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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물의 정체와 역할
요한계시록 4장과 에스겔서 1장을 보면 네 생물이 나온다. 거기에 나오는 네 생물의 정체와 그 역할을 고찰하여 보자.
(1) 네 생물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 4:6-7)라고 말한다.
네 생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생물은 하나님을 보좌하고 수행하는 천군 천사를 가리킨다.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그룹’이라고 단언하는 근거가 에스겔서에 있다.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강 가에서 보던 생물이라(And the cherubims were lifted up. This is the living creature that I saw by the river of Chebar)”(겔 10:15)라고 말한다. 천군은 원어로 ‘케루브’인데 우리말로 ‘그룹’이라 쓰고 복수로 ‘케루빔’이다. 천사는 원어로 ‘사라프’인데 우리말로 ‘스랍’이라 쓰고, 복수로 ‘세라핌’이다. 하나님의 수종자 역할을 수행하는 영적 존재인 ‘그룹’은 요한계시록뿐 아니라 다른 성경에도 등장한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라고 말하고,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라고 말하고,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 5:14)라고 말하고,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 그룹을 두었는데 그룹들의 날개가 폐었는데 이 그룹의 날개는 벽에 닿았고 저 그룹의 날개는 저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왕상 6:27)라고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천사는 날개 숫자와 얼굴 등의 모습이 서로 다르고 역할과 기능도 다르다.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겔 10:14)라고 말한다. 다니엘 10장은 천군과 천사의 역할을 크게 둘로 구분한다. 다니엘은 메시아 그리스도를 ‘인자 같으신 이’로 기술하면서 말씀을 전달하고 위로하는 천사 ‘가브리엘’과 사단의 세력과 맡서 싸우는 여호와의 군대장관 천군 ‘미가엘’을 각각 증거한다. 정경에는 천사 가브리엘과 천군 미가엘만 기록되지만, 외경에는 또 다른 천사 ‘라파엘(토비드서)’과 천군 ‘우리엘(에녹서)’ 등이 등장한다. 고대의 교회 전통에 의하면 이들을 ‘사대 천사(四代天使)’라고 부른다.
중요한 점은 다 알 수 없는 천군과 천사의 정확한 모습이 아니다. 성경이 전하는 천군과 천사의 명확한 실상과 역할이다.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7)라고 말하고,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서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슥 6:4-5)라고 말하고,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계 6:1)라고 말하고,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라고 말하고,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시 34:7)라고 말하고,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1)라고 말하고,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 1:14)라고 말한다. 네 생물로 대표되는 천군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유리 바다는 물이 아닌 불로 되어 있다(계 15:2).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땅과 모든 생물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창 9:15), 항상 불로 사람에게 심판을 행하신다(창 19:24, 레 10:2, 민 11:1, 16:35, 단 7:11, 계 14:10, 18:8, 19:20, 20:9-10, 21:8).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는 타오르는 불꽃과 같고, 그 불꽃에서 불이 강물처럼 흘러나온다(단 7:9-10).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불꽃은 온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유리 바다 안으로 쓸어 넣을 것이며, 이 유리 바다는 결국 불 못이 될 것이다(계 20:14). 유리 바다는 하나님께서 불로 행하시는 모든 심판의 총체로서 마치 수정과 같은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수정과 같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9장 8절부터 17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그분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불로 된 유리 바다를 보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여전히 불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눈은 생물들이 빛이나 광경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네 생물은 앞뒤뿐만 아니라, 그 주위와 그 안에 눈이 가득하다(계 4:8). 이것은 그들이 조금도 불투명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수정과 같이 투명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인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이와 같아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있는 스물네 장로는 모든 천사를 대표하고, 네 생물은 다른 모든 생물을 대표한다. 사자와 같은 첫째 생물은 야생 짐승을 대표하고, 송아지와 같은 둘째 생물은 가축을 대표하며, 사람과 같은 셋째 생물은 인류를 대표하고, 독수리와 같은 넷째 생물은 조류를 대표한다(계 4:7).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여섯 범주의 생물 가운데(창 1:20-28) 두 범주, 곧 땅에 기는 것들과 물속의 생물들을 대표하는 것은 여기에 없다. 땅에 기는 것들의 머리는 뱀이며, 이 뱀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상징하는데, 그는 불 못에 던져져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물속에 있는 생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물속에 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 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계 21:1).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이 두 범주의 생물을 대표하는 것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네 생물 가운데 송아지는 깨끗하지만, 사자와 독수리는 더럽다(레 11:3, 27, 13-19). 그러나 그것들은 구속받은 후에 모두 깨끗하게 되었다(행 10:11-16). 네 생물 가운데 송아지와 사람은 온순하고 온화하지만, 사자와 독수리는 거칠고 사납다. 그러나 구속을 통하여 그들은 모두 함께 살 수 있게 된다(사 11:6-9).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람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만물을 위한 것이다(골 1:20).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히 2:9).
외관상 네 생물은 에스겔 1장 5절부터 10절까지와 10장 14절부터 15절까지에 있는 그룹(cherubim)과 흡사하다. 또 그들에게 각각 여섯 날개가 있는 것을 보면(계 4:8), 그들은 이사야 6장 2절에 있는 스랍(seraphim)과도 같다. (출애굽기 25장 20절과 열왕기상 6장 27절에 있는 그룹은 두 날개가 있고, 에스겔 1장 6절에 있는 그룹은 네 날개가 있다.) 네 생물은 그룹과 스랍이 결합된 것이 분명하다. 스랍으로서의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하여 존재하는데(사 6:3), 이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킨다. 그룹으로서의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며(겔 10:18-19, 히 9:5), 이 영광은 하나님의 표현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본성과 표현을 나타낸다.
(2) 네 생물의 찬양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네 생물이 보좌에 앉아 계신 영원무궁히 살아 계신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계 4:8-9)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네 생물은 이사야가 본 스랍들과 모양은 다르지만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영광을 돌린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1-3)라고 말한다. 이사야 6장 3절에서와 같이 ‘거룩하시다’를 세 번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삼일(三一)이시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세 가지 시제(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로 사용한 것 또한 하나님께서 삼일(三一)이시라는 것을 암시한다(계 1:4).
여기에 있는 네 생물의 찬양과 4장 11절에 있는 스물네 장로의 찬양은 세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삼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 곳의 찬양에서 처음 두 항목인 ‘영광과 존귀’는 두 곳 다 동일하지만, 마지막 하나는 다르다. 네 생물의 찬양에서는 마지막 항목이 ‘감사’인데, 이것은 그들이 구속받고 하나님의 은혜의 구속에 대하여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물네 장로의 찬양에서는 마지막 항목이 ‘능력’인데, 이것은 우주를 다스리는 스물네 장로가(그들은 구속받은 피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주를 다스리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감상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숫자 4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왜 네 생물인지에 대한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