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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 판사, 김홍도 재판서 신랄한 질책 담은 소감 표명
설교를 하는 것이 주임무인 목사가 법정에서 재판장의 설교(?)를 듣는 웃지 못할 사건이 11월 18일 서울지법 동부지원 제1호 법정에서 벌어졌다. 물론 김홍도 목사 사건을 담당한 이기택 판사는 자신의 말의 의미를 '간단한 소감'이라고 제한했다. 그러나 7분 정도 이어진 소감은 쉽게 듣고 넘기기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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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기택 판사의 소감이다.
커다란 교회의 담임목사가 교회 운영과 관련된 문제로 법정에 서게 된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면서, 기독교와 교계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우리나라 기독교와 목사의 현재 모습과 바른 역할에 대해 아무런 소감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전하는 것으로 재판을 마치려 합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를 바로 알아야 교회의 바른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첫째가 돈과 지위 출세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돈과 지위를 둘러싼 경쟁과 다툼에 지친 사람들이 교회에 오고 있고 이들을 평안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큰 역할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스스로 돈과 출세라고 하는 싸움의 대상을 만들어내고, 교회가 이를 얻고자하는 신도들의 싸움터가 된다면 왜 교회가 있는가 하는 물음에 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돈이나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싸움의 대상을 만들어내서도 안 되고 그런 곳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헌금의 많고 적음, 직분의 높고 낮음, 목사와의 친소(親疎), 신앙의 기간에 관계없이 모두 함께 똑같은 사랑을 나누는 그런 멋진 교회를 보고 싶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교회의 직분입니다. 문제는 전도의 방법인데,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말과 행사를 통해서 전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도의 성과는 신도의 숫자와 때로는 건물의 크기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진실한 행동과 실천이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입니다. 모범이 되지 못하는 사람을 따라 교회에 나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앙의 정도(正道)는 교회와 성도들이 바른 모습을 갖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을 모든 이에게 공개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교회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모든 것에 있어서 떳떳하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목사와 신도들이 바른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최고의 전도입니다.
전도는 밖을 향하여 외치는 함성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엇이 이루어지는지, 목사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신도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교회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매력 있는 교회를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 목사가 신도들과 사회로부터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 신도는 나아가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목사는 오로지 신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까 고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크게 목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목사가 다른 모든 일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나눠주지 못한다면 진정한 목회자라 할 수 없으 며, 모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온전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면 누가 다른 목사보다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목사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길은 너무나 쉽고 가까운 길입니다. 목사가 된 순간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맹세하지 않은 목사가 과연 있겠습니까. 처음으로 돌아가 작은 일부터 실천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랑을 되찾을 것입니다.
노력과 시간의 한계 때문에 모든 이에게 직접 사랑을 전할 수는 없더라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주위에 돌봐줄 사람도 없으며 이로 인하여 절망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찾아가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빛나게 하고 목사로서의 소명과 소망을 함께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
설교를 하는 것이 주임무인 목사가 법정에서 재판장의 설교(?)를 듣는 웃지 못할 사건이 11월 18일 서울지법 동부지원 제1호 법정에서 벌어졌다. 물론 김홍도 목사 사건을 담당한 이기택 판사는 자신의 말의 의미를 '간단한 소감'이라고 제한했다. 그러나 7분 정도 이어진 소감은 쉽게 듣고 넘기기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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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기택 판사의 소감이다.
커다란 교회의 담임목사가 교회 운영과 관련된 문제로 법정에 서게 된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면서, 기독교와 교계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우리나라 기독교와 목사의 현재 모습과 바른 역할에 대해 아무런 소감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전하는 것으로 재판을 마치려 합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를 바로 알아야 교회의 바른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첫째가 돈과 지위 출세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돈과 지위를 둘러싼 경쟁과 다툼에 지친 사람들이 교회에 오고 있고 이들을 평안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큰 역할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스스로 돈과 출세라고 하는 싸움의 대상을 만들어내고, 교회가 이를 얻고자하는 신도들의 싸움터가 된다면 왜 교회가 있는가 하는 물음에 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돈이나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싸움의 대상을 만들어내서도 안 되고 그런 곳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헌금의 많고 적음, 직분의 높고 낮음, 목사와의 친소(親疎), 신앙의 기간에 관계없이 모두 함께 똑같은 사랑을 나누는 그런 멋진 교회를 보고 싶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교회의 직분입니다. 문제는 전도의 방법인데,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말과 행사를 통해서 전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도의 성과는 신도의 숫자와 때로는 건물의 크기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진실한 행동과 실천이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입니다. 모범이 되지 못하는 사람을 따라 교회에 나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앙의 정도(正道)는 교회와 성도들이 바른 모습을 갖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을 모든 이에게 공개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교회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모든 것에 있어서 떳떳하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목사와 신도들이 바른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최고의 전도입니다.
전도는 밖을 향하여 외치는 함성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엇이 이루어지는지, 목사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신도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교회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매력 있는 교회를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 목사가 신도들과 사회로부터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 신도는 나아가 교회 밖의 사람들까지 목사는 오로지 신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까 고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크게 목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목사가 다른 모든 일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나눠주지 못한다면 진정한 목회자라 할 수 없으 며, 모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온전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면 누가 다른 목사보다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목사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길은 너무나 쉽고 가까운 길입니다. 목사가 된 순간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맹세하지 않은 목사가 과연 있겠습니까. 처음으로 돌아가 작은 일부터 실천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랑을 되찾을 것입니다.
노력과 시간의 한계 때문에 모든 이에게 직접 사랑을 전할 수는 없더라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주위에 돌봐줄 사람도 없으며 이로 인하여 절망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찾아가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빛나게 하고 목사로서의 소명과 소망을 함께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설교 비슷한 것도 하는군요.
내용은 옳긴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네요.
15년 전 쯤,
나도 운전 범칙금 관계로 즉결재판(?)을 받은 적이 있어요.
왜 즉결까지 갔는지는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는군요.
아주 젊은 판사가 벌금 얼마를 때리더니
몇 마디 훈계를 하더군요.
일종의 '공자왈'이지요.
이게 참 아려운 일입니다.
목사도 똑같은 경우가 많거든요.
뻔한 말을 자꾸 한단 말이에요.
사랑하라, 참아라,
심지어는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대라, 하구 말이죠.
이런 것 처럼 무의미한 설교도 없어요.
인간 행동은 윤리 문제에요.
윤리는 일반론으로 떨어지면 위에서 인용한대로 '공자왈'이 됩니다.
구체적인 정황 안에서 과학적으로 분석되어야지요.
이런 경계선을 설교자가 얼마나 예민하게 구분하는가, 하는 문제가 관건입니다.
그렇다고 설교가 사회과학은 또 아니지요.
결국 설교자는 어느 한쪽에 치우지 말고,
근본적으로 설교자만의 영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서 텍스트를 뚫어볼 수 있고,
구체적인 인간 삶의 심층을 들여다보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향한 파토스가 작용해야겠지요.
내가 보기에 판사는 판결문만으로 끝나는 게 가장 좋듯이
목사도 성서 텍스트 해석만으로 끝나는 게 가장 옳은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