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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申命記)

조회 수 2142 추천 수 0 2023.02.13 1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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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申命記)

 

신명기라는 이름은 헬라어역 구약성서에서 비롯되었다. 히브리어 성서에서 신명기는 엘레 하드바림’(이것은 말씀이다)으로 불린다. 히브리어 성서에서 각 책의 제목은 대개 그 첫 장, 첫 구절에 나오는 글자이다. ‘엘레 하드바림(elleh haddebarim)’이란 제목은 히브리어 성서 신명기 11절에 나오는 처음 두 글자이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 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다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1:1)라는 말씀이 히브리어로 엘레 하드바림 아쉐르 딥베르 모세(elleh haddebarim aser dibber moseh)”로 시작한다. 모세가 (전 이스라엘에게 요단강 동쪽에서) 선포한 말씀이 신명기라는 것이다.

신명기를 해석하기 전에 우선 엘레 하드바림(elleh haddebarim)’이란 신명기의 제목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엘레 하드바림(elleh haddebarim)’이란 제목은 신명기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신명기는 말씀‘(debarim)이다. 모세가 선포한 말씀이다. 계시가 아니다. 신탁(神託)이 아니다. 역사 기록이 아니다. 시나 기도가 아니다. 사건이나 줄거리, 그리고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다. 신명기는 그냥 말씀이다. 가르치고 타이르는 훈계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권면이자 설교가 바로 신명기라는 책이다.

신명기는 모세가 해설하여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율법(토라)으로 삼아 모세가 설명한 말씀이다(1:5). 하나님이 직접 선포하신 말씀이 아니다.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곧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한 채 요단강 동쪽의 평원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말씀이다. 이 모세의 말씀은 일종의 고별사이다(31:1-13).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 다다르기까지 40년간 겪었던 광야생활의 쓴 맛, 단 맛을 모세가 회상하면서 이스라엘 회중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당부이다.

신명기에는 비장한 분위기가 서려있다. “너희는 꼭 이대로,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는 모세의 간절한 주문이 거기에 담겨 있다. 출애굽­광야 세대의 마지막 주자인 모세가 이제 가나안 땅 정착시대를 살게 되는 신세대 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지켜 행해야 할 삶의 정신, 삶의 도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권고를 마지막으로 털어놓는 연설이다. 신명기의 히브리 제목 엘레 하드바림(elleh haddebarim)’에는 바로 이런 분위기가 새겨져 있다.

신명기의 말씀‘(debarim)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문법적으로는 복수형이다. 말씀은 대단히 역동적으로 읽혀져야 한다. 신명기는 신명기 본문 안에 수록된 말씀’(dabar, 4:2, 13:1 [12:32], 15:15, 24:18, 22, 30:14), ‘말씀들’(debarim, 1:18, 4:10, 13, 36, 5:5, 22, 6:6, 9:10, 10:2, 4, 11:18, 12:28)과 함께 반드시 지키고 따라야할 권위적인 가르침이다(비교, W. H. Schmidt, ‘dabhar’, TDOT III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1978], pp. 116-118).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털어놓는 유언 형식의 설교이다. 모세가 해설하여 전하는 법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명기를 육법전서(六法典書)같은 식의 법조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명기는 폰 라드(G. von Rad)가 일찍이 지적했던 대로 설교체‘(preaching style)로 전달된 법조문이다. 모세가 죽기 직전 선포한 일련의 설교 형식으로 이루어진 신명기는 전승상 레위인들이 예배 때 전한 설교라는 틀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von Rad, Deuteronomy, pp. 23-27). 비록 신명기 본문 속에 ‘3인칭체 법조문‘(the third-person legal formulations)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신명기는 법전으로 정리된 하나님의 법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계율에 대한 설교로 보아야 한다(von Rad, Studies in Deuteronomy, p. 15). 신명기의 법을 훈계조의 가르침‘(paranesis)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날드 클레멘츠(Ronald Clements)도 이 제안을 따라서 신명기를 법에 관한 설교 모음집으로 보려고 한다(Clements, Deuteronomy, p. 19).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 때 하나님의 법이 감당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훈계조로 가르치는 일련의 연설이 곧 신명기라는 것이다. 신명기는 그만큼 지시적이고 단언적인 명령이 아니라 설교체로 이루어진 권고인 토라이다. 신명기의 말씀은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신명기의 말씀을 듣는 자는 누구나 그것을 지키고 행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된다.

신명기라는 제목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또 다른 사항은 헬라어 제목인 듀테로노미온’(deuteronovmion)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신명기(Deuteronomy)란 명칭이 바로 헬라어 듀테로노미온에서 왔다. 이 이름은 문자적으로는 두 번째’(deutero)란 단어와 ’(nomos)이란 단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명칭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칠십인역 구약성서(LXX)가 신명기 1718절의 미쉬네 핫토라(misneh hattowrah)’­“이 법을 등사하여“(개역), “이 가르침을 두루마리에 베껴“(공동번역), “이 율법책을 두루마리에 복사하여“(표준새번역토 듀테로노미온 투토’(toV deuteronovmion tou'tot)로 잘못 번역함으로써 생겨난 명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테로-노모스’(Second Law)라는 헬라어 제목은 결과적으로 신명기라는 책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적절히 드러낸다. 히브리어의 엘레 하드바림(elleh haddebarim)’듀테로노미온(deuteronovmion)’으로 옮김으로써 신명기라는 책이 오경의 구조 속에서 두 번째 법에 해당되는 자리에 있음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첫 번째 말씀이길래, 칠십인역성서는 오경의 맨 마지막 책인 엘레 하드바림(elleh haddebarim)’을 굳이 두 번째 법(deuteronovmion)’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신명기가 2의 말씀인 것은 시내산(신명기에서는 호렙산)에서 전수된 하나님의 가르침“(19:1­10:10)을 첫 번째 말씀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책 구실을 한다. 오경 속에서 시내산 법이 제 1의 법이고 신명기는 제 2의 법이라는 것이다. 구약 본문을 읽어보면 시내산법과 신명기 사이에는 서로 평행 하는 구절들이 많다. 예를 들어 계약법전(20:22-23:19) 속에 들어있는 규정과 규례가 신명기의 핵심인 12-26장 속에 상당부분 반복되고 있다(Thompson, Deuteronomy, pp. 26-27). 물론 출애굽기의 계약법이 고스란히 신명기에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신명기는 결코 계약법전을 대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신명기의 핵심인 12-26장의 법조문이 출애굽기에 수록된 여러 계명과 법령들과 평행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신명기법(Deuteronomic Law, 12-26)이 계약법전(Covenant Code, 20:22-23:33)을 자세하게 반복하여 상술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19:1­민수기 10:10을 읽어보면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직접 선포하신 말씀이다. 오경을 토라로 이해할 때 시내산 전승단락(19:1-10:10)은 토라의 핵심이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는 중개자이다. 신명기는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신명기 1-34장에서 모세는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과거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계시를 회상하면서 그것을 직접 재차 설명하고 있다. 가히 다시 듣는 토라인 셈이다.

시내산 법은 처음 애굽을 탈출해 나온 사람들이 들은 말씀이었다. 시내산 법을 들었던 대상은, 출애굽기 19:1­민수기 10:10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출애굽 제 1세대이다. 애굽 땅 고센을 뛰쳐나와 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다다른 사람들이 시내산 법을 들었던 처음 청중이었다. 반면 신명기는 시내산/시내광야를 떠나 모압 평원에 다다르기까지 40여 년 간 유랑생활을 계속할 때 새로 태어난, 그래서 이제 어엿한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있는 출애굽 제 2세대를 대상으로 선포된다. 신명기는 출애굽 제 1세대에게 들려주셨던 하나님의 가르침을 출애굽 제 2세대에 해당하는 새 세대 이스라엘에게 새롭게 해석하여 전수하는 글이다. 이점에서 신명기는 시내산법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신명기는 시내산 법을 전제로 한다. 신명기는 시내산에서 전수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재해석이요 새로운 적용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성취해야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해설하고 있다. 신명기는 모세가 선포한 연설이요 설교이자, 모세가 남긴 유언이다.

신명기라는 우리말 이름의 뜻을 되새기고 지나가는 것도 우리 공부에 도움이 된다. 우리말에서 신명기(申命記)라는 이름은 그 표기가 중국 한문 성경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여겨진다. 일본어 성경과 중국어 성경도 모두 신명기를 申命記라는 한문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옥편(玉篇)을 보면 이라는 우리말에 해당되는 한자어는 모두 24개 이상이나 된다. 그 중에서도 , , , , 등은 우리 눈에 친숙하다. 이 때 신명기는 납 신()’을 써서 申命記라고 한다. 왜 하필 申命記일까? 여기에는 나름대로 신학적인 노력이 새겨져 있다.

흔히 말하듯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의 神命記가 아니다. 또한 새로운 명령이라는 뜻의 新命記도 아니다. 신명기를 神命記新命記로 간주하는 것은 신명기(申命記)를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신명기(申命記)의 신()납 신()’이라는 사실이다. 한자에서 의 훈(의미)은 여러 개이다. 첫째, () , 둘째, 기지개켤(欠伸) , 셋째, 거듭() , 넷째, 낯살 펼(容舒) , 다섯째, 아홉 째지신(地支之第九位) , 여섯째, 원숭이() 신 등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명기(申命記)거듭 신으로 풀어야 한다. 흔히 이것을 펴다’, ‘말하다’, ‘밝혀 알린다’(report)는 뜻을 지닌 ()’으로 생각하곤 한다(, 장일선, 신명기, pp. 17-18). 신명기(申命記)라는 명칭을 말씀을 고()한다.”, “말씀을 펼친다.”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란 널리 펼치는 말씀’,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밝히 알리는 말씀으로 읽어야 된다는 것이다. 신명기라는 한자어 뜻을 이렇게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한문 어법에서 정당하지 못하다. 신명기(申命記)()’() 이 아닌 거듭() 으로 풀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申命이란 말이 하나의 숙어(또는 단어)로 쓰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두 글자가 합쳐져서 하나의 뜻을 가진다. 명사나 동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글자가 결합해서 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자에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많은 까닭에 명확한 구분을 위해서 현대 중국어는 두 글자를 결합시켜서 한 의미를 갖게 한다. 신명(申命)이란 말도 두 글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동사인 것이다. 따라서 자 하나만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중국어의 특성을 간과하고만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 申命거듭 강조하여 명령한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이다. ‘자를 거듭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가장 친근한 예가 신신당부(申申當付)이다. ‘신신당부(申申當付)’거듭 거듭 당부한다.”라는 뜻이다.

 

신명(申命)’이란 말이 주역(周易)에서 나온 단어라는 점도 이런 우리 해석을 지지하고 있다. 한글성서 번역사를 보면 申命記라고 번역한 번역자들은 주역에 친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Deuteronomy’를 신명(申命)으로 이해해서 신명기를 거듭 강조하는 계명’, 또는 2의 계명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아야 하리라. 결과적으로 신명기(申命記)라는 이름은 신명기 1718절의 등사하여라는 구절의 의미보다도 신명기의 성격을 더욱 잘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신명기는 바로 거듭 강조하여 들려주는 계명인 것이다.

 

이제 신명(申命)이라는 말을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썼는가를 살펴보자. 새해가 되면 옛 선비들은 임금에게 국사(國事)에 대한 글을 올렸다. 계곡(谿谷) 장유(張維)가 임금에게 올린 글 새해가 시작하는 때 더욱 신명(申命)의 아름다움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는 그 한 예다. ‘주역(周易)’이 말하는 신명은 손괘(巽卦) 상사(象辭)위에서는 아래의 마음을 따라 명령을 내리고, 아래에서는 위의 뜻을 좇아 따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신명기(申命記)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마음을 따라 내리신 명령이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거듭 거듭 말한 계명이다.

주역(周易)’이 말하는 신명(申命)’의 뜻 중에서 아래에서는 위의 뜻을 좇아 따르는 것은 없었을까? 새 해에 아래가 위의 뜻을 좇아 따르라는 편지도 있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계해년(1803) 첫날 두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서 군자는 새해를 맞이하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 번 새롭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새해에는 자식들이 학문에 정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이다. 그것은 출세를 위한 학문만은 아니었다. 정약용은 가문의 몰락으로 벼슬길이 막힌 자식에게 폐족(廢族)’의 후손도 성인(聖人문장가(文章家참선비가 되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며 학문에 정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것도 신명(申命), 즉 부모가 자식에게 거듭 거듭 주는 당부의 말이다.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도 아래, ‘아래를 제대로 헤아려 다스리고 따른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따스해질까. 막무가내식의 명령과 무조건 거꾸로 듣기식의 청개구리식 행함은 아래 위의 갈등만을 야기할 뿐이다. ‘아래 위의 갈등으로 얼룩진 지금 우리 사회에 계곡과 다산의 편지는 소중한 일깨움이요, 깊이 새겨야 할 귀감(龜鑑)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워지고 싶은 갈망이 더해지는 새해다. 갈등과 반목(反目)을 넘어 위를 향해서도 아래를 보면서도 달라지려는 마음을 다지고,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을까.

이중성의 천지개벽경에 이런 문구가 있다. “천장지구(天長地久)에 신명(申命)이 무궁(無窮)하고 일거월래(日去月來)에 인빈(寅賓)이 유방(有方)이라.” 해석하면,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 이어져 천지는 영원한데, 신명(申命)은 그 다함이 끝이 없고, 해가 가고 달이 오며 세월이 흐르면, 인년(寅年)에 찾아오는 귀한 손님에게 방책이 있으리라.”

우리 사회는 지금 신명(申命), 아래, ‘아래를 제대로 헤아려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새 해의 시작 때마다 위와 아래가 동심합의(同心合意)하에 거듭 거듭 마음을 고쳐먹으면 해가 가고 달이 오며 세월이 흐르면 인년(寅年)에 귀한 손님이 찾아와 위와 아래가 하나되는 방책을 내 놓으리라. 그러면 인년(寅年)은 언제이며, 귀한 손님은 누구일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추기: 이 글은 왕대일 교수님의 글에 제가 주역과 옛 선조의 글을 첨삭한 글입니다.


[레벨:29]모모

2023.02.13 14:32:53
*.39.162.247

와, 그동안 신명기가 무슨 뜻인지 몰라 정말 궁금했는데 그 유래와 해석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비추천은 제가 실수로 잘못 누른것이니 개의치 마시기 바랍니다.
profile

[레벨:41]새하늘

2023.02.13 16:40:53
*.126.124.2

제 나름대로 찾아 보았는데 더 구체적으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 되었습니다.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02.13 21:48:06
*.157.223.56

저도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레벨:7]제통

2023.02.14 15:45:47
*.51.176.166

신명기,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요시야 개혁 때 발견(혹은 저술)되었다고도 하더군요.


모세의 입을 빌어 신명기 신학을 펼쳐나가는데 신명기 신학은 인과응보신학이라서 만능신학은 아니지만 중요한 원리를 말해준다고 봅니다.

[레벨:29]모모

2024.01.28 01:20:47
*.134.194.227

브니엘남 님!
인년은 언제이고 귀한 손님은 누구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혹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를 가리킬까요?
ㅠㅠ

[레벨:24]브니엘남

2024.01.30 07:34:00
*.157.155.41

향엄의 대나무

 

향엄은 청주 사람이다. 속세를 싫어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도를 흠모하다가 위산의 선회에 의지했다. 영우화상은 그가 법을 이을 만한 그릇임을 알고 지혜의 광명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평생 배운 견해와 경전이나 책에서 기억해 가진 것을 묻지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에서 나오지 않아서 동쪽과 서쪽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에 대해서 시험 삼아 한마디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수기하겠다.”

 

대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다가 오래 침음한 끝에 몇 마디의 견해를 말했으나 영우가 모두 허락하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영우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사가 결국 방으로 돌아가서 수집해 놓은 제방의 어구들을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대꾸할 만한 것이 없었다.이에 대사는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으로는 굶주림을 채울 수 없구나.”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할 바에는 먼 길을 떠나 죽이나 밥을 먹어치우는 중이 되어서 심신의 괴로움이나 면하리라.”

 

그리고는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에 이르러 충국사의 옛터를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를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면서 멀리 위산을 향해 절을 하며 찬탄했다.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저에게 설명하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겠습니까?”

 

불교의 <향엄의 대나무>란 화두로 답을 합니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고 있으니 저도 답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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