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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조회 수 562 추천 수 0 2016.10.07 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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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경이 말하는 신을 표현할 때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실은 이 표현은 인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 한계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야 할 뿐 아니라 그 인식도 이렇게 이름을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그 본체는 아니라는 것을 늘 인식해야만 한다. 그것을 잊고 그 이름을 그 본체로 인식하면 심각한 오해가 생긴다. 그런면에서 그 하나님이란 존재 아닌 존재는 이름도 없다. 그 말은 우리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다. 그것을 영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육이기에 그 육과 같은 실체가 있어야 비로서 인식할 수 있는 존재다. 즉 그 영과 육은 그런면에서 서로 상대적 표현이다. 그것을 성경은 악과 선이라고 표현하고 때로는 하늘과 땅이라고도 표현한다. 즉 예수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이 땅에서 낳고 나는 하늘로부터 왔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것을 창세기는 '천지를 창조했다'고 번역했고 '선악과'라고도 표현한다. 분명한 의도를 가진 상징적 표현들이다. 그리고 그 육신인 인간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고 본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천지 곧 그 하늘, 땅에서 그 하늘은 바로 그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영원의 것이라면 역시 땅은 그 상대적으로 보이고 들리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선악과'도 같은 의미다. 선악과의 원래 이름은 '선 그리고 악의 열매'다. 즉 선 그리고 악이 아니고 그 열매로 그 선과 악이 하나가 되어 맺혀진 열매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 천지 그리고 그 선악과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우리 시각으로 보자면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리스도인 예수는 바로 그 가장 대표적 상징성을 가진 존재다. 그를 '온전한 인간이면서 역시 온전한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온전히 영적 존재인 선과 반면에 온전한 악 곧 보이는 육의 존재로서 하나가 된 곧 선악과인 것이다. 즉 다르게 표현하면 온전한 하늘의 존재로서 그 하늘로부터 곧 영원이 온전한 이 땅의 육신을 입고 그 땅에 온 존재다. 결국 비약하자면 그가 곧 우리이기도 하다. 즉 십자가를 이해한다면 그가 다른 존재가 아닌 바로 나인 것이다.

바울의 갈2:20에서 그 고백이 이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럼에도 이제 시는 것은 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곧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이다. 즉 그 시대에 예수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교회를 그 그리스도가 머리라고 하는 이유다. 머리인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그리스도로 산다. 즉 그 그리스도는 내 몸으로 나타난다고도 할 수있다. 나는 내 몸으로 그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나를 본 받는자 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다.

영원은 그 빛도 실은 없다. 그 빛은 결국 그 몸인 내가 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극단적 표현을 하자면, 나는 이 땅에 그 하나님을 드러내는 예수 같은 영원인데 육신적 존재다. 요1:14에 '말씀 육신'이라는 표현이다. 그것이 곧 우리 성경적 신앙의 가장 근원적 본질이다. 창세기의 주제이고 결국 성경 전체의 내용이다. 이것이 곧 종교와의 확연한 차이다. 즉 바리새인과 예수의 차이인 것이다. 종교는 신과 인간은 결코 하나될 수 없다고 믿는다. 서로가 영원한 타자다.

그러기에 종교는 그 '하나된다'는 표현 자체를 무서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바로 그 '나와 하나님이 하나다' 라는 말이 그 신성모독으로 유대인들에 의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그렇게 표현했듯이 그리고 요 17장에 기도의 핵심으로도 보인 것처럼, 성경은 그 영원 곧 그 하나님과 하나됨이 우리 신앙의 최종 목표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성경적 신앙의 관건은 결국 이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임재로만 가능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 드러나는 모습이 드러난다고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예수나 바울이 그랬듯이, 자기가 그 하나된 자만이 그 시각 곧 머리된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그것을 본다. 마치 구약에 성전과 제사 제도들이 그것을 예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 시각이 없으면 그 성전은 그저 건물이고 제사는 형식일 뿐이다. 열심히 행하지만 하나님과는 상관없다. 그러나 그 시각 곧 그 말씀과 하나되면 그렇게 행하지 않아도 그 성전과 제사 자체로 그 하나님을 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은 분명 알 수 없는데 알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것들을 폐하게 된다.

[레벨:13]석진혁

2016.10.07 16:20:30
*.104.132.130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어느 신학자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으셨나요? 그리고

혹시 목사님께서 예전에 배웠던 신학과  지금의 신학과는

틀린부분이 많나요? 만약에 틀린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인 차이점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글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질문을 해봅니다.

[레벨:8]김인범

2016.10.07 16:33:56
*.179.49.182

저는 신학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실은 잘 몰랐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할 때 없었던 것 다행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유는 만약 그렇게 영향을 받았다면

이런 사고를 갖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배웠던 신학과 오늘의 내 신앙은

많이 다르지 않지만, 상당히 다릅니다.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그 신학이런 것을 겉으로 만이 아니라

그 속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겉과 속이 실은 하나인데

벗겨놓고 보면 결국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내 입장에서 신학이나 교리 등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차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긍정 부정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만

결국은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성경은 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제가 그리스도 임재 곧 말씀과 하나됨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설명하지만 설명한다고 아는 것은 아니기도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먼저 쓴  '인물 이해'라는 글에서 나름으로 밝햤습니다.


[레벨:13]석진혁

2016.10.07 17:02:41
*.104.132.130

목사님 그러면 요즈음 통합측에서도 이단문제로 시끄럽잖아요?


변승우목사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는 하는데 교리적으로 들여다보면


기존 교단과는 상이하거든요


여호와증인이나 몰몬교는 기존교단과 다른점은 있지만 그들이 지은 책에는 기존교단과 별 다른 것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어쩌면 더 복음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단은 문제가 없나요? 그리고


  교리나 신학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시죠?


신학적 내용은 사람이 지은 것은 맞지만 신학이 없다면 성경을 통일성있게  보고


심도 있게 보는데에 상당한 장애가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이단문제와  더불어 신학문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학문적 요소가 배제된 깨달음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편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레벨:8]김인범

2016.10.07 18:24:22
*.179.49.182

일단 신앙 내용은 설명에 한계가 있는 것들이라

해 보는데까지 해 보십시다.


이단 문제를 저는 크게 두가지로 생각합니다.

원래 이단이란 개념 자체가 종교에서 생긴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종교이기 때문에 이단이란 개념이 나오는 것이지요.

만약 종교가 아니라면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이지 이단이란 표현을 쓸 일 이유가 없지요.


더구나 오늘에는 그 이단이란 표현이 너무 남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더구나 이제는 아예 기득권이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한 권력 남용으로까지 사용하기도 하구요.


실은 우리 기독교도 우리 외에 다른 것들을 전부 이단이라고 하잖아요.

오죽하면 보수 신앙인들은 천주교까지 이단으로 취급하는 실정입니다.


타 종교와 이단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구요.


문제는 이단의 규정을 누가 하느냐에 있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게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하긴 예수나 바울도 당시에 기득권이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이단이었지요. 

이 신앙이 종교화되고 권력이 생기면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변승우 씨는 잘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신비주의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번에 합동인가 박영선 목사님이 있는 교단에서

'두날개'를 신학위원들은 이단으로 고발했는데 박영선 목사남이 반대해서 무산되게 한 경우가 있죠.

그래서 온라인에서도 박영선 목사님에 대한 성토가 많은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도 나름 그 박목사님의 그런 의견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모르긴해도 내 생각으로 그 분의 생각은 우리 모두가 실은 그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마치 사도행전에서 당시 존경받던 교법사 가말리엘과 같은 의견이 아니었겠나 생각이 됩니다.

즉 결론 부분만 인용하면

"행 5:38-39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나름 지혜로운 판단이라고 보입니다. 바리새인도 이 정도는 하는 거죠.


그러면에서 '칼 발트'라는 유명한 신학자도 '진리는 이단의 엣지 위를 걷는다'.고 했다더군요.


이단은 규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진리를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 문제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그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함정이긴 합니다.

대부분이 바리새인으로 상징되는 율법적 이해를, 고상하거나 신비롭게 가르치는 거죠.

이런 부분이 바로 제가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그런면에서 신학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필요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신학도 역시 인간의 것이기에 부분은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서로 다르잖아요.

그 서로 다른 신학이나 교리가 교파도 교단도 나누고 만드는 것이잖습니까?


그러기에 다시 강조합니다만 신앙의 관건은 그리스도 이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개념 자체가 설명으로는 설명이 않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는 그 그리스도를 보혜사 성령 말씀 진리 영 등으로 말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깨달음이란 표현은 그리스도 임재의 특징이라고 생각 합니다.

문제는 너도 나도 그 깨달음이란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그럴 때 물론 신학이 도움이 됩니다만

그 신학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로 그 깨우침이 그 신학과 충돌을 일으킬 때도 있지요.

오죽하면 바울이 그 많은 신학적 학문들은 다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했겠습니꺼? 

그리스도의 임재로 하나되어 알고 보니 그 학문들이 쓰레기로 보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편 그 학문이 없이는 그것이 왜 쓰레기라고 하는지도 실은 모릅니다.


학문은 파고들수록 방대한데

반면 진리는 상대적으로 심플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율법적 이해는 그런 학문을 필연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역시 진리적 이해는 오히려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표현 속에 다 들었으니까요.

[레벨:12]staytrue

2016.10.07 18:38:05
*.241.177.84

몸소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거두어낸 결실들 같아서 

좀 더 몸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더 많은 글을 올려주세요 ^^

[레벨:8]김인범

2016.10.07 19:07:54
*.179.49.182

그렇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신학적 지식이 별로인 상태로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 경험으로 목회를 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실은 이런 사고는 그야말로 흔히 말하는 '맨 땅에 헤딩'한 격이지요.


그런면에서 '몸소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거두어낸 결실들 같다'는 표현이

오늘 따라 새삼 제 맘에 와 닿습니다.

한편으론 아주 심각한 혼란을 꽤 장시간 꺾으면서 나름 수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긴 합니다.


글을 보셔서 짐작하시겠지만 제글의 내용들이 좀 강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나름 상당히 수위 조절을 하면서 씁니다만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런 수위 조절없이 서로 나눌 수 있는교제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레벨:12]staytrue

2016.10.07 19:35:57
*.36.151.204

수위라고 하신다면
전 이단에 마귀 사탄 쓰레기일테니
그냥 편하신 수위대로 쓰셔도 될거 같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이 자신의 사유만으로 이런경지에 도달하는게
가능한가 싶네요.

읽다보면 번뜩 거릴때가 많습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금욜 밤인데 비가 내리네요.
그래도 불금 되세요. 전 맥주랑 영화한편 때리고 퍼질러 자야 겠습니다.
내일은 내일 알아서 되겄죠. ㅎㅎ

[레벨:8]김인범

2016.10.07 20:52:26
*.179.49.182

ㅎㅎㅎ


솔직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아직 목사이기도 하고 교단이라는 굴레가 있지요.

그것이 굴레이기도 하지만 때론 절제도 하게 하니까요.


자금은 일반적인 목회를 하지 않고 있지만

조금 더 분명해지만 뭔가를 해야할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도 저 나름은 이 다비아 공간이 숨 쉴 공간이도 합니다.


편하고 좋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레벨:8]김인범

2016.10.08 11:42:04
*.179.49.182

하나님이란 개념은
실은 개념화 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념화하면 망가집니다.

물론 그 본체가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화된 그 내용을 듣거나 보는 사람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율법을 또는 성전을 죄 또는 악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결국 그 하나님과 하나 될 때 
그 때 비로소 진정으로 아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 예수가 요17장에 그렇게 기도하고
죽어야 하고 보혜사로 다시 온다고  하는 것이기도 한 거죠. 

요 14-17장까지가 전부 그 이애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설명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설명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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