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흑인 "예수상'- 아래 렘브란트 그림을 보고

조회 수 4978 추천 수 0 2009.07.11 21: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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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에 서울 오프의 단기강좌 주제인 "렘브란트" 성서 그림에 대한
시와 그림님의 전문가 보다 더한(?) 정확한 분석과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림에 대한 해석과 신학적 통찰을 포함하여...)

그런데 댓글들이 '칭찬 일색"이라  개인적으로는 조금 쓴소리 한마디 하렵니다
한마디로 " 꿈 보다 해몽' 이 과도해지면 사실상 "실체'는 희미해 지고
거기에 수 많은  "ㄱ라" 가(소풍의 1차경고 먹고 조심 ㅎㅎㅎ) 덧 붙여지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여러곳으로 전파 되면서 변형되고 굳어지면
일종의 "미신화(迷信)"  가 많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므로 조금 더 역사적인 진실을 찾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isla4-16.jpg 
 
이  사진은 이스라엘  어느 교회에(?)  전시해 놓은 세계 각국(민족)의 "예수상"  을 모아 전시하는 곳에 있는
수 많은 각양의 예수상 중에 예수님을 "흑인" 으로 표현한 예수상 입니다(어느 나라인지 기억 못함 다만 아프리카 쪽)
 그동안 많은  예수상을 보아 왔지만 "흑인 예수상' 을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에게 각인된 '예수상"  하고는 너무 다르므로  어떻게 받아드려야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만약 이런 예수상을  한국교회가 받아드려 사용 할 수 있을가요?  다비안들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요?

[레벨:14]닥터케이

2009.07.11 22:18:31
*.235.165.203

그동안 서구에서 예수님 얼굴을 너무 서구적으로만 표현해온데에 익숙해져서 우리도 어느사이엔가 그러한 예수님의 얼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2000년전 팔레스타인에 살던 사람들의 얼굴은 지금의 이집트나 시리아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울거라는게 정설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검은 피부 예수님이 좀 더 실물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서구 "유대인" 들은 중앙아시아 및 유럽인들과 많이 혼혈된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이지요. 그들이 진짜로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지도 사실은 불투명합니다. )
그리고, "흑인 예수상"이라는게 자기들에게 좀 더 가깝고 친밀한 인상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한다면 "황인종 예수상" 을 사용하는게 더 바람직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한국 천주교회 일부에서는 성모자 그림을 비녀를 꽂고 한복을 입은 검은머리의 마리아와 색동옷을 입은 꼬마아기 예수로 그린 성화를 걸어놓은곳도 있더군요.  
profile

[레벨:21]유목민

2009.07.11 22:22:31
*.247.74.126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데요,
신학생 학부생 때 짚신 신고 한복입은 예수상 그림을 보고
신앙의 토착화에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profile

[레벨:8]시와그림

2009.07.11 23:58:06
*.109.66.56

장로님~ 그런데 저 예수상은 피부만 까맣지 이목구비는 완전 서구인인데요~ㅎ
만약 역사성에 비중을 둔 예수상이라면
각나라의 복장과 얼굴은 부자연스런 거 겠죠
하지만 또 역사보다 정서에 비중을 둔 예수상이라해도 지금의 현실삶과 소원한 고전적 복장 또한
제게는 부자연스러워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운보 김기창화백이 그린 성화를 보면
동화속 삽화 같기도 하고
우리의 옛 풍습에 억지로 틀어맞추는듯하여 저로선 어색함을 느낍니다
예수와 베드로의 양반 복장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구요
물론, 제가 느끼는 어색함이 서구적 성화만을 접한 학습의 결과라는 측면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은 부분 열어 두겠습니다
그래도 나름 한국적으로 성서 이미지를 정리해본 의미는 인정합니다!

제 개인적 취향으론 '죠르쥬 루오'의 예수상이 문화나 인종에 크게 거슬르지 않고
예수의 성품과 그리스도됨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됩니다
모델과 얼마나 닮았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느냐의 질문으로 돌아온
현대회화의 강점이라 하겠죠
 
 김기창.JPG
김기창
루오.JPG 
루오
첨부

[레벨:16]안희철

2009.07.12 02:55:27
*.206.196.128

그런 현대회화의 장점을,
진중권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복제가 아닌 미메시스, 즉 존재론적 닮기가 되겠죠?

진정한 토착화란
신에 대해서든 문화에 대해서든
"흉내내기"가 아니라
"닮기"라고 한다면
예수의 상 찾기는
원본(실존) 예수의 상에서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병렬적(유사가 아닌 상사)으로 존재하는 예수 상들의 "차이"에서,
즉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자 사이의 차이들"에서
찾고자 하는 "그것"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존재자들을 넘어 존재를 향한
현존재들의 인식이자 존재론적 경험이 아닐른지.



profile

[레벨:8]시와그림

2009.07.12 18:43:58
*.109.66.56

'존재자 사이의 차이' 그 관계성이 아우르는 몽타주적인 파편이
요즘 제게 분야의 경계를 넘어 조금씩 다가 옵니다

[레벨:6]평민

2009.07.13 12:26:18
*.90.57.47

보편적인 "에수상" 은  이 세상에서는 불 가능 한 것이지요
그래서 흑인 예수상도 허락 될 수 있는 것이고, 황인 예수상도, 백인 예수상도 가능 하겠지요
그러나 예수상이 그냥  상상, 추리된 그림 하나에 지나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만약 흑인 예수상을 가진 집단이라면 거기에 맞는 신앙이 있을 것이고
황인 예수상을  가진 집단 이나, 백인 예수상을 가진 집단 이라면  또한 거기에 맞는 기독교 신앙이 있겟지요
지금 까지의 대세로는  경제력과 정치 군사, 학문적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백인 예수상을 가진 집단에 의해서 백인 예수상과 그 기독교가 강요되다 싶이해서 세계에 퍼진 상태겟지요
특히 한국의 경우 백인 예수상이 워낙 강해서 한국인이 가진 예수상은 얼굴조차 내밀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각인된 예수상이 만고 불변의 최고의 진리로 받아드려지고,  강요된다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도 "식자 기독교인' 들 조차도 흑인 예수상이나 황인(혹은 한국적 예수상)을 심정적 ,학문적으로는
동의 해도  실제로 그런 예수상을 교회나 혹은 여러곳에 전시 하자고는 못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집단에 의해 해석된 것이 아닌  진정한 자기 예수상을 찿는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렘브란트 그림만해도 그런것 같습니다.(저는 그림에 문외한 입니다)
"해몽' 이 너무 화려해서 렘브란트 그림이 가지고 있는
그림의 재주성, 독창성적이고 ,창조적인  면과  그가 진정으로 표현 하고자 했던 것들이
희미해 지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로 제시된 "논쟁하는 두 노인" 도  작자는 말이 없는데  보는 입장에서 상상력과 추리력을 동원해
누구는 베드로 이고, 누구는 바울일것이다는 식으로 단정적(?) 으로 말 하는것은 너무 앞선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상이 각집단마다 다를 수 있듯이, 바울과 베드로의 위치가 뒤 바뀌어 이해 될 수도 있겟지요

이런 것들이 소위 사회적으로 "힘있는 사람들' 을 통해서 전파 될 때 렘브란트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정형화 되어 하나의 정통 이론으로 일반인에게는 받아드려\지는 경향이 있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그림은 미신화 되는경향으로 가겟지요 예를 든다면  어느 성지 전문 사진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본인이 촬영한 성지의 사진들을 대형인화 하여 전시회 할 때,  이른바  애짚트에 있는 시내산 이라
일컬어지는 산 정상에서 찍은 광경을  시내산 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했는데, 
몇몇 목회자와 평신도 들은 그 사진 앞에서 기도를 하고 가더랍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나의 예수상을 찾는데 열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렘브란트도 진정한 렘브란트 읽기가  요구 된다고 생각합니다

profile

[레벨:8]시와그림

2009.07.13 13:39:48
*.109.66.56

작품이 가지는 작가의 의도를 관람자가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작가에게 작품해석의  전권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작가ㅡ 작품ㅡ 관람자 식의 계층적 인식, 즉 근대미학의 미적주체성은
소위 '주체의 죽음'으로 해체되었고
관람자가 작품과 갖는 어떤식의 대화와 반응으로 핑퐁공이 오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의 해석도 마찬가지겠지요
지금의 현실성으로 독서할 수 없다면 그저 옛날옛적 이야기일 뿐이겠죠

렘브란트의 모든 그림이 자기에게 현실성이될 리는 없읍니다
렘브란트 읽기의 진정한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여정의 길목들을 자기 스스로 결정할 뿐입니다

profile

[레벨:11]소풍

2009.07.13 14:59:16
*.79.237.40

무례를 무릅쓰고 평민 장로님께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평민 장로님께 온, 오프라인을 통해 반복해서 ‘구라’ 라는 발언을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건만 벌써 한 건 터뜨리셨군요... (이제 겨우 1주차 지났는데 흑흑 ;;...)

권위주의적 폭력성을 항상 경계하시고자 하는 장로님의 마음을 늘 존경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성서와 예술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사유와 고민의 결과물들을 ‘구라’라는 한 마디로 싸잡아 일축해 버리시는 장로님의 태도 역시 가끔씩은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구라... 물론 일상에서 사용될 때에는 농담의 뉘앙스에 가까운 용어이긴 하지만, 글을 통해 타인의 입장을 지적하는데 쓰일때엔 부정적 가치판단과 조롱의 의도가 다분하게 담기기 때문입니다. ‘구라’ 대신 ‘관념적 사유’ 정도의 가치중립적 용어를 사용해 주시면 어떨까요?

 

둘째,

윗 글을 통해 지적하시고자 하는 핵심이 뭔지 좀 헷갈립니다.

꼭지글의 “꿈보다 해몽이 앞선다”는 지적에서는 날조되지 않은 원전(역사적 예수의 실체 / 렘브란트 스스로의 의도)의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읽었는데,

댓글을 통해서는 대상에 대한 주체적인 수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계시네요. 그러려면 당근 “꿈보다 앞서는 해몽”에 대해 너그러워지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몇 번을 읽어봐도 서로 상반되는 두 주장이 뒤섞여서 전개되는 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분들의 댓글들도 둘 중 한쪽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전개되며 장로님과 부분적 동어반복을 하는 헷갈리는 상황이 연출되는군요.

 

물론 두 가지 주장을 관통하여 종합적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뭔지는 잘 압니다. 특정한 사람(또는 집단)의 의도적 해석이 수용자들의 무비판적 수용, 또는 적극적 지지를 통해 하나의 권위로 고착되는게 불편하다, 뭐 이런 말씀이신거죠?

하지만 장로님, 그런 염려를 다비안들에게, 그리고 김학철 교수님의 강의에 적용시키시는건 좀 기우 같습니다요. 제가 주최측 입장에서 강사님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췰까 염려됩니다만, 그분은 그저 본인의 방식대로 신앙과 예술을 접목하여 독창적인 해석의 길을 열어가고 계신 소장 학자이시잖아요. 지속될 강의를 통해서도 확인되시겠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이 땅의 보수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신앙 패턴에 끊임없이 질문과 말걸기를 시도하시는게 그 분 강의의 진면목입니다. 예를 들어주신 바울과 베드로 그림만 하더라도 강의의 핵심이 누가 바울이냐, 베드로냐에 대한 정보의 전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을 더 이상 문자적 공경의 대상이 아닌, 논쟁적 해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렘브란트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수백년전 초기 개신교도의 사유에도 이르지 못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 대한 에두른 비판이기도 하구요.

그러니 오히려 김학철 교수님의 강의야말로 장로님이 말씀하신대로 ‘주체적으로 사유하기, 주체적으로 그림 읽기’의 전형을 보여주시는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장로님의 염려대로 김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이 그분의 해석을 마치 또하나의 규범처럼 수용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김학철식 렘브란트읽기를 통해 수강생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을 해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힌트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몫이겠죠. 저는 장로님의 염려를 뒤로 하고 학우님들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는데 배팅하겠습니다. 일단 쭉~ 함께 진도 나가시자구요.

 

저녁 시간에 뵙겠습니다 ^^*

[레벨:6]평민

2009.07.13 16:32:06
*.90.57.47

이런 !! 주책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군요...조심 한다고 했는데도....
내가 이렇게 글쓰기에 서툴러서 그렇습니다 학문적인 정확한 용어도 사용 못하고 해서
오해의 소지가  많지요...
누구를 비판하거나  판난 하는것이 아니라  (할 실력도 전무하니요) 밝혔듯이  렘브란트 그림에 대한 칭찬 일색이라
반론 비슷한  생각을 말해 본다고 하는것이 그렇게 되었내요. 그림에는 전연 문외한 이라 횡설 수설 이지요
 " ㄱ 라" 라는 말도 일종의 지상에 쓰기에는 어려운 비속어에 속하지만 자유 게시판 이니 그냥 썼내요...

그런데 그말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하신 부정적 이다 는  긍적정인 것에  반대가 아니라 제 경우는 "본래 뜻" 을  왜곡 하게 만드는
일종의 알레고리 로 생각합니다. 배움이 짧아서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면  좋겠습니다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7.13 17:55:37
*.234.35.112

김학철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으로서 저도 한 말씀 보태고 싶네요.
소풍님의 말씀처럼 김교수님은 그 분의 독특한 그림해석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고는 해석해 낼 수 없는방법이지요.
그래서 주관적 해석이라고 보여 질수도 있지만, 그러나 결코 고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분의 깊은 신앙적 고민이 흠씬 배어 있는 해석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서울오프 운영진들의 탁월한 선택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도 제 발걸음이 가볍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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