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오랜만에 런던에서 마음을 전합니다.

조회 수 1459 추천 수 20 2005.11.07 19: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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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님!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오래 전 자주 들리겠다고 약속해놓고 잘 지키지를 못했네요(^^). 가끔 들리는 어느 인터넷 신문에 최근 올라온 목사님 관련 소식을 대하고 반가운 마음에…….

이 곳 영국 생활 4년을 넘기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 한국 사회와 교계의 토론 문화가 아직은 많이 미숙하구나 하는 점입니다. 사실은 저도 토론에는 그리 익숙지 않습니다만 그 이유는 제 성격 탓일 수도 있겠으나 환경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감수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고교 시절이나 신학교 재학 시절 저의 소견을 밝히고 그를 토대로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으로 대화 해 본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세대는 더 했겠지만 저 같은 486 세대 또한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의 견해와 다른 나름대로의 생각을 펼치는 일은 거의 순교를 각오해야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의 ‘말씀’ 수준의 권위를 지닌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다소 차이가 나는 견해를 밝히다 ‘불복종 죄’(?)에 걸려 63~5명의 급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무차별 구타를 (심한 욕설과 감정적 흥분을 동반한) 당하던 친구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군요. 저는 그런 낭패를 맛보지 않는 방법을 익히 터득한 듯합니다. 수업 시간에 맞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 ‘말씀’에 이의를 단적이 없거든요 아니 아예 질문을 한 기억이 별로 안 납니다. ‘빨리 진도 나가야 하는 데 웬 질문이냐’고 야단을 치며 험상 굿은 인상을 지으시던 선생님들의 비위를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이 범생은 굳게 다짐 했거든요. 괜히 벌집을 잘못 건드리면!

그래서 저 같은 ‘친절한 학생’을 당시 선생님들은 참 좋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지각 결석 한 번 한 적이 없었던 저는 신학교 1학년 때 제일 크게 실망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졸업할 때 4년 개근상은 꼭 타야지!’를 굳게 결심했던 (우등상 탈 능력은 없었으니까요) 제게 어느 날 여학생 급우 한 명이 이런 청천병력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닙니까! ‘야! 대학에 무슨 개근상이 있냐?’ ‘뭐! 개근상이 없어?’ 그 때 제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지요.

그로부터 약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곳에 까지 흘러 들어와 언어 연수를 받는 데 영어 학원 강사께서 매주 주말마다 작문 숙제를 내는 게 아닙니까? 주말 내내 낑낑대며 모범 답안을 만들어 숙제를 해가면 이내 이렇게 되묻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생각은 없나요? 그리고 그 생각을 증명해야 해요.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나열하면 안 됩니다. 이런 견해 저런 견해 즉 서로 다른 견해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면서 논쟁을 유도하고 그런 뒤에 자신의 입장을 이끌어 내야 해요.’ 가만히 보니까 특히 한국 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이 그런 접근 방식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 하더군요. 시험 출제 방식이 거의 비슷한 것 가더라고요. 4~5 문항 중에서 찍는 것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특히 작문과 토론에서 점수를 잘 받지를 못하더군요.

하루는 열여덟 살 먹은 어린 중국 학생 하나가 거의 울먹이면서 제게 다가왔습니다. 작문 점수가 너무 안 나온다고 하면서. 그 때는 눈치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제가 이렇게 그녀에게 질문을 했지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영어가 아닌 중국말로 쓴다면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겠니?’ ‘아뇨? 그냥 찍는 건 잘 하겠는 데 제 생각을 쓰는 건 정말 힘들어요.’ ‘왜?’ ‘이런 식으로 숙제를 해 본 적도 또 시험을 쳐본 적이 없거든요.’

뒤 늦은 경험이지만 그 때부터 제게 하나의 습관이 된 것은 ‘이런 입장 저런 입장’ ‘이런 견해 저런 견해’를 다 들어 보는 것입니다. 어느 일면만을 중점적으로 기술하면 오히려 감점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생각에 균형이 없다!’라는 것 즉 편견과 독단은 이 사회에서는 이른 나이부터 금기시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곳 영국인들이 가장 자부심을 갖고 신뢰하는 것이 바로 BBC 방송이라는 군요. ‘객관성’ 이 BBC의 최고 가치인 것 같습니다 (물론 완벽한 수는 없지만요). 영어가 짧아서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토론 프로를 가끔씩 시청하다 보면 배울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두드러진 특징들은, 1) 가급적 다양한 견해를 도출해 내고 2)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토론하며 3) 논리적인 비약을 자제하며 4)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는 아무리 격렬한 논쟁을 벌이더라도 웃음과 유머를 빠뜨리지 않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최종적인 결론 시청자가 내리면 되는 것이고, 토론에 임하는 패널들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할 수 있도록 얼마나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고 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가 숙제로 남게 되는 것이고요. 영국인들은 말 하나는 다들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제 큰 애가 여기서 한참 대학 입시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3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시험을 치는 게 한국과 가장 다른 제도이겠지만 참 신기한 것은 심지어 수학 시험에서도  한국에서는 찾기 쉽지 않은 독특한 채점 원칙이 있더군요. 한 마디로 답만 맞으면 점수가 없어요.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과정’이 동시에 제시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답은 비록 틀렸어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어 보이면 상당한 점수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만이 옳은 답이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갖기 어려운 듯합니다 (물론 이런 방식의 문제점도 많겠지만요.) 수학이 그러니 다른 과목은 두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선생님들께서 말씀해 주시는 답만 달달 외느라 고생하면서 혹여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던 애들인데 여기서는 그런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서 내심 녀석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이런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와 교계의 토론 문화를 인터넷 상으로 대해보니 이건 토론이라고 보기에는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와 다른 견해들에 대해 왜 이리도 쉽게 흥분하고 감정을 쏟아 놓으며 독기를 품는 지요.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지키지 않을 뿐더러 아예 나와는 다른 타인의 견해를 들어보려는 최소한의 의지도 없는 듯합니다.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이내 친구가 되었다가도 반대의 상황이 되면 일순간 이 지구에서 없어져야할 원수와 제거 되어야 할 이단의 괴수로 낙인을 찍어 버리니 무슨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토론과 의사 교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한 3년 전 이런 신선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해설교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목회한 바 있는 런던 시내의 Westminster Chapel이라는 교회에서는 매년 12월에 'Westminster Conference'라는 목회자를 위한 정기 세미나가 열립니다. 영국 전역에서 목회하고 있는 주로 보수적인 교단 소속 (Calvin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분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 약 300여 명이 모여 이틀간 발제와 토론을 벌이는 행사이지요. 그 해의 주제가 공교롭게도 ‘John Wesley' 이었습니다. Calvin 주의자들이 모여서 발제하는 Wesley 신학사상이라서 소속 교단의 교육 방침에 따라 Wesley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던 저로서는 자연이 관심이 갔습니다. 발제자는 이렇게 내용을 전개해 나가더군요. 1) Wesley의 삶 개관 2) 그의 신학의 특징 3) 계승 발전 시켜야 할 장점들과 Calvinist들이 본받아야할 신학과 목회 4) 그의 신학의 문제점들 5) 결론. 그리고 이어진 자유 토론. 이틀간 그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갖게 된 한 가지 귀중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Calvin도 Wesley도 다 나름대로 소중한 분들이구나.

신학교 시절 Wesley에 대한 강의시간에 ‘Calvin 때려 부수기’부터 들어야 했던 관계로 당시 저희 친구들 사이에서는 Calvin은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할 신학계의 가장 위험한 ‘독버섯’이 되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Calvin 서적은 한 권도 읽지를 못한 채 마음속으로 ‘그는 신학계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해!’를 다짐하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하고 말았지요! (이건 결코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나중에 장로교 계통에서 공부하신 한국 목회자들과 대화해 보니 그 분들은 저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셨더군요. Calvin 신학을 공부하면서 'Wesley 까기’부터 시작했는데 정작 Wesley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하셨다는! 지금 신학교에서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공부하던 20여 년 전에는 바로 그런 식의 교육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 드린 바 있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설립한 런던 소재 어느 신학교에서 1년 간 수학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는 분명 마틴 로이드 존스의 정신을 따라 설립되었는데 거기에 교수진들이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에게 크게 예속 당하지는 않고 있는 듯 했습니다. 강의 시간에 빙그레 웃으면서 ‘학장님께서 들으시면 서운해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러 이러한 면에서는 로이드 존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강사가 있는가하면 ‘로이드 존스는 이 부분을 이렇게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설명하는 강사도 계셨습니다. 한국의 교단 신학교들의 풍토에 익숙했던 한국 학생들은 그 후 매우 궁금한 마음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감동인 것은 그 어느 학생 하나도 강의실 내 이야기를 학장님이나 교회 관계자들에게 고자질 하는 이가 없었고 그런 소리를 했다고 목이 달아난 강사도 여태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어느 학교 직원도 과감하게 로이드 존스의 성경해석상의 오류를 지적하는 게 아닙니까! 그가 근무하는 방 바로 맞은편 방이 바로 로이드 존스가 기증한 수많은 책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인데요. 로이드 존스가 생존해 있을 때는 열심히 그 교회에 출석했고 지금도 그를 존경한다는 그 직원은 분명 우리와는 조금은 다른 마인드를 가진 것 같습니다.

저는 결코 영국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자가 아닙니다. 이곳 세계도 지저분한 냄새가 많이 풍기고 속히 청산되어야 할 추악한 면들도 적잖이 있는 세상이기는 매 한 가지이지만 자신과 반대되는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 하는 자세는 우리 보다는 한 수 위인 듯해서 가끔씩은 부럽습니다.

목사님의 의견에 대해 이를 갈며 정죄하는 이들의 소리에도 초연하시다고 하는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사실 저는 ‘정빠’는(?) 아닙니다. 저도 목사님의 견해에 대해 공감하고 도전 받는 부분이 있는 가하면 솔직히 이건 아닌데 싶은 면도 적잖이 있습니다. (물론 전자가 더 많겠지만요.) 그러나 ‘대화’란 서로의 다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견해가 많이 다를수록 서로 배울 것도 많은 법이니까요.

BBC에서 매주 목요일 밤에 방송하는 <Question Time>이라는 토론 프로는 영국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매우 진지하고 깊은 토론을 벌이기로 유명한 데 때로는 패널들 간에 논쟁이 너무 과열되어 방청석으로부터 찬반 견해에 대한 비난과 심지어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번 마다 빠지지 않는 것은 적절한 유머와 웃음 그리고 상대에 대해 지키는 예의입니다. 견해는 달라도 사람은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견해가 다르면 사람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듯 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가끔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오랜 만에 인사를 드리다 보니 글이 좀 길어졌군요. 바쁘실 텐데 아무 내용도 없는 글을 읽으시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늘 건강하시고 목사님의 학문 활동과 목회 사역에 큰 진전이 있기를 멀리서 기원하겠습니다.

런던에서 후배 신완식 올림.

정정희

2005.11.07 23:22:10
*.120.203.176

정말 공감이 가는 , 저한테 적용시켜야 하는 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11.08 00:14:03
*.249.178.9

신완식 목사님,
반갑습니다.
공부는 잘 돼가겠지요.
위의 글, 잘 읽었습니다.
과정과 대화가 중심축으로 작동되는 영국의 교육과 사회를 설명해주셨군요.
감사.

이길용

2005.11.08 00:40:12
*.97.233.175

오랜만입니다.
즐겁게 살고 계시죠?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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