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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수는 역사다" 감상문

조회 수 4996 추천 수 0 2017.09.04 15: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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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예수는 역사다' (The case for Jesus) 라는 영화를 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서, 신을 믿지 않던 기자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반대 증거를 찾다가 결국은 크리스찬이 되는 이야기다.

 

제목만 보면 마치 '다빈치코드' 같은 그런 영화적 전개를 보여줄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보면 딱 좋을 호교적 감동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의 아이는 사탕이 목에 걸리는 바람에 질식사를 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처한다. 그 때 어떤 흑인 크리스찬 간호사가 나타나 그 아이를 구해주고 - 그 간호사는 그 자리에 자신이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 한다. - 그의 아내는 그 때부터 내면적 고민이 시작되면서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나가게 된다. 그는 그렇게 변해가는 아내가 못마땅했고, 예수의 부활의 허구성을 증명해내기 위해서 전문가들을 만나고 문헌적 증거들을 모으다가 결국 예수의 부활을 지지하지 않는 증거는 없다는 결론을 얻으면서, 스스로도 크리스찬의 길로 접어들고, 결국은 목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실증적 반증으로 시작했다가, 마무리는 실존적 신앙으로 끝을 맺었다. '예수는 역사다' 라는 제목은 영화도 안 본 사람이 지은 이름처럼 황당하다. '예수는 실증적 역사가 아니라 실존적 역사다' 라고 제목 지었으면 이름이 길긴 해도 차라리 적절할 듯...

 

이 영화는 예상보다 심하게 노골적 호교 영화였다. 이미 거기에서 영화적 가치로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이 가능했을까하는 신기함이 맘속에 일어났다.)

 

그의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에게 회심을 위한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는 한국적 기독교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어차피 한국 기독교가 미국 기독교니까... (그런데 만약에, 이 여자가 빠진 종교가 신천지라고 하면 정말 후덜덜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신천지도 호교를 위해서 충분히 쓸 수 있는 영화다. 그 만큼 피상적인 영화라는 이야기다)

 

또한 주인공이 크리스찬이 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아주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귀류법 - A 가 아닌 것이 참이 아님을 밝힘으로써 A가 참임을 증명하는 방법 - 에 의한 증명은 수학에서나 진리일 뿐이다. '예수 부활은 사실이 아니다' 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어떻게 '예수 부활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건조한 사실만을 위한 사실이 증명이 되었다 한들 그 표면적 사실이 그의 회심에 그렇게 큰 역할을 했을까? (예전에 C.S 루이스도 그런 시도를 하길래 책을 읽다가 덮은 적이 있다.)

 

내가볼 때 일단 그의 회심의 큰 이유는 자신이 펼쳐나가던 이성적 논리의 끝자락에서 말이 막혀버린 체험- 아포파시스 - 이다. (아퀴나스가 그랬고, 어거스틴이 그랬고, 오리게네스가 그랬고, 에크하르트가 그랬던...) 자기가 너무나 싫어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알게 된 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진실, 그리고 자신의 기사를 통해서 진짜 범인으로 만들어버렸던 그 사람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철옹성 같던 자신의 하얀 거탑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 케노시스 -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사실 예수의 부활을 증명해가던 과정보다는 이 디테일이 더 중요하게 보였다. 결국 신앙은 아포파시스와 케노시스, 말문의 막힘과 비워짐(무너짐)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신앙이란 아포파시스와 케노시스를 통하여 우리가 삶의 피상성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적 깊이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종교, 특별히 기독교가 함께 할 수 있고, 물론 주인공과 그들의 가족은 그런 의미적 깊이로 들어갔을 것으로 믿는다. 그 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예수는 또한 우리 영혼 속의 불꽃으로서, 우리의 삶이 의미적 깊이로 들어가는 통로와 상징으로서 경험되어야지 피상적인 종교적 기호로서 이해되는 수준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이 영화는 그 회심의 과정이, 전통적 기독교 프라퍼간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너무 식상한 느낌을 주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7.09.04 21:30:01
*.201.102.32

아포파시스와 케노시스의 융합!

정곡을 찌르는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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