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주자청 "총총"

조회 수 5352 추천 수 2 2014.12.31 10: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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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내와 함께 외우고 있는 주자청의 총총의 전문입니다.

한 해의 보내는 시점에 이 산문이 더 크게 와 닿습니다.

저도 주자청(1898-1948) 중국의 현대산문가. 시인이자 학자인 인물을 최근 어느 중학교 학부모 강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때 중국어학과를 전공한 교수님으로부터 알게되었습니다.

강연중에 교수님이 어느 특정한 부분을 외어서 얼마나 감동있게 들려 주시든지 저도 인터넷 검색해서 읽고 외우고 있습니다.

 

주자청이 8000천여일,  22세때 지은 산문이라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산문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삶에 많은 화두를 던지는 이 짧은 산문에서, 우리 인류가 쌓아올린 눈부신 문명과 과학기술,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왜 이리 숨막히는지...

한해의 마지막 시간앞에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를 되새겨 봅니다...

 

                       총 총

                                   주자청

 

제비는 가면 다시 돌아올 때가 있고,

버드나무는 시들었다 다시 푸르를 때가 있으며,

복사꽃은 시들었다 다시 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당신이여, 가르쳐 주십시요.

우리의 나날들은 왜 한 번 가기만 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까?

누군가 그것들을 훔쳐갔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누구입니까?

또 어디에다 숨겨 놓은 것입니까? 그것은 그것들이 스스로 도망간 것이겠지요?

지금은 또 어디로 간 것입니까?

 

나는 그들이 나에게 얼마의 날들을 준 것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의 손아귀에서 확실히, 점점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조용히 세어보니, 8천여 일이 이미 내 수중에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바늘끝에서 한 방울의 물이 대양으로 흐르는 것처럼, 나의 날은 시간의 흐름 속에 떨어졌습니다.

아무소리도 없이, 아무 그림자도 없이, 나는 머리가 아프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간 것은 간 것이고, 오는 것은 오는 것입니다.  오고 감의 중간은 어찌 그렇게 총망하답니까?

아침에 내기 일어 날 때,  작은 방안에는 두 세평으로 햇볕이 기울어 들어옵니다.  태양도 발이 있나 본지,

가볍게 조용히 자리를 이동합니다.  나는 또 망연히 태양을 따라 돕니다.

그래서 손을 씻을 때, 날은 세면대 안에서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밥을 먹을 때, 나날은 밥그릇 안에서 지나가 버리고,

침묵하고 있을때는, 진중한 두 눈동자 앞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나는 그것이 바삐 가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손을 뻗어 잡아 당겨 막으려 할 때,

그는 또 막으려는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날이 저물어 내가 침상위에 누워 있을 때, 그는 날렵하게 내 몸위를 넘어 가 버리고, 내 발끝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내가 눈을 떠 햇살과 인사 할 때가지, 나날은 또 하루가 되어 흘러버리는 셈입니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한 숨 짓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날의 그림자는 또 한 숨안에서 번쩍이고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도망가듯 사라져버리는 나날들 속에, 이 드넓은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단지 배회하는 것 뿐이고, 단지 바쁘기만 할 뿐입니다.

8천여 일의 바빴던 걸음 안에서 배회 한 것을 제외하면, 또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지나가버린 날들은 가벼운 연기처럼 미풍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엷은 안개는 막 떠오른 태양에 의해 녹아 버리고 마는 것처럼, 내가 남긴 흔적은 무엇입니까?

 

내가 언제 아지랑이와 같은 흔적을 남긴적이 있습니까?

나는 이 세상에 발가벗은 채로 와서, 한 순간에 발가벗은 채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왜 굳이 헛되이 왔다가야 하는 것이냐 입니다.

당신은 똑똑하니,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요.

우리의 나날은 왜 한 번 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를....

                       1922년 3월 주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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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옹달샘  -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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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7]paul

2014.12.31 16:45:35
*.190.38.46

저 글을 읽으니 어렸을때 읽었던 모모가 생각나네요. 미카엘 엔데가 저자였었던거 같은데.

저는 지금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달팽이님 건강하시죠?

보내 주셨던 우슬초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주남께서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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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15.01.01 23:35:46
*.154.137.51

Paul님
새해 인사드립니다
보석같이 빛나는 모든 시간, 한올 한울 잘 엮어 우리 삶의 무늬가 아름답게 빛나는 새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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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여름비

2015.01.01 16:03:52
*.182.17.150

새해 건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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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15.01.01 23:40:24
*.154.137.51

내 감사합니다
너무 건강해서 탈이네요 ㅎ
새해도 좋은만남 좋은 인연들이 있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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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5.01.01 23:07:57
*.94.91.64

내가 모르는 시인들과 글쟁이들이 참으로 많군요.

달팽이 님 덕분에 주자청이라는 분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금년에도 꿀벌키우기, 곡식농사, 감농사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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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15.01.01 23:44:56
*.154.137.51

올 한해도 늘 새로운 배움과 좋은 만남이 있길 소망해 봅니다..
곧 곶감 소식 올리겠습니다 ㅎ

[레벨:8]성요한

2015.01.02 02:42:37
*.114.204.254

새해에 다비아에 와서 달팽이님 글을 보내요.

좋은 글 감사하고 건강하시길^^

profile

[레벨:33]달팽이

2015.01.02 11:24:29
*.154.137.51

내 신부님
시간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 인간들만 촐랑거리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상식이 통하는 좀 평화로운 새해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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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우쿵

2015.01.02 20:16:12
*.35.47.50

성신부님 오랜만입니다.

제주도 2014년 지나가기 전에  한번 갈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되네요. 성산 두식이 친구는 자꾸 한라산

꿩 사냥 가자고 독촉하고 있고....

 

교회 복실이는 작년에 벌써 두번 이나 새끼를 낳았습니다.

교회 전체 식구 수와 복실이가 낳은 강아지 수가

비슷하네요.(13마리). 지금은 다섯 마리가 뛰놀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의 변화라면....

교회 벽에 걸려있는 기도문  배너 천의 색깔이 바래서

플라스틱 판으로 예쁘게 교체했고,

도로 입구 입간판과 교회 입구 입간판을

새로 오신 레너드님의 걸출한 목각 솜씨로  나무간판으로

멋지게 새로 만들었으며,

매달 첫째주는 레너드님의 부인되시는 안젤라님의 지도하에

영성음악에 맞추어 영성 춤을 배우고 있으며

네번 째 주는 저의 리드하에 정용섭 목사님의

'신학공부"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매달 짝수 주일에는 여성분들은 편히 쉬고

남성들이 돌아가면서 애찬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는 1월 둘째 주에 저부터 이를 시행해야합니다.

 

올해 한번 제주에 갈 계획을 세워보겠습니다.

늘 강건하십시오.

 

Pax Chr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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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구~니

2015.01.02 19:56:48
*.146.32.9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글을 읽으니 참으로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2015년의 또 다른 날을 맞이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profile

[레벨:7]구~니

2015.01.02 20:00:39
*.146.32.9

이맘때면 항상 그리운 것이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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