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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떠오르는 생각들

조회 수 1209 추천 수 10 2006.01.07 22: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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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떠오르는 생각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최종운(pinganma) [조회수 : 2685]






인간의 달력이 바뀌어 2005년은 역사의 어제로 가버리고 2006년이란 오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저마다의 아쉬운 후회만 남고 새로운 각오로 희망찬 앞날을 설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놓으신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잠깐 살고 놀다가 가는데 희로애락이란 연극대본 속에서 연극을 하며 생을 마감하고 있으리라.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한다. 원시인은 원시인 나름대로 자기의 인식과 체험 범위 안에서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생활하였을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을 보면 여러 형태의 기호와 그림들이 새겨져 있는 암각화를 보면 그렇게도 생각이 든다. 지금 최첨단을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등산을 하다 보면 바위에 새겨진 글씨와 유명한 관광지에 새긴 이름들은 그런 원시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모든 사물과 사건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본능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묵은해와 새해의 갈림길 속에 한 해를 맞이하는 해맞이 행사의 의미 부여는 새로운 다짐이고 출발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의미 부여

국가적으로는 국경일이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생일, 결혼기념일이 있으며, 교회서는 부활절을 비롯한 각종 절기가 이러하다. 이런저런 날짜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념을 하는 것은 인간들의 작은 축제이기도 하고 우애와 친목과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올 새해에도 성도들이든 불신자이든 각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서 올 한 해를 설계하고 미래에 대한 각오와 의미를 부여하였으리라. 성도들은 송구영신예배에 하나님께 국가와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서원하였을 것이고, 불신자들은 절이나 산위에서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새해의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시고 피조물인 태양과 지구 또한 변하지 않지만, 인간들은 여름 날씨만큼이나 변하기를 좋아한다. 변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리변화이기보다는 죄를 부채질하는 역리변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문명적 구조가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고, 인간의 죄성이 이를 자꾸만 부채질하여 새사람으로 살기를 좋아하기 보다는 옛사람으로 살기를 좋아하는 전적 타락의 멍에를 가졌기 때문이다.

태양과 지구는 어제와 오늘은 동일한 태양이요 지구이다. 단지 자구가 공전과 자전을 한 것밖에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런 자연현상을 인간이 달력으로 만들어 365번 돌았다는 의미를 1년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가 바로 인간의 약속이고 삶의 무대일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1년이란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모든 사물과 자연 현상을 두고 각각의 사건 속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지구는 살아있는 유기체적인 땅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살아서 움직이고 이동하고 희로애락이란 감정을 표현하듯이 지구도 그러하다. 1년 사계절의 정상적인 기후의 변화 즉 서리·비·바람·눈·주기적인 태풍 등의 자연 변화는 정상적인 생체리듬의 변화인 반면 엘리뇨 현상과 지구온난화 등의 이상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폭설이나 홍수·지진·해일 등은 비정상적인 자연의 변화이다. 이런 변화는 어찌 보면 지구로 볼 때는 정상적인 몸부림이요 자정작용이다. 그건 우리 인간들이 이루어놓은 문명에 대한 거시적인 자연 조절 작용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 인간들이 봐서는 불편하고 생활의 터전을 파괴하기 때문에 재난으로 인식할 뿐이다. 이런 자연의 변화무쌍한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런저런 대책을 세운다. 그리고 교회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성경과 신학을 인용하여 아전인수식의 해석을 하고 종말론자들은 이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가벼운 자연재해는 일종의 감기나 홍역으로 본다. 물론 중대한 자연재해는 엔트로피증가에 따른 유무형적 경고이고 보복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옐로우 카드를 제시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우리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일어나는 콧물과, 재채기, 발열, 두통, 노란오줌, 오한이 드는 것과 비교하여 보면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런 몸의 감기의 외적인 현상은 한마디로 몸의 자정작용 즉 자연치유하기 위한 반응인데 이런 현상을 병의 증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인간이 합성한 감기치료제인 신약을 먹도록 하는 것도 이 역리적인 시대의 치료의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시는 분인 것처럼, 창조설계시 지구나 우리 몸도 스스로 자정하고 치유하는 시스템을 주셨다. 그래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홍수와 태풍이 불게 하셨다. 홍수와 태풍은 일종의 대자연의 청소부인 셈이다. 인간이 저지러놓은 각종 쓰레기를 치워주는  대자연의 자정작용이다. 그 많은 문명사회의 쓰레기를 우리 인간이 치우려면 엄두도 못 내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설계도 해놓으셨다. 감기는 주사를 맞으면 일주일 만에 낫고, 약을 먹으면 칠일 만에 낫고 집에 쉬고 금식 내지는 소식과 물을 먹고 쉬고 있으면 이레 만에 낫는다는 우스개가 있다. 각각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인데, 어느 것이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설계에 따르는 모습이겠는가?

인간은 자연의 어떤 특이한 현상이나 특이한 인간사의 모습을 보고도 고유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의미를 전문적으로 부여하는 사람을 점성가, 점술가, 예언가 등으로 칭한다. 이들은 학문적인데서 출발하여 때로는 언뜻 합리적인 것이 발견될지 모르지만 대개는 자기들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미를 부여하여 혹세무민하는 것은 비단 무당과 거짓 점술가, 관상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거짓 목사와 부흥사들도 하나님과 성경의 여러 가지 하나님 말씀을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여 성도들을 혹세무민하고 있는 현상도 있다.

인간이란 성도이든 불신자이든 종이 한 장 차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았다. 단지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의미를 부여한 것밖에는 차이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복 받기를 좋아하고 무병장수하고 내 가정 내 자식 잘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수능입시철이나 송구영신의 사회 모습을 보면, 절에서 교회에서 어디서든지 동일한 기복제화의 마음을 가지고 복을 비는 모습이 관찰된다. 단지 비는 모습과 절차가 다른 옷만 걸칠 뿐이다. 불신자는 절에 가서 부처께 빌고, 바위나 당산목에 촛불을 켜놓고 정성을 표시하는 것이나, 부적을 사서 집에 부치고, 차나 문설주에 명태를 매달고,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하는 것은 모두 액을 막기 위해 의미 부여하는 모습이다.

거짓 목사나 부흥사들은 이런 인간의 나약한 모습과 기복제화의 죄성을 가진 심리를 이용하여 성도들에게 새해감사헌금을 하도록 하고 봉투에 기도제목을 기입하라고 한다. 그런 기도제목의 메뉴는 불신자의 소원과 상이하지 않다. 불신자와 동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다. 그것도 헌금의 액수에 따라 약발이 다르다고 은근히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예수의 옷을 입은 채 무당 짓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나님을 저속한 잡신으로 둔갑하는 불경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송구영신예배의 모습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고 변하지 않으신 하나님이시다. 동일하게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낮과 밤이 생기도록 지구를 공전과 자전을 하도록 하신다.

주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무시하고 오늘날 우리는 불신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교회는 어떻게 하면 대형교회로 부흥하고 성장할까? 목사는 어떻게 하면 브랜드목사로 출세 성공할 수 있을까? 평신도는 어떻게 하면 장로, 권사가 될까?’로 한국교회라는 집단의 대형 연극무대에서 온갖 인간적 지혜와 술수를 동원하여 교회라는 바벨탑 속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연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교회의 주차장은 중고 자동차 상사의 전시장 같고 교인들의 옷은 백화점의 패션쇼를 보는 것과 같다. 교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아파트 평수, 고급 가전제품 이야기, 옷 쇼핑한 것, 새 차 구입한 것, 아들딸 대학가고 유학 간 이야기 등등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속에는 우월감과 교만 열등감과 비참함으로 교차하여 형제자매가 아니라, 원수가 되게 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목사들은 교인 수, 헌금액, 교회건축 설계, 자가용 바꾼 이야기, 해외 성지순례 등등의 사업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어느 누구라도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는 성경적인 설교를 하고 듣지만 일단 비공식적이 되면 그렇지가 않다. 이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이 어디 지금 뿐이겠는가? 과거의 중세시대의 교회 모습도 이랬을 것이다.

365일 모두가 의미있는 날이 되길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묵묵히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고 어차피 우리 인간이 정하여 놓은 날짜의 약속에 따라 새해가 되었다. 그저 열심히 살면 된다. 소유의 축복보다 구원받은 존재에 감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보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란 말이 더 좋을 것 같다. 전자는 무책임한 덕담이고 후자는 건설적 덕담이라고 생각한다. 올 한 해는 한국교회가 사회의 이슈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주당들의 술안주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매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날로 성실하게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된다. 자꾸만 무슨 날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오늘이 부활절로 성탄절로 감사절로 새해로 종말로 여기면 되지 않겠는가? 요즈음은 상업적인 날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발렌타이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 데이, 로즈데이, 블랙데이 등등 의미를 붙이면 그게 또 하나의 행사가 된다. 달력을 가만히 보면, 1년 12개월 안에 크게는 경축일과 작게는 각종 기념일이 있다. 삼일절, 광복절이니 한글날, 개천절 등의 특수한 상황의 기념일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어버이의 날, 노인의 날, 장애인의 날 등은 그날 하루만의 행사로 그치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365일 모두가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 안도 헌신예배에 접두어가 붙이면 되듯이 말이다. 예배란 모르지기 헌신인데 다른 예배는 헌신이 아닌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연출이고 자기만족의 예배에 불과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새해를 맞이하여 문득 해본다.



2006년 01월 03일 11: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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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1.07 23:45:16
*.249.178.11

최종윤 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독자들의 영성을 평화로 끌어주는 글이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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