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1)

조회 수 2906 추천 수 57 2005.12.22 09:51:07
조현아 *.117.16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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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간구하고 있었다.
기도할 때 나는 철야기도를 하는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있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 그 웅성거림 속에서
하릴없이 구경하듯 하다가 문득

"이 시간이 내게 낭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릴때부터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해왔고
기도는 조용하게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에
간혹 터져나오는 울음조차 얼른 삼키려 했던 기억이 있을 뿐
그래서 열광적으로 기도하는 그들은 나에게 구경꺼리였었다.
사랑의 강권에 못이겨 꿔다 논 보리자루처럼 앉아 있기는 했는데
그러면서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약에.. 만약에...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다면... "

나는 4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해왔었고
또, 주일을 범하는 일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주일학교 교사를 계속해왔으며, 대학때는 기독서클에서
간부로 활동했었다. 그런 나 였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지옥도 천국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진짜로 살아계시고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시고 계시다면..." 이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그때 나는 마치 교회에 놀러온 사람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는데..)
다리를 풀고.. 자세를 바르게 했으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 나는 밑져야 본전이니까, 어떤 승부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기도의 핵심은 단지 이것 뿐이었다.

그 말 한마디 내 뱉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흡사 나는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린  죄수처럼 끙끙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들으실만한.... 진실하고 간곡한....
단 한 마디의 말을 내 뱉기 위해 나는 거의 필사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어라고 기도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는데
희안하게도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나는 방언받기를 원하거나 기도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외국 TV 를 켜 놓은 듯한 유창한 언어인데, 나의 혀는 다른 생소한 발음(혀 굴림)에
무척 힘겨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단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언어들이였다.

너무나 신기했다. 문제는 기도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데도 방언으로 인사가 나오는 것이었다.
상대는 의아해하면서도 웃고 있는데, 정작 더욱 의아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드디어 내가 미쳤나보다... ㅠㅜ

무슨 말을 해도 방언이 되어 나오고
나는 한국말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무심코 "아웅~ 졸려!" 라고 기지개를 켜는데도
머리털 나고 첨 들어보는 생소한 언어가 툭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절친한 친구 한명이 그런 나를 보고 눈의 휘둥그레졌다.
바짝 긴장하는 듯 하더니.. 나에게 거리를 두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능력도 철저하게 믿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교회를 다녔어도, 기독교 종교인의 생활을 했었어도
내 중심은 하나님의 실존을 완벽히 믿지 않고 있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내 능력사이에서 힘 겨루기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이 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책상" 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내기로 굳게 결심했다.
마음은 책상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책상.. 이라고 외치는 순간에
이미 다른 나라의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한국말 두 음절조차.. 내 의지로 발음해 낼 수 없는 한계상황이었다.

나는 책상의 "책"부터 발음하기로 결심하고... 손끝 발끝 머리끝 부터
책.책.책.책.책.책책..책..책..이라는 식으로 기를 끌어모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책!!!!!!!!!! 이라는 단 한 음절의 발음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래가지고서는 한국어 대화는 불가능했다.

나는 꽤를 내어 마스크를 착용한 다음 독감이 걸린 것처럼 위장하고
볼펜과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이 필요한 경우는 메모지에 내 의사를  적어서 주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긴장이 풀어진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마스크를 벗고 나의 상태를 망각한 채, 친한 친구에게
차창 밖에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한 참을 떠들어 놓고 보니 그것이 전부 방언으로 나왔다.
뒤 늦게 사태를 눈치챈 나는,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그 황당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의 방언은 알 수 없는 나라의 뉴스방송을 틀어놓은 듯 했다.

" 저 아가씨는 분명 토종 한국인같이 생겼는데
말하는 것은 이상한 외국어로 말을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이야?"
하는 듯한 의구심에 가득한 표정들이었다. 진땀이  흘렀다.

이러다 한국에서 살 수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있었으나
그러나 내 마음중심은 지극히 평온했고 지극히 행복했다.
나는 3일 동안 우리나라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이제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나보다 강한 분이심을 믿나이다."
나는 그렇게 고백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때가 내 나이 27세였고, 4월 27일 금요일 밤이었다.

("하나님의 음성, 어떻게 들리는가?" 를 쓰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있었던 일부터 회상하고 있습니다)

정정희

2005.12.22 19:50:30
*.120.203.176

은혜를 받으셨군요 신비로운 경험과 주님의 간증을 계속 기대드립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12.22 23:16:25
*.249.178.26

조현아 님,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다음을 기대합니다.

[레벨:20]신완식

2005.12.24 10:42:25
*.112.249.99

조현아 님! 올리신 글 매우 흥미롭게 잘 읽었는데 궁금한 게 있어서 몇 가지 질문을 올리오니 간략하게라도 답변을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첫째, 금요일 철야 기도 시에 방언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 날 분위기에 대해 좀 더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예를 들면 기도회 인도자가 방언을 강조했다든지 혹은 <할렐루야>를 100번 이상 반복하도록 유도했다든지 아니면 주위에서 방언하는 이들이 둘러앉아 조현아 님께서 방언을 하도록 도왔다든지 하는 일은 없으셨는지요? 그래서 꼭 방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강한 심리적 압박은 느끼시지 않았는지요?

둘째, 그 날 기도회에 출석한 날 즈음의 조현아 님의 환경적 정서적 특징을 기억하실 수 있으신지요? 예를 들면 심리적으로 매우 쫓긴다거나 초조한 일이 있었다든지 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으니 이 문제는 자세히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만)

셋째, 당시 경험한 그 방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확신을 지금도 하고 계신 거죠? 그런 확신의 근거를 좀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넷째, 대개 첫 방언은 유창한 언어이기보다는 (물론 사도행전 2장 4절의 것은 유일회적인 것이라 그 이후의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요) 매우 단조로운 단어의 반복인 경우가 허다한데 (언어학자들의 분석으로는 5개 단어도 채 안 된다고 합니다만) 마치 외국어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다니 저도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혹시 가능하시면 몇 마디라도 좀 표기할 수 있으신지요?

다섯째, 지금의 방언의 수준은 그 때와 비교해서 어떠신지요? 영어가 늘 듯이 방언도 많이 늘어난 상태인지요? 또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이젠 별 어려움 없이 하실 수 있는지요?

여섯째, 그때 받은 방언으로 인해 얻은 신앙적 유익은 어떤 것인지요?

* 꼭 무슨 수사관이 질문 하듯 해서 참 죄송합니다(^^). 제가 전공하는 분야가 이 방언문제와 좀 관련이 있어서 조현아 님의 글을 읽는 순간 궁금한 점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대답하기 어려우시면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부담을 드리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니까요. 그리고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erry Christmas!

조현아

2005.12.25 15:02:18
*.117.161.32

(취조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 답변을 할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제가 써놓은 글이 정황상 충분치 못해서 그런 것인지..?
처음부터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계셔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목사님의 글에 일일이 답변을 한다고 해서 유익할 것이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습니다만.. 그러나 궁금하신 점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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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금요일 철야 기도 시에 방언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 날 분위기에 대해 좀 더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할렐루야>를 100번 이상 반복하도록 유도했다든지
아니면 주위에서 방언하는 이들이 둘러앉아
조현아 님께서 방언을 하도록 도왔다든지 하는 일은 없으셨는지요?
그래서 꼭 방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강한 심리적 압박은 느끼시지 않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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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전혀 없었습니다.
방언을 강조했다든지, 방언하기를 기도해야 한다든지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그런 언질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성격상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압한다든가
무엇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든가..하는 강요가 있을 때는그것을 되려 거부하는 성격입니다.
만약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분위기였다면 저는 애시당초 기도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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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 날 기도회에 출석한 날 즈음의 조현아 님의 환경적 정서적 특징을 기억하실 수 있으신지요? 예를 들면 심리적으로 매우 쫓긴다거나 초조한 일이 있었다든지 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으니 이 문제는 자세히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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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전혀 없습니다. 그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 절친한 지인이고
평소에도 나를 잘 알고 서로 신뢰심이 두터운 분이셨기에
함께 앉아있는 것으로도 평안하고 행복한 느낌이었습니다.
님이 추정하는 그런 분위기의 정 반대의 분위기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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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당시 경험한 그 방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확신을 지금도 하고 계신 거죠? 그런 확신의 근거를 좀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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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저는 제가 기도한 내용과 그날 받은 응답을
서로 별개인냥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라는 확신과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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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대개 첫 방언은 유창한 언어이기보다는 (물론 사도행전 2장 4절의 것은 유일회적인 것이라 그 이후의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요) 매우 단조로운 단어의 반복인 경우가 허다한데 (언어학자들의 분석으로는 5개 단어도 채 안 된다고 합니다만) 마치 외국어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다니 저도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혹시 가능하시면 몇 마디라도 좀 표기할 수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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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다만...
님의 주변에 방언을 받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저는 그것이 신기합니다. 그리고 방언이 단조로운 단어의 반복이라고
알고 계신 듯한데..... 저는 그것도 신기합니다.
제가 방언을 받고 집앞에 있는 다른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닐 때
그 교회의 어느 자매가 단조로운 방언 (랄라라라...따 따따따...) 기도를
하고 있을 때,"저것은 방언이 아니다. 그리고 저것은 악마가 준
방언이 틀림없다"고 확신하여 친구에게 말 한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지금은 그런 단조로운 방언이라고 해서 섯불리
성령이 아닌 세상의 영이 주는 방언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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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지금의 방언의 수준은 그 때와 비교해서 어떠신지요? 영어가 늘 듯이 방언도 많이 늘어난 상태인지요? 또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이젠 별 어려움 없이 하실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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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방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말로 기도하는 것은 그냥 따분하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반해
방언기도는 톤이나 음색자체부터 달라지면서 진지하고 친밀한 느낌이 있습니다.
방언은 깊은 기도에 들어갈 때, 전혀 새로운 언어로 바뀌기도 한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바뀌어왔다고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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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그때 받은 방언으로 인해 얻은 신앙적 유익은 어떤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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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언의 유익에 대해 책을 한 권 써내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뒤에 시간이 되면 구체적인 사건과 연관해서
방언을 통해 알게되고 보게되고 깨닫게 된 것들을 쓰고 싶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고
아무 열매도 없을 것 같지만, 방언은 개인에게 중요하며 무척 유익합니다.

물론 방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배제하며,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차별적
표지로 방언을 언급하는데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방언기도를 깊이 하다보면 자연히 통역이 나오고 통역이 나올 때는
내 영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내 이성이 쉽게 감지하게 됩니다.
(방언 기도의 내용을 인간의 이성이나 지각으로 쉽게 알 수는 없습니다)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영으로 찬양하고 마음으로 찬양한다는
바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뚜렷이 알게 되며
영으로 기도하는 것,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성령께서 직접 간구하시는 것을 나의 전존재와 또 내
이성(지각)이 쉽게 포착할 수는 없습니다.
간혹 성령의 의도가 포착될 경우는 큰 신비감에 앞도당하게 됩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크고 비밀한 것을 깨닫게 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내 이성이나 지작이 따라잡을 수 없는 시공을 초월한 앎의 깊이, 바로
그것은 속사람과 하나된 성령께서 간구하는 기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성령의 9가지 은사중에서
유독 방언이나 예언만은 폐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사랑을 들고, 예언(성경말씀)의 완성과 충분함을 근거로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세계를 전혀 모르는 오해일 수 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중 유독 방언만 폐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부실하고
또는 모든 은사나 성령의 역사하심이 폐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모든 은사가 끝났다는 뜻이고, 성령의 은사도 열매도 역사하심도
부정하게 되는 논리적 귀결에 이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너무나 다양하고 풍부해서
사람이 미처 그것을 헤아리거나 파악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볼 때
성령의 역사같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과 요구, 단순 무식한 사람들의 눈 높이에 맞춘
천차만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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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무슨 수사관이 질문 하듯 해서 참 죄송합니다(^^). 제가 전공하는 분야가 이 방언문제와 좀 관련이 있어서 조현아 님의 글을 읽는 순간 궁금한 점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대답하기 어려우시면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부담을 드리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니까요. 그리고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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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식 목사님도 행복한 성탄되세요~~~^^*

정정희

2005.12.25 18:00:46
*.120.203.176

향기님 고맙군요 어려운 답을 정성껏주셔서
신목사님은 여러사람들에게 많은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향기님한테 조금은 현학적인 질문을 하셨는데......
향기님은 저를 은혜롭게 하시는군요
고맙습니다

[레벨:20]신완식

2005.12.26 07:03:02
*.40.131.65

조현아 님! 취조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님께서 경험하신 것을 알고 싶어서......

무엇보다 제 물음에 짜증내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답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방언을 비롯한 은사의 홍수(?) 속에서 성장한 신앙 전력이 있고 목회하면서 그것으로 인한 많은 부정적인 폐해를 경험하였기에 여기 와서 그런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는 중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제 어느 후배 교역자의 모친 되시는 목사님께서 서울에서 잠시 이 곳 런던에 들리셨다가 저희 집을 방문하셨는데,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겠다고 하시더니 방언으로 기도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중간 중간에 통역도 하시면서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저렇게 말씀하시네요’ 라며 저와 식구들에 대해서 예언도 해 주시더군요. 그 내용 속에는 제 공부가 얼마나 더 걸릴 것이고, 제 아내는 언제 직장을 얻게 되며, 제 큰 애는 내년에 저를 많이 도와줄 것이라는 구체적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안타깝지만 벌써 그 분의 그 예언(?) 중에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 여럿이 있습니다(^^).

그 분의 방언 및 예언 기도가 끝난 후 제가 무례함을 무릅쓰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방금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무슨 음성이라도 들려주시던 가요?” 했더니 “귀로 들리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고 제가 방언으로 기도하다 보면 성령님의 뜻을 느끼게 됩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이 목회하면서 겪은 참 놀랄만한 간증들을 많이 해주고 가셨습니다. 성령의 은사 문제를 가지고 늘 씨름하는 제겐 적잖은 공부가 되었지만 씁쓸한 마음도 아울러 있었습니다. 제가 그 분께 예언(?)을 부탁한 것도 또 믿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그 예언이 빗나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조현아 님의 글을 읽다 보니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조금 혼돈하고 계신 듯 하군요. 성령의 아홉 가지는 은사가 아니고 열매이며, 방언이나 예언 신유 등의 은사가 지금도 지속 되고 있느냐 폐지된 것이냐 하는 문제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만 폐지론자들(?)은 무엇보다도 은사가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것을 우려하지요. 그래서 목회하시는 많은 목사님들께서 특히 몇몇 은사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신답니다. 하지만 각각의 주장들은 저마다의 입장에 서 있는 여러 학자들이 펴낸 책들에 의해서 그 근거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오순절 계통의 학자들 중에도 명망이 있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 참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희 가정이 전세 살던 집 주인이 불교 신자셨는데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다 그 분 댁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가보니 불공을 드리는 그 분이 제가 여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던 그 아주머니의 몸은 매우 우연하게 진동하고 있었고요. 나중에 물었더니 개념은 우리와 다른데 결국 우리 용어로 말하면 ‘방언과 진동’이더군요.

영국에는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이라는 ‘영국 은사운동의 선구자’가 계십니다. 상당한 지적 능력과 탁월한 웅변력을 겸비한 목회자로서 한 때 크게 주목 받는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회중에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이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사도행전 2장의 역사가 재현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에드워드와 은사를 받은 이들이 마음을 모아 은사를 심화시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일 공예배 중에도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이로 인해 교회가 시험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부부가 방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실제로 어느 나라의 (지금 그 나라가 잠깐 생각이 안 나네요) 언어라는 확신이 들어 선교자로 자원을 했습니다. 그 나라 말을 은사로 받은 것은 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을 한 것이지요. 물론 그것에 최종적인 확신을 심어준 이는 에드워드 어빙 목사님이구요. 근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막상 그 나라에 당도하여 받은 방언으로 전도를 하니 전혀 통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너무도 실망하고 당황하여 충격을 받은 이 부부는 귀국한 후 이 사실을 교회에 알리게 되고 마침내 교회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마침내 교회는 방언문제를 둘러 싸고 심각한 갈등 속에 풍비박산이 나게 되고 출교를 당하게 된 어빙도 말로 표현 못할 고생을 하다가 비참한 최후로 일생을 마칩니다. 영국 은사운동의 대표적인 실패사례인 셈이지요.

저도 방언을 할 만큼 한다고 자부하며 4년 전 한국을 떠나왔는데 와서 연구를 해보니 한국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여러 문헌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순절 계통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은사의 계속성을 주장하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정통 기독교 역사에 더 깊은 뿌리를 둔 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은사에 대해서 다소 다른 입장에 서 있더군요.

캘빈이나 웨슬리 같은 이들은 누구보다도 성령의 존재와 인격 그리고 그 분의 역사를 많이 언급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방언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영국 부흥시대의 주역인 조지 휫필드도 탁월한 ‘성령의 사람’인데 하나님의 주권이나 은혜 혹은 인간의 죄와 회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이 언급했고 특히 설교 중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실신하는 일도 일어났지만 그런 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장하거나 자신의 대중집회 성공을 위한 홍보의 도구로 이용한 적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진정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할 수 있다고 그들을 절제시켜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만 의식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은사자체를 부정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에 의하면 방언, 예언, 신유, 축사 등의 현상들은 타종교나 아프리카 원시 신앙 등에서도 지금도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록 그룹 공연장에서나 사교집단들의 모임에서도 그런 유사한 현상들은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현재 오순절 계통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방언이 다섯 마디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은 언어학자들이 그 방언들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결과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시절 출석하던 교회에서 영어와 러시아어에 매우 가까운 듯한 유창한 방언을 기도 중에 하시는 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 때는 제가 잘 분별을 할 수가 없어서 그것이 실제 언어에 가까운 것이었는지 아닌지를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생각이 잘 나지를 않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막 신학교에 들어 갈려고 할 때 저희 집안에서는 문중 회의가 열렸고 고민에 빠진 어느 친지 한 분이 유명한 사찰에 가서 종정 스님께 이 문제로 상의를 했습니다. 평소 신자들이 들고 간 명함 사진 한 장만 보고서도 천리안 같은 혜안으로 각종 심각한 문제들을 척척 해결하신 바 있는 그 종정께서는 제 친지에게 “그 아이는 그 길을 가야 하니 내버려 두시오!” 하셨답니다. 그 후로 저는 친지들로부터 더 이상의 핍박을(?) 받지 않게 되었고요. 그러니 제가 이래도 수 년 전 입적하신 대한민국 천태종 종정께서 인정한 목사입니다(^^).

한국인들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어떤 특이한 현상들에 매우 예민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텍스트의 역사적 배경이나 그 가르침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진지한 노력 보다는 눈에 쉽게 띄고 손에 금방 잡힐 듯한 현상들에 기초하여 신앙세계에 입문하거나 이해하려 하는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경험이나 현상 (물론 그것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요) 에서 출발하면 나중에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주의자들 중에는 그런 현상을 매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종교들과 별 심각한 신학적 토론도 없이 교류해 버리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른바 입신, 영서(靈書), 귀신들림 등의 현상도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방언하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만났고요. 한 수 배우고 싶군요.

조현아 님의 다음 글이 진심으로 기다려 집니다.

끝으로, John 님께서는 밥퍼 목사님의 그 방언 얘기를 좀 들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

감사합니다.

조현아

2005.12.26 10:10:38
*.117.161.32

방언 기도를 한 뒤 예언을 해 주겠다고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라고 말씀하시며
예언을 해 주셨다는 목사님은 성령님에 대해
오해를 하신 듯 합니다.

성령님을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자기 맘대로, 성령을 조종하고 대답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성령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접신 행위와 유사합니다.
무당이 복채를 받고 앞 날을 예언해주는 행위와 유사합니다.

물론 예언의 은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남의 앞일을 맞추는 것은
모르긴 해도 어둠의 영에 속한 영역이며
어둠의 영의 특징인, 그런 말은 "맞으면 좋은 거구
안 맞아도 할 말이 있는" 류의 (거짓말)이라고 여깁니다.

타종교에서, 혹은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방언은
저도 들었고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유사방언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언, 인간편에서 혼적,의지적 노력으로 받는 세상영의 방언등
어떤 의미에서 악령과 성령의 역사는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악령과 성령의 일을 구분하는 일은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선악을 구분하는 일이며, 연단을 받아 선악을 구분하는 일은
오직 영적으로 장성한 자 만이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성령의 역사를 빙자한 악령의 역사
(참 하나님)을 빙자한 (자기 하나님)의 역사는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거짓 영이 되어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노라는 구약의 대목을 기억해보십시오.
타종교 안에서, 심지어 정통 기독교 안에서도
가짜가 진짜보다 흔하고 많듯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잘 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빈번하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부정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조심하고 주도면밀히 분별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 사기는
육적, 물질적, 세상적 사기보다 더 고단수 사기이며
지적 사기나 인지적 추정이나 조작보다 훨~ 정교하고 다양합니다.
분별하지 못하고서는 누구나 속을 수 밖에 없는 세계입니다.
육안, 심미안으로써는 아예 분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영안이라고 할지라도 교만하거나, 굳어지거나,
다른 어떤 것으로 가리워진 영안으론 분별하기 힘듭니다.
오직... 보여주시는 이(은혜)로 말미암아 분별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영물과 미물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한편으론 보이는 육적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와의 경계선을 뛰어넘는 일이기에 그러합니다.

성경의 기록처럼, 사단이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위장하며
사단의 일꾼의 의의 일군으로 자기를 가장하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니 차라리, 가장을 뛰어 넘어서...
체험 당사자가 철두철미하게 악의 영(=거짓말의 영, 위조의 영)에 속아
그 간교한 영과 환영을 (그 영과 그 환영이 완벽하게 영광스럽고 거룩합니다)
참 하나님이나 바로 그 진리 (The Truth )로 맹신하고 따르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위조된
거짓천국, 거짓 하나님, 거짓 예수님, 광명의 천사와 접촉하며 대화하는 경우죠 .

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지...

천천히 검토해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체험과 글들을 읽어보면서
목사님의 의의제기가 타당성이 있다고 공감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레벨:1]한성영

2005.12.26 10:55:07
*.106.207.141

현아님 제친구중에 대순진리회 신도가 한명 있습니다.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는
공무원입니다. 그 친구 덕에 대순진리회 공부좀 했습니다.
강증산이라는 분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종교인데 그분이 몸을 가지고 계실때
여러가지 이적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다리가 없는 사람이 새로 자라난 경우도
있고 병자들이 치유가 되고 그걸 직접 간증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말도
그 친구가 하네요. 그리고 대순진리회의 도전이었던 박한경 씨가 몸으로 있을때
여러가지 치유능력이 시학이라는 것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합니다.

친구도 대순에 다니면서 앞길이 열리고 여러가지 신기한 생활속의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한 것들이 과연 하나님체험일까요? 그러한 신기한 체험들은 무속인들도
얼마든지 보여줄수가 있으며 얼마전 TV에서도 초능력을 하는아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노력을 통해 간단한 초능력을 할수 있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를들어 금속물들을 몸에 자석처럼 붙힌다든지 보지않고 써놓은 글을 맞춘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어쩌면 인간이 알지 못하거나 그리 열심히 개발하지
않았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않은 인간의 또다른 능력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체험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하나님체험 즉 궁극을 체험했다면
그에 걸맞는 상태가 자리하게 될겁니다.불가에서 견성을 하게되면 물아일체로서
무아 또는 진아에 머물며 일체 자각의 상태에서 살아가며 번뇌망상의 혼돈에서
벗어나듯이 그러면서 일체중생을위한 보시의 삶을 살아가듯이 말입니다. 방언을하게
되신다음머 그러한 깨달음이 있으셨는지요? 인도의 구루들중에 각을 얻기까지
다른사람들의 미래를 점치는 능력이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무의미한 것들입니다. 그러한 체험은 오히려 궁국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될수도 있습니다.

어느선까지 이해하실수 있으실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이미 궁극의 상태이고 그상태가
아닌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하지않은 적은
한번도 없으며 우리는 이미 하나님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하나님은 완벽하십니다.
세상또한 완벽합니다. 우리또한 완벽합니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뿐입니다.
지금 우주가 완벽하지않다면 하나님또한 완벽하지않습니다. 종말에 가서야 완벽한
세상을 만든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완벽합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하늘나라는 이미 와 있습니다.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단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보석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으면서 반지가 어디있나 찾고 있는 격입니다.
반지를 손에 끼고 있음을 깨닫기만하면 되는 겁니다. 이미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상태를 깨달으면 되는 겁니다.잠에서 깨어나면 되는 겁니다. 마치 우리는 가상공간의
메트릭스처럼 이 현실이 실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인간이 경험하는 현실체험은 다만
에고의 산물입니다.사념이 만들어낸 장난들입니다.주변을 둘러보세요.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언제부터 그러했었죠? 왜 그러한 것들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무었때문에요? 그러한 것들이 의미가 있다고 깨달은 것입니까? 아니면 단지 습의 장난일까요?
지금 의미가 있는 것들이 예전에 그러하지않았습니다. 결혼제도라는 것들도 과거에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일부다처제가 당연한 사회도 있었고 일처다부체가 당연한 사회도
있었으며 고대에는 대부분 부계사회가 아니라 모계사회였습니다.가정이라는 개념도 시대와
사회에따라 너무나 달랐습니다. 고정된 실체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현실세계의 희노애락은 생각들의 장난일뿐입니다.
잠을 잘때에도 현실의 희노애락이 느껴지나요? 그렇지않죠 생각이 멈추면 분별심도
멈춤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안에 있습니다. 악의 영이니 사단이니 하는 것들도
다만 무지의 산물들일 뿐입니다. 인간이 지금 완벽하게 행복하고 온전하지못하며
세상이 그러하지않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조현아

2005.12.26 22:57:14
*.117.161.32

정정희님의 격려의 말씀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성영님,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구하는 신앙칼라나 서 있는 입지에서
한성영님과 제가 판이하게 다른 것 같습니다.

한성영님의 논지대로라면
무목적, 무방향일 수 밖에 없을텐데..
도대체, 왜? 라는 질문에 아무 해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profile

[레벨:4]이상훈

2005.12.27 02:05:44
*.75.96.174

신앙선배님들의 좋은 담론들이 이어지니 읽는 제게도 적잖은 의미를 던져주네요....^^ 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주신 '조현아'님께 감사드립니다...

[레벨:1]한성영

2005.12.27 10:56:09
*.106.207.141

신앙칼라라? 현아님의 칼라는 어떤것인가요? 제가보기에는 멋진 코발트색이나
고혹한 장미색일 것같은데 맞습니까? 신앙 칼라라는 것도 알고보면 에고의 산물입니다.
진리는 분별하는 마음없이 그냥 존재하는 겁니다.칼라를 따지고 음색을 따지는 것은
전부 마음의 장난입니다. 실체가 없는 겁니다. 자신의 참성품을 깨닫게 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이세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중 원래 그러한 것들이 있습니까?
대상을 부분적으로 인식하며 독립된 존재로 보게되면 각각 개별의 것들이 있는 것같으나
실은 전부 마음이 만들어낸 것들이지요.오직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존재 그
자체입니다. 대상에 가치와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전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여기에서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있지도 않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대상을 재단하고 스스로 그 올무에 빠지는 겁니다.수억겁의 시간동안 그 습에 깊이
빠져있어서 그것이 실제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 습을 제거하면
본 성품이 드러납니다. 물방울이 바다로 들어가 바다와 하나가되는 겁니다.
아상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개아는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l am who I am 즉 나는 존재 그 자체이다. 진리의 날선 검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갤때 폭발합니다.그리고 또다른 예수가 됩니다. 예수보다 더한 것을 하며
형제의 발을 씾기는 종이됩니다. 그 형제가 나와 분리된 개아가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원수를 사랑하게 됩니다. 원수가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존재계를 생각의 간섭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보게됩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안가시죠?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하지말고 곰곰히 따져보세요.하나님을 성경에 가두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신학을 한다는 사람들 이나 목회자들 또는 철학자들도
자신도 모르는 것을 정의 하곤 합니다. 그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겁니다. 잘모르면서 세속적
인정을 획득하려하거나 대중성을 인정 받게되면 보이지않는 권력을 형성합니다.
그런것에 휘둘리지말고 내면으로 뛰어들어 이미 깨달아 있고 항상 그러했던 참하나
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기 까지만 말하겟습니다. 이후론 침묵하렵니다.



정정희

2005.12.27 18:17:10
*.120.203.176

한번은 뵙고싶은 한성영님, "영원한 대자유인" 이라는 책을 쓰신 강정진 거사님이라는분이
부산에 계시답니다 그분 책을 읽었습니다
성영님은,
그분만큼 깨닫지는 못했다고 감히 상상해봅니다
성영님, 우리 가는데 까지 가봅시다 그러다보면 더 행복한날도 오겠지요......

[레벨:1]한성영

2005.12.28 04:08:51
*.106.207.141

저도 정정희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군요. 포용력이 대단하신 걸 보니
님도 거의 근접하신 분 같습니다.
성법스님이란 분이 쓰신 이판사판 화엄경이라는 책도 있군요, 부록에서
강정진 거사를 비판하는 글도 담았네요.

정정희

2005.12.28 13:26:18
*.120.203.176

꼭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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