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조회 수 2145 추천 수 20 2005.04.22 23: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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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중턱쯤인가 다다랐을 때, 양지바른 무덤가에 두 사람이 쉬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찬란하고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편안한 모습으로 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들 이 산이 어떠한지요?”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또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이 산 참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 다 아름답다고 감탄했습니다. 그 때 바람이 다시 불어 왔습니다. 밤나무며, 감나무며, 이름모를 나무들과 풀들이 사르륵 흔들렸습니다. 다시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 좋은가요?”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어느 정도 올라가시면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가운데 길로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 길로 한참 가다 보면 갈래 길이 또 나오지만 그때부터는 나뭇가지에 묶인 노란색 리본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바위도 많지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찾고 리본을 찾아서 가시면 될 겁니다.”
또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붉은색 리본이 달린 길도 있고, 푸른색 리본이 달린 길도 있지만 그 길들은 다소 험하고, 시간도 좀 더 걸릴 겁니다.”
덧 붙여 이야기 했습니다.
“중간에 쉴 곳들이 있지만 물이 없으니 아래에 있는 샘터에서 물을 충분히 물통에 채우고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정상에 서면 불어오는 바람, 찬란한 햇빛, 그리고 눈 아래 펼쳐지는 광경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울 겁니다.”
나는 또 물었습니다.
“이 산의 수생대가 어떠합니까?”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활엽수대고 좀더 올라가면 침엽수대가 나타나다가 정상이 가까워지면 고목대와 고산초지가 나타날 것입니다.”
또 물었습니다.
“멀리서 이 산을 볼 때는 웅장하고 덕스럽게 보이던데 험하지 않은지요?”
다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생각보다 곳곳이 가파르고 험합니다.”
또 물었습니다.
“이 산에서 볼만한 것들이 무엇인지요?”
오른쪽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산에서 볼만한 곳과 경치 좋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지도를 꺼내 보여주면서 이러저러 설명했습니다.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으면서, 그렇다면 이러저러하게 진행하시고, 아쉽지만 모두 다 볼 수는 없을 거라고, 또한 이러저러한 곳에 가면 이러저러한 것들을 꼭 보고, 보되 이러저러한 사실들을 알고 보는 게 좋을 거라고...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나는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이전에 다녔던 산들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이 산을 머리 속에 그려 보았습니다. 비교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는 내용들도 많았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들로 후회하면서, 내가 경험하고 생각했던 범위 안에서라도 이 산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 두 사람과 대화하면서 나는 점차 이 산이 머리 속에 그려졌습니다. 어느 순간 이 산이 그들의 첫 번째 대답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2. 그런데 내가 도착하기 전, 한참이나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 산의 정상까지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중턱에서 머물렀고, 또 한 사람은 정상까지 다녀 온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다고 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구별할 수 있을까 한참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3. 어느 순간 바람이 나의 온 몸을 감싸고돌았습니다. 다시 생각했습니다. 산중턱까지 올라오면서 나의 오감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이 무엇인 지, 오히려 정상만을 향해간다는 생각에 나라는 존재의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은 아닌 지. 그러했습니다. 나는 이 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 산 중턱 무덤가에서 쉬고 있었던 두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들도, 이 산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들과의 대화가 지식으로는-참이든 거짓이든-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나의 온 몸으로 느끼며, 사유하고 옮기는 발걸음 하나 만큼의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물을 채우고 짐을 다시 챙겨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두 사람과의 대화를 기억하면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생명의 이끌림에 따라 산을 올랐습니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내의 식사를 알리는 소리 때문인지 구수한 김치찌개 냄새 때문인지 몰라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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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04.23 00:20:03
*.249.178.23

허 선생,
재미있는 꽁트라는 생각으로 잘 읽었습니다.
재주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사유와 글쓰기의 틀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생명의 이끌림에 따라 산을 올랐습니다."라고 했군요.
그걸 느끼는 사람은 자유롭지요.
좌고우면하지 말고 그냥 그 이끌림을 따라 가면 충분합니다.
그 생명의 이끌림은 곧 성령의 활동입니다.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 결국 선생도 필요없고, 친구도 필요없고,
물론 잠시 스치면서 인사말을 나눌 필요는 있지만
무얼 함께 구상하고 추진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미 예수님도 이 세상에 선생은 없다고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경지에 올라선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지요.
간단하지 않지만 그런 경지가 있기는 있는 건 분명합니다.
바울의 삼층천 경험이라고 할는지.


[레벨:0]조기성

2005.04.23 07:36:11
*.107.125.140

1.
나는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 부부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같은 산을 오르지만 매번 새로워진 산으로 인해 우리는 늘 즐겁습니다. 사실 그 즐거움은 산이 주는 즐거움인지 아내와 함께 오르며 서로에게 느끼는 즐거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산이 즐겁습니다. 우리 부부에겐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나중에 우리 부부가 함께 그렇게 가보고 싶어했던 산을 올라보는 겁니다.

2.
오늘도 아내와 함께 등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 아래 등산이 시작되는 곳에 늘 앉아계시던 한 분이 여느때와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매번 지나쳤지만 무슨 사연으로 무슨 일로 매일 요맘때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늘 궁금하는 차 였습니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그 분께 다가갔습니다.

"아저씨...여기는 제 아내구요.
늘 이 곳을 지나칠 때면 앉아 계신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저씨는 저희 부부를 힐끔 쳐다보시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물끄러미 산 정상을 올려다 보셨습니다.

"산에 오르고 싶어!!
그런데 이제 그럴 힘도 건강도 허락지 않는다네...
젊은 부부가 보기 좋구먼...나는 젊을 때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마누라에게 산 구경 한번 시켜주지 못하고...."

아저씨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저씨가 짧게 하신 얘기 속에 우리 부부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후회와 인생이라는게 담겨있다 생각하며 이런저런 마음으로 산을 올랐습니다. 아내가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실례가 될 수도 있다고....

3.
산을 오르기전 우리 부부는 몸을 조금 풀었습니다. 그리곤 신발과 옷 매무새를 고쳐 산을 오를 준비를 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산이 주는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이 항상 우리 부부를 새롭게 합니다. 노란 꽃의 이름이 뭔지? 보라색 늘어진 꽃 잎을 가진 가는 꽃의 이름이 뭔지? 시야에 들어오는 많은 나무들의 이름이 뭔지? 그냥 마냥 즐겁습니다. 가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도 데려 올텐데...그 때 물어보면 어떡하지?"

아내가 대답합니다. 자기는 무조건"아빠에게 물어봐?"라고 할꺼라고....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궁금하긴 했지만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애초에 산이 담고 있는 신비를 알아야 된다는 부담은 없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첫번째 늘 쉬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한 분이 이미 자리를 차지 하고 있더군요.
그 분이 저희 부부를 보고 먼저 물으셨습니다. 자주 산에 오느냐고...그렇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늘 이 길로 쭈~~욱 올라다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오히려 저희 부부는 이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웃으셨습니다. 그리곤 다시 물으셨습니다. 당신은 이미 아침 일찍 산으로 오르고 내려오고 있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그럼 이 산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약수를 먹어본적이 없으시겠네요!!"
"물은 따로 조금 준비하지만 거의 먹지 않고 내려옵니다"
"허허..." 계속 웃으셨습니다.

말씀하시는 내내 우리 부부를 존대하신다는 걸 느꼈습니다.그리곤 당신이 가지신 조그만 생수통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오늘은 이리로 가지말고 올라가다 보면 리본이 갑자기 많이 묶여 있는 지점이 있는데 그리고 가지 말고 옆으로 난 샛길로 다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조금더 험하고 고생은 하겠지만 산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꺼라고...처음에는 내려 가는 듯 한데....놀라운 광경이 펼쳐질꺼라고....그 동안은 산을 본게 아니라고.......얘기하시는 내내 허허 웃으셨습니다. 자세한 얘기도 없으셨습니다.

4.
늘 가던 그 길로 가는 것도 힘든 차에 조금 더 힘든 코스가 있다니...아내는 산을 오르는 내내 조금 힘에 겨운지라 그냥 가던 길로 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길이 어떨까 내내 그 생각하며 그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아내와 오는 내내 실갱이를 벌였습니다. 그냥 가던 길 가자는 아내와 새로운 길도 괜찮지 않느냐는 내 의견이 푸르른 산을 가득 메웠습니다. 마침내 중턱에 앉아 계시던 분이 얘기하신 그 곳에 도착했습니다. 결판을 내야 할 판입니다.

아내가 계속 투덜거렸습니다. 나하고 갈껀지 산하고 갈껀지 결정하라고...늘 이런식입니다. 그리고 이럴 때 마다 이긴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를 사랑합니다. 쉬면서 실갱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 문득 산 아래 한 아저씨가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갑자기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애교스럽게 아내를 와락 끌어 앉았습니다. 아내가 무슨 짓이냐고 소리쳤습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마치 소도둑 취급하는....

"여보 그럼 가던 길 갈테니깐 오늘은 다르게 한번 이 산을 올라봅시다!!"

가던 길 간다는 말에 아내는 조금 마음이 풀린듯 했습니다. 이내 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여보 그럼 우리 얼마 올라 오지 않았으니...
내려가서 산아래 계신 그 분을 모시고 다시 올라오면 안될까?
산에 오르고 싶어 하셨잖아!!"

아내는 껄끄러워 했지만 동의했고, 우리는 다시 산을 내려갔습니다. 잠시 후 새로운 길을 만났던 아저씨는 여전히 거기 계셨고, 왜 다시 내려오느냐는 말에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 분을 본지가 4-5년은 되었는데...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하셨습니다. 다음에 혹 함께 오게 되면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느 광고의 문구 처럼 산을 오를땐 혼자이지만 내려올땐 친구가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5.
아내랑 아저씨를 모시러 내려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저씨가 힘들어 하시지 않을까...아마 아저씨를 모시고 오르는 산은 더 색다르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산을 오르는 것 보다 더 천천히 걸어야 할겁니다. 아마 정상 근처에도 못 가볼 수 있겠지요. 그치만 산을 오르며 아저씨는 우리에게 못다알고 있는 꽃 이름과 나무 이름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거란 기대를 해 봅니다. 그리고 나중에 합세하게 될 산 중턱 아저씨로 인해 우리가 가 보지 못한 새 길도 함께 갈 수도 있을테구요......문득 아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가 함께 산에 있다는 사실에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내려 갈때는 역시 산은 그 자리에 두고 와야 된다는 사실이 늘 아쉽지만......오늘은 새로운 걸 산에서 얻었다는 걸 직감합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허정수님...위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한번 흉내내서 저도 한번 써 보았습니다.
저는 내러티브를 좋아합니다.
신앙은 이야기이자 시이자 노래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의 가훈(?)이
"세상을 향한 노래와 시"입니다.
아직 신혼--부부 생활 겨우 2년차 입니다--부부라 멀 모릅니다.
저희 가정에 대한 축복 감사드리구요.
여기서 많은 교제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04.23 12:58:59
*.249.178.23

조기성 씨,
위의 이야기는 여기만 두고 읽기에는 아깝네요.
오마이뉴스나 뉴스앤조이의 아름다운 글모음에 올리면 좋을 것 같군요.
젊은 부부가 함께 산을 오르내리면
사랑과 신앙과 삶을 서로 나눈다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지요.
짧은 글이지만 남편과 아내의 성격도 잘 드러나고
그 사이에 오가는 마음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기분 좋은 토요일 오후를 보내겠네요.

[레벨:6]유희탁

2005.04.25 23:14:26
*.230.164.148

정답을 알고 걷는 길이 아니어서 더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어쩌면 정답이라는 것이 없기에 아름다운지도 모르죠...
이 끌림에 따라...삶을 산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 너무 아름답습니다...
글을 읽으며 자유하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내가 만나고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느낌....
과거의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오늘 내 역사...우리의 역사 가운데 움직이시고 율동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마치 미지의 산을 걸으며 그 산과 하나되어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아름다움이겠지요....행복한 글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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