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조회 수 1365 추천 수 17 2006.01.10 07: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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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출생신고를 마쳤다.
아주 기분이 묘하고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격스러웠다.
수안이가 세상에 이제 자신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들어낸 날이고
우리 가문(?)에 공식적으로 입적한 날...

수안이가 우리 가정에 자리를 잡아가며
문득문득 생각이 많아진다.
이젠 그저 가르치는 자에서
스스로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는, 가르친대로 살지 않을 수 없는 자로
업그레이드(?) 되지 않으면 안 될 무수한 이유를 묻게 된다.

아내와 아이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잡지 않을 걸 생각했던 거 처럼
사역을 위해 가정이나 아내나 아이를 담보잡지 않을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나고 수안이가 말귀를 알아들으면
아내의 양해를 구해 아들과 함께
며칠간의 여행을 함께 떠날 날을 떠올리니 괜시리 기분이 좋다.
그때 녀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자녀앞에 정직하고 진실하게 할 말을 가진 김규항이 오늘따라 더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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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편지 /  김규항

단아. 아빠는 지금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와 있다.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아저씨 집이야. 일 때문에 왔지만 “날씨가 죽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둘이 술만 먹고 있다. 아빠는 즐겁다. 갈수록 사람들은 빠르고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시간만 좋아한다. 그러나 아빠는 이런 아무 것도 아닌 시간, 느리고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시간이 참 좋다.

술을 먹다 단이가 생각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말하는 단이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아빠는 그럴 때 담담한 체 하지만 속으론 아주 많이 기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을 ‘옳은 생각’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 아빠는 단이가 아빠의 잘못을 들추어내길, 그래서 아빠가 잘못을 인정하길 기대하곤 한다. 기대는 점점 더 잘 이루어지고 있다.

단이는 단이 이름을 닮았다. ‘丹’(붉을 단). 처음 그 이름을 지었을 때 좋다는 사람이 없었다. 칭찬은커녕 “이름이 그게 뭐야?” “배추 단이냐 무단이야?” 따위 놀리는 말만 가득했다. 그런데 단이가 이름과 합쳐지면서 확 달라지더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말은 아빠가 억울할 만큼 빨리 나왔다. 아빠도 아빠 이름을 조금 닮았다. 단이는 아빠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니? 홀 규에 늘 항, ‘늘 홀로’라는 뜻이다. 아빠는 어른들이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아빠는 이릴 적부터 왠지 그 이름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아빠가 외롭냐고? 그래 아빠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단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꼭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사람은 외롭지 않아도 생각은 외로울 수 있단다.

이오덕 할아버지를 기억하니? 아빠가 누구보다 좋아했던 분이지. 아빠는 그분을 돌아가시기 오년 전쯤부터 사귀었다. 할아버지는 워낙 훌륭하게 사셨기에 그 뜻을 따르는 이들이 참 많았다. 그분이 아빠 글을 읽고 연락을 해오자 아빠도 한달음에 만나러 갔다. 그분을 사귀면서 많은 걸 배웠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분은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너무나 외로워하셨다. 아빠는 그분의 외로움이 그분의 올바른 삶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단아. 올바르게 산다는 게 뭘까? 아빠 생각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삶’이다. 사람들은 지난 올바름은 알아보지만 지금 올바른 건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올바른 삶은 언제나 가장 외롭다. 그 외로움만이 세상을 조금씩 낫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늘 그렇다.

예수님은 가장 외롭게 죽어갔다. 아무도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을 죽인 힘세고 욕심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따르고 존경한다는 사람들에서 오히려 더 많았다. 그 후 2천년 동안도 그랬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예수님은 ‘2천년의 외로움’이다.

단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으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아빠보다 더 많을 거다. 하지만 단이의 거짓 없는 성품과 행동이 단이를 외롭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단이가 외롭길 바라지 않지만 단이가 올바르게 산다면 단이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울 거다. 단이가 외로울 거라 생각하면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든 고통스럽기 때문이야.

단이가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이 편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아빠는 아빠 책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었다. “그러나 내 딸 김단이 제 아비가 쓴 글을 읽고 토론을 요구해올 순간을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아빠는 정말 그 순간을 기다린다. 지금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단이도 술을 좋아하게 될 거다. 내 딸아, 너의 외로움을 사랑한다.

profile

[레벨:16]홍종석

2006.01.10 10:14:47
*.57.166.12

득남을 축하드립니다. 공부시간에 한번뵈었지요?
아이앞에 부끄럽지않은 부모되기... 모두의 바램이겠지만 쉽지않은 일입니다. ^^
그러나 조선생님은 충분히 가능하지않을까 싶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 해되세요.

이길용

2006.01.10 10:20:04
*.97.233.122

축하드립니다~

저도 두 아들을 키우고있지만.. 언제나 아이 키우는 것은 힘들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같이 크고 있답니다~

[레벨:6]유희탁

2006.01.11 22:59:57
*.85.181.253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게 잘 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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