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정빠'(^^)가 된 아내!

조회 수 2022 추천 수 19 2005.11.14 14: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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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님!

지난 한 주간은 목사님의 글과 씨름하며 보냈습니다. 그 동안 영어 능력을 기르기 위해 가급적 한글 책을 안 보려고 했었는데...... 신학특강과 설교비평 그리고 설교를 프린터를 해서 갖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읽고 생각했답니다 (프린트 용지가 상당히 들더군요^^).

목회하면서 혹은 공부만 하면서 신학관련 글을 읽을 때와 지금과 같은 저의 상황에서 글을 읽을 때는 참 그 맛이 다른가 봅니다. 물론 저는 지금 목회는 않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지 않으니 ‘머리’가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데도 별로 걸릴게 없고요. 더욱이 특별한 직업(아르바이트)을 세 개나 병행하면서 ‘현장’에서 목사님의 글을 대하는 기분은 참 특별한 것 같습니다. 저도 좀 더 젊었을 때는 해방신학, 민중신학, 상황신학, 종교다원주의 신학 등 현대신학 분야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어요.

제가 매일 저녁에 나가서 하는 아르바이트는 중국인 식당 음식 배달입니다. 주인 부부와 대부분 요리사들은 불교이고 최근에는 천주교 신자 중국인 유학생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저와 동료관계에 있는 배달부들은 시리아 출신의 무슬림, 스리랑카 출신의 힌두교도 그리고 저 (기독교도)입니다. 대략 15명 정도의 일꾼들이 모두 5개의 종교를 신봉하고 있으니 이 식당이야말로 현대 영국 사회가 자랑스레 표방하는 ‘다민족, 다문화, 다인종, 다종교’를 몸소 실천하는 현장인 듯 합니다 (참고로, 제가 사는 런던은 200여 개국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단일민족과 단일언어라는 여건 속에서 비교적 제한된 종교인들과 어울리며 살았던 고국에서의 환경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것이 많기 때문에 그들과 부대끼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되고 있지요. <식당의 이윤추구>라는 공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종교와 문화 풍습과 언어를 초월하여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 말입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낯이 설어서 적잖은 갈등도 있었으나 이제 한 2년 남짓 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러움이 몸에 거의 밴 듯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그리고 다종교 환경 속에서 되씹고 곱씹어 보는 목사님의 신학특강과 설교학은 저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더욱 진지하게 만들어 주는 듯 합니다.  

매일 점심 시간에는 출석하는 영국 교회 식당의 주방장 보조로 뛰고(?) 있는 데 여기선 또 색다른 경험을 한답니다. 우리로 말하면 ‘교회 사찰’이면서 교회를 전혀 다니지 않는 매니저 밑에서 세 사람의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모두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동료로서 호흡하며 기독교인들 및 불신자들과 더불어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접시를 닦는 일이 제 임무입니다. 11년 간이나 군대에서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사지가 멀쩡한 이들과만 생활하다가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는 기분도 참 신선하군요. 나이는 저와 동갑인데 정신연령은 십대 정도 밖에 안 되는 여성, 58년 개띠지만 몸과 정신이 불편하고 특히 심한 비염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영어가 잘 안 되는 저의 귀를 늘 고생시키는 여성,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데 역시 장애인으로 일평생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은 공수부대에 지원하여 낙하산까지 타본 경험이 있는 신체 건장한 저에게는 무언의 선생들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장애인들의 심정과 아픔 그리고 그들이 터뜨리는 함박웃음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신학과 성경에 다소 관심이 적은 아내에게 제가 읽는 족족 프린트 물을 건네 주고 틈틈이 생각을 교환해 보았습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장로교단의 환경에서 자란 아내는 목사님의 글이 다소 생소하기는 해도 신선함과 아울러 상당부분 충격이 된 듯 합니다 (사실 오늘 밤 11시경부터 새벽 4시까지 깊은 토론을 한 뒤 아내가 자는 틈에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벌써 월요일 새벽 5시 반이네요.)

지난 주간 세 편의 글을 읽더니 ‘여보, 정목사님 글이 참 깊이가 있으시네요!’ 하는 게 아닙니까? 이 번 한 주만 더 읽으면 아내는 거의 ‘정빠’(^^)가 될 것 같군요. 신학적인 부분은 좀 헷갈려 하지만 특히 설교 비평 부분은 너무 좋아하고 있어요. 남편인 제가 마치 목사님의 설교도마(?) 위에 내동댕이 처진 한 마리 가련한 생선같이 느껴지는 모양이지요(^^)? 가끔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깔깔거리며 통쾌해 하는 것을 보니 목사님 글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아내는 지난 날 저와 13년 정도 목회하면서 겪었던 수 많은 목회적 갈등에 대한 문제점들을 성찰할 수 있어서 큰 유익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목사님의 글들은 전후 좌우를 더욱 심사 숙고하며 걸어가도록 하는 지침이 되는 듯 합니다. 아직 많은 공부가 부족해서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니 멀리서 큰 스승을 만난 기분입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또 이 상황 저 상황에 봉착하여 ‘몸’으로 하는 일체의 목회 및 학문활동은 도서관 안에서 머리로만 읽는 신학 서적과 교회라는 울타리 내에서 생각하는 목회와 설교와는 그 맛에서 다소 차인가 나는 듯 합니다.

또 다른 글을 프린트 해서 읽어야겠군요. 이러다 영어를 까먹을까 걱정 되네요!

멀리서 후배가 또 인사 드립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11.14 23:01:29
*.249.178.23

신완식 목사님,
아르바이트 하랴, 공부하랴, 부인과 대화 하랴, 바쁘실텐데,
이렇게 마음이 담긴 긴 글을 남기시다니,
고맙습니다.
출력을 하면서까지 제 글을 읽으신다니,
뭐라 할까요.
서로 소통되는 부분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니까
기쁘다고 해야겠지요.
아마 중간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글들이 제법 눈에 뜨일 겁니다.
뭔가 쫓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세요.
영국 사회가 그렇게 여러 인종이 사는 곳이군요.
대충 뉴스 보도나 다른 통로를 통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까지 많은 인종이 살 줄은 몰랐습니다.
건강하시고,
부인에게도 안부 좀 전해주세요.
주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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