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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정목사님의 글을 읽고 나서...

조회 수 2244 추천 수 20 2005.07.14 15: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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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님께

저는 얼마 전 임영수 목사님에 관한 설교비평을 보고 댓글을 올린,
일산에 사는 김지호입니다.  
종종 이 곳에 와서 목사님의 글을 보고 가곤 했는데,
이제야 다시 글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단숨에 써 내려간 목사님의 글을 보면서,
머리가 아닌 마음의 울림이 컸기 때문인가 봅니다.

거친 듯한 목사님의 글을 읽고 목사님의 호흡이 느껴져,
글을 다 읽은 후 한참동안 눈을 감고
마음 깊이에서 울리는 파동을 느껴 보았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목사님이 가까이서 느껴집니다.  
목사님의 글에 날 선 ‘하나님 중심’으로의 ‘지향’이
우리들이 나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가리키는 손가락을 통해
우리는 당연히 보아야 할 것을 보아야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세우는 사람의 삶이 갖는 진정성도
확보되어야 하는 법인데
(그 진정성은 지식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이 라기 보다는,
그분 앞에 늘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정직함,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 수 있는 겸손함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목사님의 글에 보이는 맑고 투명함은
목사님 스스로가 부단히 자신을 닦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서 신뢰가 갑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인간 중심의 신앙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은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말이 아닌,
나의 실존에 걸린 문제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수없는 인간 중심,
혹은 자아 중심을 봅니다.
끊임없이
스스로 ‘나’를 구원해 보려는 아우성,
칭찬과 인정에 그렇게 민감하고
존재의 축소에 그렇게 겁내하는,
그래서 마침내 생존의 방식으로 굳어져 버린,
‘나의 의’의 초라함과 천박함을 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조차도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는 길은
목사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자신을 끊임없이 축소시키는,
그래서 마침내 침묵의 어둠 혹은 ‘무지의 구름’에
감싸이게 되는
아래로의, 혹은 깊이로의 머나먼 여정입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하게 되는
영적 여정의 길은
그 피니쉬 라인에 도착하여
갑자기 얻게 되는 후광이나 영광이 아니라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끝나지 않은 길’의
과정 한가운데서 만나는
고통과 실망과 갈등들을
정직하게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이면서
맞서는 중에
순간 순간 스치게 되는
사소한 삶과의 신비스런 접촉입니다.

그럴때 자신에 대해 절망한다는 것조차
얼마나 자아 중심적인 것인지를
꿰뚫어 보게 되고,
우리의 구원은 오로지
그분에게만 달려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면서
그분의 현존 안에서의 참된 자유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안셀름 그륀이
<아래로부터의 영성>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의 어두운 부분을 건너뛰어
섣불리 하나님께로 나가려고 하는,
‘영적 우회’ 혹은 ‘영적 생략’을
늘 경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후의 변형의 모든 것은 그분의 몫이겠지요.

정목사님,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일어나는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제 마음이 따듯해지고
든든한 무엇인가가
저를 단단히 붙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일산에서 김지호 드림.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07.15 23:14:51
*.249.178.23

김지호 목사님,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무언가 동일한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군요.
내 글이 따뜻하게 전달되었다고 하니,
제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주 공간을 혼자서 외롭게 떠돌다가
우연하게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이런 것이겠지요.
절대고독의 편안함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도,
물론 그런 연대가 중요하기만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혼자 우주 앞에 직면해 있어야겠지요.
함께 어울림과 헤어짐의 변증법을 자신의 실존으로
명백하게, 혹은 신비하게 받아들여야만
우리의 삶이 영적으로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도 이런 구도로 움직여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결속이 지나치게 강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고독을 느낄 겨를이 없는 것 같군요.
친구를 만난 듯해서 말이 많았네요.
중심이 담긴 덕담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여름철 건강하게 지내십시요.
이만.

[레벨:2]김지호

2005.07.16 14:11:54
*.156.178.64

목사님,
댓글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사님의 댓글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
동일한 것을 보고 있다고 말씀하시니
반갑기도 하고
나 혼자의 생각만이 아닌 것 같아
힘이 나기도 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교회든 사회든 사람들의 결속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보는,
병적인 의존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런 피상적인 결속에서 별로 기대할 것은 없겠지요.

진정한 존재의 기반에 뿌리를 두지 않는
그런 의존에는 자유도 없고 결단도 없어
결국에는 허무에 빠질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하기야 절대고독과 맞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도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보아버리는,
그래서 병적인 의존으로 가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니...

절대 고독의 편안함 보다는
절대 고독의 불편함 혹은 두려움을 먼저 느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일종의 無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고
'자기 중심'을 놓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거기에 구원이 있는데
그곳에 자신을 던져 넣기가
그렇게 힘이드네요.
그러나 구원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목사님 저도 반가운 김에
말이 많아졌습니다.
오늘은 일산도 더운데
그곳 대구는 더 덥겠지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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