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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님께 드리는 편지(1)

조회 수 5334 추천 수 2 2014.04.14 2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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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3월 중순 아래와 같은 글을 '뉴스앤조이' 인터넷 신문에 송고하면서 고신대학교 박영돈 교수님과 본격적으로 지상 논쟁의 장을 펼칠 수 있도록 주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뉴조에서도 기꺼이 중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됐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이 고사하셨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이 저에게도 직접 메일을 보내오셔서 이런 논쟁에 개입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세번 메일 교환이 있었습니다.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없던 일로 했는데, 이미 써 놓은 글이 있어서 다비아에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입견 없이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됩니다. 정용섭 주)

 

 

박영돈 교수님께 드리는 편지(1)

 

박영돈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교수님께서 최근 저서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IVP, 201311월 발행)에서 비교적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언급해주신 정용섭 목사입니다. 소위 설교비평의 장을 연 사람으로 알려져 있긴 하나 우연하게 그런 유의 글을 쓴 것일 뿐, 설교에 대해서 왈가왈부할만한 사람은 전혀 못됩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시작된 설교비평 작업을 벌써 수년 전에 끝내고 지금은 조용히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지인을 통해서 교수님이 저의 작업을 좋게 평가해주셨고, 또 일정한 방향에서 비판한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글이 술술 잘 읽혔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의 흐름이 유려해서 눈과 마음이 저절로 따라갔습니다. 저의 글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막론하고 전체적으로 정확했습니다. 그 글을 통해서 교수님의 생각이 어떤지 많이 알게 되었고, 또 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직접 만나서 대화한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언어 자체의 한계가 있기에 서로 간에 약간 엇갈리는 대목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 엇갈리는 대목을 좀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전화나 이메일을 통할 수도 있지만 설교와 설교비평 문제는, 그리고 거기에 연루된 신학 문제는 한국교회 전체에 해당되기에 가능하면 공론의 장으로 나가는 게 좋다고 보고, 이렇게 느닷없이 <뉴스앤조이> 인터넷 신문에 편지글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혜량을 바랍니다.

 

교수님은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이하 얼굴’)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일곱 개의 주제로 설명되었습니다. 1) 한국 교회가 실패한 자리가 다시 시작해야 할 자리, 2) 무너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건설, 3) 교회의 새로운 청사진, 4) 목사가 문제이자 해답이다, 5) 한국 교회 설교, 이래도 되는가, 6) 아름다운 성령의 얼굴이 나타나는 설교, 7) 월요일 아침의 강단.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 교회에 대한 개혁적인 관점이 저와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해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속이 시원했습니다. 이런 분을 주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설교 문제를 직접 다룬 다섯 번째 글에서는 저의 졸저 여러 권을 인용하면서 설교의 문제와 방향을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저의 설교비평 작업을 전반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평가해주면서도 동의할 수 없는 대목 또한 여러 번 짚으셨습니다. 그것은 주로 신학적인 차이였습니다. 그 차이가 용납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판단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 차이를 해소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진솔한 대화가 최선이 아닐는지요.

 

<얼굴>에는 위에서 열거한 일곱 항목 외에 한국 교회의 설교 비평을 비평한다는 부록이 실려 있습니다. 순전히 저의 글에 대한 비평입니다. 길이도 34쪽이나 됩니다. 앞의 5번 글은 물론이고 책 곳곳에 나오는 제 글의 인용문까지 합하면 <얼굴>에서 저의 책에 대한 내용이 80쪽 가까이 됩니다. 저의 생각을 교수님만큼 깊이 이해해주실 뿐만 아니라 관심을 기울여주신 분은 제가 별로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교수님의 글은 저의 신학적 토대에 대한 비판이긴 하나 저의 설교비평 작업에 대한 방어라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교수님 스스로 그렇게 밝히셨습니다.

 

따라서 그의 비평을 다시 비평하는 것은 그의 평가를 그대로 다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는 것뿐 아니라, 그의 견해를 싸잡아 배격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와 신학적인 입장을 달리하는 독자들도 그의 비평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고, 어디서부터는 배격할 수밖에 없는지 분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부록의 목적이다. (‘얼굴’ 285 )

 

고맙습니다.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됩니다. 이왕 독자들을 위해서 저의 설교비평을 본격적으로 다뤄주셨으니 이제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사자 간에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온라인으로나마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많은 분들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소견입니다.

 

교수님은 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열 개의 소제목을 달았습니다. 이 순서에 따라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 어떨는지요.

 

-삐딱한 성경관

-인간은 괜찮으니 죄의식을 자극하지 말라?

-제발 교인들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마라?

-변화 없는 구원

-초월주의적인 성령이해

-설교자의 소극적인 역할

-설교자의 직무 유기

-신비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하나님 나라의 복음

-판넨베르크와 신비주의의 희한한 조화

-아쉬운 비평

 

소제목만으로도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정 목사의 성경관에 오류가 있으니 결국 그의 설교비평에도 한계가 있는 거 아니냐, 또는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 거 아니냐, 하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과연 그런지 아닌지를 차근하게 풀어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 소제목에는 조직신학적인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많은 주제들이 들어 있습니다. 성서론, 인간론, 죄론, 기독교 윤리학, 칭의와 성화론, 구원론, 성령론, 설교학, 목사론, 하나님 나라, 신비주의 영성, 판넨베르크의 보편사적 해석학 등등입니다. 우리의 대화가 꼭 이런 순서만 따르거나 이런 주제에 한정될 필요는 없습니다. 교수님은 미처 책에서 다루지 못한 말씀을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비평을 받은 입장이니 저 소제목에 집중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길이가 너무 길면 온라인의 특성상 가독력이 떨어지니 매회 A43매 내외정도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첫 글이기도 하고, 교수님이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실지 모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된 소제목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은 정용섭 목사가 교회와 세상의 현상을 보는 눈은 밝으나 신학적으로 진보 자유주의적 전통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시는지요. 설교비평 작업 후에 저는 양쪽의 일부 인사들로부터 약간 욕을 먹었습니다. 보수 쪽 분들은 저를 진보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며, 실제 진보 쪽 분들은 저를 보수 정통주의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제가 전공한 판넨베르크를 보는 입장도 서로 달랐습니다. 한쪽에서는 그를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역사 변혁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해석만 하는 관념적 정통주의자라고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 판넨베르크는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메인스트림에 속하는 교부신학자인데 말입니다.

 

교수님도 역시 제가 판넨베르크 신학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불편하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남포 교회 박영선 목사님의 반론을 거론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통적 신앙관에 기초한 설교를 이질적인 신학, 즉 판넨베르크의 잣대로 평가한 것이 정 목사의 설교 비평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라는 것이다.”(얼굴 284 ) 박영선 목사님께서 저의 비평에 대한 반론에서 서로 서 있는 신학의 자리가 다르다고 말씀하신 건 맞지만, 제가 틀리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저는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비평한 뒤에 그분을 몇 번 가깝게 뵌 적이 있습니다. 테니스를 함께 치기도 했습니다. 그분 말씀이 당신 자신은 육군처럼 전쟁터의 선봉에 서서 싸운 사람이지만 정 목사는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공군의 역할을 하는 거라는 취지였습니다.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목사님은 다시 저의 설교비평을 언급하셨습니다. 신문보도를 그대로 따오면 이렇습니다. “그때 어른의 안목을 가질 수 있었어요. 책임감을 갖게 된 거지요. 정 목사의 설교분석과 신학적 논리는 너무 정연했어요. 내가 군인이라면 그는 철학자 같았어요. 많은 도전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화음에 맞춰 듀엣을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국민일보, 201434) 저를 과분하게 평가해주신 겁니다.

 

처음부터 제가 저를 방어하는 듯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대화를, 또는 논쟁을 이어가다보면 박영돈 교수님과도 서 있는 신학의 자리에 차이가 있지만 이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든지 도반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이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교수님의 글에서 그런 단초를 많이 보았습니다. 교수님은 설교 행위에서 조직신학 훈련이 필수라는 저의 말을 지지하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교수님은 저와 똑같이 조직신학을 전공하셨더군요. 고신대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의 여러 과목을 가르치시면서 교회현장에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서로 공통점이 많은 셈입니다.

 

교수님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전집과 스펄전 설교전집을 30년째 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신이나 총신 계통의 신학자와 목회자들 중에서 바르트의 책을 애독하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은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바르트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매도하는 분들이 오히려 많은 실정이 아닌지요. 한국교회만의 아주 특이한 이런 상황에서 박영돈 교수님은 정말 귀한 분이십니다. 요즘 말로 합리적인 보수, 열린 보수이시니까요. 저는 판넨베르크 신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바르티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바르트는 개혁주의(칼빈주의) 전통에 서 있는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이기에 교수님과 저는 사실 같은 신학 전통에 서 있다고 봐도 됩니다. 더구나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개혁적 시각이 비슷하기에 대화가 진행되면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졌지 멀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설레는 심정으로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글 마지막 대목에서 하신 말씀이 저의 뇌리에 각인되어 그 반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소통이 불가능한 이유는 서로에게 똑같이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정 목사의 책에서도 이런 사실이 드러난다.’고 하시면서 자신과 다른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고 한국 교회 안에 고질화된 신학적 반목의 골을 조금이라고 메우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면 좋겠다.’(얼굴 315)고 하셨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그런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거대한 역사도 작은 에피소드에게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대화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역사에 작은 디딤돌을 놓은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직 성령께서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알고 계시겠지요.

 

박영돈 교수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불쑥 공개적인 편지를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새학기가 시작되어서 강의와 또 설교 사역에 바쁘실 텐데, 번거롭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답을 주셔도 됩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2014313, 경북 영천 원당에서, 정용섭 목사 드림.


[레벨:28]첫날처럼

2014.04.15 06:08:09
*.182.186.66

개혁주의자들은 "신학적 다양성"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는 버릇이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서로가 그렇겠죠...

서로간의 대화와 이해를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신앙의 진면목으로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계속 올라올 글이 기대가 됩니다...

profile

[레벨:10]나무늘보

2014.04.15 08:49:08
*.102.200.69

박교수님이 지상 논쟁을 완곡히 거절하신 이유가... 짐작이 가면서도 궁금해지네요. 천안에 거주하셔서 개인적으로 몇 번 뵈었고 참 신실하고 좋은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두 분이 만나 대화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식사와 차는 제가 기꺼이 대접할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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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문전옥답

2014.04.15 09:41:13
*.194.68.54

기라성같은 신학자들의 지상 논쟁이 성사됐으면 좋았을걸 아쉽네요.

정목사님은 페북안하시나요?

박영돈교수님은 페북에 신학적 견해나 일상적인 글들을 자주 올리시던데...^^

[레벨:18]르네상스

2014.04.15 10:32:29
*.95.226.237

다비아 홈페이지에서 정 목사님의 한국교회 설교비평에 대한 반론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셨던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과 고신대 박영돈 교수님. 두 분 다 개혁주의 신학노선이시고 성함도 비슷하시네요. ^^

제가 최근에 박영돈 교수님의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이라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 전에 기독교서점에서

정 목사님의 설교비평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 대해 잠깐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이서 지상 논쟁을 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뭔가 사정이 있으시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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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웃음

2014.04.15 11:39:01
*.62.202.68

저도 논쟁이 공론화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많이 배울수 있었을텐데요 

[레벨:5]이택환

2014.04.15 21:54:08
*.139.122.65

페북에서 보여주신 입장을 보면 저는 그다지 기대가 가지 않는 쪽입니다. 그럼에도 두 가지 수확이 예상된다면 1)품격있는 지상 토론, 2)고신의 울타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레벨:14]닥터케이

2014.04.16 10:51:42
*.24.55.53

지상토론이 성사되었다고 해도 결국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국이 재현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고신, 합동 이런쪽에는 아무런 기대를 가질 수가 없어서...

[레벨:28]첫날처럼

2014.04.16 12:19:42
*.213.169.5

저도 닥터케이 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고신, 합동 쪽은 나름 합리적이라는 분들 조차도... 너무 이데아적인 사고가 많은 듯 해요... 인간에 대한 이해도 천박하고... 그 신앙적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은 수도원적 삶을 사는 인간들이어야할 거 같아요... 저는 그냥 생날 인간이고 싶은데 말이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니.. 결국 신에 대한 이해도 도식적일 수 밖에 없는 듯요.,. 

[레벨:10]Transzendental

2014.04.17 01:26:42
*.112.50.218

대화를 건네시는 목사님의 글이 이상하게 감동이 되어 글을 남깁니다. 얼마 전에 본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에 영화 제작을 위해 후원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이 영화 내용보다 더 감동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비록 두 분의 대화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신학자의 말과 삶이 어떤 것인지 목사님 글에서 느낍니다.

이후 올리실 글들도 잘 따라가며 읽어보겠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4.04.17 23:31:35
*.94.91.64

더 이상 올릴 글은 없습니다.

저게 첫번 글이었는데,

박영돈 교수님이 답글을 주셨으면 계속될 수 있었겠지요.

[레벨:14]햇빛처럼

2014.06.02 00:28:07
*.37.133.135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4.06.02 12:03:03
*.94.91.64

햇빛처럼 님의 대글을 읽으니

한번 반론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막 솟구치네요. ㅎㅎ

그분이 저의 제의를 받아주었으면 이 일이 성사됐겠지요.

지금은 좀 힘들 거 같습니다.

그런 논쟁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하는 거고,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써야 하니까요.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으니.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7.06.13 10:25:02
*.164.153.48

우연하게 내 설교비평에 대한 박영돈 교수의 비평을

다시 비평적으로 검토한 글이 보여 여기 링크합니다.

언젠가 한번 본 거 같기도 한데

오늘 다시 꼼꼼히 읽어보니 나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상당히 수준 높은 글입니다.

http://egloos.zum.com/spermata/v/2133717

profile

[레벨:29]캔디

2017.06.13 11:09:36
*.72.247.134

목사님!

그러니까

이 링크걸려있는 이글을  혹 햇빛처럼님이 쓰신 글은 아닐까요?

밑에 댓글뿐아니라요?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7.06.13 22:14:43
*.164.153.48

햇빛처럼 님이 아니고 살펴보니

위 Transzendental 님이 썼네요.

철학 전공자인데, 내공이 깊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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