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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기

조회 수 556 추천 수 0 2016.10.01 10: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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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기]


신앙은 결국 성경 읽기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는 내가 그 성경을 읽는냐
아니면 그 성경에 내가 읽히느냐 다.


성경도 두가지 형태로 주어졌다.
죽었다고도 표현하는 의문 곧 문자 또는 율법이 그것이고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표현하는 그 내용, 의미, 진리가 그것이다.


죽어있다는 문자만을 읽으면
내가 그 성경을 해석하게 되어 내가 읽는 것이다.

반면 살아있는 그 영원 곧 진리를 읽으면
그 성경이 나를 읽어 그 성경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따로 읽을 수는 없다.
그 형식과 그 내용을 하나로 읽어어야만만 한다.


역사적으로도 그 성경 읽기를 보면
성경 시대에 한 대표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곧 바리새인은 그 죽은 문자로 자기들이 읽어 자연스럽게 행위를 만들고 열심히 지키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했다면
극히 드물었던 선자자들이라는 사람들만이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듣고 그 말씀에 읽혀 그 존재로 그 말씀을 외쳐야 하는 자 곧 다시 그 말씀이 된다.


말씀이 된 자는 그의 삶 자체가 그 말씀을 전하는 삶이다.
그 삶이 말씀이기에 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삶이 그 전하는 것이다.
아모스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오늘 기독교의 성경 읽기는
그나마 자기가 읽는 것도 아니라 거의 전부 신학자들이나 교부들이 읽은 것을 이어 읽기에 그것마저도 정확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목사들의 성경 읽기가 거의 전부 그 교부들이나 신학자들이 읽은 성경을 다시 읽는 것으로,
그들에게서 성경을 읽게되는 신자들은 그나마도 그런 목사들의 그렇게 읽은 성경을, 그것도 때마다 여러 다른 목사들에 의해 읽게 되기에 정말 제대로 읽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성경은 우리가 아닌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반듯이 내가 읽고 내가 읽히고 결국 나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즉 교회는 그 말씀이 머리가 되는 개인과 공동체다.
곧 성경 없이 교회도 없다.


성경을 읽는 것은 신앙생활의 전부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곧 그 성경과 하나되는 것이다.


신앙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그 성경이 되어 사는 것이다.


[레벨:18]부스러기 은혜

2016.10.01 18:11:44
*.63.31.187

목사님
근자에 올려주신 일련의 글속에서
율법과 보여지는 모든 육적인 것들,
작금의 뒤틀려진 교회 예배와 갖은 예전들,
심지어 성경을 그리스도의 눈이 아니요
인간의 눈으로 읽음으로써 왜곡되어 깨달아,
갈수록 신앙의 오류와 위선,형식에 스스로를 가두는,
그래서 되려 진리와 멀어져가는 그 실패와 갖은 시행착오들속에서, 그게 디딤돌이 되어 비록 소수이긴 하나 진리를 만나는 자가 있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다고 하셨죠?

우리보다 더 열심을 낸 바리새인들조차도 철저히 실패해버리고만 그 율법주의에 우리도 고스란히 맞닥뜨린채 그것에 갇혀 또 내가 갇힌지도 모른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에겐 바리새인과 달리 어떤 가능성을 보셨기에, 오늘 우리에게도 2천년전과 동일한 신앙환경(?)을 허락하시고, 신약을 갖고 있는 너희는 저들과 얼마나 다르겠지...기대하고 계신걸까요?

아님 시간을 초월하신 그 분 눈에는
우리의 오늘이 바리새인과 동시대의 동일한 역사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걸로 여기시나요?
그래서 그들에게 적용한 동일한 잣대로
우릴 판단하시고 심판하실까요?

[레벨:8]김인범

2016.10.01 18:50:20
*.179.49.182

그렇게 이해된다면

신앙은 결국 그런 자신을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신앙 현장에서 '내가 그 바리새인이구나'를 보는 것은

바로 그 진리의 은혜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나는 절대 그 바리새인은 아니라'는 사람들에게 있지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는 지적을 하는 것도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했지요.


독사 곧 뱀은 이중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뱀에 물리면 죽지만 그 뱀을 바라보면 삽니다.

그러기에 예수가 '내가 그 뱀처럼 들려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곧 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구요

그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예수를 그 내용을 이해하는, 곧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다'고도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인 십지가의 본질 곧 그 내용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예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원리이고 이유인 것입니다.


'내가 그 바리새인이구나'를 안다는 것은 진리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은혜가 작동했다는 의미이겠지요.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창세 이후로 세상은 그 원리적 측면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단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어 창조 기사에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신비한 사건으로가 아니라 말씀이 나와 하나되는 은혜입니다.


이건 말로 어찌 설명이 않됩니다.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되면 이 말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과 판단은 동일한 잣대로 하십니다.

근데 다른 것은 자기가 바리새인인 것을 아는 자는

그 심판이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 심판은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인간적인 것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 자체가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

그 진리 앞에 내가 드러나면 그것이 심판입니다.


이런 표현들이 오히려 점점 더 미궁에 빠지게 하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자꾸 사용하는 것은 알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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