 계통의 목회자들이 그를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데이비드 왓슨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고요. 그런데 그는 1971년 5월 17일 쓴 어느 편지에서 “저는 사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여태 단 한 번도 방언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적고 있어요. 어떤 설교에서는 결코 체험을 의지하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답니다. 체험을 신앙의 출발로 삼으면 매우 위험하다면서요. 그런 시각에서 보면 물론 오순절 및 카리스마 측의 주장은 그에게 ‘배설물’ 정도에 불과하게 되고요. 그의 수 많은 설교 중에서 정작 주류가 되는 것은 ‘방대한 기독교 교리’ 부문이고 나머지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요지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조화(harmony)와 균형(balance)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랍니다. 우리는 대개 한쪽으로 잘 쏠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성과 감정, 성서와 체험, 하나님과 인간 등의 관계를 생각할 때 결단코 어느 한 쪽으로만 기울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랍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의 생각을 총체적으로 읽지 못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누구보다도 구원과 영생의 문제, 성령의 능력 등의 문제에 있어서 확신에 찬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늘 불을 토하듯 하는 ‘사자의 포효’ 같았어요. 하지만 결국 그도 한계가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설교한 ‘성령론’ 해석 부분에서 그는 결국 오류를 범하고 말았지요. 인식의 한계라고나 할까요? 즉 주류 해석에서 좀 이탈되었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요. 때문에 그의 성령론은 후학들에게서 묵사발 나고 말지요. 심지어 자신이 세운 신학교 교수들에게서도요. 어떤 때는 설교 시간에 ‘제가 이 말씀을 지금까지 이렇게 잘못 해석 했는데 사실은 이런 뜻입니다’라며 공개적으로 수정한 예도 있습니다. 바로 이 같은 그의 사례를 통해서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확신과 객관성 사이에서 우리는 늘 긴장의 고삐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빈야드 계통에 속한 Dr Jack Deere가 쓴 두 권의 책 (번역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Surprised by the voice of God’ 와 ‘Surprised by the power of the Spirit’를 읽어 보면 정말 다양하고도 신비한 그러면서도 확신에 찬 영적 체험담들이 수도 없이 적혀져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성경 텍스트보다도 여러 사람들의 영적 체험담을 더 의지해서 논리를 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순절과 카리스마 계통에 속한 분들이 가장 흔히 의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요). 그런데 읽다 보니 ‘와! 이건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삼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까지도 미치더군요. 조용기 목사께서 쓰신 ‘사차원의 영적 세계’도 거의 소설 수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앙세계를 더듬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그런지 스펄전이 목회했던 매트로폴리탄터버너클을 담임하는 피터 마스터즈 박사에 의해 ‘사차원의 영적 세계’는 여지없이 도마질 당하고 있더군요.

쓰기에 따라서 ‘영적 체험’은 양약이 될 수도 있고 신앙의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또 길어져 버렸네요. 조현아 님의 글은 늘 제게 이처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계기가 되어 감사 드립니다.

끝으로 로이드 존스가 자주 강조했던 말씀 한 마디 인용 할게요. ‘독수리의 눈을 가지십시오. 숲을 보십시오.’ 저는 이 사이트에서 어떤 편견과 고정적인 틀을 깰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합니다 (물론 ‘내 것’이 여지없이 깨져서 가끔 아플 때도 있지만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가끔 설교 준비를 할 때도 더 신중해지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2탄 3탄을 기대하는 분들이 저 말고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께 아름답게 세워져 가기’ 위해서라도 꼭 글을 올려주셔야겠습니다(^^). 샬롬!

[레벨:5]오영숙

2006.01.15 22:34:56
*.237.172.114

저도 현아님의 의견에 공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안개'이하의 표현들을 말이지요.
저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 보다는 그 반대편의 경우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아님과 비슷한 경험을 직접 한 분들이 제 주위에 계시기도 하고,
그보다는 미약하지만 저도 제 발걸음에 주님의 손길이 함께하심을 주관적인 느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사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은 개개인에 대한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아님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자취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신비한 경험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

[레벨:2]김민철

2006.01.16 00:43:57
*.116.36.79

조현아 님께서 인용한 하나님을 체험한 성서속의 인물들의 체험이 담긴 성서 본문을 좀더 가까이서 바라본다면 모든 인물들의 체험사건은 체험 그 자체 보다 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이기 위함이지요..7세기 이후의 예언자들을 시작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늘 동반 된다는 거죠^^ 여기서 체험으르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자들의 '황홀경' 과 대비되는 '합리성' 혹은 '이성' 으로 해석되도 무방해 보입니다..

애고고..
결론적으로 체험이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는냐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며 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들은 결국 신학(이성)적 여과가 요구 되겠지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라...매우 조심스러로운 말입니다..

참고로 저도 학부때 체험을 중요시하는 교단에서 공부를 했지요..이 부분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평안하세요..야웨샬롬...

[레벨:7]허정수

2006.01.17 00:36:56
*.115.112.28

'체험과 지식'의 대립적인 전제는 그 설정자체가 오류입니다.
사실 체험과 지식의 대립적 분리는 경험의 해체적인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체험과 지식을 분리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지식은 체험의 보편적이고 이성적이며 역사적인 결과물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개체적이고 상대적인 체험의 믿음,
통시적이 아닌 완료형의 믿음을 어정쩡하게 혼합하는 것은 결코 본질적일 수 없으며,
무의미한 논쟁으로 삶을 낭비할 공산이 큽니다.

주님의 평강이

[레벨:1]정세웅

2006.01.17 14:45:34
*.59.44.99

신앙의 체험이 마법사의 체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하겠지요.
어느날 노을이 더욱 붉게 느껴지는 것 처럼, 신앙체험도 이러한 삶의 범주(현실?)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은 머리속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면에서, 모든 삶과 세계을 '체험적(사유와 해석)'으로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레벨:5]권요안

2006.01.17 14:47:18
*.245.29.102

허정수 님의 말씀에 덧붙여,

오늘날 우리 교회는 체험과 지식에 대해 전혀 다른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목사님의 댓글을 읽다 틸리히가 합리주의를 신비주의의 딸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에 따르면 신비주의는 내적 경험, 즉 실존적 경험을 통해 궁극적 실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적 경험이란 '내면의 빛'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이성'이라고 합니다. 이 이성이 탈자적(脫自的) 경험에 이르러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 합리주의라고 설명합니다.

틸리히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면 하나님은 내면의 빛인 이성을 통해 최초로 인식하게 되지만, 이러한 인식의 초기 상태 다음으로 그 인식에서 빠져나와 마치 제삼자가 관찰하듯이 그 인식을 객관적으로 마주 보는 경험에 이르게 되면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즉 합리적인 하나님 인식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체험이냐 지식이냐는 물음은 말할 것도 없고, 체험과 지식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든지, 둘 다 중요하다는 말 조차도 체험과 지식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한다는 측면에서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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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언젠가 누군가(?)가 인용하셨던 글을 다시한번 올려... [4] [레벨:2]김민철 2006-01-19 1527
370 소시민 ^^ [6] [레벨:7]강석훈 2006-01-19 1712
369 "목적이 이끄는 삶" [4] [레벨:1]Trumpetvine 2006-01-19 1824
368 회개 [1] [레벨:0]유민송 2006-01-18 1706
367 자유! [11] [레벨:7]허정수 2006-01-18 2074
366 "목적이 이끄는 삶" [8] [레벨:1]균형 2006-01-16 3012
365 감사의 말씀과 2006년 병술년 하나님 나라 운동! [1] 미선이 2006-01-16 1164
364 혹 남는 컴 있으시나요? 이길용 2006-01-15 1784
363 에쿠스 부흥회를 아십니까? [2] [레벨:1]최종운 2006-01-1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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