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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초기 교회의 모임

조회 수 677 추천 수 0 2022.12.08 19: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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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프랭크 바이올라의 저서 <다시 그려보는 교회>1세기 초기 교회 모임에 관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것은 진부한 말이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종교적인(교회) 예배에 참석한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것은 교회에 다닌다는 말이나 교회 예배라는 말이 신약성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용어는 둘 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지 한참 후에 생겨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교회를 가야 할 장소로 여기지도 않았고 그들의 모임을 예배로 보지도 않았다.

 

우리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모임을 가졌는지를 이해하려는 눈으로 신약성서를 읽는다면, 그들의 모임에 네 가지 주요 유형이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사도적 모임: 이것은 모인 사람들에게 사도적 일꾼들이 쌍방향으로 말씀을 전하는 특별한 모임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맨 처음부터 교회를 세우거나 아니면 이미 세워진 교회를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열 두 사도는 예루살렘에 교회가 태동할 동안 예루살렘 성전의 뜰에서 그런 모임을 가졌다(5:40~42). 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두란노 서원에서 같은 유의 모임을 가졌다(19:9~10; 20:27, 31). 사도적 모임에는 두 가지 주요 특성이 있다. 하나는 사도적 일꾼이 사역의 대부분을 감당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모임이 절대적으로 영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모임은 임시적이고 또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 그것은 지역에 있는 신자들의 몸이 인간 우두머리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아래 역할을 수행하도록 준비시키는 사역이다(4:11~16; 고전 14:26).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 사도는 언제나 교회를 그대로 놔두고 떠나게 된다.

 

2. 복음전도를 위한 모임: 1세기 때, 복음전도는 보통 교회의 정기적인 모임 밖에서 이루어졌다. 사도들은 불신자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선호했던 장소는 유대인을 위한 회당과 이방인들을 위한 저자거리 같은 곳이었다(14:1; 17:1~33; 18:4,19). 복음전도를 위한 모임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려고, 또는 이미 세워진 교회에 수를 더하려고 고안되었다. 이런 모임은 때에 따라행해졌고, 교회의 영구적인 붙박이 행사가 아니었다. 빌립의 사마리아 여행이 이런 모임의 좋은 예이다(8:5 이하).

 

3. 의사결정을 위한 모임: 때때로 교회는 중요한 결정을 위해 함께 모일 필요가 있었다.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모임이 그런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의 주된 특성은 모든 사람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사도들과 장로들은 도움을 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4. 교회 모임: 이런 모임은 교회가 정기적으로 갖는 모임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요일 아침 교회 예배에 해당하는 1세기 식 모임이다. 하지만 그 모임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1세기 교회 모임은 우선적으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었다. 고린도전서 11~14장의 문맥이 이것을 분명하게 해 준다. 때때로 불신자들이 참석했겠지만, 그들이 모임의 초점은 아니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23~25절에서 모임에 불신자들이 참석했음을 잠깐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의 관행과는 달리, 이것은 목사가 설교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그런 모임이 아니었다. 설교에 초점을 맞추고, 강단에서 회중석을 향하고, 청중이 따로 있는 교회 예배의 개념은 초기 그리스도인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오늘날 매주 행하는 교회 예배는 예배, 설교 듣기, 그리고 때에 따라 복음전도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1세기의 교회에서는 교회 모임의 주된 목적이 아주 달랐다. 그 목적은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다음 구절들을 숙고해보라: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성서에 그려진 교회의 정기모임은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참여하는 것을 허용했다(4:16). 거기엔 눈에 띄는 중요한 지도자가 없었고, 아무도 무대의 중심에 서지 않았다.

 

오늘날의 관행과는 달리, 교회 모임에서의 가르침은 매 주마다 똑같은 사람에 의해 행해지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 모임에서 사역할 권리와 특권과 책임이 모든 지체에게 있었다. 상호간에 격려하는 것이 이런 모임의 주된 특징이었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이라고 한 말이 그 중요한 특성이었다.

 

아울러,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찬송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긴 했지만 그것을 전문 음악인들의 리더십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그 모임은 각 사람이 찬송을 인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전 14:26). 그 찬송들 자체도 상호관계의 요소로 특징지어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서로”(피차)가 초대교회의 모임에서 지배적인 요소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제한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찬송을 지어 모임에서 부르곤 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1~14장에서 1세기 교회 모임의 모습을 드러내주었으므로, 우리는 모든 지체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임을 보게 된다. 자유함, 열려 있음, 그리고 자발성이 이 모임의 주된 특징이다. “서로”(피차)가 지배적인 특성이고 서로 덕을 세우는 것이 그것의 우선적인 목표이다.

 

1세기의 모임에서는, 설교든 설교자든 관심의 초점이 아니었고 회중의 참여가 신성한 법칙이었다. 그 모임에는 예식이 없고, 의식도 없고, 성례도 없었다. 기계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임재 가운데서 나왔다.

 

아마 초대교회 모임의 가장 놀랄 만한 특성은 그 어떤 인간 진행자도 없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 신자의 공동체를 통해 모임을 인도하셨다. 그 결과는? “서로”(피차)의 정신이 모임 전체에 두루 퍼졌다. 신약성서가 60번 가량이나 서로”(피차)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각 지체는 그리스도의 어떤 것으로 도움을 줄 특권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모임에 참석했다.

 

1세기 교회 모임은 성서신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은 신약성서의 전신자 제사장주의 교리 곧 모든 복음주의자가 입으로 시인하는 그 교회를 구체화하고 실제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교리의 내용은 무엇인가? 베드로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가 주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도록 부르심 받은 영적 제사장이라는 교리이다. 바울의 표현으로,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지체라는 개념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모임이 사전 준비의 개념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또는 그 모임이 무질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모임을 질서 있게 진행하도록 고안된 몇 가지 포괄적인 지침을 설정한다.

 

바울의 생각엔, 모두가 참여하는 모임과 교회에 덕을 세우는 질서 있는 모임 사이에는 아무런 긴장이 없다. 모임의 질서는 유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각 지체가 몸 전체에 덕 세우기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 부산물이다.

 

내용에 대하여 말하자면, 모임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나누는 모든 말은 주님을 비추었고, 부르는 모든 찬송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모든 기도는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모임이 흘러가는 방향은 전부 주님을 가리켰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주중에 경험한 내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서로 나누려고 함께 모였다.

 

신약성서적 교회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통속적인 관습과는 달리,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직자라고 불리는 종교 전문가 계층에게서 받으려고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의 생명에 관한 것을 형제자매에게 주면서 그들을 섬기려고 모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랐다(12:1~8; 고전 14:26; 1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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