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이단

조회 수 2422 추천 수 48 2005.12.26 09: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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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 관한 질문인데요. 이단으로 규정하는 기준이 애매한 것 같아요. 초기기독교인은 지금 기독교인과 사상이 달랐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거든요. 초기기독교인처럼 예수님이 지옥에 가셨고, 지옥에 간 사람도 구원받는다고 이야기하면 이단으로 취급받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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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12.26 23:32:50
*.249.178.15

이단의 기준에 대한 질문이신가요?
이거 너무 광범위한 거라서,
그리고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냥 간단하게 말한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입장,
사도신경을 신앙의 요체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디서부터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말이죠.
서로 겹쳐있기도 하구요.

[레벨:0]임영택

2005.12.27 22:15:44
*.120.102.123

삼위일체는 인위적인것 아닌가요. 삼위일체를 기준으로 이단을 판단한다는 것은 잘못된것 아닌가요.

[레벨:0]임영택

2005.12.27 23:28:27
*.120.102.123

목사님 스베덴보리를 아시나요. 스베덴보리의 신학적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헬렌켈러에게 빛을 주었던 스베덴보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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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12.27 23:55:58
*.249.178.15

임영택 님,
삼위일체가 인위적이라고 말씀하셨나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부에 놓여 있는 교리가 '삼위일체'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믿지요?
그게 바로 삼위일체의 출발입니다.
기독교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믿지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하나님, 영으로서의 하나님이
곧 기독교 신앙의 토대입니다.
이 하나님은 위격의 차원에서 셋으로 구분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라는 게 삼위일체의 기본 개념입니다.
이걸 인위적인 거라고 말하면 참 곤란하지요.
아마 이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잘 되지 않으니까
인위적이라고 말씀하는 것 같은데,
인위적인 게 아니라
새로운 인식론입니다.
이 자리에서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기는 힘들구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대신하지요.
삼위일체론은 다음과 같은 서로 대립적인 두 가지 명제의 일치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유일한 존재이다.
둘때, 예수와 성령도 하나님이다.
스베덴보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만.

[레벨:7]우익지

2005.12.28 06:57:29
*.94.149.1

이곳 미국에도 여호와의 증인이 한인들의 집을 방문합니다. 부부가 아이와 같이 와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커피도 나누면서... 저보고 나이가 몇살 많다고 형님이라 불러도 되냐고. 그러라 그랬죠, 뭐... 결국은 이야기는 제가 믿는 하나님과 그 여호와 증인 형제(?)가 믿는 하나님은 동일하다면서 신앙적 일체감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나아가서는 삼위일체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었죠. 몇시간의 공방끝에 그 여호와의 증인께서 하시는 말씀은 삼위일체에 대한 약간의 차이일 뿐이지 않느냐라는 겁니다.

집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 어떻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오? 같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 유대교나 이슬람교도가 믿는 하나님과 더 나아가서 여호와증인이 믿는 하나님과 같은가? 저도 이때까지 크게 생각하지 못했고 제 집사람은 그냥 쉽게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야말로 사도신경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것(삼위일체이겠죠)만이 내가 믿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이 믿는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증거가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러니까 유대교나 이슬람도 그렇게 믿어요 라고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데 당신도 믿냐고 물어 봤다. 다행이다. 믿는단다. 우리집에는 이단이 없음을 확인했다.

[레벨:0]임영택

2005.12.28 11:04:44
*.145.175.125

성서는 역사비평이라고 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아주 신선하게, 한편으로는 그동안 정통 보수교단이라는 곳에서도 이런 성서관을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정통보수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관한 해석에 있어 너무도 많은 의문을 갖고 있고 타 종교(특히 불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기존의 기독교의 교리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지 (복음서에는 물론 '예수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을 하시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현재도 예수님을 알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지옥에 간다는 것인데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편협한 하나님이라면 보통의 사람보다도 못한 신이라고 밖에 볼수 없을 것이어서 과연 숭배의 대상이 되는지, 그렇다면 하나님은 저주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한 것밖에 안된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목사님의 성서비평을 한겨레 신문을 통하여 알게되고는 어떻게든 목사님을 찾아보려고 애쓰다가 이리저리 사이트를 넘나들던중 우연히도 대구성서아카데미가 걸려 너무도 반가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역시 삼위일체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계시더군요. 저는 성경 지식이 짧아 목사님과 성경 교리문제로 토론하거나 논쟁할 수준은 전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글은 단지 저의 궁금했던 점을 말씀드릴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자체로서 우선은 속이 약간 시원하고 한편으로는 목사님을 통해서 속시원하게 의문을 풀기를 바라는 학동같은 자세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삼위일체라는 것은 분명히 인위적인 것에 불과하고 심지어는 십계명중 제1계명인 우상숭배금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위격이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성령은 예수님(하나님)의 신적인 작용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꼭 삼위일체가 전제가 되지 않으면 신앙이 불가능한 것인가요.

[레벨:0]임영택

2005.12.28 11:17:43
*.145.175.125

그리고 야고보서가 지푸라기 서신이라는 루터의 말은 무슨뜻인가요. 바울이나 베드로 서신등 다른 서신들은 모두 칭의를 주장하는데 야고보는 유독 행위를 강조하고 있어서 이러한 야고보의 관점이 칭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뜻에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한 것인지, 저는 오히려 야고보의 관점이 옳다고 보이는데요. 예수님도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는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카톨릭의 당시의 잘못된 현실을 깨부수는 역할을 한것은 틀림 없지만 그 역할과 루터 개인의 신앙적 입장을 절대화 하는 것은 마치 루터를 예수님과 같이 대접하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루터를 잘 모르지만 루터가 얼마나 신앙이 좋은 사람인지, 믿음이 어느정도 인지도 모르겠고 설사 아무리 신앙이 좋다해도 종교개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개인적인 신앙관을 절대화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길 않습니다( 칼빈의 예정설만 보더라도 너무도 황당하기만 한데요. 요한 웨슬리도 예정설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더군요). 루터는 종교개혁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하였지만 루터의 행동은 좀 비겁하지 않았는가요. 자신을 의지하려는 농민들을 저버리고 오히려 영주들의 황제와 교황에 대한 대립적인 입장을 이용하여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여 영주들에게 피함으로써 당시 농민들의 학대자가 되어버린 루터같은 사람의 주장을 지금의 신학이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하였다면 목사님께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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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12.29 00:40:53
*.249.178.11

임영택 님,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시는군요.
그 교회를 정통보수교단이라고 했지요?
나의 역사비평 운운을 보시고,
정통보수 교단에 속한 사람도 이런 말을 하는구나, 하고 놀라셨다구요.
"정통보수"라...
이게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들은 앞으로 차차 하게 될 거니까 접어두지요.
문제는 '삼위일체'입니다.
임영택 씨가 그 개념에 대해서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는 건 참으로 좋은 겁니다.
대개는 아무런 의문점도 없이 무조건 믿어버리거든요.
믿음과 이성의 관계로부터 말을 하기 시작해야 하는데,
이건 또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다른 글에서 비슷한 내용들이 있으니까 그만두구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런 개념을 '인위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약간 곤란합니다.
곤란하다기보다는 그것의 신학적 실체를 모른다고 보아야겠지요.
모를 때는 일단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공부하는 게 좋고,
그게 마땅치 않으면 조금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혹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지모 모릅니다.
아내의 모든 것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믿고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믿음은 광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신비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이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광신은 아니지만 참된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말이지요.
이 세상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인간관계도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면 정말 그런 거 같고,
사랑의 눈으로 보면 그게 보이겠지요.
<어린왕자>의 눈으로는 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인답니다.
그게 신비 아닐까요?
자꾸 말이 옆으로 나가네요.
삼위일체를 왜 이단 규정의 준거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해야겠군요.
그런데 사실 나는 이단 운운에 대해서 별로 큰 관심은 없어요.
우리는 아무리 정통보수라고 하더라도
늘 그 경계선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완전한 전통은 없습니다.
우리의 인식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이 그런 고정된 정통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지난 과거의 어떤 교리를 수호하는 게 아니라
종말을 향해서 열어가는 겁니다.
이단도 괜찮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문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논의과정을 거쳐야지
"너 이단이야!"하는 식은 기독교의 근본이 아니죠.
위에서 <한성영>님이 삼위일체의 문제점,
혹은 비역사성 같은 것들을 인용해주었군요.
아마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끌어오신 것 같네요.
얼마 전에 나는 안티 기독교 운동에 대해서 무모하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런 안티 운동으로 인해서
기독교의 군더더기가 씻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굳디 <안티>라는 말을 왜 붙일까, 하는 게 여전히 의문점이죠.
그냥 기독교 신학, 혹은 신앙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건 좋은 거겠지요.
그건 그렇고,
한성영 님이 어디에선가 따온 글을 내가 모두 검증할 수 없네요.
초기 기독교 교리사 전반에 연관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충으로만 말한다면 그렇게 결정적으로 잘못된 정보는 아닌 것 같네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런 정도의 정보는 이미 기독교 신학 안에서 해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이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는 이야기에요.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독창적인 교리가 아닙니다.
성서에도 없어요.
교부들은 플라톤에게서 이런 개념을 배웠을 겁니다.
어디 기독교가 삼위일체만 배웠나요?
아주 많은 걸 주로 헬라 쳘학에서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삼위일체가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고,
예수의 정체서이 문제였지요.
지금도 기독교는 주변의 철학, 인문학, 과학으로부터
많은 걸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자기를 절대화하지 않고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젊은피"(?)를 수혈받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곧 '진리의식'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가 다른 데서 왔다는 사실은
우리게 그렇게 큰 흠집이 아닙니다.
아무런 문제가 아닌 것을 큰 문제인 것처럼 부풀리는 건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안티 기독교>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이거죠.
흡사 김정일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드라, 하면서
레드 컴플렉스를 부추기는 것처럼 기독교의 흠집을 까발리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잘못된 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 있어야지요.
다만 침소봉대의 방식은 정상적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삼위일체, 이 교리는 플라톤의 영향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주변의 다른 종교, 또는 다른 철학과의 열린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을 훨씬 심층적으로 인식해보려고 치열하게 투쟁했습니다.
그런 결과가 삼위일체입니다.
그것의 신학적 의미는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가장 짧막한 글로는 <신학단산> 41번 글을 보세요.
또는 저의 <온라인 강의실>의 <조직신학>에 보면 아마
삼위일체를 다룬 장이 나올 겁니다.
이 주제만을 다룬 신학 책도 많습니다.
아마 임영택 님은 이렇게 질문하겠군요.
다른 데서 영향을 받은 삼위일체를 기준으로 이단을 논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에요.
나는 지금 이단을 몹쓸놈들이라고 생각하는 차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단은 말 그대로 "끝만 살짝 다르다"로 새길 수 있어요.
우리와 다른 부분을 말하는 거죠.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통해서 성서의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더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다른 개념이 등장한다면
삼위일체는 한발자국 물러서야겠지요.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최선입니다.
왜 최선일까요?
그것은 삼위일체의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앞에서 말했듯이 여기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임영택 님,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야고보서, 루터, 농민전쟁 같은 이야기는 다 담을 수 없네요.
주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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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12.29 00:57:03
*.249.178.11

한성영 님,
나에게 직접 물은 것 같으니까 한 말씀 드려야겠군요.
위에서 따오신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신 것 같네요.
별로 새로울 게 없습니다.
기독교의 종말론도 유대인들의 묵시문학의 영향이구요,
영혼불멸도 역시 플라톤의 영향입니다.
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 로마의 많은 신화와 전통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어요.
주일도 그렇고, 크리스마스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독창적인 건 하나도 없다고 봐야지요.
그게 어떻다는 거죠?
이 세상에 모든 사건, 사태, 사상,
더 나가서 돌맹이 하나도 역시 새로운 게 아니라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건 한성영 님이 나보다 한수 위일 테니까 말할 필요도 없지요.
까놓고 말해서 기독교는 그런 역사의 산물입니다.
내가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교회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다.
또는 예수의 십자가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다,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행위, 그의 존재와 우리의 인식의 역학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게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런 우연의 사건들 속에서 근원적인 소리, 존재론적 힘들을 보는 거죠.
기독교가 주변의 여러 사랑, 종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거가
무슨 문제가 될까요?
구약은 아마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이렇게 서로 얽히고 섥히는 역사의 묘 안에서
진리를 지향하는 종교는 살아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선택하시겠지요.
그런 과정에서 기독교는 삼위일체 개념으로 하나님을 이해했습니다.
기독교는 비록 다른 철학과 종교에서 그런 걸 배웠다고 해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새로운 영적인 깊이로 지양했습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의 교리역사입니다.
이게 잘못인가요?
지금도 우리는 열어놓고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다 아는 게 아니니까요.
창조가 끝난 게 아니라 종말까지 이어지니까요.
그 중심에 예수 사건이 놓여 있습니다.
오늘 내가 기독론에 대해서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기독교 교리가 말하는 삼위일체의 단초가 헬라철학에서 왔다는 것은
기독교가 진리를 향해 열려있다는 사실의 반증입니다.
좋은 연말, 연시가 되시기를.

[레벨:1]정세웅

2005.12.29 09:39:05
*.59.44.99

ㅋㅋㅋ. 한성영님. 오영숙님과의 이야기를 보고,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여기에 있었군요... 한성영님, 내공이 높으신 분인것같은데, 참 재미있습니다. 한성영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는데, 정용섭목사님같은 입장은 득도한 것이 아닌지? 그런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듯. 전에 없이 여기에서는 더욱 강하게 '계몽'의 의지가 엿보이시는 군요. 정용섭목사님은 이미 그런 분별자체가 없는 듯 한데... 약간 흥분하셨나봐요?
제가 한성영님의 말씀에 반박할 이유를 갖지는 못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정용섭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단순히 교리수호를 외치는 것은 아니고, 이단박멸을 외치는 것은 아닌데, 그 선까지 끌고가시는 것은...
무언가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될 부분은 아닌것 같은데...
두 분의 이야기다 유용한 말씀이고, 좋은 도전인듯 한데.. 그게 부딪힐 문제는 아닌 듯해서요....

[레벨:7]우익지

2005.12.29 14:41:54
*.107.92.247

"생명의 파괴를 획책한다든지"
제 생각에는 한성영님이 말씀하신 이 사실이 정말로 이단을 규정짓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보면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착하게 됩니다. 또한 무엇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가 쉽게 말하는 이단은 생명파괴를 획책하는가? 깊게는 모르지만 대체로 지금까지 규정했던 이단은 그런 성향이 짙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때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또 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존재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인식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는 어떤 것을 정의 (Definition)할 때 언어로 학문으로 정확하게 정의 할 수 있는가? 이런 등등의 생각이 생깁니다.

아참, 우리가 득도를 하고 세상의 자비를 배푼다고 한다면 그 자비라는 것은 어디부터가 자비이고 어디까지가 자비가 아닌가? 언제까지 그 득한 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왜 도를 득해야 하나?

스스로 물어 보지만 제 주제에는 답을 찾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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