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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감사 합니다. 그러면~

조회 수 2117 추천 수 69 2005.09.21 2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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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간간히 마음에 부담이 되고 궁금했던것 한가지 물어 보아도 될까요?

목사님,  "무교회 주의" 는 어떻게 생각 하세요?

제가 여기서 말하는 "무교회" 라 함은 지역에 세워져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하는곳을 말 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를 나가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하는분들을 말 하는 겁니다.

나가지 않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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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09.22 20:43:30
*.249.178.14

함종연 씨,
위의 내용 중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은 잘못된 것 같군요.
"제가 여기서 말하는 "무교회" 라 함은 지역에 세워져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하는곳을 말 하는 것입니다."
무교회주의는 가시적인 제도와 조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를 의미하겠지요.
어쨌든지 무슨 말씀인지 이해는 했습니다.
교회를 나가는 것과 나가지 않는 것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도 아니고,
교회를 세우라고 직접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공동체도 역시 교회를 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역사 안에 등장한 교회는 무어냐, 하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그것까지 설명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집 인터넷이 먹통이 되어서 옆집에 와서 사용하는 중입니다.
시간을 오래 잡아먹을 수가 없군요.)
예수님과 역사적 교회와의 관계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연결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역사 안에 등장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이 철저하게 의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예수와 그의 말씀과 그의 사건이지 교회는 아니거든요.
교회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본질적인 차원에 볼 때 교회는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좋은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좀 말할까요?
본인이 혼자서도 깊은 영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보다 영성이 깊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게 자신의 영성 훈련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직접 원하셨건 아니건 크게 상관없이
이제 예수의 말씀과 그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 그 복음을
가장 정확하게 확보하고 전승하고 유지하는 공동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예수 사건을 이렇게 역사적으로 간수하고 있는 공동체는
교회 말고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성서가 있긴 하지요.
개신교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교회보다는 성서가 우월합니다.
'솔라 피데'라는 루터의 주장처럼 교회보다는 성서가 우선합니다.
그러나 성서도 역시 교회라는 공동체가 비교적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기독론적으로나 성서적으로나 중요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습니다.
신자들 사이의 코이노니아는 구체적으로 공동체를 이룰 때 가능합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 성만찬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가능하긴 합니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소위 무교회주의자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세계 교회사적으로 그런 공동체는 많았습니다.
공동체로 모이기는하지만 전통적인 교회의 제도를 거부하는거죠.
우리에게는 김교신, 함석헌 선생님이 그런 계열입니다.
이 무교회주의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원하면
기독교 사상(2004년)에 몇 달에 걸쳐서 연재된 게 있습니다.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답은 없습니다.
개인의 영적 형편에 따라서 그 답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만, 주의 은총이.

[레벨:1]정선희

2005.09.22 21:19:54
*.144.20.41

목사님의 글에서 말씀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대충 감이 잡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도 아니고,
교회를 세우라고 직접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공동체도 역시 교회를 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라는 부분은

마태복음 16:16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18절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구절과 비교해 볼 때 약간 상충되는듯 해 보입니다. 여기서 "교회"란 낱말은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한 부분인가요?

[레벨:0]함종연

2005.09.22 22:18:46
*.75.24.222

감사 합니다. ^**^;;
글을 써 놓고 몇번을 다시 읽어 보아도 보이지 않던 오타를 목사님께선 단번에
보이시어 말씀해 주시니. . .
이곳에 오래 살면서 생긴병? 이랄까, 시간이 갈수록 한국말을 매끄럽게
쓸줄 모르고 단어도 자꾸 잃어 버린다는 거죠.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냐? 그건 더더욱 아니예요.
한마디로 바보가 되가고 있답니다.
이래서 늙으면 별수 없나 봅니다. ㅎㅎ

공동체에 함께 하며 서로 격려와 권고를 주고 받으며 교제하면 더없이 좋겠건만
그러기 보다는 받는 상처가 더 많으니.
더욱 께름직 한것은, 목사님들 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며
교회 출석을 의무화 하시잖아요.

정선희씨, 목사님께서 답을 해 주시겠지만 제가 말하는 교회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그 교회가 아니랍니다.

감. 사. 합. 니. 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09.23 13:41:57
*.249.178.14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언제부터 정기적으로 모였을까요?
처음에는 주일에 모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때는 오히려 안식일(토요일)이 중요했으니까요.
지금처럼 주일에 모이는 건 로마문명의 영향입니다.
이에 관한 교회사적 연구는 내 분야가 아니니까 접어두구요.
예수 사건이 원시 공동체에게,
즉 사도와 예수의 동생들, 좀 더 확대해서 120명 쯤의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확연한 건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죠.
이 말은 오해될 가능성이 있군요.
예수의 사건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여전히 비밀로 남아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시 공동체는 유대교로부터 독립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마 이런 말이 신학 공부가 없는 분들에게,
또는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역사는 우연하고 작은 사건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있을 때
전혀 새로운 사건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바로 그런 변화, 발전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기독교를 트릴취가 시도한 것처럼
종교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역사적 교회에 일어났던 실체적 진실을
일단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말입니다.
그 작업이 있는 다음에 신앙적 통찰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주일에 정기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기보다는 어떤 역사적 과정에서 교회가 판단한 결과입니다.
지금 사회에서도 주5일 근무제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수주일'이라는 건 일종의 신앙적 교훈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신앙적 '규범'으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죠. 의미는 있죠.
다만 신앙의 본질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
그것의 성서적, 신학적, 인문학적 이해와 더불어
오늘의 삶을 총체적으로 검토해야만 합니다.
오늘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좋은 전통이니까
그것을 잘 살려나갈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건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 되는 거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
이 반석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말씀은 많은 논의가 필요한 구절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 구절에 근거해서
베드로의 초대 교황권,
이어서 로마가톨릭 교회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신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베드로 개인에게 준 게 아니라
예수를 믿는 공동체에게 준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곧 교회라는 말씀이죠.
여기서 더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구절이 과연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복음서의 모든 구절들이
실제로 예수의 친언이 아니라는 건
웬만큼 성서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는 그 대목에서 왜 예수님의 말씀인 것처럼 보도할까요?
마태 공동체가 그걸 요청했겠지요.
마태 공동체가 놓인 '삶의 자리'에서는,
아마 베드로의 권위가 절실했던지,
아니면 구체적인 교회의 근거가 필요했던지,
어떤 필요였든지 그들에게는 베드로의 신앙이 바로 교회의 근거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합니다.
첫째, 복음서에 예수님의 친언이 아닌 게 있다면 성서는 가치가 없는가?
둘째, 예수의 친언과 아닌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나가기 위해서
성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해석학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서 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말입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 힘들군요.
다만 이렇게만 언질을 주어도 되겠지요.
노자의 도덕경을 해석하려면 우리가 무슨 공부가,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세요.
그게 그냥 들어오지는 않지요.
이렇게 말하면 또 반론이 제기되겠군요.
당신은 성서와 도덕경을 똑같은 차원에서 보는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난감합니다.
내가 꼬투리를 잡히더라도, 그래도 대답은 해야겠군요.
성서와 도덕경이 전혀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다르기는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해석학적 방법론은 도덕경에도, 성서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만 글을 끝내야겠는데, 또 다른 반론이 귀에 들리네요.
당신은 성서 해석에서 성령의 조명을 무시하는 사람인가?
결국 성서해석이 성령론으로 귀착되고 말았네요.
아니죠.
교회론으로부터 시작했지요.
이게 굉장이 중요한 대목입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모두가 유기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론, 성서론, 성령론이 연결되어있습니다.
더 나가서 종말론도 여기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전반적인 인식이 충분하게 준비되지 않을 때
우리는 성서해석의 견강부회에 빠집니다.
성령의 조명이라....
오늘은 여기서 끝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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